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32화 (132/325)

#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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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늘어났지만 사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일정이 늦춰진다고.?”

“어. 어쩔 수 없어. 솔직히 너무 촉박하다고.”

윤 대표의 계획대로 한국에서 2200개의 스크린을 받으려면 아무리 늦어도 6월 초순에는 완성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더 늦어진다면 스크린을 다른 곳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지금 윤 대표가 듣기로는 6월 말에서 7월 초에 트랜스포머가 개봉예정이었고 만약 용이 울음과 시기가 맞물린다면 최소한 700개의 스크린은 그쪽으로 넘어갈 것이다.

중국은 더 심한 상황이었다.

이번 트랜스포머는 중국 자본이 상당히 개입한 상황이었고 중국인 배우가 영화에 출연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중국 배우라.

중국이 얼마나 적극적일지 안 봐도 눈에 선했다.

어쩌면 돈이 더 드는 것보다 일정이 늦어지는 게 더 큰 일이라고 볼 수 있었다.

“하…. 유적 탐색자는 우리보다 촬영도 늦게 끝났잖아.

그런데 어떻게 우리랑 개봉을 맞출 수 있는 거지?

거기도 우리랑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다고 하지 않았나?”

“흥.

그놈들은 지금 급하니까 어중이떠중이 다 대려다 놓고 작업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아마 인력은 우리보다 2배 정도 많을걸.

그러니 속도는 더 나겠지만….”

“퀼리티는 아니다?”

“응. 그렇다고 막퀄은 아니겠지. 그쪽 감독도 생각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우리처럼 초 고퀼은 아닐 거야.

그건 내가 장담하지.”

“하…. 좋아 그건 그렇고.

그래서 김 감독은 어쩌고 싶어?

일정 늦어지면 상영관 받을 때 치명적인 거 김 감독도 잘 알 거고.

7월로 넘어가면 다른 블록 버스 터들도 방영을 시작할 테니 문제가 생길 텐데.

김 감독 생각은 뭐야?”

“맞아. 개봉이 늦어지면 곤란하지.

내 생각에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해.

둘 중 하나에 집중하면 5월 말까지 끝낼 수 있어.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거 작업하면…. 대충 두 번째 것은 7월 초가 될 거야.”

“하. 선택의 여지가 없네.

한국 개봉을 7월까지 늦추는 건 말이 안 되지.

중국 개봉을 7월 이후로 잡아야 한다라…….

하…. 삼화에서 받아주기나 할지 모르겠군.

그때는 아마 삼화에서는 트랜스포머에 올인하고 있을 텐데 말이야.”

“틈새는 있잖아. 어차피 거기도 스크린 쿼터 때문에 60% 이상은 못 넣어.”

“그 스크린 쿼터가 자국 영화 때문에 있는 거지.

거기서 보기에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 영화나 뭐가 다르겠어?”

“뭐… 그렇게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선택은 불가피했고 윤 대표는 한국 개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좋아. 알았어.

그래도 작업 서둘러줘.”

찬진이 예산을 받아내고 룰루랄라 하며 나가는 것을 보고 윤 대표는 깊게 한숨을 몰아쉬었다.

적어도 중국에서 유의미한 관객 수를 기록하고 싶었던 자신의 목표가 생각보다 쉽지 않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찬진에게 다소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무조건 시기를 당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건 찬진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윤 대표 자신의 자존심으로도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후, 민수는 예능 촬영을 위하여 목적지로 출발했다.

어떤 예능을 나가야 할지 선택을 못 하고 있던 민수에게 찬성의 제안은 새로운 대안이 되어 주었다.

게다가 왠지 마음에 빚을 진듯한 찬성에게 은혜도 갚을 수 있었으니 일거양득이었다.

찬성이 PD가 되어 처음으로 제작하게 된 예능 “남자의 생존”은 종합 편성 채널인 GTBC에서 제작되는 파일럿 프로그램이었다.

남자 연예인 3인을 초대해 각자 오지에서 생존하는 모습을 방송하는 이 프로그램은 어떻게 보면 SBC의 정글을 가다 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다만 여행지가 해외가 아닌 국내였고 국내의 오지는 거의 산지이다 보니 정글을 가다 처럼 바다를 끼고 무언가를 찍을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다에서처럼 쉽게 식량을 구할 수 없었고 결국 출연진은 더 고생하게 될 것이 뻔하였다.

드물게 정글을 가다 에서 바다를 끼지 않고 여행을 갔을 때 출연진들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정글을 가다가 고생이 심한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졌지만 만약 남자의 생존이 정식으로 제작된다면 정글을 가다 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극한의 수렵 방송이 될 것이다.

