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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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그 시간 일본에서 콘서트를 준비하고 있던 이카루스는 잠시 쉬는 시간 동안 자신들끼리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용의 울음”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보던 리온은 모두가 호평 일색이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재미없다고 소감을 올리는 용자는 없군.
예상대로야.
내가 “태양”에 꼭 한번 가서 볼만한 영화라고 올린 게 헛소리가 되진 않겠어.”
“솔직히 쩔었잖아.
내가 기억나는 영화 중에 그거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말해보라면 글쎄….”
“정말 미쳤어.
난 영화 끝나고 소리지를 뻔했다니까.
마지막에 딱 진이 죽는데 그 여운이….”
영화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하던 K-G는 순간 태호가 시사회에 무조건 따라가겠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것도 설아에게 한 번 더 말을 붙여보고 싶어서 간다고 우겼으니 그 경과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헤이, 호~ 너 이번에 가서는 설아 씨 번호를 무조건 따 온다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왜 갔다 와서는 보고가 없어?
이래도 되는 거야?”
“뭐야. 태호 아직 포기 못 한 거야?
집적거리는 건 뮤비 때로 끝난 거 아니었어?”
“그건 남자다운 게 아니라 진상이야.
우리 태호.
괜히 넘어가지도 않는 나무 앞에서 도끼질하지 말고 포기할 때는 쿨하게 포기하자고.”
이카루스 멤버들은 뮤비 때도 태호가 설아에게 호감을 표시하다가 설아의 강철 벽에 튕겨 나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 포기를 못 하고 다시 접근하는 듯하여 보이자 장난 반 걱정 반으로 태호를 떠보는 것이었다.
그날 돌아올 때 태호의 표정을 보니 결과는 안 봐도 알만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었기 때문이다.
멤버들의 놀림에 태호는 한숨을 쉬면서 이실직고했다.
“아니. 나도 마지막으로 도전해 본 거야.
역시 예전처럼 철저하게 말을 돌리더라고.
이젠 나도 완전히 마음 접어야지.
나중에 뮤비에나 다시 나와달라고 해야겠어.
설아 씨가 있으면 노래할 맛은 나잖아.”
이제 완전히 포기한 듯한 태호의 모습에 다른 멤버들은 안심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한창 중요한 순간에 멤버 하나가 연애를 시작한답시고 설쳐대면 그것도 매우 피곤하기 때문이다.
연애하는 건 데뷔 전부터 애인이 있던 K-G 하나면 충분했다.
K-G에게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고 얼마나 고생을 했었는지 떠올린 이카루스 멤버들은 당분간은 그 고생을 자처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가능성이 있으면 응원이라도 해주겠는데 뮤비 촬영 때 설아가 태호를 대하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전혀 가능성이 없었다.
상대가 기분 나쁘지 않게 방실방실 웃으면서도 절대 여지를 주지 않는 설아의 화법은 이카루스 멤버들이 보기에도 난 너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설아 씨가 철벽 치는 스킬이 엄청나던데…..”
“어, 그런데 거절당하는데도 별로 기분이 안 나쁘더라고.”
“그게 진짜 스킬이지.
그 외모에 대쉬 한두 번 받아 보고 거절 한두 번 해보겠냐?
그게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철벽이라고”
“그런데 우리 태호 정도면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설아 씨는 생각도 안 해보고 바로 거부하더란 말이지……”
“음, 그럼 역시 애인이 있나?”
“아무래도?”
멤버들의 잡담을 가만히 듣고 있던 리온은 뭔가 생각난 듯 탄성을 질렀다.
“아….. 설마 민수형이랑 사귀나?”
리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멤버들의 눈이 순간 리온에게 집중되었다.
“아니, 촬영 영상이나 예능 나온 것 봐도 그렇고 그쪽 사람들은 서로 사이가 엄청 좋아 보이잖아.
그냥 하루 이틀 친하게 지낸 것 같지도 않고.
아, 그리고 보니 저번에 우리한테 소개해준 것도 민수 형이었잖아.
그 귀여운 꼬맹이랑 같이 말이야.
그리고 설아 씨가 아직 신인 배우인데 아무런 감정도 없는데 그렇게 풋풋한 연기가 나오겠어?
내 배우의 감이 말하고 있어.
그 둘 사이에는 분명 무슨 썸싱이 있다고 말이야.”
순간 멤버들의 분위기가 조금 심각해지고 태호는 조금 당황한 듯 동공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니까 우리 태호가 뮤비 때부터 민수 형 애인한테 집적거린 거네.”
