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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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짧고 굵은 활동을 마치고 배우들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용명”의 중국 흥행이 생각보다 한국에서 큰 이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입국 때부터 수많은 기자가 달라붙는 것이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았는데 소속사로 돌아가 확인해보니 “용의 울음”이 흥행했을 때 보다 더 많은 스케줄 요청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이미 중국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윤 엔터 배우들은 당분간 스케줄의 스자도 보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 같은 큰 나라를 여기저기 누비며 하루에도 몇 차례씩 자리를 옮겨 감사 인사와 팬 미팅을 다녔으니 그들이 지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더군다나 팬 미팅이 없는 시간에는 간간이 몇 개의 CF를 찍고 심지어 3번의 예능 출연까지 했다.
이처럼 이번 중국행은 지금까지 윤 엔터 배우 중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그런 강행군이었다.
오 팀장이 내보이는 스케줄 표를 못 본 척하고 바로 민수의 아지트로 몰려들어 널브러진 배우들은 중국에서 스케줄을 하면서 겪었던 문제들을 서로에게 토로하고 있었다.
“하…. 진짜 난리도 아니었어.
정말 땅덩어리가 큰 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무슨 이동시간이 이렇게 길어?
진짜 월드 스타들이 전세기를 타고 다니는 것도 이해는 간다니까.”
“솔직히 저희가 전세기를 운영할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래도 삼화쪽에서 저희가 편하게 이동할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해줘서 다행이었죠.”
“뭐, 그것도 공짜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삼화가 우리한테 많이 신경 써 준 것은 사실이지.”
태준의 말대로 삼화가 배우들에게 해준 배려는 작지 않았지만 그대신 배우들도 삼화쪽에서 요구하는 CF를 몇 개 추가로 찍어 줬으니 기브엔 테이크를 확실히 지킨 셈이었다.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가수들이 행사 다니는 스케줄을 생각해 보면 이게 그렇게 과한 것은 아니에요.
솔직히 아이돌 가수들은 그 생활을 몇 달 동안 계속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저희는 겨우 2주 정도 하고 온 거잖아요.”
윤 엔터 배우 중 그나마 가장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소희는 배우들이 투덜거리자 자신들의 스케줄이 그렇게 과한 것이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듣고 이런 스케줄이 정상적이라고 인정한다면 그건 윤 엔터 배우가 아니었다.
“아니 애당초 10일이라고 했단 말이야!
왜 5일이 늘어 난 거야?
그리고 과격한 민수 팬들이 문제였어.
공항까지 따라와서 달려드는 애들은 민수의 팬들뿐이었다고.”
생각보다 중국 현지의 반응이 너무 좋아서 스케줄이 5일이나 늘어났다는 것을 강조하던 수연은 이제 공항까지 따라와 민수와 진의 이름이 적힌 피켓을 흔들던 팬들을 생각하며 민수를 타박했다.
민수는 수연의 말 속에 악의가 담겨 있지 않은 것은 잘 알았지만, 대화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서 자신이 타깃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흠. 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전 그래도 일반인들이 달려든 것뿐이지만, 우리 수연 선배한테는 아주 특.별.한 팬이 몇 분 계셔서 우리를 당황하게 했죠?”
민수의 반격에 수연은 살짝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고 고개가 돌아간 곳에 민수의 말을 들은 태준이 조금 인상을 쓰고 있자 다시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민수의 말대로 수연에게는 몇 가지 아주 고가의 선물이 전달되었다.
상대의 말로는 특별한 사심이 아니라 팬심으로 주는 선물이라는데 아무리 봐도 그냥 팬심으로 받을 만한 물건은 아니라 간곡히 거절하고 돌려 드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번이 아니라 여러 번 있었고, 배우들은 수연의 외모와 분위기가 중국의 어르신들에게 크게 먹힌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사실 그런 선물을 받을 때마다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고 심지어 그냥 주고 사라져 버리면 그 처리가 곤란했기 때문에 결국 스케줄이 지연되는 경우도 있었으니 민수보다는 수연이 일행에게 더 큰 피해를 준 셈이었다.
“아. 괜히 말했어. 에잉.”
반격에 성공하여 타깃이 되는 것을 피한 민수는 더 이상 추가 공격이 들어오기 전에 말을 돌릴 필요를 느꼈다.
“아니, 그런데 반응이 왜 이런 걸까요? 아까 오 팀장님 주시는 스케줄 표는 별로 쳐다보고 싶지 않은 수준이던데요.”