재수가 없으면 정말 아무것도 못 먹고 5일을 보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쨌든, 우리나라였기 때문에 익숙한 동식물과 생태계를 만난다는 것 정도였다.

“독하네, 우리 찬성 형님.

원래 순둥이 같은 분이셨는데 어떻게 이런 기획을 하셨지?

5일 동안 머물면서 식량은 세 끼분만 주고 시작한다라…..

이거 정말 일반인이 살 수 있는 건가?

하긴, 며칠 굶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긴 하지만….”

이건 딱 봐도 스타를 불러서 개고생을 시키겠다는 거였다.

처음 연락을 하면서 미안해하며 부탁하는 찬성의 목소리가 귀에 선했다.

확실히 이런 포맷이니 쉽게 하겠다는 사람이 없을 법도 했다.

하지만 민수의 입장에서 볼 때 차라리 이런 게 나았다.

혼자서 생활하는 것만 찍어도 되니 얼마나 마음이 편한 가.

“뭐…. 나야 그냥 오랜만에 피크닉 왔다고 생각하지 뭐.

그런데 이게 방송이 되기나 할까? 아무리 생각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은데.

게다가 장소가….. 개마고원이라….. 참 오랜 만이네…..”

민수가 고민하는 동안에 차는 무사히 개마고원 입구에 해당하는 평안북도 희천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민수는 자신을 걱정하는 눈으로 바라보는 동원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동원 씨, 걱정하지 마세요.

여기 그냥 제 앞마당이에요.”

민수가 남긴 한마디에 동원의 얼굴은 의아함으로 물들었고, 민수는 그런 동원을 두고 거침없이 촬영장소로 이동했다.

촬영장소에서는 입산 전 인터뷰가 준비되어 있었다.

민수가 알기로는 자신 말고도 두 명이 더 촬영에 임한다고 들었는데 어느 곳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민수가 궁금해서 물었더니 다른 두 명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오지에서 5일이나 머무셔야 하는데요. 준비는 철저하게 해 오셨나요?”

“뭐… 특별히 준비할 건 없었는데요. 물품은 출발할 때 나누어주는 물품 밖에 못 쓴다고 했으니까요.”

그렇게 시시콜콜한 질문들이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작가가 민수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개마고원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계시는가요?”

“아주 잘 알죠. 사실 PD님이 직접 요청하신 게 아니라면 거절했을 거예요.

제가 가봤자 생각하시는 것만큼 재미있는 그림이 안나 올 거 같아서요.

하지만 세 명이나 간다는 말을 듣고 출연을 승낙하게 되었어요.

세 명이나 가니까 저 같은 사람도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겠죠.”

민수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일어났고 민수의 말과 작가의 멍한 표정이 모두 카메라에 선명하게 잡히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떠나는 민수 앞에 등장한 것은 헬기였다.

민수는 헬기에 탑승한 채 날아가며 생각보다 예산을 많이 썼구나 싶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출발한다면 적어도 헬기를 3대나 빌렸을 거고, 각자 출발지에 그 연예인을 위급상황에서 구할 준비까지 마쳐 놓았을 것이다.

그나마 촬영 자체는 VJ 한 명과 같이 하니 그 예산은 많이 들지 않을 거 같았다.

“그나저나 그럼 VJ는 어디서 자는 거야?”

민수가 순간 의문을 가졌지만 뭐 그건 방송국에서 알아서 하겠거니 싶었다.

헬기가 멈추고 헬기가 공중에 뜬 상태에서 끈 사다리가 아래로 내려졌다.

아마 VJ와 민수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게 하려나 보다.

“이거…. 사람에 따라서 처음부터 난관에 부닥칠 수도 있겠군.”

민수는 제법 높은 거리에 떠 있는 헬기에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는 것 조차 사람에 따라 곤욕스러울 수도 있을 거로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준비된 배낭을 메고 사다리를 탔다.

민수와 VJ가 땅에 도착하자 헬기는 다시 출발지를 행해서 날아가기 시작했고 오지에는 민수와 VJ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민수가 땅에 내려와 가장 먼저 한 일은 역시 물품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거였다.

물품을 하나하나 꺼내 확인해 본 민수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침낭…. 이건 당연하겠지. 겨울이 아니라도 이곳은 매우 추운 곳이니까.

삽… 정글도, 단검….. 반합….수통……어? 라이터도 있네.”

역시 생각보다 주어지는 물품이 많았다.

