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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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그럼 다음 CF는 뭐에요?”
“아…. 다음은 준성 식품이네요.”
민수가 준성 식품이라고 말하자 설아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그 사이다 CF 찍은 곳이네요. 그때 오빠 덕을 좀 많이 본 것 같던데요.”
“네. 일이 이상하게 돼서 그런 거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렇긴 했죠.
그래서 그런지 이번에 엄청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더라고요.
조금 고민되기도 했는데 좋은 인연이다 싶어서 이걸 선택했어요.”
“사이다 쪽 CF도 계약 연장한 거고요?”
“네. 비슷한 컨셉으로 다시 찍자고 하더라고요.”
“준성에서 오빠에게 관심이 많은가 봐요.
나중에는 전속모델로 계약하자고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그쪽 분들이 또 워낙 변덕이 심하니까요.”
설아도 농담으로 한말이겠지만 민수의 말대로 성과에 따라 빠르게 모델을 바꾸는 CF 시장에서 잠시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자신을 전속 모델로 쓸 계획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지난 시간 제법 긴 기간 동안 준성 사이다의 모델은 민수였고, 앞으로도 당분간은 민수이긴 했다.
“하긴 생각해 보니 사이다 모델이 아직 바뀌지 않은 건 좀 신기하긴 하네요.”
민수는 준성 식품에서 그냥 자신이 모델로 있는 것이 그래도 효과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 조금 기분이 좋았다.
민수의 기억에 남은 이번 준성 식품의 라면 광고에서 민수는 무려 준성 식품의 오준성 사장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점잖은 중년 남성인 오준성 사장은 민수의 손을 잡으며 우리 회사의 사활이 달린 제품이라면서 부담을 팍팍 안겨준 후 민수의 사인을 하나 받아 들고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준성 식품은 건실한 중견 기업이었는데 여러 가지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지만, 특별히 내세우는 간판 제품은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라면을 시판하면서 회사의 간판 식품으로 키우려고 했으니 오준성 사장의 말이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니었다.
라면의 이름은 무려 진라면.
회사 이름에 그냥 자신의 이름을 붙여 준성 식품이라고 짓고, 사이다도 사명을 따라 준성 사이다로 정하는 것에서 오준성 사장의 네이밍 센스는 익히 알 수 있었지만 “진”이 선전하는 진라면이라니 정말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물어봐도 사장님이 직접 결정한 것이라니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정말 이래도 되나 싶었다.
민수는 정말 저 회사에는 사장의 폭주를 막을 인재가 없는가보다 싶어서 그냥 마음을 비우고 촬영에 임했다.
이 광고는 무사 “진”의 복장을 착용한 민수가 라면을 맛있게 먹은 후 감탄사를 내뱉고는 가볍게 엄지를 치켜드는 거로 끝나는 간단한 광고였다.
물론 연기 자체는 엄지를 치켜 드는 것이 다였지만 라면을 얼마나 맛있게 먹느냐가 관건이니만큼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원래 맛에 대하여 무감각한 예전에 민수였으면 수십 번의 재촬영을 반복해야 했겠지만 그래도 요즘에는 요리 하면서 맛에 대하여 항상 고민하고 있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면 어떤 표정이 나오는지 잘 알았기 때문에 그나마 촬영 지옥이 이어지지는 않았다.
촬영은 무사히 잘 끝났지만 민수는 촬영장을 나설 때까지 라면의 없는 시대의 옷을 입고 라면 광고를 찍는 것이 과연 합당한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민수가 소희의 말처럼 자신의 인기를 정말 실감하게 된 것은 팬 사인회였다.
항상 소속사와 촬영장만을 드나들던 민수가 일반인들에게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첫 행사였다.
민수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며 숨이 턱하고 막히는 기분이었다.
전혀 관계도 없고 생소한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하다니.
이게 소희가 말했던 그 인기란 놈인가 보다.
사인회를 하는 동안 민수는 수많은 사람에게 사인을 해주었고 사람들은 그런 민수를 보며 정말 좋아했다.
앞으로도 좋은 연기를 보여 달라고 점잖게 말하는 사람부터 자신을 보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소녀까지 많은 사람이 정말 다양한 반응을 보여 주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이 하도 신기해서 민수는 지치는 줄도 모르고 사인회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자신의 차에 탄 민수는 기분이 조금 오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고 보면 자신은 연기자가 되기로 하면서 인기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환호하는 사람들을 모습에서 느껴지는 묘한 고양감이 민수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데 참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하기 힘들었다.
