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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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의 로비 안에는 숨을 헐떡이는 태준과 그런 태준의 등을 두드려주는 수연 그리고 춘섭 어르신과 대화하는 설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민수가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건물 계단을 타고 십 수명의 남자들이 뛰어 나왔다.
다 춘섭 어르신처럼 방검복을 착용하고 손에는 단단한 곤봉을 든 상태였다.
그들 사이에 익숙한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특히 맨 앞에 있는 험상 굳은 얼굴의 남자는 마지막 촬영 때 와서 설아에게 가장 크게 환호했던 그 남자였다.
민수가 건물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 바로 뒤따라 남자들이 뛰어 들어왔다.
순간 아무 생각 없이 이곳까지 뛰어 들어온 일곱 명의 남자들은 순간 로비에 우글대는 보안요원을 보며 움찔한 듯 뒷걸음질 치려고 했지만 이미 주차장 쪽에서 로비입구로 이동한 대여섯 명의 요원들이 길을 막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은 달려드는 보안 요원에게 잡혀 이 층으로 끌려갔다.
보안 요원들은 화가 많이 났는지 남자들을 은근 슬쩍 때리면서 데려가고 있었는데, 특히 티가 안 나면서 골병이 들 수 있는 복부 쪽을 슬며시 가격하는 폼을 보니 사람 좀 때려본 거 같았다.
기세 좋게 달려들었다가 인제야 정신이 든 듯 잔뜩 얼어서 끌려가는 남자들을 보면서 민수는 한숨을 크게 쉬었다.
일이 자신의 의도 대로 잘 풀려 저들이 보안요원에게 잡히는 것을 보는 순간 맥이 탁 풀린 것이다.
한밤은 소란은 그렇게 정리가 되었다.
당연히 배우들은 윤 대표에게 끌려가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그리고 앞으로는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매니저를 대동하라고 단단히 주의를 받았다.
민 여사는 이 사단이 일어난 이유를 보안팀으로부터 전해 듣고 허탈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할까요? 여사님.”
“뭘 어떻게 해요. 그놈들이 몽둥이 들고 로비로 뛰쳐 들어오는 CCTV랑 같이 근처 경찰서로 보내버리세요.”
보안팀장이 고개를 숙이고 나가자 민 여사는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바람 잘 날이 없구나. 진짜.
이건 또 무슨 일인지…….”
상황을 파악한 홍보팀도 바로 각 언론사에 연락해서 사실관계를 전달했다.
또 언론에서 사람들의 제보만 듣고 이상한 소설을 쓰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홍보팀도 상황이 어이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상대가 믿을 수 있게끔 잘 설명해야 했다.
그렇게 직원들이 바쁘게 지내고 있을 때 태준은 수연을 데리고 직접 운전해서 수연의 아파트까지 바래다주었다.
소속사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한 수연의 아파트.
평소 같으면 그냥 혼자서 다닐 거리였지만 오늘 수연의 상태를 보니 누군가의 보살핌이 꼭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태준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열었다.
그리고 태준이 떠날 채비를 하자 차를 타고 오는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수연이 입을 열었다.
“야. 그냥 가지 말고 차라도 한잔하고 갈래?”
태준은 수연의 목소리가 왠지 조금 떨리는 것 같았다.
평소에 쿨한 듯 털털한 태도를 보이는 수연이었지만 오늘 있었던 일은 조금 충격이 컸었나 보다.
“지금? 이 시간에?”
태준이 되묻자 수연은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쓰면서 태준을 잡아끌었다.
“남자가 무슨 말이 이렇게 많아. 닥치고 따라와.”
말투도 거칠고 그 속에 내용은 더욱 거칠었지만 태준은 자신을 잡아끄는 수연의 손끝이 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긴 어떤 여성이 야밤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추격전을 하고 쉽게 마음을 추스르겠는가.
태준은 못 이긴 척 수연과 함께 수연의 집으로 따라 들어갔다.
민수는 윤 대표에게 혼나고 나온 후 춘섭에게 큰 치하를 들었다.
춘섭은 민수가 다른 배우들을 먼저 보내고 미끼처럼 그들을 유인했다는 것에서 큰 만족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대표실에서 나오는 민수를 보며 진짜 남자는 역시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면서 어깨를 크게 두드렸다.
처음에는 다소 민수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춘섭은 요즘에는 점점 민수를 마음에 들어 하고 있었다.
