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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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런런 촬영 날이 되고 배우들은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마친 후 촬영 장소로 출발했다.
촬영 장소는 단양에 모여있는 사극 세트장이었는데 이것은 런런런 측에서 자연스럽게 영화를 홍보할 수 있게 배려해 준 것이었다.
민수는 조금 걱정스러웠지만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촬영을 향하고 있었다.
촬영이 시작되기 전에 배우들이 MC들에게 인사를 하기 위하여 먼저 찾아갔고 MC들은 배우들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메인 MC인 석재는 역시 들은 대로 반듯한 사람이었다.
시종일관 겸손한 태도로 배우들의 긴장을 풀어 주려 애썼고 그 모습에 배우들의 표정도 조금씩 밝아 졌다.
민수도 석재의 그런 태도에 진심으로 감사했다.
런런런에는 고정 출연 중인 배우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에 따로 인사를 드리러 갔다.
특히 런런런의 홍일점인 송지현은 배우로서 윤 엔터의 젊은 배우들보다 훨씬 선배였기 때문에 더 깍듯이 인사를 드렸다.
또 다른 배우인 이광진은 태준이랑 수연과 데뷔 시기가 비슷했는데 태준과 이미 안면이 있었다.
광진은 태준이 인사를 하러 오자 역시 영화 때문에 예능에 안 보이던 놈이 예능에 나왔다면서 태준을 놀려댔고, 태준은 이번 영화에는 홍보하러 나가줄 사람이 없어서 자신이 앞장설 수밖에 없었다고 엄살을 떨었다.
광진은 태준의 말에 잠시 동안 영화의 출연진을 생각해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태준의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었다.
촬영이 시작되고 잠깐 MC들이 수다를 떨다가 이제 게스트를 하나씩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첫 소개를 할 때는 촬영 중에 주로 입었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는데 화려하면서도 세련된 수연의 의상은 등장부터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석재는 아직 대중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설아와 소희가 등장할 때는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고 처음에 약속했던 대로 소희에 대하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소희가 연습생으로 있다가 윤 엔터로 옮겨와 연기를 배우고 데뷔를 하게 된 사실을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게 맛깔나면서도 유쾌하게 설명했는데 아마 소희가 직접 설명해도 저렇게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평소에 건실하고 정직하기로 유명한 석재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더 신뢰를 줄 수 있을 테니 소희의 출연 목적은 저것 하나로 다 달성한 셈이었다.
런런런의 유쾌한 출연진들은 여배우가 등장할 때마다 격한 환호성 질러 환영했지만 민수와 태준이 등장할 때는 조금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는데 그런 반응에 조금 억울해하는 태준과 민수의 모습이 다소 익살스럽게 보여서 촬영장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 주었다.
그중 가장 환영을 받은 것은 설아였다.
설아가 촬영할 때 주고 입었던 경장을 입고 나타나자 큰 환호성이 터져 나왔는데 이 옷은 유튜브에 올라와 사람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민수의 연기 영상에 나온 바로 그 옷이었다.
한창 화제가 되었던 그 영상은 출연진들도 모두 본 영상이었고 하얀 옷을 입은 설아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오게 된 것이다.
특히 고정 출연진 중 다소 깐죽거리는 동운은 설아가 나올 때 진짜 이쁘다는 탄성을 여러 번 터트렸는데 진심으로 감탄하는 동운의 모습을 포착한 광진이 이점을 지적하면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껄떡대지 말라고 나무라는 광진과 이쁜 걸 이쁘다고 말도 못 하냐고 따지는 동운의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또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배우들이 모두 등장하자 같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석재는 영화도 홍보할 겸 설아와 민수에게 화제가 된 대련 장면을 조금 보여 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요청했는데 그 말을 들은 설아는 난색을 보이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음. 비슷하게 하라면 할 순 있겠지만 그대로 재현하라면 그렇게 못할 거예요.”
당연히 가능하다고 하며 반겨 줄 거라 생각했던 석재는 설아의 대답이 예상외라 조금 당황했지만, 뒤에 이어지는 설아의 말을 듣고 진심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그게 합을 짜고 한 게 아니었거든요.
전 그냥 마음껏 민수 씨를 공격한 거고 거기에 맞춰서 민수 씨가 알아서 움직인 거라서요.
