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47화 (147/325)

# 147

3

태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던 민수는 사실확인을 위하여 리온에게 전화를 걸었고 한 통의 전화로 태준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 그게….. 원래 “태양”애들이 그래요.

저희 멤버들이 누구랑 뭐만 했다 하면 그런 식으로 엮어서 장난을 치거든요.

전 항상 있는 일이라 그냥 웃어넘겼고요.

혹시 기분 나쁘셨어요?]

“아, 아니야 그런 건 아니고 그냥 그런 말이 나와서 확인 차 물어 본 거야.

어쨌든 일본 활동 잘해. 나중에 한국 오면 한번 보자.”

리온과의 통화를 마친 민수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고 그런 민수의 얼굴을 보며 태준은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거봐. 내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그러네.

후훗 어떤가. 불편한 진실을 목도한 기분은?”

“…..”

민수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닫은 채 한숨을 푹하고 내쉬자 설아는 그 모습을 보고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저 두 남자는 연기할 때를 빼고는 그냥 어린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민수가 나름 무게를 잡는다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바보 오빠를 닮아가는 기분이었다.

진지한 민수도 좋지만 저런 엉뚱한 민수도 나름 귀여우니 나쁘지 않았다.

한편 민수는 태준에게 놀림을 받은 것도 기가 막혔지만, 예전에 자신에게 도시락을 건네주던 “태양”의 소녀들을 생각하며 얌전해 보이던 그들이 그런 해괴한 짓을 하고 있다는 것에 더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민수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자 웃으며 눈을 돌린 설아는 처음에 문제가 되었던 그 글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와…. 이거 다시 보니까 진짜 웃기네요.

제가 무려 바보 오라버니와 민수 오빠를 두고 다투는 사이에요.

남자를 차지하기 위해서 남자랑 다투다니 참 신박하긴 하네요.”

“그런데 잘 봐. 이거 혹시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쓴 게 아닐까?

여기 보면 민수의 전 애인으로 군에서 후임으로 있던 매니저인 A가 나오는데 이거 왠지 좀 익숙하지 않아?”

“오 맙소사….. 형우 오빠네요.”

“이거 분명 내부인의 소행이야!

누군지 몰라도 내가 꼭 잡아내겠어!”

수연이 결의에 차서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가 소리 지르는 이유가 자신이 민수와 태준의 사랑을 방해하는 악역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한창 수다를 떠는 배우들을 웃으며 바라보던 태준은 슬며시 화제를 돌려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이카루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우리 영화 일본으로도 팔려나갔어.”

“일~~본!? 거기에 왜 팔려가?”

태준에 말에 수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일본이라니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아니, 우리 영화가 일본에 팔려나갔는데 그게 이카루스랑 무슨 상관이에요?”

설아는 일본에 수출된 사실보다 일본 수출과 이카루스와의 상관관계를 더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음…. 일본이라니 나도 놀라긴 했어.

뭐 별로 기대는 하지 마. 어차피 크게 인기 있을 거 같지도 않으니까.

일본 관객들은 성향이 좀 편중돼 있잖아.

그리고 이카루스가 무슨 상관이냐 하면 일본에서 우리 영화를 수입하게 된 계기가 이카루스거든.

와~ 그놈들은 진짜 미친 거 같아.

지금 일본에서는 또 다 일본어로 노래 부르고 있데.

이게 말이나 되나 싶은데 진짜 그렇게 하고 있으니 뭐라고 반박하기도 힘드네.

자, 그럼 생각해 보자고.

이카루스가 또 일본에서 날아다니고 있는데, 이카루스가 날아다니면 자연히 리온의 인기가 올라가고, 리온의 인기가 올라가면 또 송포유를 보게 되고 그러면 또 거기서 우리 정 배우랑 수연이를 보게 된다 이 말씀이야.”

“송포유가 일본에서도 은근히 잘나가고 있나 보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중국에서도 꽤 선전했다고 하던데.”

자신의 나온 드라마임에도 수연은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하게 말했다.

“아니, 언니! 언니가 나온 드라마인데 너무 감흥 없이 말씀하시네요.”

“뭐, 내가 태준이처럼 아시아 프린세스가 될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겠어?

어쨌든 완전히 망했다는 것보다는 좋은 소식이긴 하네. 그래서 그 뒤에는 어떻게 됐는데?”

