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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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에릭과 에드워드 사이에는 깊은 침묵이 감돌았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에릭이 먼저 에드워드에게 입을 열었다.
“좋아. 이해는 안 가지만 저렇게 중국어로 연기하면서 빌어먹을 정도로 아름답게 액션을 구사하는 저 녀석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건 이해했어.
그럼 결국 중국인이 아니라서 내 영화에는 쓰지 못한다는 말이지?”
조금 격양된 듯한 에릭을 보며 에드워드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할리우드의 거장들이 전부 거절을 한 상황에서 자신과의 우정만을 위하여 중국까지 날아온 에릭에게 에드워드는 정말 모든 편의를 봐주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목적을 생각하면 타국의 배우를 쓰는 것은 정말 무리였다.
“하…. 에릭.
내가 처음에 올 때 분명히 설명했잖아.
우리가 왜 자네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는지 말이야.
이번 영화의 스텝들과 배우들은 전부 중국인이어야 해.
만약 흥행만을 생각했다면 그냥 자네의 스텝들하고 할리우드에서 촬영했겠지.
그럼 자네의 이름값만으로 북미와 중국에서 다 흥행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자네가 원하는 배우를 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이번엔 어쩔 수 없어.
이런 나를 이해해 줄 수 있겠지?”
에릭은 자신의 친우가 안타깝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토로하자 더는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제 생각에는 민수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저 정도로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데 중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기도 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살아왔고 자신조차 혈통을 따지면 영국계였기 때문에 거의 같은 외모를 가진 중국인과 한국인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에드워드의 사고방식은 그에게는 조금 이해가 안 가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안 된다는 것만은 분명했으니 에릭은 한숨을 쉬며 다른 배우를 찾아볼 수 밖에 없었다.
“용명”의 인기는 3주 차와 4주 차 동안 계속되었다.
이제 트랜스포머가 완전히 내려간 상황에서 당장 “용명”의 인기를 누를 만한 영화가 없는 상황이었고 적어도 한 두 주 정도는 “용명”이 인기가 계속될 것으로 보였다.
“용명”의 인기와 함께 민수에 대한 관심 역시 점점 더 켜졌다.
한류에 관심이 많은 중국인은 한국에서 민수에 대한 기사들을 모아 중국어로 번역해 커뮤니티에 올리기 시작했고, 민수가 한국에서 어떤 행보를 걸었는지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군에서 5년이나 복무한 경력,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해서 한 어린 소녀의 목숨을 구한 이야기, 어릴 때 화재 사고로 양친을 모두 여의고 카메라 공포증과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이야기, 수많은 루머에도 자신의 배역을 충실히 소화한 일, 성추행 무고에 무고로 역고소한 이야기, 동료 배우들을 위하여 일곱 명의 남자에게 달려든 이야기, 마지막으로 최근에 팬 사인회에서 보여준 치명적인 모습까지.
무엇하나 중국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들에게 민수는 자신의 역경을 뛰어넘은 대단한 인물임과 동시에 자신의 재산을 타인을 위해 내던진 대인이었고,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영웅인 데다가 진정 무신의 걸맞은 몸을 가진 멋진 배우였다.
그렇게 민수의 과거가 알려지면서 진을 무신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진과 민수를 동일시하며 민수까지 무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대인의 면모를 갖춘 진짜배기 액션 배우.
그리고 현실에서도 일곱 명의 남자에서 달려들 수 있는 담대한 배우.
그들이 보기에 민수는 현대판 무신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이러한 호칭에는 중국인들의 과장을 좋아하는 습성이 숨어있긴 어쨌든 그만큼 지금 중국인들이 민수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중국에서 민수를 포함한 윤 엔터 모든 배우들의 인기가 가파르게 올라가자 삼화는 윤 엔터의 배우들이 중국에서 잠시 활동해 주길 요청했다.
윤 대표도 이미 사전에 약속된 것이었기 때문에 흔쾌히 배우들의 중국 스케줄을 진행하게 되었다.
“헤….. 요즘 진짜 중국에서 민수 오빠 인기가 장난이 아닌가 봐요.”
“어떻게 보면 중국에서 진짜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기도 하지. 우리 정 배우가.