“뭐…. 좀 일이 웃기게 되긴 했지.
아마 기자들도 “용명”의 존재를 몰랐을 거야.
수출하면 수출한다고 온갖 광고를 다 한 다음에 그 효과를 노리는 데 우리는 그런 거 전혀 없었잖아.
우리 일본에 수출할 때 생각해봐. 그때는 그래도 기사라도 나갔었잖아.
그러니까 결국 우리 영화가 중국에 수출된 건 전혀 기사가 안 나갔고, 기사가 안 나갔으니 당연히 누구라도 먼저 잡는 놈이 바로 특종을 터트릴 수 있는 거지.
그러니 기자들이 저렇게 달려드는 건 뭐,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까.”
“특종이라…. 하긴….”
“게다가 “유적 탐색자” 가 대충 중국에서 3000만 관객 정도 들었다고 하지?
그것도 진룡에서 자신들의 업적이라고 엄청 말이 많았었나 봐.
사실 한국 영화가 해외에 나가서 그 정도 흥행을 한 경우가 없긴 했지.
흥행 수익도 수익이지만 한국에서 수출한 영화 중에 가장 많은 관객 수를 기록한 영화라는 타이틀도 솔직히 무시 못 하는 거니까.
그런데 그 영화의 중국 흥행수익이 대충 10억 위안? (한화로 약 1600억) 정도라고 하는데 지금 우리 영화가 중국에서 지금까지 집계된 것만 15억 위안이거든.
아마 정확히 집계를 마치면 대충 16억 위안 정도 될 거라고 하고.
그러니까 지금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 거지.
우리 영화가 한국 내 신기록을 세운 것도 모자라 결국 수출 영화 중에 가장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된 거니까.
그러니 기자들이 더 달려드는 거고.”
“기록이라…. 사실 그거 별 의미 없는 건데.”
“생각하기에 따라 좀 그렇긴 하죠.”
“그래도 우리 영화가 엄청나게 잘나가긴 했네요.
역대급으로 흥행했다는 트랜스포머가 아마 20억 위안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지, 우리가 생각보다 잘나가긴 했어.
사실 트랜스포머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한 거고 그… 얼마라더라? 아. 그래 10억 불? 이 정도 흥행수익이 났다고 하니까 우리랑은 솔직히 상대가 안 되지.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원래 그네들이랑 우리랑은 체급 자체가 다르니 이 정도면 우리로서는 굉장히 선전한 거 아니겠어?”
태준을 말을 들어보니 대충 기자들이 달려드는 이유와 스케줄이 엄청나게 몰려드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유적 탐색자”가 가지고 있던 최고 수익을 낸 영화라는 타이틀을 “용명”이 가로채게 되었다는 이 이야기가 윤 엔터 배우들에게는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일이었지만 다른 곳에서는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까지는 잘 몰랐다.
중국 스케줄을 다녀온 배우들은 그날부터 늘어지기 시작했다.
사실 오 팀장의 스케줄 표는 권고였지 확정이 아니었고, 윤 엔터는 배우의 모든 스케줄 결정은 자신이 하게 되어있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스케줄을 충분히 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배우들의 휴식에도 이유가 있었다.
벌써 시간이 흘러 8월이 반이나 지난 상황이었고 이제 배우들 각자 다음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번 중국행을 마치고 소희도 차기작이 확정되었다.
소희가 다음에 찍을 작품은 중국의 사극 드라마인 “무후 측천”이었다.
당나라 측천무후는 중국에서 빈번하게 사극의 소재로 사용하는 인물이었는데, 이번에는 예전과는 다르게 측천무후 개인을 중심으로 여러 사건을 다룬다고 하니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사극이 나올 것 같았다.
이번에 소희가 맡을 역할은 측천무후를 어릴 때부터 모신 “패월화 수향(가상 인물)” 이었는데 극 중에서는 측천무후을 제외하고는 가장 비중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한다.
측천무후의 어린 시절을 방송하는 1~5화와 중년 이후를 방송하는 55~80화를 제외한 6~54화까지 대략 50편 정도를 출연한다니 정말 큰 배역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번에 삼화에서는 이 “무후측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소희가 받는 출연료 역시 작지는 않았다.
물론 중국에서 주연들이 받는 정도의 금액을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웬만한 주연 배우가 받는 돈보다도 훨씬 많은 돈이었으니 신인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한 대우를 받는 것이었다.
