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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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충동적으로 다녀온 낚시 여행이었지만 태준과 민수에게는 제법 뜻깊은 시간이었다.
한창 연기에 재미가 붙은 민수에게 진성의 말은 다소 먼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 자체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작품을 마친 후 여유시간을 잘 보내지 못하면 지치게 된다는 이야기는 지금의 민수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낚시하러 다녀온 후 민수는 요리에 조금씩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재미있게도 민수가 요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바로 그때 갔던 낚시 여행이었다.
그날 대물이 여러 마리 잡혔음에도 불구하고 회를 전혀 맛보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회를 뜰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였다.
은근히 바닷가에서 먹는 회를 기대했던 민수에게는 엄청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진정한 낚시인이라고 하시던 진성 선생님은 낚시만 잘하시지 회를 한 번도 떠보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특히 살아 있는 생선을 죽이고 해체하는 작업은 끔찍하다고 고개를 저으셨다.
민수와 태준도 회를 뜨는 것은 상상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으니 결국 그 생선들은 그대로 진성 선생님의 손에 들려서 선생님의 집으로 옮겨졌다.
훗날 듣기로 그 생선은 결국 친구분들과의 모임에서 맛있는 매운탕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처음에 선생님이 끌어 올린 대물에 대한 이야기와 물고기를 도망가게 만든 민수의 비범함(?)이 좋은 안줏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눈앞에서 싱싱한 회를 놓친 민수는 자신의 자취경력이 무려 30년임에도 불구하고 손도 써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약간의 회의를 느꼈다.
그
리고서 요리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자신이 요리를 배워 직접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식사 한 끼를 직접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괜찮은 일 같았다.
지금 아지트로 사용되고 있는 그 방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간단한 안줏거리를 만들어 같이 즐길 수 있다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취미생활이었으니 지금 민수가 하기에도 매우 적절했다.
하지만 무늬만 자취 인생 30년을 보낸 민수는 요리에 대해서 생각보다 더 무지했다.
그래서 막상 시작하려고 해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혼자서 끙끙대던 민수는 결국 윤 엔터의 주방을 책임지고 계신 김 여사님께 도움을 청하게 되었고, 어차피 점심시간 이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었던 김 여사님도 흔쾌히 민수를 돕기로 하였다.
민수가 주방에 들락거리기 시작하자 배우들도 민수의 행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민수의 행동에 신경 쓰고 있는 사람은 역시 설아였는데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보이는 민수를 보며 왜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방에서 연습하는 민수를 보며 설아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태준은 슬쩍 설아에게 일부러 다가와 조금 안쓰럽다는 듯이 민수를 쳐다보았다.
“하, 우리 정 배우.
정 배우가 아는 거지.
설아한테는 밥 한 끼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말이야.
벌써 자생을 위해 준비하는구나.
역시 정 배우야.
아주 철저해.”
혀를 차며 민수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태준의 행동에 발끈한 설아는 잠시 씩씩거렸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말은 찾을 수는 없었다.
태준의 말대로 부엌에서의 자신은 전력 외에 잉여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손을 대는 족족 모든 요리를 망쳐버리는 파괴력에 민 여사조차 설아를 포기한 지 오래였다.
“남자들이 여자가 해준 음식이나 도시락에 약간의 로망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만 그것도 상대 나름이지.
솔직히 어머니도 사실 요리하고 별로 안 친한 분이신데 그 어머니조차 완전히 포기한 사람이 너잖아.
우리 정 배우가 또 그건 어떻게 알고 저렇게…..
역시 멋져. 우리 정 배우.”
사실 민 여사도 요리에는 별다른 재능이 없었다.
그냥 겨우 사람이 먹을 만한 것을 만들어 낼 뿐이었다.
