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60화 (160/325)

# 160

4

티브이에서는 화려한 특수효과와 CG가 범벅이 된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었다.

“저 드라마가 제목이 “현대 달기전” 이라고 했죠?”

“네. 그렇다네요.”

설아가 출연하는 드라마의 전작은 “현대 달기전”, 이름처럼 봉신연의에 나오는 달기를 주인공으로 해서 각색한 드라마였다.

중국에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이 봉신연의는 기본적으로 한국의 시청자들에게도 그렇게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한국 드라마는 아니지만 다른 매체를 통하여 여러 번 다루어진 적이 있었고, 특히 애니메이션으로 다루어진 적이 많아서 젊은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익숙한 소재라고 볼 수 있었다.

게다가 달기라는 인물 자체가 매우 유명한 인물이었으니 달기를 각색하여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 드라마가 소재를 완전히 잘못 잡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음…. 봉신연의라…. 나쁘진 않지만, 이 드라마는 좀 난잡한 느낌이네요.”

민수의 말대로 지금 나오는 드라마 “현대 달기전”은 뭔가 대단히 화려하긴 하지만 이상하게 난잡한 느낌이 들고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민수는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들의 면모를 살펴보고는 저런 배우들을 가지고 왜 저렇게밖에 드라마를 만들지 못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거 진룡 미디어에서 만든 드라마라고 하네요.

배우들하고 CG하고 전체적으로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간 드라마래요.

소문에 의하면 원래 한국에서 인기리에 방송되면 바로 중국으로 보낼 생각이라고 하는데, 저래서야……”

“확실히 봉신연의라면 중국에서도 충분히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소재이긴 하네요.

“유적 탐색자”도 그렇지만, 왠지 진룡스럽다고 해야 할까요?

돈을 엄청나게 투자한 것도 그렇고요.”

“투자가 많으며 뭐해요. 지금 시청률 1위는 엉뚱한 드라마가 하고 있는데요.”

설아의 말에 민수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설아의 말대로 지금 이 시간대 시청률 1위를 하는 드라마는 TVA에서 방영하고 있는 미국 드라마인 “BMT 과학 수사대 시즌 2” 였다.

미국의 시즌제 드라마인 “BMT 과학 수사대”는 기존의 미국 수사 드라마와는 전혀 다른 방향의 드라마였다.

원래 미국의 수사드라마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사건의 발생과 수사, 그리고 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고 편마다 하나의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그런 시류를 따르지 않고 수사 대원인 주인공 개인의 사정과 인간관계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수사와 사건의 해결보다는 주인공의 사랑과 우정을 중점으로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었다.

도대체 그런 내용으로 진행할 거면 왜 과학 수사대라고 제목을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드라마는 결국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하였다.

다만 이 드라마의 코드가 아시아와는 잘 맞았는지 의외로 한국이나 일본, 기타 아시아 지역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고 이 드라마의 한국 내 2차 방영권을 구매한 TVA는 생각보다 많은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아시아 지역에 방영권을 판매해서 상당한 이익을 얻게 된 이 드라마의 제작사는 결국 미국 내 시청률보다는 아시아 쪽의 방영권 수익을 노리고 시즌2가 제작되게 된다.

다만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였다.

1시즌의 한국 내 방영권을 사들여 상당한 이익을 본 TVA가 아예 드라마 제작 투자금의 일부분을 감당하고 한국 내 독점 방영권과 미국과 동시에 방영할 수 있는 권리인 동시 방영권까지를 배당받은 것이었다.

이 일은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이었는데, 민수가 “서쪽 해변”에 참여하면서 그 드라마가 망하지 않았고, “서쪽 해변”이 일본에서 선전하면서 얻은 이익이 생각보다 커 TVA가 그런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팬덤이 많았던 이 드라마는 지금 30%가 넘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하고 있었다.

원래도 팬덤이 많아서 어느 정도 시청률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드라마였는데 가장 큰 경쟁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 달기전”이 알아서 몰락하면서 막을 자가 없게 된 것이다.

지금 들리는 말에 의하면 TVA가 이미 광고 수익만으로 투자금을 충분히 회수한 상황이고 드라마의 재방송을 통하여 충분한 수익을 추가로 노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TVA는 드라마를 만들지도 않고 돈만 투자해서 큰 이익을 본 셈이었다.

민수는 왠지 자신이 만든 것 같은 이 나비효과가 조금 어이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재미있기도 했다.

“진룡에서 속이 많이 상하겠어요.

저 정도면 진짜 웬만한 영화 한 편 찍는 것만큼은 투자했을 거 같은데…..

그러고 보니 설아 씨가 찍을 드라마가 방영하는 시기에도 진룡에서 만든 경쟁작이 있지 않나요?”

“있죠.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수연 언니의 “로열”도 그렇고 바보 오라버니가 찍을 영화도 개봉 시기에 진룡에서 만든 영화가 같이 개봉할걸요.”

“무슨 악연도 참….”

“악연을 떠나서 지금 진룡이 엄청나게 많이 찍고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에요.

진룡은 엄청나게 찍는데 우리는 진룡의 드라마나 영화에 못 들어가고, 그러니 자연적으로 우리가 찍은 작품이랑 그쪽 작품이랑 경쟁작으로 만나게 되는 거죠.”

설아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그럴 듯했다.

“그나저나 민수 오빠는 차기작을 아직 못 정하신 거예요?”

잠시 즐거웠던 민수는 설아의 말을 듣고 갑자기 우울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에 중국 활동을 마치고 왔을 때 소희가 중국에서 스케줄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신도 중국에서 티켓파워가 인정되었으니 혹시 더 많은 배역이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하던 시기가 있었다.

물론 민수의 예상대로 더 많은 섭외가 들어오긴 했다.

