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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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민수와 설아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낼 때쯤, 윤 대표는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하나 받게 되었다.
“어디?”
“네 일본의 시차쿠 입니다.”
“시차쿠….. 말석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일본에서는 메이저 배급사잖아.
그런데 일을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 시킨단 말이야?”
“음…. 사실 이례적이긴 합니다.
그쪽은 원래 일 년 전에 다음 연도 상영계획을 다 결정하는 동네니까요.
다만….”
“거기도 무슨 문제가 터진 거군.”
“네. 아주 마가 낀 영화 하나가 있었나 봅니다. 온갖 사건 사고가 다 터져서 도저히 개봉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군요.”
“음…. 아니 그래도 그쪽 나름대로 대체할 영화는 많을 거 아냐. 도대체 왜 우리 영화를……
아니 아니, 그런 걸 따지기 전에 일본에서 해외영화를 이렇게 급박하게 수입하는 경우도 있던가?
그리고 근본적으로 들어가서 애니메이션 극장판이나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가 반 이상이고 할리우드 영화가 아니면 별로 기를 못 쓰는 곳이 일본 영화판인데, 한국의 사극을 수입하겠다니.
이거 이상하잖아.”
“네 확실히 대표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래서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서둘려 몇 가지는 알아보았습니다.
시차쿠가 3대 배급사이긴 하지만 다른 두 곳에 비하면 계속 밀리고 있는 상태긴 합니다.
그건 나름대로 사정이 있다는데 그것까지 알아볼 시간은 없었습니다.
대충 흘러가는 분위기를 보니 시차쿠 쪽은 일본 영화판이 애니메이션에 의존하고 있는 현 상황을 부정적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야심 차게 실사 영화에 투자했지만 아시다시피 그렇게 영화가 엎어졌고, 국내에서 마땅한 대체자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들이 판단하기에 대체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엎어진 영화가 배정받은 스크린 수에 있습니다.
일본에 총 스크린이 3500개 정도고 그 중 시차쿠에서 영향을 미치는 숫자는 대략 700개 정도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번 영화가 스크린 400개 정도를 배정받은 영화인데 이 정도 스크린 수라면….”
“미쳤군. 시차쿠에서 400개라니……
일본에서 400개면 엄청난 숫자잖아.
원래 일본은 스크린을 균등하게 분배하고 오랫동안 상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런 모험을 시도하다니.
한국에서처럼 그렇게 치고 빠질 생각이었나.”
“어쨌든 그런 상황입니다.
시차쿠가 지금 모험을 하는 건 분명합니다.
태준이가 “서쪽 해변”이나 “별에서 온 당신”으로 일본 내 인지도도 상당하긴 합니다.
그리고 지금 이카루스가 한창 일본 콘서트와 일본 활동이 성황리에 진행 중이며 그에 따라 리온이 인기도 엄청나게 올라가고 있어서 “송포유”도 알게 모르게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고요.”
“송포유까지 봤다면 민수나 수연이도 조금씩 알려졌을 테고…..
그래서 우리 영화를…..”
“이왕 일이 그렇게 된 거 한번 모험을 해보자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국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영화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일본에서 한국 사극이라니….. 이게 될 리가 없을 텐데….
뭐 좋아. 그런 것까지 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이유는 없겠지.
자기네가 수입하고 싶다고 요청한 거니까.
그럼 조건은 어떻게 되나?”
“선금 없이 40%를 제안했습니다.
대신 DVD나 VOD의 일본 내 2차 판권까지 독점하는 조건으로요.
2차 판권은 순수익의 30%를 저희 쪽에 넘기겠다고 합니다.”
“계약 조건도 이상하기 그지없군.
그래.
가져가겠다니 가져가서 지지든 볶든 마음대로 하라고 해.
모험을 해 보겠다니 하게 도와주자고.
하긴 당장 한국에서 가져갈 만한 영화가 우리 영화랑 “유적 탐색자” 뿐인데 그래도 중국색 짙은 영화를 수입하는 것보다는 한국 색 짙은 영화를 수입하는 것이 낫긴 하겠지.”