그런데 설아는 그것조차 못하는 무능력자였고 그렇다 보니 태준이 장난스럽게 하는 말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태준의 빈정거림에 여성으로서 자존심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 설아는 기운이 쭉 빠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설아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 손은 고쳐 쓰는 게 아니란 것을 말이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괜찮은 요리를 만들 수 없을 것이다.
오빠의 말이 정말일까? 진짜 그런 거면 어떡하지? 그럼 난 부족한 요리 솜씨를 뭐로 보충해야 할까? 설마 요리 잘하는 여자가 민수 오빠의 로망인가?
설아의 고민이 점점 길어졌고 태준은 그런 설아를 뒤로한 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자기 갈 길을 떠나고 있었다.
설아가 민수를 보며 골똘히 생각하는 동안에도 민수의 칼질 소리가 주방을 울리고 있었다.
민수는 생각보다 요리에 재능이 있었다.
칼질은 몇 번 해본 끝에 바로 익숙해졌고 그 밖에 소소한 것들도 금방 능숙하게 척척 해내서 김 여사를 놀라게 했다.
만약 이대로 계속 배운다면 머지않아 제대로 된 요리도 뚝딱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윤 엔터 홍보팀은 젊은 배우들을 모두 호출했다.
호출을 받고 올라와 배우들이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홍보팀장 이미영은 웃으면서 자신이 배우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본론만 말할게요.
여러분들은 영화 홍보를 위해서 예능에 나가야 해요.
단체로 1개 그리고 개인적으로 1개.
단체로 나가는 것은 SBC의 런런런으로 결정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나가는 건 개인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대신, 가능하면 빨리 결정을 내려 주셨으면 좋겠군요.
여기 배우님들을 섭외한 프로그램 리스트예요.
읽어 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해 주세요.
아, 그리고 설아 씨랑 소희 씨 같은 경우에는 아직 개인적으로 요청이 들어온 곳은 없어요.
그래서 우선은 그냥 지켜보다가 영화가 개봉되어 관심이 높아지면 그때 출연하는 것으로 할게요.
아니면 다른 배우랑 같이 나가는 쪽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건 배우들의 개인 출연이 결정된 이후에 이야기해 보죠.
그러니 다음 주에 런런런 나가는 것만 알고 계시고, 혹시 이견 있으시면 그전에 알려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윤 엔터는 지금까지 홍보 전략에 너무 무관심하며 지내왔어요.
홍보팀은 저번에 민수 씨 사건도 결국 민수 씨를 너무 대중에게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커졌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최소한의 예능 출연은 감수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는 대표님께 허락을 받을 일이니 가능하면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아니다 싶은 것은 배우 쪽에서 거절해도 무방합니다.
다만 거절에는 확실한 이유가 필요합니다.
저희가 추천하는 건 그야말로 최소한이라는 것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영의 말이 끝나자 배우들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저번에 예능에 출연했을 때 수연은 어느 정도 선전했지만 태준과 민수가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하고 마음고생만 했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민수는 마뜩잖은 기분이었지만 우리 윤 엔터도 지금처럼 이래서는 안 되고 홍보에 더 신경을 써야 하며 배우들도 예능과 많이 친해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미영의 말에도 어느 정도는 동의했기에 별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다만 다시 예능에 나갈 생각에 정신이 조금 아득해질 뿐이었다.
태준도 같은 생각인지 조금 심각한 분위기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다섯 명의 배우들은 그 즉시 민수의 방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바로 이번 출연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흠… 런런런 이면 그거죠?
이것저것 놀다가 마지막에 이름표 뜯는 그 프로그램이요.”
“그렇지.
그래도 홍보팀이 생각을 많이 했네.
유석재 선배님이면 그래도 예능 초보들이 나가서 기죽지 않고 잘할 수 있게 해주실 테니 말이야.”
“그래.
게다가 스튜디오에서만 촬영했던 저번 예능과는 달리 야외에서 촬영하는 거고 이런저런 게임도 할 테니 저번처럼 그렇게 굳어 있지 않아도 될 테고.”