“그래. 어쨌든 그래서 이카루스가 헤집고 지나가면 꼭 사람들이 한류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더란 말이야.

지금 일본에서도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나 봐.

이미 지나온 중국도 마찬가지.

한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니 한 배급사에서 이때다 싶어서 우리 영화를 급하게 당겼다나?”

“음……”

“중국은 일본보다 더 그런 거 같아.

중국에서는 민수랑 수연이 인기도 만만치 않은 가봐.

리온 때문에 보기 시작한 “송포유”인데 다른 배우들도 매력적이라 더 재미있다는 이런 식이고, 그래서 그런지 중국에서는 우리 “용의 울음”의 해적판도 돌아다닌다니 참 별일이긴 하지.”

“에이. 그건 너무 갔는데요.

해적판이야 원래 흔하게 돌아다니니 거잖아요.

아이돌 그룹 하나의 활동이 그렇게나 후 폭풍이 거세다는 말은 조금 믿기 힘들어요.”

고개를 갸웃거리는 설아에게 태준은 그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건 또 그렇지가 않아.

원래 진짜 잘 만든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을 보고 사람들이 그 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문화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거잖아.

그걸 아이돌 그룹 한 팀이 했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지.

이카루스는 요즘 인기가 장난이 아니거든.

지금 분위기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지.

어쨌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카루스가 엄청 인기가 있고

날뛰는 이카루스 뒤에서 우리가 은근히 이익을 보고 있다는 말이지.”

“정말 예전에 촬영할 때는 조금 순진하고 어벙한 녀석 같았는데 이 정도로 스타가 될 줄은 몰랐네.”

수연이 격세지감을 느끼는 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고 민수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전생에 이카루스도 정말 대단한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그때를 뛰어넘는 거 같았다.

달라진 것은 진룡의 손을 놓고 독자 노선을 걷게 된 것뿐인데 어떻게 된 걸까.

독자 노선을 걷는다는 것이 그들의 의지를 더 굳건하게 만들어 준 것일까?

아니면 진룡에게 쌓인 감정이 이런 식으로 폭발하게 된 것일까?

진실은 알 수 없지만 참 대단하긴 했다.

“그런데 사실 그때도 한국에서는 대단한 스타가 맞았어요.

외국에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죠.

단지 배우로서만 신인이었던 거구요.”

민수가 수연에게 말하자 수연은 잠시 생각해보더니 바로 인정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그때도 한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아이돌이었잖아?

그런데 왜 난 그 녀석이 그렇게 어벙해 보였지?”

“그런 그렇고 지금 관객이 벌써 1500만이라는데 이러다 진짜 2000만 찍고 우리 모두 서울 한복판에서 비키니 입을 상황인데, 우리 바보 오라버니는 무슨 할 말 없으세요?”

설아가 눈을 치켜뜨며 따지고 들자 태준은 슬쩍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쩝…. 그래도 쉽게 안 될 거야. 이 오빠를 믿어봐.

아니 그보다 그런 기록을 세우면 좋은 거 아니야?

그렇다고 비키니 입기 싫어서 넘지 말라고 고사를 지낼 순 없는 거잖아?”

전혀 믿지 못할 태도로 믿어보라고 말하는 태준은 마지막에는 뻔뻔하기까지 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설아는 이를 갈며 인상을 썼다.

“그래요. 두고 보자 구요.”

“그래서, 우리 두 주연 배우는 이제 스케줄이 어떠한가?”

스케줄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모인 주제에 실컷 다른 이야기만 하다 이제 겨우 본제로 돌아와 스케줄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음…. 우선 CF는 몇 개 찍어야 할 테고 감사 인사 차원에서 예능도 몇 개 정도는 나가야 하려나….

팬 사인회나 팬 미팅 정도는 해야 할 거고…..

사실 별로 특별한 것도 없잖아.

횟수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내용은 뭐….. 항상 그런 거 아니겠어?

그래도 이번엔 그렇게 많이 할 생각은 없어.

당장 다음 작품도 생각해 봐야 하고, 적당히 체면치레할 정도만 그렇게 할 생각이야.”

태준의 말에 민수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도 들어온 CF 중에 5개 정도를 선별해서 찍을 계획이었다.