아마 그 시작은 혜민이의 이야기를 들은 후였는데 이번에도 민수는 춘섭에게 조금 더 점수를 딴 거 같았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민수는 그래도 남에게 호감을 사는 건 좋은 일이니 좋게 받아들였다.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춘섭을 바라보던 민수는 순간 춘섭이 남자들을 끌고 올라가다가 한 남자의 복부에 강한 보디 훅을 날리던 장면이 기억났다.
자세가 참 예사롭지 않았다.
민수는 춘섭이 참 정정한 어르신이다 싶어 웃음이 났고 웃는 얼굴로 춘섭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춘섭은 그런 민수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범한 놈이군. 그런 일을 겪었으면서 저렇게 웃을 수 있다니.”
춘섭은 민수가 웃은 이유가 자신의 보디 훅 때문일 거라고는 짐작하지도 못했다.
역시 예상대로 민수와 일곱 남자의 폭풍(?) 질주는 바로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한적한 주택가라고 할지라도 그 거리가 워낙 길었고 제법 많은 사람이 봤으니 조용하게 넘어가기는 틀린 일이었다.
윤 엔터에서는 정확한 사실을 언론사에 넘겼지만, 보도자료를 보고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다음날 배우들은 다시 민수의 방에 모여들었다.
“그러니까 그놈들이 정우철이 따라다니는 똘마니들이었다는 거지?”
“어. 정우철이랑 그 측근들은 이미 다 배임 횡령으로 감옥에 가 있는 상황이고, 남은 떨거지들이 붕 뜬 상태로 방황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그 아는 사람만 아는 술집에서 술을 진탕 먹으면서 한탄을 하다가 또 우연히 그곳에 민수가 있는 걸 보고 화가 나서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망할 정우철 진짜. 그 이름을 여기서 또 들을 줄은 몰랐네.”
일의 내막은 간단했다.
정우철을 따라다니는 양아치들은 정우철이 감옥으로 들어가자 그야말로 붕 뜬 상태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지내던 그들은 값싸고 맛있는 술집이 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고 그곳에서 술을 진탕 마시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마지막에 민수한테 작업을 걸다가 정우철이 잡혀갔기 때문에 민수에 대한 분노를 불태우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그곳에서 민수를 떡 하니 발견한 것이다.
술에 잔뜩 오른 그들은 민수를 혼내주고 싶었고, 밖으로 나가 몽둥이를 찾아 들고 민수를 기다렸다고 한다.
만약 민수와 친구들이 술을 잔뜩 먹고 늦은 시간까지 술집에서 놀았다면 그들도 기다리다 지쳐 술이 차츰 깨면서 제정신으로 돌아와 이게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해산했을 수도 있었지만 민수와 친구들이 시사회 때문에 빠르게 자리를 파하게 되면서 결국 그 사달이 나게 된 것이다.
“어이없지만 우연에 우연과 우연이 만나서 발생한 일이네요.”
설아의 말대로 우연과 우연이 만나 일어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었다.
유튜브에는 민수가 어젯밤에 남자 일곱을 달고 거리를 질주하는 영상이 버젓이 올라와 있었다.
아마 길 가던 누군가가 신기해서 찍은 영상인 모양이었다.
윤 엔터는 사실대로 평소에 민수에게 원한을 가지던 남자들의 소행이라고 보도자료를 돌렸지만, 사람들에게 정우철과 민수, 그리고 윤 엔터와 진룡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니 도대체 저 남자들이 왜 저렇게 민수를 미친 듯이 쫓아가는지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시킬 수 없었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치 추측이 난무하게 되었다.
그나마 그중에 사람들이 가장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 의견은 민수랑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무슨 시비가 붙어서 민수가 저렇게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상대가 일곱 명이나 되는데 어떻게 상대에게 시비를 걸 수가 있냐고 반론하는 네티즌도 있었지만, 그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민수니까 일곱 명 정도는 충분히 자신 있었을 거라고 대답했다.
특히 일곱 명이 몽둥이를 들고 있는 것을 보며 주먹으로는 민수에게 상대가 안 돼서 결국 상대가 무기를 들게 되었고 상대가 무기를 들자 어쩔 수 없이 민수가 도망쳤다고 자기네들끼리 소설을 쓰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거야 원…. “
배우들은 사람들의 여러 가지 반응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이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홍보팀은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하여 예전에 있었던 모든 일을 일괄 정리해서 민수와 그들 사이에 엮인 악연을 전부 공개할 계획을 세웠다.