“대형기회사에서는 연습생들 가르칠 때 예능에 대한 것도 지도해 준다던데 소희는 혹시 따로 그런 거 배운 적 있어?”
“아…. 그건 데뷔 조 애들만 그래요.
전 데뷔 조는 아니었거든요. 그리고 솔직히 RD에 있을 때는 연습을 따라가기도 바빠서 그런 거 생각할 여유도 없었으니까요.
“음…. 생각해 봐도 별다르게 대책을 세울만한 것도 없긴 하네.
무슨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MC들의 요구를 충실히 따르는 것 정도밖에는…..”
그나마 태준의 말대로 MC인 유석재 선배는 출연자들을 배려해주는 분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빼지 않고 시키는 대로 잘한다면 큰 문제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민수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수연이 별생각 없이 이야기를 건넸다.
“그냥 평소에 하던 대로 해.
저번에도 보니까 딱히 뭘 하려고 조바심 내니까 더 망하는 거 같더라.
흐르는 데로 몸을 맡기고 시키는 거 잘하고, 그러면 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한테 많은 거 바라지 않을 테니까 부담 가지지 마.”
그 말에 느끼는 바가 있었던 태준은 저번 촬영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때 수연은 정말 별생각 없어 보였다.
그냥 MC들이 떠드는 걸 들으며 같이 웃다가 그들이 물어보는 자신의 근황을 별생각 없이 그냥 솔직하게 이야기한 것이 다였다.
“음…. 그런가?
역시 이수연처럼 아무 생각 없이 말하는 게 해답이란 말인가….”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디스를 하는 것인지 모를 태준의 중얼거림에 수연은 팍하고 인상을 구겼고, 설아는 슬쩍 수연에게 다가가더니 수연의 구겨진 인상을 손으로 펴고 있었다.
“언니 안돼요. 인상 쓰면 주름져요.
항상 웃어야 해요. 그래야 얼굴에 주름이 안 가죠.”
그런 일련의 행동들을 바라보던 민수는 그냥 왠지 저대로만 해도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다만 요즘 들어 더욱 사이가 부드러워진 태준과 수연이 평소대로 행동하다가 사람들에게 바보 콤비로 취급받을까 봐 그게 걱정되었다.
“그래도 배우잖아. 적어도 이미지는 좀 신경 쓰자.”
민수가 작게 중얼거렸지만 민수의 생각대로 그들이 이미지를 챙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차라리 그냥 있는 대로 보여줘서 친근한 이미지를 얻는 걸 목표로 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조금 걱정되는 것이 있었는데 소희가 RD의 연습생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연습생을 하다가 소속사를 옮기는 일은 빈번한 일이었지만 아이돌 연습생을 하다가 다른 소속사의 배우가 되는 건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소희가 대중들에게 처음 얼굴을 알리게 되는 만큼 나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으니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에서 잘 마무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금은 RD에서 소희에 대하여 관심이 없지만 소희의 연기를 보면 그들이 다른 마음을 먹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윤 엔터하고 RD가 별로 좋은 사이가 아니었으니 더 신경을 써야 했다.
민수가 생각하는 것을 홍보팀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이번 기회에 그 문제에 대하여 대중들이 오해하지 않게 잘 알리자는 것이 홍보팀이 계획이었다.
미리 공개하고 공감대를 얻어 훗날 있을 잡음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이것이 이번 소희 출연의 최우선 목표였다.
윤 엔터 홍보팀은 런런런 제작진 측에 사정을 설명하고 시간을 할애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런런런 측에서는 유석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그 부분을 설명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했고, 윤 엔터는 그 배려를 감사히 받아들였다.
어쨌든 배우들은 마음 편하게 다녀오기로 했다.
딱히 특별히 이미지를 관리할 생각도 없었고 그냥 출연하는 것 자체로 영화홍보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저번에 출연했던 것처럼 딱딱하게 행동하지만 않는다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