다만 더 다양한 액션 영화에서만 섭외가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무협 영화까지 섭외가 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무협 영화도 스토리만 좋으면 충분히 찍을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 들어오는 것은 대부분 허황되기만 하고 전혀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민수는 딱 봐도 적당히 만들어서 자신의 중국 내 인기를 이용해 한탕 하고 빠지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지는 않았다.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확실히 이젠 더 기다리는 게 무의미해 보여요.

우선 들어온 것 다 살펴보고 우선 액션 영화를 하나 찍어 볼까 해요.

그것도 대본이 마음에 들면 그런 거고, 그런 거마저 없으면 결국 다른 영화에 주연부터 조연까지 마음에 드는 배역을 다 찾아다니면서 오디션을 봐야겠죠.

제 주제에 너무 편한 길로 가려고 한 게 문제였을까요?

어쨌든 지금 상황은 그래요.”

배우가 배역을 찾아 오디션을 보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대작을 성공한 배우가 따로 오디션을 보러 다니는 것은 그 나름대로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요즘 민수는 차라리 처음부터 그래야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굳이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기껏 올려놓은 가치를 떨어트리는 것이 소속사 입장에서는 마음 아픈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요청이 들어온 것 중에 선택하려고 한 것인데 확실히 소속사가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와 제작사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신의 가치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이해가 안 되네요. 오빠 같은 사람을 이렇게 프리하게 내버려 두다니…..”

“뭐, 다 그런 거죠. 아예 오디션부터 다시 볼 생각을 하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원래 일이란 게 그렇게 생각대로 잘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배역을 결정하지 못한 민수처럼 주인공을 결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 남자가 또 있었다.

에릭은 에드워드에게 시원하게 거절을 당한 후 민수에 대하여 완전히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에 있다 보니 계속 민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민수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자신이 만들 영화의 주인공과 너무 잘 어울려서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에릭은 자료를 뒤져 민수가 처음에 찍은 “서쪽 해변”과 “송포유”까지 찾아보았다.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에릭은 당연히 민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표정만 봐도 저 배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주인공도 별다른 대사 없이 표정으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데 그 점을 생각해 봐도 민수 이상 적합한 주인공이 없었다.

에드워드는 에릭의 마음에 들만한 배우들을 계속 소개하고 있었지만, 그 배우들을 계속 민수와 비교하다 보니 전혀 마음에 차지 않았고 민수에 대한 갈망만 커지고 있었다.

에릭은 문득 자신이 찍는 영화가 할리우드 영화였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았다.

만약 할리우드에서 주인공을 찾아보라고 한다면 민수가 아니라도 선택할 수 있는 배우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는다면 민수를 쓸 생각은 절대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수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태생적인 한계를 넘을 수는 없는 것이었고, 할리우드에서 전혀 통하지 않는 동양인 배우를 주연으로 선택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은 지금 중국에서 영화를 찍어야 하고 중국인을 주인공으로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동양권으로 한정 짓는다면 지금까지 민수보다 자신의 영화에 주연으로 어울리는 배우를 본 적이 없었다.

에릭이 계속 주인공을 선택하지 못하자 에드워드도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오랫동안 만들어 왔던 천루 전용 영화 세트장 “천루 시티”가 이미 완공되었고 다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황에서 더는 주연 배우의 결정을 미룰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연이 정해진다고 바로 영화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최고 난이도의 액션을 연기하기 위하여 배우들이 준비할 시간도 충분히 주어야 했으니 주연이 늦게 정해질수록 영화는 더 늦게 완성될 것이 뻔했다.

에드워드는 결국 이 문제를 가지고 천루의 임원진을 찾아갔다.

회의가 열리고 여러 가지 자료를 놓고 많은 의견이 오고 갔다.

그리고 며칠간의 논의 끝에 결국 천루는 에릭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많은 액션 배우의 자료가 에릭에게 전해졌고, 그 안에서 배우를 선택할 수 없었다면 앞으로도 적당한 배우를 찾기 힘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에릭이 말한 것처럼 중국어로 충분히 연기할 수 있으니 국적은 한국인이지만 사실상 중국 배우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는 억지와 민수의 중국 내 이미지가 워낙 좋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어차피 영화의 흥행보다 에릭에게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사소한 것은 양보해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천루의 회장도 임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도 이번 영화는 어차피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선 찍어서 관객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할리우드 영화의 제작과정과 할리우드에서 유명한 감독의 촬영 기법 등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렵게 감독을 모셔왔는데 만약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다고 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천루 입장에서는 정말 낭패였기 때문에 에릭이 저렇게 버티는 이상 천루에서 제시할 만한 다른 마땅한 해결책도 없었다.

회장까지 승낙하자 에드워드는 마음 편하게 에릭을 찾아갔다.

“에릭. 자네가 이겼어.

배우는 그냥 자네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정하라고.

우리가 너무 억지를 부려서 미안해.”

“오~ 굿 잡. 좋아 좋아.

그런데 이 배우 섭외하려면 어디로 연락해야 해?

만약 이 배우가 안 한다고 하지는 않겠지?

이 배우는 중국 배우가 아니라면서? 그럼 충분히 거절할 수도 있는 거 아니야?”

에릭의 말을 들은 에드워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선 삼화쪽에 연락해 보자고.

거기랑 친한 거 같으니까.

그리고 생각이 있으면 아시아의 배우가 에릭 존스의 영화를 거절하겠어?

그런 걱정은 하지 마.”

에드워드가 자신 있게 이야기했지만 왠지 에릭은 조금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들어온 그 배우의 일화들을 생각해보면 보통 똘기 넘치는 배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배우는 대부분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이 있고,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아닌 거였다.

에릭은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자신의 친구가 저렇게 자신만만하니 한번 믿어보자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