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54화 (15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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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의 바람대로 위시춘은 지금 “용명” 때문에 골머리를 싸 매고 있었다.

처음 “용명”의 완성본을 건네받았을 때 위시춘은 푹 하고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트랜스포머가 상영 확정된 상황이었고 회사 전체가 트랜스포머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아무리 영화가 잘 나왔어도 마땅히 올릴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윤 대표가 모를 리가 없었고 그런데도 굳이 보내준 영화였으니 성의를 생각해서 확인은 해보자는 마음으로 영화 관련 전문가 몇 명과 함께 영화를 시청했다.

영화를 끝나고 위시춘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눈을 감고 있었다.

윤 대표가 예전부터 말해 온 최대한의 성의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시춘은 윤 대표가 성의를 보이겠다고 말하고 “용명”에 따로 CG 작업을 하는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을 때 그 정도면 정말 윤 대표가 최대한의 성의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윤 대표가 말한 성의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윤 대표는 중국에 영화를 수출하기 위하여 한국 영화를 아예 중국 영화로 바꿔 온 것이다.

위시춘도 “용의 울음”을 봤다.

물론 한국에 직접 갈 만큼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가 본 것은 어쩔 수 없이 해적판이었다.

자막이 달린 “용의 울음”은 충분히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영화였다.

만약 그때 당장 영화가 나왔으면 짧게는 2주 길게는 3주 정도는 상영할 수 있었을 것이고 윤 엔터도 상당한 수익을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용의 울음”은 확실히 통하는 영화였다.

한국에서 상영이 끝난 지금도 중국 내에서는 해적판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사실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었다.

중국의 젊은이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용의 울음”을 보고 너무 한국적인 분위기가 아쉽다는 말이나 마지막 전투 장면을 영화관 스크린으로 볼 수 없는 것이 아쉽다는 이야기는 많았지만, 영화가 재미없다는 평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삼화 내에서는 “용명”을 상영하는 것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트랜스포머가 스크린에서 물러나 점점 다른 영화에 자리를 내줄 거라고 예상되는 시기는 대략 7월 말이나 8월 초.

그 시기가 되면 아마 “용의 울음”을 해적판으로 본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막상 개봉을 해도 수요가 별로 없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본사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용의 울음”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용명”은 차라리 해적판을 본 사람이라면 더 환호할 만한 그런 영화였다.

같이 영화를 시청한 여러 전문가도 다들 감탄을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이 “용명”을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주 세련된 중국 영화 같다는 것이었다.

CG나 배경에서 느껴지는 정취는 중국인에게 익숙한 느낌을 주는 동시에 그 섬세함과 세련됨이 중국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이라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는 도무지 타국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이 부분에서 한 전문가는 저 배우 중 한국어 연기와 중국어 연기를 모두 도통한 배우가 분명히 있을 거라고 예상하였다.

단순히 중국어라면 모를까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는 연기를 중국어로 저렇게 자연스럽게 구사 할 수 있게 하려면 평범한 중국어 선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중국어와 한국어로 모두 수준급의 연기를 할 수 있고, 그 차이를 다른 배우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을 만큼 수준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의 말에 위시춘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국어 연기를 배우들에게 가르칠 정도로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누구일지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으로 “용명”을 트랜스포머 이후에 상영할 영화로 확정 짓고 있었다.

위시춘의 계획은 트랜스포머가 내려가는 빈자리를 차례대로 “용명”이 채우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용명”을 처음 받았을 때는 위시춘이 고민할 일이 없었다.

어떤 조건으로 윤 대표와 계약을 확정 지어야 하느냐가 그의 유일한 고민이었다.

하지만 천루 쪽에서 “용명”의 존재를 눈치채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원래 자신들의 상영관의 50%를 트랜스포머에 배분할 계획이었던 천루는 “용명”의 존재를 알게 된 후에는 트랜스포머에 30%를 배당하겠다고 알린 후 남은 부분을 “용명”으로 채우고 싶다는 뜻을 전해온 것이다.

