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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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화면이 밝아지면서 방송이 시작되었다.
시작하자마자 나타난 건 두 남자가 계약서를 쓰는 모습이었다.
두 남자는 신인 아이돌 하나와 크게 알려지지 않은 방송인 한 명이었다.
아마 이 기회에 인지도를 올릴 욕심으로 조금 힘든 예능을 자원한 것처럼 보였다.
두 남자는 작가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특히 오지로 떠나게 되는데 그곳에는 많은 야생동물이 있고 재수가 없으면 맹수를 만날 수도 있다고 겁주는 작가의 모습과 경악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화면으로 지나가자 방에 모인 사람들의 눈이 민수에게 집중되었다.
“저건 그냥 겁주는 거예요. 방송이 그렇게 허술하겠어요?”
민수가 말에 어느 정도 납득한 사람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다시 방송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계약서를 작성한 남자들은 굳은 표정으로 출발 전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표정은 굳어 있지만, 태도만은 자신만만했다.
특히 방송 경력이 제법 긴 방송인 남성은 자신은 정글에도 두 번이나 갔다 왔기 때문에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쳤다.
잠시 후, 둘을 태운 헬기가 상공을 날아가고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민수는 둘이 같이 헬기를 타고 가는 것을 보고 조금 의아함을 느꼈다.
아무래도 자신의 경력을 생각해서 자신만 혼자 보낸 거 같았다.
일종의 페널티 같은 것 말이다.
사람이 두 명인가 한 명인가는 저런 오지 생활을 하는데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민수가 의아해하는 사이에도 방송은 계속되었다.
두 남자는 도착하자마자 야단법석이었다.
한 남자가 고소공포증이 있었는지 헬기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는 것부터 거부하기 시작했고 상당한 시간이 걸려서야 지면에 내려설 수 있었다.
그렇게 겨우 내려온 둘은 내려오자마자 주변을 살피고 집을 만들기 시작했다.
어디서 본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나무를 많이 다루어 봐서 그런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주변의 나무를 베어다가 대충 지붕을 만드는데 목공 솜씨 자체는 그래도 훌륭해 보였다.
“저런….. 저런 쓸데없는 짓을…..”
민수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안쓰러운 눈으로 화면을 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설아가 민수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저런데 가면 거처부터 짓는 게 기본 아닌가요?”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죠.
저 상황에서 집을 정상적으로 지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집이란 게 나무랑 못만 있으면 뚝딱 지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게다가 5일이었어요. 저기서 생활하는 시간이.
겨울이면 몰라도…. 이 시기에 저곳에서 지내는데 저런 걸 만드는 건 그야말로 쓸데없는 짓이죠.”
“겨울이면 다른가요?”
“그럼요. 겨울이면 확실한 은신처가 필요했을 거예요.
바람이 불고 안 불고 가 엄청 차이가 나거든요.
그래도 저렇게 짓진 않겠죠.
어디 보자……
만약 겨울이면 저라면 우선 땅을 까겠네요.
후…. 저기가 너무 추워서 땅이 얼어붙어 버리니 땅 까는 데만 온종일일 거예요.
하지만 가장 빠른 방법이 그거니까 어쩔 수 없겠죠.
무조건 무른 땅을 찾아서 무작정 파내요. 그리고 2인 이 누울 정도의 호를 파고 그 위에 나무 덮개를 만들어 덮어야겠네요.
아,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진짜 다시는 겨울에 저기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요. 갈 때마다 끔찍했거든요.”
민수가 말하는 동안에도 그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소속사 식구들은 민수가 쓸데없는 짓이라고 평가절하한 두 출연자의 노력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대충 얼기설기 지붕이 만들어지고 그것을 만들면서 첫날을 낭비한 둘은 한숨을 쉬면서 취침 전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첫날 아무것도 구하지 못하고 하루 치 식량을 대부분 소비한 것이 너무 아깝고 내일은 어떻게든 먹을 걸 구해 보겠다고 말하며 둘은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 다음 날.
둘은 사방에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
미리 출발 전에 이것저것 알아봤는지 그래도 산에서 먹을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정도는 알아 온 모양이었지만, 막상 수풀에서 그것을 구별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솔직히 그것은 숨은그림찾기나 마찬가지였다.
단순한 숨은그림찾기가 아니라 숨은 그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숨은그림찾기 말이다.
두 사람이 눈이 빠져라 주변을 뒤졌지만, 특별히 먹을 것을 찾지는 못했다.