신인이 소희가 이 정도 대우를 받으며 중요한 배역을 차지한 것을 보면 확실히 윤 대표가 위시춘과 친하게 지내면서 서로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 전혀 무의미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윤 엔터의 배우들도 소희의 개런티 액수를 듣고 매우 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륙인가? 돈을 벌려면 대륙으로 가라는 말이 생각나네.”
“전에 가서 CF 찍은 거 생각해 보세요.
단발성인데도 그 정도였다고요.”
“그래도 얌전한 소희 씨가 중국까지 가서 고생이 심할 텐데 걱정스럽네요.”
민수의 말대로 소희는 중국으로 가서 짧으면 3개월에서 길면 6개월까지 보내야 할 상황이었으니 확실히 쉬운 여정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3개월 이상 드라마 촬영을 하는 일은 힘에 부치는 일인데 하물며 그것이 타국인 중국이라면 그 고생은 더 심할 것이 분명했다.
“음…. 중국이라, 사실 중국 배우들이 텃세가 장난이 아니라는 말이 있긴 해.
특히 주연 여배우들이 엄청 심하다는데 심약한 소희 씨가 그걸 잘 버틸 수 있을지….”
“한국 여배우들의 텃세가 귀엽게 짖는 말티즈라면 중국 여배우들은 달려드는 불도그라고 할 수 있겠지.
중국에서 활동하다 온 선배가 그러는데 진짜 진상하나 잘못 만나면 아주 학을 뗀다고 하더라고.
나도 전해 들은 말이라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쉽지는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 진짜 걱정스럽긴 하네.”
연기 경력이 제법 길어서 다른 선배들의 이야기를 이것저것 주워들은 태준과 수연은 걱정스럽게 소희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소속사에서 소희가 보여준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걱정을 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전생의 소희가 중국에서 바닥부터 기어 올라가 결국 모두가 모셔가는 배우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조금 걱정되긴 해도 크게 염려되진 않았다.
아무리 진룡의 서포트를 받았다 해도 첫 작품부터 주연을 맡지는 않았을 테니 전생의 상황과 지금이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민수가 기억하기론 상당히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소희였으니 어쩌면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자란 설아나 수연보다 더 잘 버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당초 민수가 보기에 진소희란 사람이 그렇게 물렁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소희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형우는 당연히 소희와 함께 중국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중국어에 미숙한 형우가 중국어에 능통한 소희를 보조하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이번 중국행을 기점으로 미친 듯이 중국어에 열중하는 형우를 보니 그 열정이면 생각보다 금방 말문이 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소희가 가장 먼저 스케줄을 위해 중국으로 떠나게 되었고 다음 차례는 태준과 수연이었다.
며칠 후 9월 중순부터 크랭크인에 들어가는 태준은 자신이 말한 대로 결국 유럽으로 떠나고 말았다.
여행 기간은 일주일.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태준이 여행을 떠나기 하루 전에 이미 수연이 10을 계획으로 여행을 떠난 후라는 것이다.
상황은 안 봐도 뻔한 것이고 민수는 그들이 해외라고 안심하며 붙어 다니다가 운 없게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 괜히 스캔들이나 터지지 않기를 바랐다.
확실히 8월 중순에서 말까지면 아직 대학생들이 개학하지 않은 상황이라 한국인 관광객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9월부터 드라마의 들어가는 설아와 아직 출연작이 정해지지 않은 민수는 그냥 소속사의 민수 방에서 같이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목적은 설아가 들어갈 드라마의 전작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소희는 이미 중국으로 떠났고, 태준과 수연은 해외로 나간 상황에서 단둘이 소속사에 남아 있는데 이게 어쩌면 태준이랑 수연보다 더 안전한 데이트가 아닐까?
소속사에 단둘이 남은 설아와 민수는 민수의 방에서 민수가 만든 스파게티(이제 한식에 어느 정도 능숙해져 양식에 도전하고 있음)를 먹으며 가벼운 마음으로 함께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었다.
점점 솜씨가 좋아지는 민수를 보며 설아는 완전히 요리를 포기했다.
남자가 한 것보다 더 맛없는 요리를 대접하느니 차라리 다른 걸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스파게티도 얼마나 맛있는지 설아는 만약 자신이 조금이라도 살이 찐다면 그 책임은 모두 민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맛있게 먹는 자신을 흐뭇하게 웃는 민수를 보며 남몰래 한숨을 한번 쉬어주고 눈을 돌려 티브이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