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44화 (144/325)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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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와 설아는 작은 사인회를 마치고 서둘러 상영관 안으로 들어갔다.

명수가 끊어 놓은 자리는 무려 커플석이었다.

커플석에 처음 앉아 보는 민수는 가운데 팔걸이가 없이 붙어 앉게 설계된 커플석을 보며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젊은 배우 둘이 영화를 같이 보러 오는데 굳이 커플석을 끊은 명수에게 센스가 없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둘의 데이트임을 눈치채고 알아서 커플석을 끊은 후, 자기의 자리는 먼 곳으로 따로 잡았으니 센스가 있다고 해야 할지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영화가 시작되기 적진이라 사람들의 시선은 스크린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주변에 다른 커플석에는 사람이 없었으니 그 점은 다행이었다.

설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리에 털썩 앉은 후 민수를 끌어다 앉혔다.

“오빠, 차라리 빨리 앉는 게 나아요.

어차피 어두워서 누군지 보이지도 않을 텐데요. 뭘…”

설아의 말이 맞긴 했다.

민수가 지레 놀라서 그렇지 차라리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였다.

“두근두근.

히히. 사람들이 제 사인도 많이 받아 가서 기분이 좋아요.”

입으로 심장 뛰는 소리를 내던 설아는 사람들이 직접 다가와서 사인을 요청하는 경험이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설아 씨 사인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엄청나게 횡재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설아 씨 사인은 점점 가치가 올라갈 테니까요.”

설아는 그런 민수의 말이 고마워서 부드럽게 말하는 민수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

잠시 후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는 중국의 부유한 가문의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시웨이가 한국의 도굴꾼 민현우를 찾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시웨이는 민현우에게 조상의 묘에서 어떤 물건을 찾아 달라고 의뢰하고 그리 어렵지 않은 의뢰하고 생각한 민현우는 바로 받아들이고 중국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시웨이가 말한 조상의 묘는 알려지지 않은 어느 황제의 묘였고 민현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제의 묘를 도굴한 도굴꾼이 되고 말았다.

시웨이는 중국의 도굴꾼이자 사기꾼이었는데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는 폭력조직의 협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무덤 안에 어떤 물건을 구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민현우를 희생양으로 삼아 목표물을 도굴한 후 도주하려고 했지만 민현우가 그 물건을 먼저 발굴하는 바람에 조직에 쫓기는 입장이 되고 만다.

한편, 현우가 도굴한 그 물건은 고대 중국을 호령하던 황제의 영혼이 담긴 구슬이었고 그것을 대가로 큰 재앙을 일으킬 수 있는 귀물이었다.

결국 영화는 중국 공안 그리고 폭력 조직과 주인공 시웨이 민현우가 서로 얽혀서 쫓고 쫓기는 그런 영화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민현우와 시웨이가 결국 모두를 떨쳐내고 그 구슬을 원위치시켰고 황릉이 무너지면서 영화가 끝나게 된다.

영화가 끝나자 민수는 설아와 서둘러 밖으로 나왔고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모여있는 로비에서 민수와 설아를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빠르게 차로 이동했다.

신속하게 이동해 온 둘은 차에 올라타서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

로비에서 자신을 발견한 사람들의 놀라는 표정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수와 설아를 태운 차는 평소에 설아가 잘 아는 식당으로 바로 출발했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레주아떼”는 유명 방송인이 운영하는 식당이었다.

특히 모든 좌석이 칸막이로 가려져 있고 연예인 지정석도 따로 있는 식당이다 보니 연예인들이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편하게 식사를 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많은 연예인이 찾는 곳이었다.

자리에 앉은 설아는 웃으면서 민수를 바라보았다.

“오빠. 영화는 어땠어요?

음… 전 나쁘진 않았던 거 같아요.”

“확실히 그랬죠.”

설아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 나쁘지 않은 영화였다.

영화는 확실히 많은 돈을 투자한 티가 났다.

시내 추격전이라든지 마지막 황릉이 무너지는 장면이라든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다만 이 영화가 한국 관객들 정서에 맞냐고 묻는다면 조금 의문이긴 했다.

대부분의 촬영이 중국에서 이뤄진 것 같았고, 한국인보다는 중국인이 더 많이 출연한 영화였다.

주인공인 민현우가 한국어로 대사를 하고 있는데 그게 차라리 이상할 지경이었다.

“음…. 중국을 겨냥하고 만든 영화라는 게 확실하긴 하더라고요.

하긴 그래서 한국에서보다 중국에서 더 잘나고 있는 거긴 하지만요.”

