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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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에 도착한 민수는 초췌한 몰골의 멍청이 7인방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워낙 어둡기도 했고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밝은 곳에서 보니 생각보다 어린 녀석들이었다.
대략 이십 대 초반쯤 돼 보이는 남자들이었는데 그냥 봐서는 그런 무모한 짓을 할 녀석들로 보이지는 않았다.
민수가 들어오자마자 달려 나와 무릎 꿇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니 기가 막히기도 했고 조금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민수는 폭행에 관련된 사건이니 자신과 합의만 마치면 충분히 무죄방면이 될 거로 생각했지만 그들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단순 폭행이 아니라 특수폭행으로 거의 확정된 분위기인 데다 특수폭행이면 민수가 합의를 봐준다고 해도 형을 피할 수는 없단다.
이건 민수도 잘 모르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어쨌든 멍청이들의 상황이 많이 안 좋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들이 민수에게 원하는 것은 민수가 합의 후 그들을 용서했고, 그들의 선처를 바란다는 의견을 적어 주는 것이었다.
경찰의 말을 들어보니 그렇게 되면 형벌을 피할 순 없지만 적어도 양형에서 감형을 받을 순 있다고 한다.
남자들은 민수에게 사정사정했다.
녀석들의 사정은 생각보다 안 좋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위 말하는 형님의 말을 듣고 잔심부름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는데, 그 형님들이 저번에 정우철이 잡혀 들어가면서 같이 잡혀 들어갔고, 남은 형님들은 각자 자기 살길을 향해 떠났다고 한다.
결국 끈 떨어진 신세가 돼 버렸으니 입장이 참 난감하긴 한 것 같았다.
특히 한 녀석은 거동이 불편하신 노모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놈이 대체 왜 그런 무모한 짓을 했나 싶어 씁쓸하기도 했다.
잠시 고민하던 민수는 결정을 내렸다.
“좋아요.
아예 탄원서를 적어 줄게요.
그게 더 효과적이겠죠?
음…..
그리고 제가 잘 몰라서 그런데 술에 엄청나게 취하게 되면 정상참작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제가 봤을 때 저 친구들이 그때 술에 엄청나게 취했었거든요.
멀리서도 술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어요.
그 사실도 적으면 도움이 될까요?”
경찰은 민수가 아예 탄원서를 작성해 주겠다는 말 하자 조금 놀라는 듯 보였다.
남자들도 민수가 그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는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민수는 그 자리에서 탄원서를 작성해 담당 경찰에게 건네주었다.
저 멍청이들이 위험한 짓을 하긴 했지만, 그때 술에 엄청나게 취한 상태였고 자신은 별다른 피해를 보지 않았으니 가능하면 선처를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남자들은 민수에게 고맙다며 고개를 몇 번씩이나 숙였다.
민수는 그런 남자들을 보며 쓰게 웃을 뿐이었다.
돌아오면 차 안에서 민수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이거 참…. 우리 배우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할지……”
피해자는 자신만이 아니었다.
과연 다른 배우들이 이 상황을 똑바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는 민수였다.
하지만 이번 일 같은 경우 자신이 한 행동이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민수가 돌아오고 각자의 스케줄을 마친 배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배우들이 다 모이자 민수는 오늘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그날 심적으로 고통을 받았던 수연은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태준도 의외라는 듯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고 설아는 민수가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궁금한 기색이었다.
“정 배우가 좋은 녀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너무 무른 거 아닐까?
녀석들이 죗값을 치르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맞아. 운이 좋아서 그렇게 넘어간 거지, 정말 재수 없었으면 크게 다치거나 정말 최악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고.
그런데 그걸 그렇게 넘기다니……”
“민수 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사람 좋은 것도 문제라고요.
예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지만 진짜 그럴 필요는 없잖아요.”
민수는 배우들의 말을 들으며 마음이 조금 착잡해졌다.
배우들은 아무래도 저들이 불쌍해서 자신이 그런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은 그 정도로 좋은 놈은 아니었다.
솔직히 그놈들이야 어떻게 되던 자신이 알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민수는 밑바닥 생활을 오래 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이건 민수가 병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과도 연관이 있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입은 작은 피해에 민감하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피해를 보면 상대에게 갚아 주려고 한다.