중국은 비극적인 영웅을 사랑하거든.”
“하하. 이게 진짜 웃겼는데, 우리 민수를 중국에서 무신이라고 부르더라.
와 무신이라니.
정말 너무 무시무시한 거 아니야?”
수연이 웃으면서 무신이라고 말하자 민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건 너무 거창한 소리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무신이라면….. 관운장이나 그런 사람들한테나 붙는 말 아닌가요?
민수 선배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도대체 어떻게 무신이 되신 걸까요?”
소희의 말처럼 민수도 이해가 안 가기는 마찬가지였다.
단순히 액션 영화에서 액션 연기를 잘했다고 불릴만한 그런 명칭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한국에서 민수가 어떻게 살았는지 중국인들이 다 알게 된 거 같아.
민수의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뭐, 좀 특별하긴 했으니까 말이야.”
“특히 7명에게 달려든 사건이랑, 혜민이 사건. 그리고 민수 오빠의 그 놀라운 상체 때문이라고 하더라고요.”
“끙….”
민수는 설아와 태준의 이야기를 듣고 역시 중국인들은 과장이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신이라니 참 어이가 없긴 했다.
“그런데 그전에도 진은 완전 무신이라고 불리고 있더라고.
그 뭐냐. “용명”에서는 진이 천명으로 30만 명을 막았다나 봐.”
“와. 감독님 진짜 뻥도 적당히 쳐야지.
30만이라니, 정말 제정신이신가?”
민수는 사실 “용명”은 확인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 CG가 들어갈 거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영화 전체를 감상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연의 말을 들어보니 중국의 분위기에 맞춰 적의 수를 10배로 뻥튀기했나 보다.
“하긴 생각해보면 중국 입장에서 3만은 대군도 아닐 거예요.
삼국지에 보면 막 100만대군. 이러잖아요.”
“그거야 병참까지 합친 후에 뻥튀기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어쨌든 그런 대목이 있긴 하죠.”
“그나저나 천명으로 30만 명이라니 충분히 무신이라고 할 만하네요.”
그 뒤에도 배우들은 즐겁게 민수의 무신론에 대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인기는 민수만의 것은 아니었다.
다른 배우들도 충분히 인기가 있었는데,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역시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희와 설아였다.
설아는 단독 검무 장면에서 관객들에게 강한 임팩트를 주었고 소희는 등장하는 장면에서 보여준 춤 한방에 중국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중국의 커뮤니티에서는 소희의 춤과 설아의 검무를 예쁘게 편집한 영상이 사방으로 돌아다닌다고 한다.
민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전생에서도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사랑받은 둘이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중국 스케줄은 영화의 상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즉 배우들의 인지도가 가장 고조되었을 때로 결정되었다.
삼화에서는 그 시기를 다음 주로 예상하였고, 윤 엔터 배우들은 그에 맞추어 준비를 시작했다.
원래 수연을 제외하고는 중국어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배우들이었다.
수연도 영화를 찍으면서 약간의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동료 배우들이 통역에 나서면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중국 일정은 대충 팬 사인회와 감사 인사, 그리고 몇 개의 예능으로 결정되었다.
지역마다 방송국이 다른 넓은 중국의 특성을 고려하면 모든 지역에 얼굴을 비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고, 삼화의 본거지인 베이징 TV와 천루가 요청한 후난위성 마지막으로 진룡이 요청한 강소위성의 토크쇼에 나가 감사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삼화 쪽에서 요청한 몇 개의 CF와 행사를 나가주면 이번 중국 활동은 끝이 난다.
이번 중국 활동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진룡의 중국 본사에서 윤 엔터 배우들을 청했다는 거였다.
중국 본사에서 진룡의 한국지부와 윤 엔터와의 악연을 알고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어쨌든 윤 대표 입장에서는 조금 이해할 수 없는 조치였다.