진룡하고 얽힌 이야기까지 대중에 공개하는 되면 진룡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진흙탕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니 결국 정우철과 민수 사이에 악연을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저들이 정우철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이니 그걸로 충분히 대중들을 이해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시사회를 앞두고 문제를 키우고 싶지 않았던 윤 엔터 입장에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는 결정이었지만 상황이 계속 이렇게 흘러가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블로그에 한 영상이 올라오면서 여론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한밤중 추격전의 서곡]
나는 우리 집 옥상에서 주변 야경을 촬영하는 것이 취미야.
우리 집 근처는 사람도 별로 다니지 않고 고즈넉하기 때문에 마음을 가라앉혀 주기 때문이지.
내가 이렇게 글을 올린 건 갑자기 넷 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밤중 추격전에 대하여 말도 안 되는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사람으로서 민수형이 그런 오해를 받은 것을 참을 수 없었어.
(배우 네 명이 웃으며 골목을 걸어 들어오는 영상)
다시 말하지만, 위에 영상은 정말 우연히 찍힌 영상이야.
우연히 집 주변을 찍고 있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렸어.
나는 신기해서 바로 그쪽으로 카메라를 돌렸고 보는 것처럼 네 명의 남녀가 골목을 지나가는 모습을 찍을 수 있었지.
내 카메라의 화질이 좋으니 누군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거라 믿어.
그래 민수형이랑 윤태준 이수연 윤설아.
이 네 명이야.
내가 보기에 저들은 사적인 자리를 가진 것 같았어.
딴소리지만 이수연하고 윤설아는 꾸미지 않았는데 참 예뻐서 난 저걸 찍으면서 횡재했다 싶었지.
(네 배우가 지나기는 데 갑자기 사방에 몽둥이를 든 남자들이 나타나는 영상)
이게 문제의 시작이야.
저런 걸 보고 끝까지 영상이나 찍고 있었냐고 욕하는 애들도 분명히 있을 거야.
그건 나도 인정해.
일반적으로 보자마자 바로 신고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내가 신고를 못 한 건 상황이 너무 영화 같았기 때문이야.
난 진짜 속으로 무슨 홍보영상을 찍나 싶었어.
갑자기 골목에서 몽둥이를 든 남자들이 나타나다니. 말이 안 되잖아?
(남자들을 발견하고 남자들에게 뛰어드는 정민수, 그리고 다른 배우들은 도망가는 영상)
이 영상을 봐.
남자들을 발견하고 민수형이 윤태준한테 귓속말을 해. 그리고 그 즉시 윤태준이 이수연을 업었지.
민수형이 남자들한테 달려들고 그 틈을 타 다른 배우들이 도망쳐.
난 이 장면에서 소름이 돋았어.
지금 민수형을 잘 봐. 딱 봐도 상대를 전혀 때리지 않고 몸싸움만 하고 있어.
저놈들을 때리지도 않으면서 최대한 다른 배우들이 도망가게 시간을 끄는 거야.
동료 배우들을 위해서 일곱 명의 남자들에게 달려들다니 정말 멋졌어.
그리고 그 와중에 상대가 휘두르는 몽둥이는 또 미친 듯이 잘 피해.
이게 진짜 민수형 아니겠어?
(포위되기 직전에 도망치기 시작한 민수형. 그리고 남자들이 그 뒤를 쫓아가는 영상)
이제 시간을 번 민수형이 도망치기 시작해.
그리고 남자들이 따라가는 거야.
이게 아마 너희들이 본 추격전의 시작일 거야.
그 뒤는 너희들도 알다시피 민수형은 도망가고 저 사람들은 결국 경찰서로 끌려갔지.
이걸 보고도 민수형이 먼저 시비를 걸었을 거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을 거라고 믿어.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일단 저 사람들이 민수형에게 일방적으로 원한을 가지고 달려들었다는 소속사 측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 같아.
민수형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있었고 특히 여배우가 둘이나 같이 있었어.
과연 연예인인 민수형이 저 남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을까?
솔직히 무슨 시비가 붙었다고 쳐도 저렇게 일방적으로 몽둥이를 들고 달려드는 건 분명히 잘못이잖아.
어쨌든 남자들은 지금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고 하니 무슨 결과가 나오겠지.
그러니 민수형이 자신의 힘만 믿고 시비를 걸었다고 주장하는 건 자제해줘.
민수형은 고소 때리는 걸 두려워하진 않는 남자야.
그러니 이건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기도 해.
괜히 나중에 민수형을 경찰서에서 만나서 벌벌 떨면서 선처를 바라지 말고 알아서 자제하길 바랄게.
이렇게 올라온 영상과 글은 바로 인터넷 곳곳에 퍼지기 시작했고 민수에 대한 의혹은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정말 이 사태를 빠르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홍보팀으로서는 안도의 한숨의 나오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