“게다가 이번엔 시사회까지 따라와서 번호를 따려고 했고?”
“이거….. 지금 우리 태호 위기상황인가?”
“설아 씨가 이야기했을까?
만약 했으면 다음에 만날 때 죽빵 터지는 거 아냐?
봤지?
민수 형이 7명한테도 안 쫄고 달려드는 거.
캬~ 그건 완전히 영화였지 정말….”
멤버들이 놀려 대자 태호는 인상을 쓰며 소리를 버럭 질러댔다.
“야이씨…..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잖아.
그..그리고 나도 약한 남자는 아니야.
아니 그보다 설령 그렇다 쳐도 모르고 한 건데 무슨….
게다가 결혼 한 것도 아닌데 관심 정도는 표할 수도 있는 거지.”
소리를 버럭 지른 태호가 진짜 당황한 것처럼 보이자 리온이 태호를 달래듯이 이야기했다.
“에이. 태호, 돈 워리.
민수 형이 진짜 대인이라서 몰라서 그랬다고 하면 별말 안 하실 거야.
그래도 나중에 만나면 그냥 먼저 사과부터 해.
우리는 매인 댄서를 이렇게 잃고 싶지 않으니까.”
이건 달래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애매모호한 리온의 태도에 태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분명 멤버들은 재미있는 건수를 잡은 것처럼 이걸 가지고 계속 놀릴 것 같았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진짜.
내가 죽어야지. 내가….”
태호가 한발 물러나자 멤버들은 키득거리면서 다시 연습을 준비했다.
어느새 이카루스 멤버들의 머릿속에서는 민수와 설아가 이미 연인 관계가 되어있었다.
태준은 태호가 설아에게 접근했을 때 설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예전에도 설아의 외모만 보고 접근했던 많은 남자가 이빨도 안 들어가는 설아의 철벽에 그렇게 침몰당하곤 했다.
꼴을 보아하니 그 태호도 그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민수에게 그걸 다 설명해 주지 않았다.
침착한 자신의 친구가 저 정도로 동요하는 것도 보기 힘든 일이니 이 기회를 이용해야 한다.
역시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 중 하나가 남의 연애와 남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라는 말은 고금의 진리인 모양이다.
“뭐… 그건 그렇고. 그래서 설아 씨 매니저는 누군데?”
하지만 민수는 쉽지 않은 남자였다.
잠시 씁쓸한 듯한 표정을 짓던 민수는 바로 말을 돌려 버렸다.
태준은 티 나지 않게 혀를 차며 민수의 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친구를 완전히 낚으려면 이 정도로는 어림없나 보다.
“음. 오 팀장님 아래에서 형우 씨랑 같이 배운 친구야.
아주 덩치가 크고 듬직한 친구지.”
“아 그래? 큭큭.
형우가 아까워하긴 하겠네. 설아 설아 노래를 불렀는데 말이야.”
민수의 말대로 처음에 설아를 담당할 수 없다는 오 팀장의 말에 형우는 잠시 좌절 분위기였다.
하지만 형우답게 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소희도 설아 못지않게 훌륭한 재원임을 알아채고 자신의 앨범에 소희의 자료가 얼마나 있나 찾아보았다.
설아처럼 긴 시간을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데뷔작은 “용에 울음” 촬영 중에 찍은 자료는 충분했다.
그리고 앞으로 꾸준히 자료를 보충하면 되었다.
형우는 이왕 이렇게 된 거 소희를 잘 보필해 설아보다 더 위대한 스타로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형우는 야심만만한 사내였다.
“이제 우리도 스케줄을 다녀야겠네.”
“그렇지. 스케줄이라…….”
민수의 말에 태준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영화가 개봉하고 하루하루 관객 수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늘어나는 관객 수에 비례해서 밀려드는 일감 역시 장난이 아니었다.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방송국에서는 예능에 다시 한번 나와주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빠르게 계약해서 단가를 낮추려는 기업들의 CF 요청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배우들의 게으름(?)이었다.
영화가 개봉될 때까지 알게 모르게 긴장감이 쌓였다가 이제 좀 느슨해졌는지 도통 스케줄을 뛰려고 하지 않았다.
원래 혼자 활동할 때 태준은 그래도 소년 가장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스케줄이 있을 때마다 미루지 않고 가능하면 소화하려고 했고, 그 결과 소속사를 꾸려가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예전에 수연의 위약금을 태준이 번 돈으로 준 거라는 태준의 말은 아주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수연도 처음 소속사를 옮겼을 때 자신의 위약금을 갚겠다는 목적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한창 이미지가 좋아지면서 들어오는 갖가지 CF를 모두 찍었고 그 결과 자신의 위약금은 충분히 벌충한 지 오래였다.