천루 쪽에서 직접 한국 영화를 수입할 수 없어서 이 정도지, 만약 그쪽에서 직접 수입을 할 수 있었으면 당장 한국으로 달려갈 기세였다.

당연히 삼화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할리우드 영화에 본격적으로 대규모 자본을 투자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트랜스포머의 흥행은 삼화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데 한국의 영화 때문에 천루 쪽 스크린의 20%가 날아갈 상황에 부닥친 것이다.

당연히 본사 내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고 어떤 과격한 인사는 차라리 “용명”을 수입하지 말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그 주장은 그러다가 진룡에서 받아서 바로 천루로 넘기면 어쩔 거냐고 받아치는 임원이 나오는 바람에 바로 묵살 되었다.

이런 난장판이 벌어진 상황이었으니 위시춘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용명”때문에 윤 엔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본 위시춘은 한국 내 사정에 어느 정도 밝은 상태였고 “용명”이 중국에 수출될 수 있는 유일한 창구가 자신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진시첸 사장이라면 모를까 지금 한국 지부의 사장은 자신에 눈 밖에 난 윤 엔터의 영화를 절대 수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 임원들도 “용명”의 제작사가 한국의 작은 엔터테인먼트 회사이고, 그 회사가 진룡의 한국 지부 사장하고 악연이 있어서 진룡과는 손을 잡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 아마 당장에 수입을 거절하자고 주장할 것이다.

사실 트랜스포머의 흥행만을 생각한다면 정말 “용명”의 수입 자체를 백지화하면 되었다.

아직 계약이 완료된 것도 아니고 서로 이견만 조율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천루 쪽에서도 당장은 트랜스포머를 배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이 복잡하게 흘러가던 중, 자신만 윤 엔터와 진룡의 관계를 알고 있고 다른 임원들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막장 스토리를 생각도 못 하고 있는 상황.

여기서 위시춘의 고민이 시작된 것이다.

과연 “용명”의 수입을 백지화하고 천루에게 트랜스포머를 강요하는 것이 삼화에 이익일까 아니면 그냥 “용명”을 수입해 트랜스포머 이후에 상영하는 것이 이익일까.

고민하던 위시춘의 머릿속에 순간 윤 대표의 모습이 떠올랐다.

솔직히 위시춘은 처음 봤을 때부터 윤 대표가 마음에 들었다.

한국에서 한때 유명한 배우였다는 윤 대표는 남자다운 얼굴에 풍채도 좋았고 목소리조차 진중하고 힘이 있었다.

계약에 임하는 태도도 진지한 것이 다른 한국 사람들처럼 서두르지 않았고 심지어 조목조목 계약이 주는 이해득실조차 따지지 않았다. (사실은 계약을 확정 지을 생각이 없었음)

게다가 위시춘은 아직 그가 떠나면서 최대한 성의를 보일 테니 대인의 면모를 보여달라고 말한 것이 잊히지 않았다. (사실은 별 생각 없이 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그가 보내온 영화는 그의 말처럼 최고의 성의를 보인 그런 영화였다. (중국 시장을 정복하기 위하여 중국 현지화에 최선을 다한 것뿐)

적어도 위시춘은 상대가 성의를 보이면 자신도 그만큼의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인의 면모를 보여달라는 윤 대표의 말이 다시 한번 그의 머릿속에 아른거리자 그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위시춘은 어차피 “용명”의 수입을 막을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며,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용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주장했다.

어차피 트랜스포머가 천루의 20%로 흥행에 치명적인 타격을 받는 것은 아니었고, 그에 상응하는 다른 이익을 얻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천루에서 먼저 20%의 스크린을 투자해 “용명”의 흥행 가능성을 우리에게 보여 줄 테니 우리의 위험부담이 줄어들었다는 의견과 천루가 미리 달구어 놓은 분위기를 나중에 우리가 이어나갈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마지막으로 위시춘은 만약 “용명”이 인기가 없다면 천루에서 다시 트랜스포머를 찾을 테니 “용명”이 망하는 것조차 우리에게는 손해가 아니라고 연달아 주장했고 임원들도 서서히 “용명”의 수입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긴 논의가 이어졌고 결국 천루가 마음을 먹은 이상 “용명”의 수입은 막을 수 없고 천루의 스크린을 통해서 “용명”의 가능성을 가늠해 보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져서 “용명”의 수입이 확정되었다.