민수의 말대로 “유적 탐색자”는 중국에서 동시에 개봉한 이후 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시작할 때 진룡쪽에서 배급받은 3000여 개의 스크린에서부터 전국으로 조금씩 발을 넓혀서 지금은 대충 5000여 개 이상의 스크린에서 상영 중이라고 하니 확실히 한국에서 대략 500만 정도의 관객을 모은 후 스크린이 많이 줄어든 것은 신경도 안 쓸 만했다.

한국에서 “용의 울음”이 신드룸을 일으키고 있다고 해도 중국에서 “유적 탐색자”가 낸 수익이 훨씬 많을 테니 말이다.

“음...... 솔직히 말하면 나쁘지 않았다뿐이지 그렇게 좋지도 않았어요.

뭔가….. 좀 짝퉁 인디아나 존스 보는 기분이었거든요.”

“분위기가 조금 비슷하긴 했죠.

사람들 평도 그런 것이 많았고요.”

“그리고 무슨 황제 무슨 황제 하면서 무덤을 옮겨 다니는데 전 솔직히 그게 누군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설아의 투정에 민수도 웃음을 내보이며 동의했다.

“하긴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나마 우리나라 왕릉이라면 무슨 왕 무슨 왕이라고 해도 대충 알아듣겠지만 중국의 황제 중에 아주 유명한 진시황 같은 분이 아니라면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렇게 영화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음식이 들어왔다.

음식을 들고 들어온 사람은 이 음식점의 사장인 방송인 천태명 씨였다.

연예계 마당발인 천태명은 윤 대표나 태준과도 인연이 있었고, 그래서 설아도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오~ 설아. 오랜만이네.

태준이는 그래도 자주 오는데 넌 왜 이렇게 뜸해?

사는 곳도 근처면서 말이야.

어!?

정민수 씨?

와…. 맞아, 설아도 태준이랑 같은 소속사였지.

반가워요, 정민수 씨. 천태명이예요.

부끄럽지만 작은 음식점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민수 씨도 자주 놀러 오세요.

여기만큼 연예인들이 편하게 밥 먹을 만한 곳이 드물거든요.”

설아에게 반갑게 인사하던 천태명은 옆에 앉아 있는 민수를 보고 조금 놀란 표정이었다.

그는 요즘 한창 주가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민수를 보며 반갑게 악수를 청하였다.

“네. 반갑습니다.

정민수라고 합니다.

분위기가 참 좋네요.

저도 자주 오게 될 거 같아요.”

민수가 태명과 덕담을 나누는데 설아의 표정이 조금 오묘해졌다.

“태명 아저씨. 태준 오빠가 자주 왔어요?”

“어. 어제도 왔다 갔는데, 그 누구야.

수연 씨랑 같이 왔어.

저번에도 그렇게 같이 왔다 갔지 아마….”

태명의 말에 설아는 잠시 동안 고민에 빠진 듯 보였다.

그리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던 태명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설아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았다.

“확실히 조금 수상해요.”

두서없는 설아의 말에 민수는 조금 의아한 기분이 되었다.

그런 민수의 표정을 본 설아는 민수에게 살짝 다가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하는 그녀의 표정이 자못 진지해 보였지만 그 진지함이 눈가에 깃든 장난기를 가리진 못하였다.

“오빠. 요즘 태준 오빠랑 수연 언니 스케줄 표 봤어요?”

“네. 요즘에 좀 쉰다고 한가하게 잡았다고 했었죠.”

“그런데 왜 안 보일까요.

원래 소속사에서 살았잖아요.

그런데 낮에는 항상 없죠.

밤에 제가 운동할 때가 돼 서야 슬그머니 나타나요.

그런데 지금 사장님 말이 여기에는 종종 나타난다네요. 게다가 둘이 말이에요.”

설아의 말을 듣고 보니 민수도 조금 이상함이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쉴 때도 소속사에 거의 출근하던 둘이었다.

자신이 요리에 정신이 팔려서 전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그 둘을 낮에 본지가 좀 된 거 같았다.

“음…..”

“이 말은….. 프라이버시라 안 하려고 했는데요.”

프라이버시라고 하며 말을 시작하는 설아의 표정은 흥미진진한 모험을 앞둔 탐험가같이 흥분된 듯 보였다.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쫓겨 들어온 날 있잖아요.

그날 오빠가 언니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거든요?

그런데 글쎄…..

그날 오빠가 안 들어왔더라고요.”

순간 민수는 잠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였다.

“안 들어왔다고요? 집에?”

“네~”

“그건…….”

“어디 있었을까요. 오빠는 그 밤중에….”

“하…..”

순간 민수는 설마 싶었다. 그리고 혹시 설아가 오해하고 있지 않나 다시 조목조목 짚어 보았다.

“언제 확인 하신 거예요?”