그것이 지금 당장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이유에서라도 피해를 준다면 결국 나도 상대에게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그렇기 때문에 민수는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는 그에게 빚을 지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작은 원한들이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뒤가 없어지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짓도 서슴지 않고 저지르기 때문이다.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민수는 그들에게 이유야 어떻든지 피해를 준 셈이다.
민수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민수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만, 결론적으로 그들이 피해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은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었다.
술에 취해서 이성을 잃었다는 것이 특별한 이유가 되어주진 못한다.
그들은 그냥 앞뒤 보지 않고 민수에게 달려든 것이다.
민수가 그들에게 피해를 주었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민수에게 원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정상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면 과연 그런 무모한 짓을 했을까?
안정적인 직장, 그리고 가정환경.
그런 것들이 있었으면 아마 그들은 뒤를 생각했을 것이다.
화가 좀 나도 참을 수도 있고 그냥 술자리에서 조금 화를 내고 가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정말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민수가 그들을 용서한 것은 그들이 무서워서였다.
그들이 막다른 길에 몰려버리면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그런 위험성을 배제하고 싶었다.
솔직히 그들이 제대로 죗값을 치른다고 쳤을 때 최고형을 받아도 5년을 살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형벌을 받고 5년을 살고 나온다면 그들이 마음을 고쳐먹고 새사람이 될까?
그리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고 민수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가질까?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민수에 대한 원한만 더 커질 것이고 어떻게든 복수하고 싶어 할 것이다.
5년 동안 옥살이를 하면서 그들의 상황은 더 막장으로 갈 거고 이제는 완전히 뒤가 없어진 그들이 눈이 뒤집어져 더 엄청난 짓을 벌일 수도 있다.
그게 자신이면 차라리 나았다.
만약 자신을 못 당한다는 생각에 그 칼끝이 주변으로 향하면 그건 정말 곤란했다.
현실적으로 민수가 가장 원하는 것은 그들이 이제 민수의 인생에 끼어들지 않는 것이었다.
민수가 선처를 부탁해서 결국 그들이 벌금형 정도만 받게 된 후 민수에게 고마움을 가지는 것도 좋고 아니면 민수를 호구라고 비웃어도 좋았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들 간에 원한은 어쨌든 일단락이 된 것이고 그들이 민수의 인생에 더는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민수는 이런 자신이 생각들을 배우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
하지만 그런 마음을 숨기고 싶진 않았다.
윤 엔터 식구들에게만은 솔직해지고 싶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 젊은 배우들에게 한가지 충고를 해 주고 싶기도 했다.
“음…… 사실 조금 다른 부분이 걱정돼서 그런 거였어요.
제가 그들에게 해준 것은 관용이나 용서 같은 팔자 좋은 게 아니에요.
전 그렇게 좋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제가 걱정한 건 그들이 제게 더 큰 원한을 가지는 거였어요.
정말 원한이 커서 자신을 전혀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절 증오하는 걸 두려워한 거예요.”
민수가 대답을 듣는 배우들이 표정이 조금 오묘해졌다.
민수는 그들이 제 뜻을 정확하게 이해한 것 같지 않아 조금 설명을 덧붙였다.
“조금 극단적인 예를 들어 볼게요.
그 녀석들 중에 한 명이 몸이 불편하신 노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놈이 도대체 왜 그랬는지는 제쳐두고 만약 그 녀석이 징역을 살고 나왔는데 보살필 사람이 없어진 그 녀석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거나, 혹은 큰 병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그 녀석은 누구한테 가장 많이 화가 날까요?
자기 자신? 아니면 자신을 못 기다린 어머니?
아니면 자신을 책임 못 진 정우철이나 그의 똘마니들?
아닐 거예요. 그 분노는 아마 저한테 표출될 거에요.
정말 모든 것을 잃고 뒤가 없어진 녀석이 어쩌면 제 팬 미팅 자리에 나와서 염산을 뿌리거나 달려와 칼침을 놓을 수도 있겠죠.”
민수의 말을 들은 설아가 조금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정말 그럴 수도 있을까요?”