윤 대표가 승낙하면서 일본 수출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박 실장은 말이 나온 김에 중국 수출에 관하여 물어 보았다.
“중국 쪽은 어떻게 하고 계신 겁니까? 삼화 필름 쪽에서도 계속 연락이 오는 거로 알고 있는데요.”
“어쩔 수 없지.
7월 초에 작업이 마무리되니….
그나마 한국에서 대성공을 거두게 되어서 중국 수출에 대한 부담감은 덜었어.
민수를 최대한 올려보자는 우리의 일차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공했잖아.
최선을 다해서 만들어 보내고 상대가 거절하면 그때 생각해 보자고.
삼화 필름에도 7월 초는 되어야 작업이 마무리된다고 전해 두었어.
그때 결과물을 확인하고 판단하자고 말이야.
중국 사업은 조바심 가지고 달려들어 봤자 별로 의미가 없어.
그냥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이렇게 접근하자고.
지금 당장 개봉을 못 한다 해도, 태준이랑 민수가 중국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면 그때 DVD나 VOD로 유통하는 방법도 있으니까 말이야.”
“설마 또 저번처럼 최대한 성의를 보이겠다고만 말씀하신 건 아니겠죠?”
“왜 아니겠나. 그게 사실이잖아.
우린 진짜 중국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를 보인 게 맞아.
그네들이 그걸 모르긴 하지만 말이야.
알아도 별수 없으니 굳이 알려줄 이유도 없어.
그래도 이제 영화가 나올 때까지 겨우 2주 정도 남았군.
나오면 보내주긴 할 테니 그때 확인하면 되겠지.”
삼화 필름에 정확한 상황을 전달하지도 않은 채 배짱을 부리고 있는 윤 대표를 보면서 박 실장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위시춘 사장이 속이 좀 터지겠군요.
만약 그쪽에서 너무 늦었다고 거부하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박 실장.
사실 우리 영화가 동시 개봉에 실패한 순간부터 중국 수출은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야.
삼화는 트랜스포머에 투자했고, 진룡은 당연히 우리 영화는 안 받아 줄 거고, 천루는 타국영화에 대하여 아주 까다롭게 판단하지.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삼화가 남은 스크린 중에 일부를 배당해 주는 건데… 사실 그 자리는 중국 영화를 위한 자리야.
삼화는 다른 곳보다 더 당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
왜냐? 그 녀석들은 지금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적으로 수입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런 녀석들이 당국의 권유를 어기고 우리 영화를 그 자리에 틀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물 건너간 거지.
그런데 내가 왜 조바심을 내겠나?”
박 실장은 윤 대표의 모습에서 포기하면 편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윤 대표가 마냥 포기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리고 윤 대표의 의도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삼화 필름의 사장 위시춘은 윤 대표의 대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 대체…..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기존 영화에 자막만 입히면 되는 거 아니야?
무슨 작업을 하길래 7월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일본 쪽에는 바로 필름을 보냈다고?”
“네, 사장님.”
“미친…. 같은 영화를 수출하는데 일본은 되고 우리는 안 된다.
대체 뭐지?
그리고 그 놈의 성의는 또 무슨 말이고…..”
“사장님. 알아본 바로는 한국에서 상영되는 영화랑 중국에서 상영 예정인 영화가 다르다고 합니다.”
위시춘은 자신의 정보원이 한국에서 물어온 정보를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영화가 다르다?”
“네. 제가 듣기로는 “용의 울음” 의 CG 작업을 찰리 스튜디오에서 맡았는데 영화 상영 이후에도 계속 작업 중이라고 합니다.
그쪽에 문의해 보니 “용명”의 CG 작업이라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하…. 영화가 다르다…. “용의 울음”과 “용명”이 다르다…..
설마 “용명”에서는 배경 CG나 다른 작업을 중국풍으로 할 작정인가….
그래서 성의를 표했다고…..
그래. 그랬군.
“용의 울음”에서 나온 한국 색을 다 지우고 중국 색으로 다시 입힐 생각이야.
그래서 CG 작업이 두 배로 들고 기간이 늘어난 거군.”