“이게… 인기가 주는 마력 같은 건가….”
쏟아지는 CF로부터 얻는 부와 사람들의 환호에서 느껴지는 고양감.
어떤 배우는 연예인에게 인기란 것은 마약과도 같아서 훗날 대중들에게 잊히면 그 상실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말 했었다.
민수는 예전에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약은 개뿔”이라고 비웃기 바빴지만, 이제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예전처럼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힌 연예인이 비관하여 자살하는 웃지 못할 사건들을 보며 저게 무슨 한심한 짓이냐고 당당하게 욕하지는 못할 것이다.
민수는 표정이 조금 심각해 졌다.
“이거… 연예인들이 팬들하고 만날 때 다 이런 기분이 드는 건가? 정말 조심해야겠네.”
민수는 기분이 좋긴 했지만 이런 기분에 빠져 자신이 인기에만 집착하게 될까 봐 조금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진”은 사람들이 환호할 만한 멋진 배역이었지만 배우가 연기하다가 보면 사람들의 미움을 사는 악역을 할 수도 있는 거고, 때로는 한심한 역할도 해야 하는데 만약 자신이 이런 인기에만 연연하다 보면 결국 자신이 하고 싶은 그런 다양한 배역들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아니지….. 인기는 그냥 지나가는 바람 같은 거야.”
민수는 다시 마음을 다잡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민수가 인기에 마력에 빠져들어 가는 자신을 다잡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수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음… 배우 오빠? 우리 팬클럽에 회원들이 팬 미팅 안 하냐고 계속 조르는데요.
말이 나온 지는 한참 되었고 배우 오빠가 활동할 마음이 없어 보여서 계속 미뤄두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좀 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의 코디이자 팬클럽 회장인 조수정은 자신과 좀 친해진 이후부터는 호칭을 아예 배우 오빠로 결정한 듯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만의 특별한 호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음…. 팬 미팅…..”
수정의 말에 따르면 지금 자신의 팬클럽 [민수네]의 숫자는 대충 오천 정도라고 한다.
지금 한창 뜨거운 민수의 인기를 생각해 보면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는데 뜨내기들은 [민수네] 특유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떠난다고 하니 지금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래도 정예요원이라고 한다.
무슨 특공대나 군대도 아닌데 정예요원이라는 수정의 말이 조금 웃기기는 했지만 어쨌든 자신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회사에서도 배우 오빠가 하겠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했어요.
회사에서 계획하고 있는 건 대충 500석 정도의 무대에서 하는 건데요.
규모는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적당한 것 같아요.
배우 오빠만 승낙하면 바로 진행될 거 같은데 어떠세요?”
5천 명 규모의 팬클럽에서 500명의 규모의 팬 미팅이라니 민수가 생각하기에는 조금 과한 것 같았다.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우리 팬클럽이 5000명 정도라면서?”
“훗. 배우 오빠는 정예라는 말을 뭐로 들으신 거예요? 아마 대부분 무조건 오시려고 할걸요.”
민수는 수정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고 한번 해보자고 이야기했다.
다만 민수는 자신의 첫 팬이라고 할 수 있는 어르신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좋은데 어른들은 그런 자리에 오시는 게 불편할 수도 있어.
그분들만 따로 모실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야 할 거 같아.
무슨 방법이 없을까?”
수정이 들어보니 민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하던 수정은 순간 떠오른 것이 있는지 두 손을 모아 손뼉을 한번 치더니 바로 어디로 전화를 걸었다.
“배우 오빠.
우리 회원 어르신 중에 큰 음식점을 하시는 분이 한 분 계시는데 그분한테 물어보니 자기네 식당에서 자리를 마련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그럼 어르신들은 따로 그쪽에서 보는 거로?”
수정의 말에 민수도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정의 말대로 하면 어르신들도 불편하지 않게 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그러자.”
민수가 승낙하자 수정은 서둘러 여기저기에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수는 자신이 하자고 하긴 했지만 이렇게 팬 미팅이 빨리 열리게 될지는 몰랐다.
황당하게도 팬 미팅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서프라이즈~”
민수는 오늘이 팬 미팅이라고 말하는 수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알고 보니 자신이 일정이 비는 날에 팬 미팅 가능성이 크다고 수정이 미리 알려놓은 상황이었다.