윤 대표는 당장 거절하려고 했지만 위시춘이 가능하면 가보는 게 좋을 거라고 넌지시 이야기하는 바람에 마음을 바꿔서 출연을 결정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가보면 왜 자신이 가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을 거라는 위시춘의 말에 윤 대표는 큰 궁금증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위시춘의 말대로 가보면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행사를 다니며 배우들은 자신들이 생각보다 중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민수가 인사를 건넬 때마다 들려오는 “무신”이라는 환호는 민수에게 큰 고양감을 안겨 주었는데 이런 팬들의 호응으로 배우들은 더 즐겁게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리고 베이징 TV에서 첫 중국 방송 활동이 시작되었다.
방송은 가벼운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되었고 배우들은 통역 없이 바로 중국어로 방송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의 호감을 높일 수 있었다.
이 방송의 백미는 배우들이 자신의 특기를 뽐내는 시간이었다.
소희는 중국인들도 아는 한국 걸그룹의 안무를 완벽히 재현해서 많은 환호를 받았다.
하지만 가장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설아였다.
설아가 준비한 것은 역시 노래였는데, 예전에 민수가 지나가듯 말한 것을 잊지 않았는지 그녀가 준비한 노래는 등려군의 “첨밀밀”이었다.
설아는 많은 중국인의 향수를 자극하는 이 노래를 정말 제목 그대로 꿀처럼 달콤하게 불렀는데 특별한 기교 없이 원곡을 잘 살리면서도 풋풋한 젊은 감성을 잘 표현해서 많은 사람의 감탄을 자아냈다.
처음 노래를 한다고 했을 때 마음속으로 은근히 월량대표아적심을 기대했던 민수는 설아가 선택한 곡이 첨밀밀임을 알고 자기도 모르게 조금 실망했는데 정작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지금의 설아와 첨밀밀이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그리고 첨밀밀을 노래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이제 그녀는 항상 슬픈 감성을 가지고 노래하던 그 세라가 아니라 정말 귀엽고 통통 튀는 설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부터 인정하게 되었다.
민수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설아의 첨밀밀은 정말 많은 호응을 받았다.
그 뒤로 모든 행사에서 설아에게 노래를 부탁하는 것만 봐도 그녀의 노래가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적지 않은 파문을 남겼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실제로 인터넷에서도 설아의 노래 영상이 수없이 떠다녔고 한국에서 온 어린 여배우가 부른 달콤하고 아름다운 첨밀밀에 감탄하는 댓글이 무수히 많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강소위성의 토크쇼를 앞두고 윤 대표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진룡의 진시첸입니다. 만나서 반갑군요.”
“….윤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윤강철입니다. 반갑습니다.”
강소위성에서 윤 대표를 맞이한 사람은 바로 진룡의 한국 지부 전 사장인 진시첸이었다.
윤 대표는 진시첸을 보는 순간 그가 위시춘을 통하여 자신을 만나고 싶다고 청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과연 이 젊은 사장은 왜 자신을 만나자고 했을까.
“진룡의 한국 지부와 윤 엔터가 별로 좋지 못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한국지부의 입장일 뿐입니다.
혹시 윤 대표님이 한국지부의 입장을 진룡 전체의 생각이라고 오해할까 봐 제가 일부러 위시춘 사장님을 통해 윤 대표님을 청하였습니다.”
진시첸은 특별한 사족 없이 바로 윤 대표에게 용건을 이야기했다.
윤 대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오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자 진시첸은 웃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냈다.
특히 중국 내에서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수입되고 수출되는지가 이야기의 주를 이루었는데 윤 대표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적어도 확고한 공생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마칠 때 진시첸은 한국 지부가 그렇게 한국의 물을 흐리는 것은 길지 않을 것이며 결국에는 자신이 한국지부로 다시 돌아가게 될 것이니 그때가 되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진시첸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가 진시첸을 보며 내린 결론은 아주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서로의 목적이 같으면 충분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거였다.
자신과 관계가 좋은 위시첸에게 직접 요청해서 자신을 보러 온 마음가짐만 봐도 지금 한국지부에서 엉뚱한 짓을 하는 그놈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진시첸이라….. 되도록 빨리 한국으로 왔으면 좋겠구먼.”
윤 대표는 연예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진룡하고 계속 척을 지고 있는 것은 배우들에게 손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떠올리며 차라리 그래도 말이 통하는 저 젊은 사장이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진시첸을 돌아오게 한다라…..”
윤 대표는 어쩌면 이 의미 없는 대치가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