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43화 (143/325)

# 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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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멍청이의 문제를 해결한 민수는 연일 매진을 기록하는 영화의 흥행과는 상관없이 조금 한가로운 며칠을 보냈다.

몇 개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자신이 홍보대사로 있는 아동복지 재단의 포스터 촬영을 빼면 특별한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준과 수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연이 여성잡지 몇 군데에서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한 것 이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가 자신보다 더 많은 CF 요청을 받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민수는 다소 의아하긴 했지만 조금 여유를 찾고 싶다는 수연의 말에 그냥 그런가보다 라고 생각했다.

반면 설아와 소희는 조금 바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여러 예능에 패널로도 참석했고 각종 인터뷰를 소화함은 물론 패션잡지에서 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다.

특히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신선하고 소위 옷발까지 잘 받는 둘은 패션계에서 눈여겨보고 있는 좋은 피사체라고 한다.

한두 개의 작은 스케줄을 마친 후에 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여유 있게 요리 연습을 하는 민수와 달리 더 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저녁에는 동료 여배우들과 운동까지 하는 설아는 바쁜 만큼 민수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그렇게 두 주가 지나고 한창 바쁘게 움직이던 설아는 드디어 초반에 잡힌 스케줄을 모두 소화하고 며칠간의 휴식에 들어갔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휴식을 취하게 된 설아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민수가 놀고 있는 식당이었다.

민수는 오랜만에 만나 설아의 모습이 조금 지친듯해 보이자 딱하다는 생각이 들어 전복을 저며 넣은 떡갈비를 만들었다.

떡갈비는 설아가 특히 좋아하는 메뉴였고 거기에 원기 회복에 좋은 전복까지 추가 했으니 잘 먹고 하루 이틀 쉬면 금방 예전에 혈기 왕성한 설아로 돌아올 수 있을 거 같았다.

설아는 민수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떡갈비를 떡하고 내밀자 기분이 매우 좋아지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뒤숭숭하기도 했다.

결국 민수는 요리실력으로 자신을 추월한 지 오래 (애당초 설아에게 요리 실력이란 게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였으니 자신이 뽐낼만한 여성의 매력이 한가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요리를 만들어 준다고 해도 민수가 실망만 할 가능성이 매우 컸지만 설아의 머릿속은 그런 가능성을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눈앞에 떡갈비는 매우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떡갈비네요.

히힛~ 제가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아시고…..”

“윤 배우가 설아 씨가 떡갈비 킬러라고 알려주더라고요.

많이 지쳐 보이는데 어서 드세요.

식기 전에 드셔야 더 맛있으니까요.”

민수는 설아가 떡갈비를 맛있게 먹는 것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역시 이 맛에 요리하는구나 싶었다.

“용의 울음”은 개봉 2주 차를 넘어서는 순간 이미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관객들의 추세에 맞춰서 조금 상영관을 줄이긴 했지만, 아직도 더 많은 관객이 들어올 거로 예상되었다.

어느 정도 차분함을 유지한 채 몸을 추스르고 있는 배우들과 달리 소속사 내 분위기나 감독인 찬진의 영화사가 연일 축제 분위기인 것은 그 이유에서였다.

아마 설아에게 이 주 동안 계속 스케줄이 들어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영화는 연일 흥행 중인데 강철이나 진성은 그렇다 치더라도 민수나 태준, 그리고 수연까지 찾아보기 힘드니 그나마 활동 중인 설아나 소희에게 섭외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민수도 조금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조바심의 방향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민수가 조바심을 느끼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 보지 못한 영화인 “유적 탐색자”를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자신도 슬슬 본격적으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할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정말 이러다가 영화를 아예 못 볼 것 같았다.

요리를 하기 전 유일한 취미가 영화감상이었는데 전생에 보지 못한 새로운 영화를 보지 못한다니 민수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아 씨. 혹시 그럼 내일은 온전히 쉬는 건가요?”

“네, 그래야죠.

쉴 때는 좀 쉬어야 다시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설아가 웃으면서 쉰다고 말하자 민수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음…. 그러면 혹시 내일은 저랑 같이 영화 하나 보러 안 가실래요?”

민수의 말에 설아의 눈이 동그랗게 커진다.

그만큼 민수의 요청은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서…설마 데이트 신청?!!?”