하지만 지금은 둘 다 조금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역시 문제는 대장 게으름뱅이 민수였을까?
민수는 지금 한창 주가가 올라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CF는 보류된 상황이었다.
영화가 유의미한 관객 수를 기록하고 몸값이 리즈를 갱신하면 그때 CF를 찍기로 내부적으로 결정된 것이다.
그리면 남은 것은 각종 인터뷰와 예능이었다.
어차피 좋은 반응을 얻을 가능성이 없는 예능은 모조리 거절하고 있었고, 그나마 정글을 가다 정도에만 흥미가 있었는데 앞으로 영화 성적에 따라 CF를 최소한 몇 개는 찍을 거라 온몸을 까맣게 태울 정글을 쉽게 갔다 올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결국 민수에게 남은 것은 인터뷰뿐이었다.
그렇게 하루에 한두 개의 인터뷰만 잡혀있는 민수의 스케줄 표를 보며 태준과 수연마저 거기에 전염된 듯 차례대로 스케줄을 퇴짜 놓고 있었던 것이다.
배우들의 스케줄을 총괄하는 오 팀장은 한숨을 쉬면서 태준과 수연이 내민 스케줄 표를 점검했다.
“CF까지 다 빼셨네요. 남은 건 인터뷰 몇 개와 잡지사 화보 몇 개…..
정말 이것만 하실 거예요?”
“네. 민수 보니까 저도 당분간은 CF는 안 해도 될 거 같아서요.
영화가 뜨면 뭐 더 좋은 조건으로 들어오지 않겠어요?”
수연의 대답에 오 팀장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연과 민수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수연 씨는 민수 씨랑은 조금 다른데요.
수연 씨는 배역 때문에 CF가 들어오는 게 아니라 인간 이수연의 매력 자체가 CF를 물고 오는 겁니다.
열정적이고 솔직하면서 효성 지극한 데다 단아한 분위기까지….
수연 씨는 영화가 성공해도 급이 한 단계 올라가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떨어지지 않을 거 아니에요.
당분간은 그냥 소속사에서 배우들이랑 편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민수가 본격적으로 스케줄 뛰기 시작하면 그때 같이 움직일게요.
그때까지는 조금 쉬려고요.”
오 팀장은 CF도 마다하고 쉬겠다는 수연을 말리진 못했다.
그녀의 말대로 올라갈 일이 없는 만큼 내려갈 일도 없었으니 민수가 움직일 때까지만 쉰다는 것은 별문제도 아니었다.
어쩌면 지난 3년보다 최근 1년이 너무 바빠서 조금 지쳤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의 스케줄 표를 가져온 태준.
태준도 수연과 마찬가지였다.
인터뷰만 몇 개 올라가 있었고 대부분 공란이었다.
“음… 두 분이 짠 것도 아니고 스케줄 일정도 거의 비슷하네요.
후, 알겠습니다.
싫다는 것을 강제로 하라고 할 수도 없으니 스케줄은 이렇게 하는 거로 알고 있겠습니다.”
오 팀장이 스케줄 표를 접수하자 두 배우는 웃으며 인사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갔다.
그런 둘을 보면서 오 팀장은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왠지 조금 싸한데……”
그렇게 태준과 수연이 자신들의 스케줄을 최대한 줄이고 있을 때 민수는 첫 스케줄을 위하여 출발했다.
어이없게도 민수의 첫 스케줄은 경찰서 방문이었다.
민수를 습격했던 7인조 멍청이들이 민수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사정했기 때문이다.
사실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었지만 민 여사는 가능하면 그들을 한번 만나보라고 권유하였다.
“날 굳이 보자고 하는 거 보니까….. 아무래도 합의 때문이겠네요?”
“네. 배우님. 그런 것 같습니다.”
민수의 매니저는 여전히 동원이었다.
하지만 매니저 경력이 있는 동원을 신인 배우인 설아나 소희의 매니저로 돌리고 민수와 친한 형우를 민수의 매니저로 삼자는 의견도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지금은 그랬다.
“합의라……”
민수는 순간 떫은 토마토를 먹은 듯한 기분이 되었다.
사실 민수는 그들이 잡혀가고 나서는 시사회에 신경 쓰다 보니 그들을 잠시 잊고 있었다.
“가 보죠. 가서 빨리 해결하고 잊어버리는 게 가장 좋을 거 같으니까요.”
민수는 경찰서로 향하며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