“음…. 그날 저도 사실 좀 무서워서 잠을 설쳤거든요.

그런데 오빠가 안 들어오는 소리가 안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새벽에 살짝 나와봤는데…. 역시나 오빠 신발은 없더라고요.”

“아…….”

민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날 수연의 분위기를 봤을 때 태준이 수연을 달래준 것은 분명해 보였다.

게다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니 확실히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남녀 관계가 그렇게 한 번에 진전될 수가 있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요. 이건 뭐 아는 사람만 아는 이야기인데요. 사실 수연 언니가 오빠 첫사랑이거든요.

그때 데뷔작 찍고 나서 고백할 심산이었나 본데, 그렇게 언니가 훅하고 사라져서는…..”

이건 또 새로운 정보였다.

고백 직전에 사라진 여자라.

민수는 이제야 태준이 아버지의 말도 어기고 수연을 몇 번이나 찾아갔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태준의 그런 행동은 당연하리라.

아니 오히려 그녀의 집 문을 따고 들어가지 않은 태준의 자제심에 찬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수연은 태준을 만나주지도 않았으니 그 당시 태준이 느낀 울분이 조금 느껴지는 듯했다.

그러니 수연이 돌아왔을 때 태준이 그런 반응을 보였던 거였겠지.

“하… 수연 선배, 진짜……”

“그때는 언니가 오빠를 그냥 어린애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잖아요. 같이 4년 넘게 연기를 배웠는데 그 당시 나이를 생각하면 두 살 차이는 좀 크게 느껴지죠.

오빠를 중학교 때도 본 거잖아요.

당연히 아이로밖에 안 보였을 거예요.”

“그건…. 그렇네요. 확실히 그때의 수연 선배는 예상하기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언니가 다시 온 이후에는 조금 달라진 듯해요.

특히 5년이나 안 본 게 더 득이 됐다고 해야 하나요?

5년이 지나고 보니 완전 어른이 돼버린 거죠.

게다가 화면으로만 보다가 실제로 보니까 느낌이 또 다르더라고 언니가 그랬거든요.”

“…. 그런 말은 또 언제 들었어요?”

설아가 수연이 느꼈던 생각들을 속속들이 이야기하자 민수는 도대체 저 말들을 언제 들었나 궁금해졌다.

“헤헤헤. 영화 촬영할 때요.

밤마다 여자들끼리 시간을 가졌잖아요.”

“아…. 그 걸즈 토크……..”

“어쨌든. 그때 언니가 그랬거든요.

자기도 소속사 떠나면서 오빠가 조금 그립긴 했다고요.

보고 싶기도 하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이러면서요.

그리고 다시 보니까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느낌이 예전하고는 좀 다르다고요.

전 이때 딱 예감을 했죠.

이거 혹시 모른다고요.”

설아의 말을 들어보니 서로 예전부터 감정의 교감이 있었던 게 확실해 보였다.

민수도 조금 생각나는 것들이 있었다.

태준이 슬쩍슬쩍 수연을 바라볼 때 보인 그 아련한 시선.

그리고 연기하는 태준을 볼 때마다 조금씩 달라지던 수연의 그 눈빛.

그게 애정에서 출발한 것이었다니.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요즘 언니가 운동을 열심히 해요.

그 이수연이 운동을 열심히 하다니 그게 말이나 되냐고요.

자기 말로는 혹시 우리가 이천만을 넘으면 비키니를 입어야 할지도 몰라서라고 하는데…..

그건 아니죠.

분명 예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라고요.”

이건 빼도 박도 못하였다.

수연이 운동을 열심히 한다니 그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오빠도 티는 내지 마시고요.

시작하는 커플을 아주 사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기만 하세요.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면 안 되잖아요.”

설아는 장난스럽게 이야기했지만 민수는 조금 염려스러웠다.

커플이라니.

분명 자신과 설아와는 분위기가 아예 다를 것이다.

둘 다 분별이 있는 사람들이니 조심은 하겠지만 혹시 나중에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이었다.

스캔들 같은 작은 문제는 둘째치고 훗날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정말 곤란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설아는 민수가 조금 걱정하는 듯한 표정이자 그럴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훗. 저희 집안 내력이 좀 유별나요.

걱정 안 해도 되실걸요.

연애를 시작한 게 맞는다면 그 둘은 아마 결혼까지 갈 테니까요.

헤어진다니 말이 안 돼요.”

어떤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설아가 보이는 자신감은 대단했다.

자신의 오빠가 연애를 시작했으면 결혼까지 갈 거라는 말에 민수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직 20대 젊은 배우들인데 그걸 장담하다니.

게다가 집안 내력이라니 민수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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