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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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윤 대표가 궁금한 점은 많았다.
도대체 천루에서 어떻게 “용명”을 접했으며 왜 트랜스포머의 자리에 “용명”을 채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부분을 명확하게 설명해 줄 사람은 눈앞에 있는 위시춘 뿐이었다.
“하지만 이해가 잘 안 되는군요.
천루에서 “용명”을 어떻게 알았고 왜 가져가려는 겁니까?”
윤 대표의 질문에 위시춘은 웃으며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윤 대표께서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천루, 삼화, 진룡은 분명 서로 경쟁하는 관계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의 비밀이 없는 상황입니다.
솔직히 회사 내에 얼마나 많은 천루 쪽 사람들이 있을지 상상이 안 가는 군요.
뭐, 저희도 그쪽이 어떤 계획이 있는지는 대충 알고 있고요.
서로 공공연한 비밀인 거죠.”
서로에게 스파이나 첩자를 공공연하게 보내기 때문에 웬만한 사항들은 모를 수가 없다는 심각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는 위시춘을 보며 윤 대표는 헛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사실 천루에서 “용명”을 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윤 대표께서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천루의 시작은 작은 영화사였습니다.
그래서 천루의 회장님은 영화에 관심이 많고 어떻게 하면 중국영화를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은 분이시죠.”
윤 대표도 천루가 영화사에서 시작되었고 그래서 거대한 미디어 그룹이 된 지금도 중국 내에서 제작되는 대부분 영화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아마 회장님은 “용명”에서 중국 영화의 미래를 봤을지도 모르겠군요.
하하하. 사실 저도 조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중국 영화가 더 발전하면 이런 식으로 나오겠구나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그리고 위시춘은 자신이 “용명”을 보며 느낀 점을 가감 없이 이야기했다.
중국 영화 같은 느낌을 주지만 한 치의 빈틈도 없이 긴박하게 사건이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긴장감을 주기 때문에 조금 방만한 느낌을 주는 현재의 중국 영화보다 우월하게 느껴지는 스토리 진행, 중국에서는 구현하지 못하는 높은 수준의 CG 기술이 보여주는 섬세함과 화려함, 마지막으로 중국과는 다르게 어떠한 과장도 없는 절제되고 정교하면서 현실적인 액션.
이런 요소요소가 앞으로 중국영화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할리우드 영화나, 잘 만든 한국 영화도 막연히 그런 느낌을 주긴 했죠.
하지만 지금까지는 머릿속에서만 떠다닐 뿐 눈으로 확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중국 영화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면 어떤 느낌일까?
아마 천루 쪽의 가장 큰 과제였을 겁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식을 따라야 하느냐?
그런데 진짜 그런 식으로 제작된 중국 영화를 찾게 된 겁니다.
한국에서 만들었지만 진짜 중국인처럼 중국어로 완벽하게 연기한 중국 영화.
게다가 그 영화가 중국 느낌이 물씬 나는 사극이라니.
천루에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겠죠.
그러니 확인하고 싶은 겁니다.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난 중국 사극.
영화는 재미있지만, 이걸 과연 중국인들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 “용명”의 흥행 여부가 앞으로 만들어질 중국 영화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겁니다.
아. 물론 전 “용명”의 흥행을 확신하고 있지만요.”
“음…..”
윤 대표는 위시춘의 설명을 듣고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용명”이 보여주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CG와 스타일리쉬한 진행. 그리고 화려하지만 과장되지 않고 깔끔한 액션.
이런 것들은 전통적인 중국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특히 중국의 사극이면 지금까지 진중하고 느린 진행. 무협에 가까울 정도로 과장된 액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중국의 스크린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영화 시장의 규모는 점점 커진다.
그리고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영화들이 많은 돈을 쓸어 담고 있는 상황.
이런 변화 속에서 천루는 앞으로 중국 영화가 자생하기 위해서는 그런 구태의연함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중국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가 아닌 전통 중국 영화가 그렇게 급격하게 변한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을지 확신은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런 시점에 자신들의 생각했던 변화 점들을 모두 포함한 중국 사극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로 중국 관객들이 얼마나 이런 새로운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겠다는 거였다.
윤 대표는 위시춘과 한동안 이런저런 담소를 계속 나누었다.
“아 그런데 혹시 윤 엔터에 중국어 연기를 가르칠 정도로 중국어에 능통한 배우가 있습니까?”
“네. 진소희라고 “용명”에서 수월로 나온 여배우입니다.
지금은 한국인이지만 중국에서 태어났고, 중국에서 오래 살았습니다.
그래서 중국 사극에도 익숙했고, 다른 배우들에게 세세하게 알려줄 수 있었죠.”