그들은 남은 식량으로 겨우 주린 배를 채우고는 한탄을 계속 내뱉고 있었다.
다음 날
그들은 붉어진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사방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음지에서 어떤 버섯을 찾고 좋아하다가 이내 독버섯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급격히 시무룩해지곤 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두 남자의 모습이 대충 40분 정도 이어지자 설아는 이내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대체 민수 오빠는 언제 나오는 거예요?”
“그래. 우리는 민수를 보고 싶다고!”
설아와 수연의 말에 태준과 소희도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남자가 고생하는 것이 안쓰럽긴 했지만 우선 자신들이 보고 싶은 건 민수였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2시간 동안 방영돼서 하루 만에 끝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그런데 아직 민수는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이상하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설아가 투정을 부리는 사이에 두 남자는 드디어 폭발한 듯 카메라를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아니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떻게 먹을 걸 찾아?
적어도 바닷가 근처라도 데려다주던지.
하다못해 가을이면 무슨 나무 열매라도 있었을 거 아냐.
이게 말이 되냐고!?”
그렇게 절규하는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더니 순간 화면이 검게 변했고 자막이 튀어 나왔다.
[그런 의문을 가지신 분들을 위해 숙달된 조교를 모셔 보았습니다]
자막이 사라지고 화면이 밝아지면서 민수가 사전 인터뷰하는 모습이 서서히 드러났다.
그리고 자신만만하게 인터뷰하는 민수의 모습 아래 다른 자막이 달려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개마고원 전문가 배우 정민수]
그리고 민수가 출발하고 도착해서 신속하게 헬기에서 내리는 모습,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주변을 살핀 후 바로 땅을 파 침낭을 설치하고 주변에 풀을 으깨 바르는 영상까지, 군더더기가 전혀 없는 민수의 모습에 배우들도 혀를 차며 바라보고 있었다.
민수가 땅을 파는 동안에 민수의 아래에는 다른 자막이 붙어 나왔다.
[앞으로 나오는 모든 영상은 어떠한 조작도 없는 100% 사실임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와… 삽질 속도 봐.”
“전문가는 진짜 다르네요.”
“아니 도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조작이 아니라고 미리 밝히는 거야?”
그리고 첫날 바로 올가미 덫을 설치하고 더덕을 캐내는 모습에서 다들 눈이 휘둥그레 졌다.
특히 태준은 더덕을 놀란 눈으로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와… 저렇게 큰 더덕이라니.
저거 인삼보다 좋은 거잖아.
에이, 정 배우. 저걸 가져 왔어야지.
저게 남자한테 얼마나 좋은 건데!”
놀라서 경악하는 동시에 매우 탐나는 것을 본 듯 눈을 번뜩이는 태준을 보며 수연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좋기는 개뿔.
쓸 데도 없는 주제에….”
“뭐?”
수연의 말에 뭐라고 태준이 대꾸하기도 전에 화면 속 민수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물을 구해야겠다는 말을 하고는 바로 신속히 이동하는 민수의 모습은 마치 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렇게 물가에 도착한 민수가 가재를 잡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가재와 더덕을 끓인 탕을 먹는 것을 보며 태준은 안타깝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배우들도 민수가 저런 곳에서 여러 번 훈련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겨울에는 끔찍하다는 민수의 말이 짐작이 아니라 경험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남은 4일간 민수가 먹을 것을 찾는 장면이 계속 빠르게 이어졌는데 설아는 그런 민수의 행보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민수가 멈춰서 어떤 게 있다고 말하면 그 자리에 꼭 그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식량 탐지기 같았다.
방송에서는 민수가 송이버섯을 찾는 장면만 나오고 그 뒤에 민수가 미친 듯이 송이를 뒤져 엄청난 양을 채취하는 것은 보여주지 않았다.
“대충 먹을 걸 다 구한 후에는 송이만 찾아다녔거든요.
PD님이 그건 적당히 뺐네요.”
화면을 보니 대충 민수가 싸 온 저 많은 양이 버섯이 어떻게 나왔는지 짐작할 만했다.
저렇게 쉽게 찾는데 나흘 동안 종일 돌아다녔다면 얼마나 많이 채취할 수 있었을지 상상이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4일 차에 잡힌 꿩을 삶아 탕으로 끓여 먹는 모습이 민수의 여유 있는 오지 생활에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와….꿩이네요.”