“물론 이건 정말 극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불가능한 예시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어쩌면 있을 법한 일인 거죠.
잘 생각해 보세요.
이번 일도 사실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사람 일이란 건 조금 오묘한 것 같아요.
남을 흥하게 하기는 정말 어렵지만, 자신을 포기한다면 남을 망하게 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으니까요.
사람이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어요.
전 그들이 저에게 원한을 가진 상태로 그런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리지 않기를 바랐을 뿐이에요.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주변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면 그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죠.
전 우리 식구들이 앞으로 작은 만족감이나 통쾌함을 위하여 사람을 극단적인 상황까지 몰아넣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차라리 우리를 위한 일일 테니까요.”
민수의 말에 배우들은 자신만의 생각에 빠진 듯 조금 조용해졌다.
잠시 후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태준이 웃으면서 물었다.
“이거이거 정 배우.
그런 것 치고 예전에 그 여자한테는 가차 없이 고소장을 날렸잖아.
그건 어떻게 된 거야.”
“그 여자는 혼 좀 나봐야지.
그리고 그건 내가 고소를 하든 말든 그 검사님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걸.
가정환경 멀쩡한 여자니까 마음고생 좀 하고 정신 차려야지.
어차피 그 여자도 그냥 집행 유예로 끝났으니까.
그 여자가 원한을 가지면 나보다는 차라리 정우철이 아닐까?
아마 그냥 잊고 자기 갈 길 갈 가능성이 크지만 말이야.”
“그 친구들은 사정이 더 안 좋았나 보지?”
“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만약 내가 그 놈들이 그 정도로 아무 생각없는 놈들인지 알았으면 그렇게 소속사까지 유인해 가지 않고 그냥 오는 길에 떨쳐버렸을 거야.
그러면 지들끼리 씩씩대다가 정신차리고 집으로 돌아갔겠지.
내가 그 놈들을 그렇게 끌고 온건 혹시 예전에 정우철처럼 누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그런 짓을 저질렀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어.
만약 그렇다면 그게 누군지 우리가 알아야 하잖아.”
“그런데 그건 아니었지.”
“맞아, 전혀 아니었지.
그래서 더더욱 저놈들이 처벌을 받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어쨌든 민수 오빠의 큰 그림을 잘 알았어요.
작은 통쾌함보다 원한의 사슬을 끊는 게 더 낫다는 거군요.”
“그보다 피라미한테 신경 쓰지 않고 싶다는 거지.
역시 정민수야.
아주 대범해.”
“OK. 어쨌든 납득. 이해했어 무슨 말인지.
아예 치워버릴 수 없으면 차라리 호구가 되더라도 원한을 사지 않는 게 남는 거란 말이군.”
조금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오고 있지만 어쨌든 자기 뜻을 배우들이 잘 이해해 준 거 같아서 민수도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 시간 민 여사는 민수가 그 멍청이들을 위하여 탄원서를 적어 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작게 웃음 짓고 있었다.
“하여간, 우리 귀염둥이는 도무지 그 나이 때 아이 같지가 않다니까.
혹시 이 녀석 나이를 속이고 있는 건 아니겠죠?
호호호. 재미있네요.
그 녀석들은 제가 지시한 대로 처리해 주세요.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것도 같아요.”
“네, 이사장님
정신 교육 확실히 해 놓겠습니다.”
그 뒤 민수는 우연히 그 멍청이 7인조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갈 곳 없는 녀석들을 민 여사가 거두어 아리 재단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민수는 민 여사의 결정에 탄성을 내뱉었다.
아예 딴짓 벌릴 가능성을 원천봉쇄 해버린 민 여사의 판단은 효율적이라고 할 순 없었지만 안전함만을 따진다면 최고라고 할 수 있었다.
원한 가진 놈을 데려다가 살길을 열어주고 아예 은인이 되는 것.
민 여사 정도의 재력이 아니라면 생각하기 힘든 결정이었다.
민수는 이 장면을 보고 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저 살 만큼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돈은 자기 생각보다 훨씬 유용했기 때문이다.
“돈이라…… 음…..”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돈에 대한 민수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