“역시…..”
위시춘은 자신의 예상이 맞아 들어가자 조금 심각하게 무슨 생각을 하는 거처럼 보였다.
“수월이라…. 그 훗날 에필로그에서 황후가 되는 인물이었지요?”
“네, 흑월의 차기 수장으로 나와서 결국 황후가 되는 인물이죠.”
잠시 생각을 마친 위시춘은 윤 대표에게 혹시 소희가 요즘 어떤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아. 지금은 당장 잡힌 스케줄이 없습니다.
앞으로 이제 알아봐야죠.”
“그렇군요.
윤 대표님. 죄송하지만 혹시 진소희 양의 스케줄을 조금만 늦춰 주실 수 있겠습니까?”
윤 대표는 위시춘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자 조금 의아했지만, 어차피 “용명”이 중국에서 상영을 시작하게 된 마당이니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대답했다.
“용명”이 중국에서 인기를 얻게 된다면 삼화 쪽에서 개봉할 때는 여러 가지 행사에 참여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그럼 그때 같이 생각해 보면 되겠군요.
아직 확실한 것이 아니라 제 태도가 조심스러운 것을 이해해 주십시오”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습니다.
아마 당분간 소희가 큰 스케줄을 잡을 일은 없을 겁니다.”
서로 정확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뜻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윤 대표는 오늘, 이 만남이 정말 유익하다고 생각하며 위시춘에게 손을 내밀었다.
위시춘도 웃으며 윤 대표의 손을 마주 잡았다.
그렇게 굳게 악수한 두 남자는 “용명”의 중국 상영을 기대하며 각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갔다.
윤 대표의 일정과는 상관없이 윤 엔터의 배우들은 각자 제 일을 고민하고 있었다.
우선 수연의 다음 작품은 확정되었다.
올해 겨울부터 방영할 “로열” 이라는 드라마였다.
“로열”은 재벌 가에서 벌어지는 암투를 중심 소재로 다루는 드라마였는데 드라마 제작진은 기본적으로 기품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당차고 솔직한 이미지를 가진 수연을 처음부터 여주인공으로 낙점하고 계속 푸쉬를 넣고 있었다.
겨울에 편성을 받은 주제에 벌써 수연의 캐스팅을 확정하는 것을 보니 확실히 수연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연은 피디의 성향과 작가의 스타일을 알아본 후 별문제 없을 거 같다며 바로 출연을 결정하였다.
태준의 차기작은 영화 “일리걸 (Illegal)로 결정되었다.
“일리걸”은 합법과 불법을 넘나들며 피고인의 무죄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변호사가 대기업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큰 병을 얻고 부당한 해고를 당한 피고인을 위하여 고군분투한다는 그런 내용의 영화였는데 태준은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기로 하였다.
영화의 크랭크인이 가을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태준도 수연처럼 당분간은 여유 있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순탄하게 차기작이 결정된 배우가 있는가 하면 조금 난관에 부닥친 배우들도 있었다.
지금 민수 앞에서 한탄을 내뱉고 있는 설아도 그런 배우 중 하나였다.
섭외가 들어온 배역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설아는 자신이 마음에 드는 배역을 찾아 오늘 오디션을 보고 왔는데 그 결과가 별로 좋지 못해서 민수에게 하소연하고 있었다.
“하~ 도대체 이게 말이 되냐고요!
예뻐서….. 너무 예뻐서 안 된다니 이건 말도 안 돼요.”
오늘 설아가 오디션을 보고 온 배역은 제법 비중이 있는 조연이었는데 끝까지 설아의 연기를 자세히 관찰하던 피디와 작가는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설아는 연기가 마음에 들긴 하지만 외모가 너무 튀어서 이 배역을 맡기기는 힘들겠다는 피디의 말에 수수하게 화장을 하면 괜찮다고 주장했지만, 얼굴이 수수해도 몸매가 너무 화려해서 안 되겠다는 작가의 말을 듣고 결국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오디션에서 낙방하고 돌아온 설아는 그나마 최근에 편성이 잡힌 드라마 중에 마음에 드는 배역이 그거뿐이었다면서 한탄을 연신 내뱉었고 그런 그녀를 민수가 옆에서 달래주고 중이었다.
“하…. 전 너무 예뻐서 주연이 아니면 안 되나 봐요. 전 어쩌면 좋을까요?”
이건 도대체 한탄하는 건지 자랑을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지만 어쨌든 설아의 표정만은 진지했기 때문에 민수는 억지로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설아 씨가 안 예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정말 어쩔 수 없네요.
지금 섭외가 들어온 건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요?”