설아는 생각지도 못한 민수의 말에 놀라서 자기도 모르게 조금 큰 소리가 튀어 나왔고 자신이 낸 소리에 놀란 설아는 빠르게 입을 막고는 주변을 슥슥 둘러 보았다.

애매한 시간이라 그런지 역시 식당에는 푸근한 얼굴로 설아와 민수를 바라보고 있는 김 여사님뿐이었다.

물론 소속사 식구들은 말 그대로 다 식구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알려진다 해도 별문제 없었지만 설아는 왠지 그 식구들이 알게 된다고 해도 피곤한 일이 생길 것만 같았기 때문에 가능하면 알리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쉬는 날 생각지도 못한 횡재를 한 기분으로 설아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네 되죠. 되고 말고요. 아주 되죠. 헤헤.”

설아가 흔쾌히 같이 가 준다고 하니 민수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심 민수는 피곤한 설아가 쉰다고 거절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연예인이니까 가능하면 한가한 시간이 좋을 거 같아요.

음…. 첫 상영을 보고 오면서 점심을 먹는 게 어떨까요?”

설아도 민수의 의견이 옳다는 생각했다.

극장이 가장 한가한 평일 오전이니 사람들에 대한 부담도 조금 덜할 거 같았다.

특히 상영 직전에 영화관으로 들어선다면 시선도 조금 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제가 내일 준비 마치는 대로 이곳으로 올게요. 무슨 영화를 보실 생각이에요?”

“음….. 당연히 “유적 탐색자” 죠.”

지금은 이미 한국 내 흥행에서는 승패가 갈린 상황이긴 했지만 그래도 굳이 경쟁작을 극장에서 보겠다는 민수의 말에 설아는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예전부터 극장에 가서 보고 싶다는 민수를 괜한 구설에 오를 까봐 식구들이 말렸었는데 지금쯤이라면 가서 봐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오빠다운 거 같아요.

좋아요.

저도 조금 궁금하긴 했거든요.

그대도 나중에 혹시 같이 보게 될까 싶어서 스포일러는 철저히 피했으니까요.”

당당한 얼굴로 스토리 확인도 안 했다고 말하는 설아의 표정은 제법 귀여웠다.

게다가 뜬금없는 요청에 놀란 주제에 혹시 같이 보러 갈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랬다고 얼렁뚱땅 말을 덧붙이는 모습은 조금 더 귀여웠다.

그런 설아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민수는 그럼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를 마친 후 설아가 먹은 식기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민수가 식기를 씻는 동안 설아는 턱에 손을 괴고 민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렇게 보니까 진짜 요리하는 남자 같네.

물론 저건 그냥 설거지하는 거뿐이지만….

히힛.... 그나저나 첫 데이트네… 뭘 입고 갈까….

스타일은 음…… 너무 과하면 싫어하려나….”

설아가 내일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는 가운데 민수가 정리를 마치고 돌아왔다.

돌아온 민수가 설아에게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느냐고 물어보자 설아는 말을 돌리며 스케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내일 당신하고 데이트할 때 무슨 옷을 입을지 고민하고 있었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이제 민수 오빠도 본격적으로 움직이실 때가 됐잖아요.

CF 요청하는 쪽에서 아예 몸이 달아서 쫓아다니고 있대요.

스케줄 조율하는 오 팀장님 쪽에서는 최대한 미루려고 하는데 이젠 그것도 거의 한계라고 하시더라고요.”

설아의 말에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오늘 오 팀장에게 불려가서 이젠 확실히 결정해야 할 때라는 말을 들었다.

민수는 이번에 저번과는 달리 가능하면 많은 CF를 촬영할 생각이었다.

물론 제품이나 회사를 봐가며 촬영할 것이지만 그래도 저번처럼 무작정 빼지는 않을 것이니 충분히 많은 CF를 촬영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그렇네요.

설아 씨랑 같이 출연하기를 원하는 곳도 있던데 그걸 하게 되면 같이 촬영하게 될 수도 있겠어요.”

“아 맞다. 그렇죠.

우리가 이번에 같이 상대역으로 나왔으니….

헤헤. 그건 재미있겠네요

전 아직 단독으로는 CF가 안 들어 오거든요.

들어와도 좀 이상한 것뿐이라.

이번에 오빠 덕분에 하나 제대로 건지면 좋겠어요.”

“아마 다음에 드라마 괜찮은 거 하나만 찍어도 많이 들어오실 거예요.

솔직히 설아 씨는 연예인 중에서도 특출하게 예쁘니까요.”