자신이 거절하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참 어이없긴 했지만, 왠지 그녀라면 자신의 거절도 단호하게 거절했을 거 같았다.
장소는 강환의 극단인 “뿌리”가 공연하는 극장이었다.
민수가 전생에서 오가며 연기를 배우던 그 장소였는데 알고 보니 이 극장이 윤 대표 소유의 건물이었다.
민수는 이 건물의 주인이 대표님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강환 선생님이 대표님의 말을 무조건 듣고 있는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팬 미팅이 촉박하게 잡힌 것은 극단의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고 한다.
극장이 확실하게 비는 것이 바로 오늘뿐이라는 것이다.
민수에게 특별한 일정이 없고 장소도 확실히 비는 날.
어쩌면 오늘 팬 미팅을 하게 된 건 필연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다만 갑작스럽게 잡힌 일정이다 보니 팬분들이 불편하지 않을까 그게 염려되었다.
하지만 민수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민수는 500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을 보며 자신이 너무 윤 엔터를 무시했나 싶었다.
하긴 하루 만에 개최해도 충분히 팬분들이 올 수 있다는 결론을 냈으니 이런 무리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그런데 수정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팬 미팅에 참석할 팬들은 며칠 전부터 알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미 팬 미팅에 대하여 공지가 올라가고 참석자를 정해놓은 건 민수가 활동하기도 전이라고 하니 참 재빠른 행보였다.
그러니 결국 오늘 팬 미팅이 열리게 될 거란 사실을 민수만 모르고 있었던 셈이었다.
민수는 그 사실을 알고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팬이 있다는 것을 전혀 실감하지 못해서 생각도 하지 않은 잘못이 더 큰 데다가 별다른 문제 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웃으며 수정에게 알밤을 먹였다.
영악한 수정과 직원들도 이런 민수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사실 요즘 뭔가 조금 뚱한 듯한 민수를 위한 깜짝 선물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얼렁뚱땅 잡힌 팬 미팅이었지만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민수가 등장하자 팬들이 모두 웃으면서 환호를 보냈고 민수는 그런 팬들이 고마워서 멋쩍은 웃음을 보냈다.
팬 미팅에서 무엇을 할까에 대해서는 미리 서전 조사가 있었다.
팬 미팅 시간 동안 팬들이 가장 하고 싶어 한 건 어이없게도 민수와의 질의응답이었다.
민수가 워낙 얼굴을 잘 내보이지 않다 보니 많은 것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민수의 팬들은 민수에 대하여 더 많이, 자세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고 싶었다.
대체 팬 미팅에서 질의응답을 가장 기다리는 팬들이라니.
민수가 그동안 얼마나 팬들에게 무관심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민수도 팬들이 질의응답을 가장 원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질문이 오갔고 민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자신의 팬들이라 그런지 크게 짓궂은 질문은 없었다.
자신의 과거 이야기, 한창 악성 루머로 시끄러웠던 이야기, 성추행으로 고소당한 이야기, 영화 촬영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최근에 추격전까지 다양한 질문이 나왔지만 예상했던 질문들이라 그런지 민수의 대답에는 막힘이 없었다.
다만 마지막으로 나온 윤 엔터 여배우 세 명 중에 누가 가장 이상형에 가깝냐는 질문에는 살짝 움찔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냥 솔직하게 설아라고 대답하고 웃어 보였다.
화기애애한 팬 미팅이 끝나고 민수는 회사에서 준비한 미니 화보에 사인을 해서 팬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화보는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일상들이 잘 찍혀 있었는데 딱 봐도 범인은 형우인 것 같았다.
팬들은 화보를 받아 들고 모두 기뻐했고 일부 팬들은 떠나면서 요즘 너무 “힐링 멘토”에 접속이 뜸한 것 같다고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했다.
민수는 앞으로는 접속을 더 자주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떠나는 그들을 웃으며 배웅해 주었다.
“일반적인 팬 사인회랑 팬 미팅은 또 느낌이 다르네….. 왠지 좀 더 포근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팬 사인회와 팬 미팅은 처음으로 민수에게 팬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촬영장을 찾아왔던 그 어른들은 팬이라기보다는 챙겨주는 가족 같은 느낌을 주었으니 민수가 순수한 의미의 팬을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