자신의 말에 장단을 맞춰주는 민수가 편하게 느껴지는지 설아는 자기 생각을 가감 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섭외 들어온 건 진짜 완전 꽃 병풍 같은 역할이에요.
은근히 엄청 예쁜 척해야 하고 마땅히 연기력을 보일만 한 요소도 없는 거 같아요.
뭐, 그래도 그만큼 예쁘게 나오니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긴 할 거 같은데…..”
정확히 무슨 배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아의 말을 들어보니 결국 너무 예쁘게만 나와서 싫다는 것 같았다.
예뻐서 문제인데 또 너무 예쁘게 나오는 것은 싫다니 민수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문제는 문제네요.
설아 씨는 예쁘니까 예쁜 배역이 자꾸 들어오는데 너무 예쁜 건 설아 씨가 싫고, 그렇다고 덜 예쁜 배역은 피디님이나 작가님이 설아 씨가 너무 예뻐서 안 어울린다고 못 맞기는 상황이네요.”
한 문장에 예쁘다는 단어만 5번이 들어간 민수의 말을 들으면서 설아는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 저 놀리시는 건 아니죠? 민수 오빠.
저 지금 조금 심각하거든요.”
설아는 분명 심각하다고 말하는데 왠지 민수는 전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애당초 너무 예뻐서 오디션에서 떨어졌다는 말부터가 자랑인지 한탄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심각한데 민수가 피식피식 웃자 설아는 뚱한 표정을 지으면서 민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자신에게 말장난을 시도한 이 무도한 남자를 혼내주면서 오디션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아의 눈가에 가득 장난기가 담기기 시작하자 민수는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다.
괜히 말장난을 쳤나? 혹시 또 카운터펀치를 얻어맞는 건가?
이 귀여운 여자는 자신이 생각하지도 못한 “모태 솔로” 나 “정신적 고자” 같은 말들로 항상 자신을 당황하게 했기 때문이다.
“음….민수 오빠가 요즘 그렇게 일본 여자들한테 인기가 있다고 하네요.”
“아…네… 뭐….. 그렇다네요?”
“혹시 민수 오빠도 한국 여자보다 일본 여자를 더 좋아하세요?”
“글쎄요….. 국적에 따른 호불호는 없는 편이라고 볼 수 있겠죠.”
민수는 대답을 하면서도 이 여자가 이번엔 또 무슨 소리를 할까 걱정되었다.
“아 그래요?
사실 제가 친구들한테 들은 말인데요.
음….. 그러니까 남자들은 일본 여자한테 조금 특별한 판타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판타지요?”
민수는 설아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여자는 그냥 여자일 뿐이지, 서양 여성도 아니고 같은 동양 여성에게 특별한 판타지가 있을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음…. 그러니까…. 뭐라고 하더라…. 아! 그 품번인가? 좋아하는 품번을 물어보면 남성의 취향을 알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설아의 말이 끝나고 민수는 이제야 그녀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확실히 저 나이 때 남성들이 확고한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많았고 그게 일정한 형태가 되기도 하지만 설아는 대체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물어보는 것일까?
눈가에 서려 있는 장난기를 보니 대충 어느 정도는 알고 물어보는 것도 같은데 저 천진한 표정을 보니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태준도 그렇지만 설아 역시 작정하고 연기에 들어가면 연기와 진심을 전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에 민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당황스럽기만 했다.
“아…..흠….. 그게 그러니까요.”
설아가 성인 여성이긴 했지만 이제 겨우 21살의 풋풋한 나이였고, 민수에게는 호감이 가는 여성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두 눈을 반짝이는 설아에게 그것에 대하여 설명하기는 대단히 난처했다.
시간이 흐르며 난감함은 점점 켜졌고 설아의 눈은 은근히 대답을 재촉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신이 민수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갑자기 태준이 들어와 민수의 옆에 털썩하고 자리를 잡았다.
“요~ 동생님. 오늘 물먹었다고 하더라.
멘탈은 무사하신가?”
태준이 명랑하게 웃으면서 설아에게 물어보자 민수와 설아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일거에 사라졌고 민수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안도의 한숨이 튀어나왔다.
“칫…”
그리고 그때 민수의 예리한 청각은 설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놓치지 않았다.
‘와…. 이 여자 진짜….’
민수는 설아가 내뱉은 소리에서 설아의 생각을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는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건 진지한 그녀의 투정을 자신이 장난식으로 받은 것에 대한 보복이 분명했다.
‘윤설아…. 이 무서운 여자….. 이런 식으로 보복을 하다니’
민수는 설아가 진지할 때는 웃겨도 무조건 진지하게 받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설아의 말은 누가 들어도 어이가 없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