제가 그때 했던 걸 그대로 할 수가 없으니 그대로 재현하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고밖에…”
놀라서 웅성거리는 출연진과 제작진들의 반응이 그대로 녹화되고 있었고 석재는 놀라면서도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았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좋은 볼거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비슷하게라도 한번 보여 달라는 석재의 요청에 설아의 눈은 자연스럽게 민수를 향했다.
민수는 별로 어려울 것 없다는 생각에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의 뜻을 내비쳤고 민수의 의사까지 확인한 설아는 그제야 알겠다고 말하며 민수와 함께 석재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살짝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민수와 설아는 눈으로 서로가 준비되었음을 확인한 후 바로 동작에 들어갔다.
목검을 휘둘러 들어가는 설아와 그것을 피하는 민수의 날렵한 몸놀림에 제작진들도 절로 탄성을 터트렸고 잠시 후 설아와 민수가 동작을 멈추자 출연진들은 말도 안 된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건 사기야. 저게 말이 돼? 저거 분명 짜고 하는 거야!”
특히 배우인 광진은 더욱 광분하고 있었는데 합도 안 짜고 저렇게 하는 건 불가능 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와. 이 사람들 안 되겠구만.
영화를 홍보하러 나왔다더니 사기를 치러왔어!
내가 만약 저게 진짜면 오늘 출연료 반납한다.
진짜면 출연료 걸고 한판 해!”
그런 광진의 흥분된 모습을 보며 피식하고 웃던 태준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겨우 그거 가지고 되겠어?
내 출연료 걸고, 남은 배우들 출연료 4개 추가로.
그쪽은 5주분의 출연료를 걸어.
쫄리며 뒈지시던지.”
태준이 사뭇 진지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바람에 갑자기 콩트처럼 되어 버린 상황에서 광진은 흔쾌히 태준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석재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중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분위기를 띄웠고 이제 내기의 결과를 확인하는 일만 남았다.
내기의 결과 확인은 광진이 직접 하게 되었다.
광진이 공격하고 민수가 피하고.
마치 설아와 민수가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기로 정하고 두 사람이 마주 섰다.
광진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진짜 맞아도 책임 못 진다고 큰소리를 쳤고 평소에 웃기는 이미지인 그가 그렇게 진지하게 이야기하자 분위기 역시 점점 더 진중해졌다.
잠시 후 큰 기합과 함께 광진은 설아처럼 달려들어 민수를 공격했고 민수는 간신히 그의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민수의 입장에서는 액션이 준비된 설아에 비해서 액션 연기에는 서툰 광진의 동작을 파악하는 것이 더 힘들었기 때문에 더욱 집중해야 했지만 그래도 피하는 것에만 신경 쓰면 되는 상황이라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모두 피해낼 수 있었다.
한참을 공격했는데 민수가 모두 피해내자 광진은 숨을 몰아쉬면서 주저앉아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민수를 쳐다보았다.
“이게….. 대체……”
광진은 쓰러져서 숨을 헐떡이고 있었고 그 모습을 본 출연진은 일제히 광진에게 다가가서 그를 조롱하고 놀려댔다.
특히 망연자실한 광진의 표정과 그런 광진을 거만하게 내려다보는 태준의 표정이 대비되면서 또 하나의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제작진은 그 장면을 찍으면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오늘 촬영은 볼 것도 없이 대박이었다.
광진과의 콩트를 시작으로 이제 태준도 마음이 조금 편해진 듯 보였다.
팀을 정하는 과정에서 석재가 설아와 민수를 한편으로 정하려고 하자 과감히 나서서 팀 편성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저렇게 먹으면 안 돼요.
너무 불공평합니다.
윤 엔터 소속 배우 중 피지컬 넘버원이 민수 씨고 넘버 투가 윤설아 씨에요.
저 둘은 반드시 갈라놔야 해요.”
태준이 딴지를 걸자 석재는 어이가 없어서 태준에게 되물었다.
“아니, 태준 씨.
그래도 태준 씨는 남자인데 여동생인 설아 씨를 못 당한다는 건가요?
태준 씨의 수많은 여성 팬들이 보고 있어요.
신중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자존심을 자극하는 설재의 말에도 태준의 태도는 단호했다.
“안돼요.
액션 스쿨에 다니기 전에도 벅찼는데 몇 달 동안 수련하면서 한계를 넘어섰어요.
제가 장담하는데 이 멤버 중에서 김국종 씨 빼고는 다 설아한테 집니다.
나중에 지고 나서 항의해 봤자 이미 늦은 거죠.
그러니 신중하게 생각하세요.
저 가녀린 외모에 속으면 안 돼요.