윤 대표의 의도를 대충 파악한 위시춘은 그의 입장이 이해는 갔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개봉도 못 한다고.
지금 트랜스포머 개봉이 얼마 안 남았어. 이대로라면 그 영화는 성의고 뭐고 개봉조차 못 하게 될 거라고.”
위시춘은 지금이 “용명”을 개봉할 최적기라고 생각했다.
이카루스가 중국에서 성황리에 콘서트와 활동을 마쳤고, 자신들의 노래를 중국어로 완벽하게 불러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카루스는 이제 삼화에서도 무시 못 할 그런 대형가수가 되었다.
그 결과 이카루스의 리더인 리온이 출연한 “송포유”는 지금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어 나가고 있었고 “송포유”의 수입을 담당했던 삼화에서는 그런 분위기를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이카루스에서 리온, 리온에서 “송포유”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바람을 시작으로 중국의 젊은이들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까지 점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런 상황이다 보니 지금 한국에서 가장 뜨겁게 타오르는 “용의 울음”에 대한 관심 역시 점점 커지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관심이 올라가면 행동을 부르는 법.
결국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중국어 자막이 달린 “용의 울음”의 해적판이 돌아다니게 되었고 그것을 본 사람들이 대부분 입을 모아 재미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 진룡의 “유적 탐색자”가 생각보다 더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영화가 한국발 영화였기 때문이었으니 지금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은 위시춘은 조바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하…. 정말 모르겠군.
이대로 가면 정말 개봉은 물 건너가는 건데…..
어쩔 수 없군. 윤 대표 말대로 영화가 오면 그때 생각해 보는 수밖에.”
위시춘이 아무리 조바심을 느낀다고 해도 완성되지 않은 영화를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었으니 결국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안타깝기만 했다.
다시 며칠이 지나고 “용의 울음”은 결국 1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비록 스크린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공석을 찾기는 힘들었기 때문에 마의 2000만 관객을 돌파할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들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윤 엔터에서는 영화의 특수에 따라 배우들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고 판단하고 태준과 민수, 그리고 수연의 스케줄 조율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제 스케줄 투입을 앞두고 배우들은 평소처럼 민수의 방에 모여들었다.
수연은 자신의 스케줄 표를 확인하고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 이제 좋은 시절 다 갔구나. 윽…..”
“선배. 충분히 쉬었잖아요. 움직일 때는 움직여 줘야죠.”
“그건 그렇지만, 원래 사람이 쉴 때는 더 쉬고 싶은 법이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이런 말 들어 보지도 못했어?”
민수는 뚱한 수연의 말이 어이없기만 했다.
태준은 다른 의미로 뚱해 있는 듯 보였다.
“그래도 좋은 일이잖아요. 영화가 결국 1500만을 돌파했고, 이제 어쩌면 2000만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까요.”
뭔가 분위기가 무거워서 설아는 최대한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하지만 태준의 표정은 별로 밝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민수 역시 태준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하…. 그건 그런데 참….이거야 원….”
“넌 또 왜 그래?”
“글쎄…. 왜 이럴까. 뭔가 조금 불편한 기분이야.”
태준의 말을 들은 민수가 옆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설아는 며칠간 자신이 쉬는 동안 민수가 보여준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영화가 연일 흥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민수는 왠지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설아는 뚱한 태준도 태준이 지 만 영화가 흥행을 거두고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모이고 있는 상황에서 민수조차 조금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다른 배우였으면 지금 좋아서 날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옆에 앉아 있던 소희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별로 활동을 하지 않는 세 배우와는 달리 소희는 가능하면 이것저것 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방송국에 들락거리다 보면 지금 “용의 울음”이 얼마나 인기가 있고, 사람들이 태준과 민수를 얼마나 찾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소희는 조금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둘을 보며 저들이 지금 자신들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하지 못해서 저러는가 싶었다.
“좋아요.
스케줄은 스케줄인데 대체 모든 것이 잘 풀려나가는 이 상황에서 뭐가 그리 불만인지 좀 들어 봤으면 좋겠어요.
도대체 뭐가 문제에요?
우리 바보 오라버니부터 말 좀 해봐요. 답답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