“네, 닭이랑은 좀 다르더라고요.
좀 더 야들야들하다고나 할까. 송이랑 같이 끓이니 제법 괜찮았어요.”
“그런데 저거 진짜 어떻게 된 거야?
원래 훈련받은 군인들은 저 정도는 다 할 수 있는 거야?”
수연의 호기심에 민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조금 망설였지만 그래도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니에요.
저렇게 잘 찾으면 솔직히 무슨 훈련이 되겠어요? 그냥 캠프지.
제가 후각이랑 감각이 좀 예민해서 잘 찾은 것도 있고, 사실 우리가 훈련하는 곳은 저곳보다는 더 빡센 곳이거든요.
그러니 훈련 중에는 저것보다는 매우 힘들다고 보면 되죠”
“오호…. 그 와중에 우리 민수가 특출한 거였구나.”
수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만약 모든 군인이 민수 같다면 우리나라가 세계를 호령하고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민수의 활약이 그렇게 지나가고 다시 화면이 검게 변했다.
[이제 아시겠죠? 저곳에는 충분히 먹을 것이 많습니다.]
다시 화면이 밝아지고 남은 시간 동안에는 다시 고생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나고 있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5일이 지나고 처음보다 다소 핼쑥해진 두 남자는 한숨을 쉬면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인터뷰를 남기고 방송을 마쳤다.
5일이 지나고도 생기 넘치는 민수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하하하, 저렇게 대비해서 보니까 더 웃기네.
정 배우, 넌 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녀석이냐?
이거 나가면 사람들의 반응이 제법 재미있겠어.”
“음.... 설마 그냥 종편에서 파일럿 예능에 나온 것뿐인데, 저걸 누가 보겠어?”
“글쎄…. 그래도 생각보다는 많이 볼걸.”
민수의 말도 태준의 말도 둘 다 틀리지 않았다.
이 방송의 본 방송은 역시 많은 사람이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사람이 VOD 다시 보기를 보게 되었다.
-진짜 정체를 알수 없다는 말에 동의.
-민수형은 진짜 무늬만 배우고 사실은 특수부대에 민정시찰요원 같은 게 아닐까?
-미친X 우리나라에 왜 그런게 어딨어?
-아니 이시기에 송이가 왜있냐. 대체 ㅋㅋㅋ
-저거 조작이라고 우기지도 못해. 아직 송이는 인공재배가 안되거든.
저거 조작이라고 하는 놈은 저 송이를 어디서 구해왔는지부터 지가 찾아 봐야해.
-중국에서는 이시기에도 송이가 나는 경우가 있어. 중국에서 가져온게 아닐까.
-매년 그런건 아니야. 올해는 중국이 가물어서 지금 송이 안난다더라 내가 찾아봤어
-그나저나 무슨 탐색기냐. 캐면 뭐가 나와.
-민수형이 전문가는 전문가인가보네. 그런데 우리나라 군인 형아들은 다 저런거야?
-전역자 지인이 있는데 자기도 놀라더라. 저렇게 잘 찾는 놈은 첨본다고.
그리고 송이는 예전에 훈련중에 진짜로 송이 따온 용자가 있었단다.
드물긴 해도 가끔씩 나긴 하는 모양이야.
-실제로 그쪽 근처에 사는 친척이 그러는데 올해 봄비가 많이 와서 송이가 나오긴 한단다.
찾기 힘들어서 그렇지 있긴 한 듯.
-군에서 생존훈련도 받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저런 오지에 던져놓고 하는줄은 몰랐네.
군인엉아들이 수고가 많네. 일반인은 들어가서 먹을거 찾지도 못하는 곳에서 훈련받는다는 거잖아.
-동해 쪽 청룡사단은 그래도 무인도에 던져 놓고 한다더라. 그나마 바다속에는 조개라도 있으니 좀 낫다고는 하더라고.
-육지 땅개인 적호만 개고생하는 거네.
생존훈련 하는 육군은 적호 뿐이잖아?
-야. 어차피 겨울이면 빡센건 마찬가지지. 겨울에 먹을 거 찾아서 바닷속에 들어간다고 생각해봐라.
-으악…. 그건 더 극혐인데. 그때는 차라리 육지가 낫지 않겠냐?
민수의 활약상은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받게 되었다.
더불어 척척 먹을 것을 찾아내는 민수의 모습에서 역시 대한민국 군인이 대단하다는 인식까지 심어 준 것은 예상외의 성과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