안에는 괴수가 있단 말입니다.”
태준의 말을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설아는 안에 괴수가 있다고 외치는 태준에 말에 발끈하더니 달려들어서 태준을 가볍게 제압했다.
그 모습을 본 런런런 식구들은 폭소를 터트리면서 태준을 비웃었다.
“이 친구 뭐야, 완전 허당이구만.”
“한류 스타가 여동생에게 맞고 끌려가다니. 나 원 창피해서!”
“런런런이 아시아 곳곳에서 방영되고 있는 건 잘 아시죠? 이거 윤태준 씨 팬들이 보고 실망하지나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석재까지 끼어들어 태준을 무시하면서 다들 즐겁게 웃었지만 소희와 수연은 같이 웃을 수 없었다.
저들은 지금 설아에게 제압당하는 태준을 보며 둘이 콩트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저 모습이 100% 리얼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평소 설아와 같이 운동하는 소희와 수연은 태준이 말이 사실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태준의 도발을 받아들여 이례적으로 배우팀과 런런런으로 팀을 나누고 게임이 시작되었다.
인원이 맞지 않는다는 수연의 말에 런런런 멤버들은 비열하게 웃으며 가장 약체인 왕코 형님을 던져 주었다.
승리를 낙관하는 런런런 멤버들을 보며 태준은 나중에 여자한테 맞고 후회하지 말라고 경고했지만, 그들은 귓등으로 흘려들을 뿐이었다.
오늘의 메인 테마는 숨바꼭질 이름표 떼기 레이스였고 발에 방울을 단 술래 팀이 숨은 상대 팀을 잡아 이름표를 떼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서로 한 번씩 숨어서 더 오래 버티는 팀이 이기는 거였는데 숨는 팀은 자신의 위치가 발각되면 도주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도주할 수 있는 범위가 점점 줄어들기 때문에 결국에는 잡힐 수밖에 없었다.
게임이 시작되고 선공은 배우 팀이었다.
배우 팀이 각자 발에 방울을 달고 런런런 멤버들을 찾아 나서게 된 것이다.
태준과 설아가 한 팀으로 움직이고 민수와 수연, 그리고 왕코 형님과 소희가 각각 팀으로 움직이기로 했다.
태준은 자신이 먼저 나서서 설아와 같이 가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설아에게 제압당할 멤버들을 비웃기 위해서였다.
특히 가장 크게 자신을 무시했던 동운과 광진은 반드시 설아가 처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와, 이렇게 인성이 나오는 건가.
원래 성격대로 가기로 하긴 했지만 이렇게 인성을 부릴 줄이야.”
수연도 날뛰는 태준을 보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하지만 태준이 조금 망가져준 덕분에 상황이 재미있게 흘러가는 건 맞았으니 딱히 말릴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임이 시작되고 태준과 설아는 물 만난 고기처럼 런런런 멤버들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리고 숨어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발견되고 설아와 마주친 남자들의 입에서는 한결같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와~ 얘 뭐야?”
런런런에는 수많은 연예인이 출연했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머릿속에는 어떤 기준이 있었다.
설아의 수준을 운동 잘하는 아이돌 수준으로 측정했던 멤버들은 여자 운동선수급의 완력과 민첩성을 가진 설아를 당해내지 못하고 결국 비참하게 나뒹굴었다.
그리고 옆에 있던 태준에게 조롱을 당하고 굴욕을 당하는 것은 덤이었다.
태준은 자신의 아까운 연기력을 상대에게 굴욕을 안기는 데 마음껏 사용했는데 자신이 연기했던 모든 배역의 대사를 이용해서 탈락한 상대를 조롱하고 있었다.
민수도 그런 태준의 모습을 보면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아마 이 장면을 보게 될 시청자들도 민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빠르게 멤버들을 탈락시킨 배우 팀은 마지막 남은 국종을 상대할 때는 정석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국종 선배를 상대는 데 우리가 힘쓸 필요는 없지.”
태준은 국종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후 여성 3인방으로 국종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
여자에게 약한 국종은 미모의 여배우가 셋이나 자신에게 달려들자 어쩔 줄 몰라 하며 힘을 쓰지 못했고, 밀착하는 여성들을 뿌리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히며 도망치다가 결국 설아에게 이름표를 뜯기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태준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고 VJ는 그런 태준을 집요하게 찍어 대고 있었다.
민수는 나중에 티브이로 볼 때 이 장면이 어떻게 나갈지 자못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