되도록 많이 찍어보려고 이러저리 계산을 해봐도 결국 5개가 한계였다.

많이 들어온다고 무작정 다 찍으면 그건 또 그거대로 문제일 테니 말이다.

가능하면 종류가 중복되는 것은 제외하고 터무니 없는 물건과 정말 이건 아닌데 하는 것을 제외하고 나니 남은 것이 그 정도 였다.

말이 5개지 저번에 1개를 찍었을 때보다 횟수도 많았고 단가도 비교가 되지 않았으니 상당히 큰 돈이었다.

“어쨌든 우리 소속사 직원들도 먹고는 살아야 할 테니 다음 작품이 들어가기 전에 또 반짝 움직여서 돈 좀 벌어 놓자고.”

조금 우울해 보이던 태준은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완전히 부활한 듯 보였다.

평소처럼 조금 익살스러운 태준의 태도에 동료 배우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민수의 방을 떠났고 마지막으로 소희가 나가며 민수를 바라보았다.

“선배님.

태준 선배님하고는 다르게 선배님은 아직 인기란 것을 크게 실감해 보신 적이 없으실 거예요.

이번 기회에 한번 그걸 실감해 보세요.

자신의 연기에 만족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이 있을 테니까요.”

민수는 할 말을 마치고 나가는 소희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인기를 실감해 보라…..”

소희의 말은 민수의 마음속에 작은 여운을 남긴 채 천천히 사라져갔다.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고 민수 앞에 떨어진 최우선 과제는 역시 CF였다.

민수는 소속사에서 추천한 CF 중 5개를 선별해 촬영에 들어갔다.

이왕 찍는 거 횟수가 5번으로 확정되었으니 가격보다는 가능하면 자신이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회사의 제품 위주로 CF를 선정했다.

지금은 거의 호전되었다고 하더라도 혹시나 또 “도피성 몰입 증후군”이 또 악화할 수도 있으니 마음에 우러나오지도 않는 선전 문구를 가식적으로 내뱉는 것은 피하고 싶어서였다.

다행히 민수가 보기에도 오 괜찮은데 라고 생각되는 제품들의 광고를 맡을 수 있었다.

5개의 CF를 찍으면서 기억에 남는 것은 두 가지 CF였는데 그 중 첫 번째는 커피 CF로 무려 설아와 같이 찍는 것이었다.

메인은 민수였지만 설아의 비중도 작지 않아서 소속사에서도 이 CF를 가장 강하게 추천했다.

전번에 첫 데이트에서 말했던 같이 찍을 수 있는 CF가 바로 이거였고 참고로 말하자면 설아의 첫 CF이기도 했다.

CF의 내용은 간단했다.

설아가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민수가 설아에게 다가가 뒤에서 가볍게 백허그를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웃는다.

그렇게 서로 웃다가 설아가 슬쩍 자신이 마시던 커피를 민수에게 먹여주고 민수는 맛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 끝이었다.

연인 컨셉으로 달달한 모습을 잘 보여주면 되기 때문에 쉽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찍어보니 정말 쉽지 않았다.

“민수 씨. 조금 더 붙어 주세요. 설아 씨를 완전히 푹 안아야 해요. 그리고 서로 고개 더 붙여 주세요. 서로 입술이 닿기 직전까지요.”

서로 신체 접촉이 생각보다 많았으며.

“민수 씨. 조금 더 그윽하게 내 여자를 보듯이. 네네. 그렇게”

달달한 표정을 짓는 건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그렇게 온종일 촬영을 하고 민수는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하지만 지친 민수에 비하여 설아는 생글생글 웃으며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힘들지 않았어요?”

“아뇨, 재미있었는데요. 솔직히 이런 게 아니면 언제 민수 오빠가 연기 중에 곤란해하는 걸 보겠어요?

게다가 이걸 다른 여자랑 한다고 생각하니 어휴~

CF도 찍고 사심도 채우고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요.”

민수는 자신의 앞에서 대놓고 사심을 채웠다고 말하며 웃는 설아가 귀여워 조금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저렇게 장난스럽지만 솔직했고, 이제는 자신에 대한 호감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여성의 마음을 전혀 이해 못 하는 민수로써는 설아가 저렇게 솔직한 태도로 자신을 대하는 것이 고맙기만 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