그리고 처음에 주어지는 세끼 분의 식량과 물까지 확인한 민수는 바로 주변부터 확인해 보았다.

주변을 확인한 민수는 생각보다 제작진이 많은 배려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내려진 곳이 생각보다 지내기에 적당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통 사람들은 느끼기 힘들었겠지만 민수는 자신을 관찰하는 눈이 어딘가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느껴지는 시선 쪽으로 눈을 돌려 천천히 살펴보자 얼핏 보면 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벙커를 발견할 수 있었다.

거리는 제법 멀었지만, 위급 시에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거리였다.

‘하긴… 연예인을 덩그러니 던져 놓고 안심할 수야 없겠지.’

그리고 상황을 봤을 때 연예인이 무작정 자리를 옮길 것을 대비해 여러 곳에 은신처를 만들어 놓았을 것 같았다.

아마 VJ도 밤이 되면 그곳으로 자러 가든지 아니면 그곳에 새로운 인원과 교대하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민수는 특별히 자리를 옮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이곳에 자리를 잡기로 한 민수는 우선 삽을 꺼내 침낭을 펴서 묻을 자리를 만들었다.

민수가 바로 땅부터 파기 시작하자 VJ는 민수에게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물었다.

“음…. 이곳은 정말 더럽게 추운 곳이거든요.

아무리 지금이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시기라도 여기선 그냥 겨울일 뿐이에요.

그리고 아무리 여기가 중입 부분이라도 침낭만 덩그러니 놓고 자기에는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요.”

군에서는 개마고원을 크게 초입처, 중입처, 심 처로 구분했다.

사람이 빈번하게 출입하는 초입처와 정말 사나운 맹수인 호랑이나 늑대, 곰이 흔하게 발견되는 심 처를 제외한 중입처는 적호 사단의 병사들이 매년 와서 생존 훈련을 받는 교육장이었다.

매년 겨울에 2주 여름에 2주 정도 받는 이 생존 훈련은 혹시 전쟁이 일어나서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적진에 고립된다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교육받는 중요한 훈련이었다.

그러니까 이곳은 민수가 군에 있을 때 5년 동안 적어도 5개월 이상 살았던 매우 익숙한 곳이란 뜻이었다.

지금 시기가 겨울은 아니어서 괜찮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민수는 최대한 따듯하게 자고 싶었다.

땅을 다 판 민수는 바로 침낭을 안에 묻고 그 위에 여러 가지 나뭇잎들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땅을 파서 나온 흙을 조금 덜어 그 위에 올려 잎사귀를 고정했다.

이 잎사귀와 약간의 흙이 적지 않은 보온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하늘을 보니 시기상 특별히 비가 올 거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랐고, 땅에서도 습기가 올라올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침낭은 비닐 포로 둘러싼 후였다.

혹시 이 비닐 포의 용도가 이슬을 받아 수분을 보충하라는 뜻으로 준 것일 수도 있었지만, 민수에게 이슬은 필요하지 않았다.

땅을 파고 침낭의 자리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생각하기에 따라 그냥 땅 위에 침낭을 덮고 자는 게 낫다고 생각된 정도였다.

하지만 민수가 생각하기에 조금이라도 더 따듯하게 자는 것은 생존 가능성을 올려주는 중요한 사항이었다.

그렇게 비축한 체력으로 식량을 더 수월하게 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5일밖에 지내지 않아 별 의미 없을 수도 있었지만 어쨌든 그랬다.

그렇게 보금자리를 만든 민수는 주변에서 한동안 둘러 보더니 특별한 모양의 풀을 찾아 잔뜩 꺾어 들고 돌아왔다.

민수는 오자마자 그 풀을 짓이겨 침낭이 설치된 곳 주변에 뿌리고 있었다.

“그건 뭔가요?”

“아, 이건 매독 초인데 우리끼리는 똥 풀이라고 불렀죠.

이 풀에서 나는 냄새를 후각이 예민한 야생동물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웬만하면 접근하지 않죠.

이렇게 짓이겨서 향이 퍼져나가게 하고 침낭 주변에 뿌려 놓으면 그럭저럭 안전하다고 할 수 있어요.

이곳이 맹수가 드문 곳이긴 하지만 만에 하나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하니까요.

어느 정도 대비는 항상 필요한거죠.

“네…..”

VJ는 자신이 촬영하면서도 눈앞에 이 배우는 대체 뭔가 싶었다.

움직임이 너무나도 안정되어 있고 불안감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민수는 그냥 이곳에 캠핑 온 사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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