다만 위시춘의 말대로 망할 때를 대비해 계약 시 계약금을 없애는 것이 위시춘의 임무로 남았다.

그날 저녁 마음이 편해진 위시춘은 바로 윤 엔터에 전화를 걸어 윤 대표에게 계약하고 싶다는 의견을 전하면서 가능하면 이른 시간 안에 직접 와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날 바로 윤 대표가 도착했고, 본격적으로 수익 배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윤 대표는 위시춘에게 삼화 내에서 논의된 내용을 들으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트랜스포머 이후에 어느 정도 상영관을 배정받는 것이 최고의 결과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당장 천루에서 상영을 시작한다니 어이가 없었다.

“음…. 천루에서 먼저 상영을 시작한다니 조금 아쉽군요.

삼화에서 먼저 상영하기를 바랐는데 정말 안타까워요.”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지만 정확한 이유를 파악하지는 못한 상황이라 윤 대표는 최대한 생각을 가다듬으며 여유 있는 태도를 버리지 않았다.

조금 당황한 윤 대표가 태연하게 보이는 것은 아마 오랜 시간 동안 배우로 살아오며 몸에 익은 연기 때문일 것이다.

위시춘은 그런 당당한 윤 대표의 모습에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윤 대표는 위시춘의 말이 계속 이어질수록 그가 지신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었다.

솔직히 자신은 그냥 한 말이었지만 중국에 대인이 있다면 이런 사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다.

중국인들은 남의 것을 베낄 줄만 아는 족속들이라고 생각했던 윤 대표의 편견에 위시춘이 일격을 날린 셈이었다.

윤 대표가 가장 감명받은 점은 위시춘이 자신들의 약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약서를 보는 순간 윤 대표는 위시춘이 지금 자신에게 제시할 수 있는 최고의 계약을 제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윤 대표는 자신에게 생각지도 못한 이득을 안겨준 위시춘의 체면을 살려줘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사람과 거래를 할 때 이익을 너무 챙기려고 들면 되레 손해를 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윤 대표는 천루쪽 상영관에 영화를 배급하는 계약서에서 자신의 몫을 20%에서 10%로 줄이고 배급사인 삼화 필름의 몫을 25%에서 35%로 올렸다.

“아마 부담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넘어가는 일들도 만약 “용명”이 흥행을 하게 되고, 그것 때문에 트랜스포머가 손해를 보게 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죠.

이건 그때를 위한 보험으로 남겨 두시죠.”

위시춘은 윤 대표의 행동을 보고 자연스럽게 탄성을 터트렸다

배급사의 몫이 35%가 되면 투자금의 대부분과 배급까지 맡은 후 트랜스포머가 다른 상영관에서 상영될 때 얻게 되는 수익 38%에 버금가는 비율이었다.

투자금 없이 배급만으로 이 정도 수입 배분이라니.

이렇게 되면 만약 “용명”이 트랜스포머에 약간 방해가 된다 해도 충분히 자신의 면을 세울 수 있었다.

반면 윤 대표는 어차피 자신들의 영화가 천루 쪽에 들어가는 것은 상정 외의 수익이었으니 그것으로 체면을 세워주고 다음에 중국에 영화를 수출할 때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다.

위시춘은 윤 대표의 행동을 보고 자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했다.

이 사람은 확실히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약간의 동상이몽이 있긴 했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였다.

계약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윤 엔터는 계약금 없이 삼화 쪽에서 상영되는 경우에는 20% 천루 쪽에서 상영되는 경우 10%의 수익을 분배받기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트랜스포머와 같은 시기에 천루 쪽 스크린 중 20%인 대략 3000개의 스크린에서 “용명”이 개봉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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