“흠흠… 그건 그래요.

제가 좀 예쁘긴 하죠.

그건 누구도 부정 못 할 거에요.

그래도 바로 앞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부끄럽긴 하네요.”

민수의 말에 혼자서 콧대를 세우던 설아는 그래도 마지막에는 조금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민수는 그런 설아를 부드럽게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고 민수는 준비를 마친 채 설아를 기다렸다.

상영 시간을 보니 “유적 탐색자”의 첫 상영은 10시.

극장은 소속사에 차로 10분 정도의 거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천천히 가도 충분했다.

둘이 데이트라고 칭했지만 사실 공공장소인 극장에 가는 이상 매니저 대동은 필수였다.

특히 얼굴이 알려준 둘이 티켓팅을 하면 분명히 시선이 집중될 것이기 때문에 티켓은 매니저가 끊어 올 수밖에 없었다.

설아가 소속사에 도착했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는 6월. 설아는 조금 과감한 미니스커트에 굽이 제법 높은 힐을 신고 있었다.

민수도 키가 제법 큰 편이라 설아가 높은 힐을 신어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었다.

민수는 제법 신경 써서 꾸민 설아의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별로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은 청순해서 보기 좋았고, 저렇게 힘을 팍 준 모습은 세련되고 성숙해 보여서 보기 좋았다.

“예쁘네요. 설아 씨.”

“오늘은 힘을 좀 줬어요. 오빠.

자. 어서 가요. 고고~”

조금 업 된 듯한 설아는 민수를 끌고 자신의 차로 들어갔다.

오늘 영화 관람은 설아의 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동원은 민수 앞으로 밀려드는 스케줄에 대한 정리와 그 제반 자료를 정리하는 것에 바빴다.

설아의 매니저인 천명수는 태준의 말대로 듬직하고 믿음직한 외모를 가진 남자였다.

게다가 민수가 얼핏 봤을 때 설아를 공주처럼 떠받드는 것을 보니 그녀를 2대 마스코트로 삼았던 아리 재단의 남아가 확실했다.

영화관에는 금방 도착했다.

역시 평일 첫 번째 상영이다 보니 사람들도 그리 많지 않고 한가해 보였다.

민수와 설아는 명수가 끊어온 표를 들고 상영시간에 맞춰서 조심스럽게 상영관으로 다가갔다.

웬만하면 조심스럽게 들어가려고 했지만 역시 그건 무리였나 보다.

그냥 멀리서 봐도 심상치 않은 비주얼을 가진 두 남녀.

사람들은 딱 보고 저 두 남녀가 적어도 연예인이라고 생각했고 저들이 누굴까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용의 울음”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저 커플이 정민수 윤설아란 사실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한껏 꾸민 두 남녀의 포스가 심상치 않아서 그런지 쉽게 다가와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은 없었다.

민수는 저쪽에서 “용의 울음”을 보러 온 사람들이 자신을 유심히 바라보며 자신들끼리 쑥덕거리자 역시 들켰구나 싶었다.

이런 곳에 올 때 너무 가리는 것은 차라리 내가 연예인이요 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그러지 말라는 태준의 충고를 받아들여 그냥 대놓고 온 게 실수였나 보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사인이라도 해주는 게 좋을 거 같아서 민수는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다행히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사람들이 별로 많지는 않았다.

“정민수 씨 맞죠? 사인 좀 해주세요.”

민수가 다가오자 용기를 낸 한 여학생이 민수에게 팬과 종이를 내밀었다.

민수는 웃으면서 그 학생에게 사인을 해주었고 거기에 설아까지 가담했다.

덕분에 주변이 순식간에 사인회장이 되었다.

사람들은 사인을 받아가며 영화가 재미있었다는 둥, 방송에서는 너무 보기 힘들어서 서운하다는 둥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민수는 가능한 한 한명 한명의 말에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사인을 다 받은 후 조용히 말했다.

“음…. 저도 사실 영화를 보러 왔어요.

그러니 부디 제가 여기 와서 사인해 드렸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 올리실 분들은 조금만 이따가 올려 주시겠어요?”

민수의 말에 다들 그러겠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민수 씨는 무슨 영화를 보러 오셨어요?”

한 남자가 묻자 민수는 살짝 장난스럽게 웃으며 “유적 탐색자”라고 대답했고 질문을 던진 남자는 조금 오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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