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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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은 마무리되었지만 아직 영화가 완성되고 상영할 때까지 남아있는 작업은 많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편집 작업과 CG 작업이 남아있었다.
찬진은 자신의 사무실을 찾아온 강철이 내민 예산명세를 확인하고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강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말 이걸 다 쓰라고?”
“원래 그렇게 예산이 잡힌 거잖아.
왜 그렇게 놀라?”
“아니 아니, 잠깐만 배우들 개런티는? 그건 안 빼?”
“허, 이놈 보게…. 계약서 보지도 않았어?
배우들 개런티는 100% 러닝 개런티로 대체하기로 했잖아.
그럼 당연히 촬영 마치고 남은 돈은 다 CG로 들어가는 거지.
장사 하루 이틀 해?”
“아니, 제작비가 남았는데 투자자가…. 아, 투자자가 아리 씨였지.
와 이런 악덕 사장 같으니, 마누라 돈 끌어다가 영화를 만들고, 그러면서 그 배우들을 노 개런티로 썼단 말이야?
생각해보니 이거 완전…..”
헛소리를 내뱉은 찬진을 보며 강철은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마지막 편집이나 잘하라고 말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찬진은 강철이 남겨놓은 예산 계획서를 다시 한번 확인하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어떤 결심을 했는지 이를 갈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래, X발 윤강철 나중에 놀라지나 마라.
내가 이 돈 다 써버릴 테니까.
야. 지금 거기 놀고 있는 애들 몇 명이야?
그래.
할리우드에 땜빵 들어간 애들 빼고 어.
비싸.. 그래 네놈들 비싼 건 내가 더 잘 알지.
인맥 세일 안 하는 것도 잘 알고.
그래.
제 돈 다 주고 한다니까.
야 이 미친놈아! 알았다고! 예산이 얼추 100억 넘으니까 걱정은 접어 넣어.
사기 치는 거 아니라고.
내 영화가 아니라 윤강철 영화라니까.
넌 연예 뉴스도 안 보고 사냐?
메인은 찰리가 할 거야.
그래. 알았으니 애들 다 데리고 와.
끊는다, 빨리 와 급하니까.
할 일이 태산이야.”
전화를 끊은 찬진은 다시 한번 촬영본을 살펴보며 웃음 지었다.
“이 자식, 이거 주면서도 설마 진짜 다 쓸 거라고는 생각 못 하겠지, 킥킥
굶주린 감독이 얼마나 독한 존재인지 한번 깨달아 봐라.”
찬진은 이번 기회에 자신이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기로 했다.
돈은 어차피 강철이 줄 테니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영화를 맡겨 놓은 강철은 이제 배급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확정된 것은 대진 시네마에서 600개 그리고 찬진의 장인어른이 운영하는 울트라박스에서 600개 정도였다.
스크린 독과점 금지법 때문에 한 곳에서 한 영화에 스크린을 60%까지밖에 배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 곳에서 얻을 수 있는 스크린은 다 얻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국에서 5000개의 스크린 중에 1200개면 나쁘지 않은 숫자이긴 했다.
하지만 조금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고 비슷한 시기에 “유적 탐색자”가 개봉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MJ에서는 아마 “유적 탐색자”에 60%의 스크린을 배정할 것이고 그러면 1200개는 확보한 상황에서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대진이나 울트라박스에서도 최소한 200개 이상씩은 내어 줄 것이 분명했다.
다른 말로는 MJ에서도 결국 800개의 스크린에서는 다른 영화를 틀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들이 그 자리에 “용의 울음”을 원할지는 알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강철은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아마… 원하지 않겠지.
단순한 협력관계가 아니라 진룡을 등에 업고 중국에 영화관을 만들고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강철의 걱정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대략 500개의 스크린을 가진 백두 시네마와 프라임이 “용의 울음”에 300개의 스크린을 배정하겠다고 찬진을 통해 전달해 온 것이었다.
그들은 결국 “유적 탐색자” 보다 “용의 울음”의 손을 더 들어 준 것이다.
이변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어디라고?”
“MJ라네요. 스크린 400개 넣고 싶다고 하는데요 어쩔까요?”
윤 대표는 스크린 400개를 배정해 주겠다는 MJ 측의 요청을 듣고 그들의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이거야….원.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군.”
“대표님, 그럼 거절할까요?”
“아니, 거절하면 안 되지.
어차피 자기네들이 우리 영화 틀어주겠다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잖아.
괜히 사소한 일로 MJ하고 신경전 벌일 필요도 없고.
우선 허락의 뜻을 전한 윤 대표는 자신의 옆에서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민 여사에게 이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았다.
“지금 상황을 보니까 우리 영화랑 진룡이 만든 영화가 거의 동시에 개봉될 거 같네요.
스크린도 우리가 2200개고, 아마 그쪽도 최소한 그 정도는 가지고 시작하겠죠?
400개라…. 대충 MJ가 가진 스크린 수에 20% 정도 네요. 흠…..
대충 생각나는 건 두 가지 정도인데, 진룡과 MJ의 결속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거나 아니면 진룡쪽에서 우리 영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민 여사의 말을 들은 윤 대표는 머리를 천천히 흔들면서 그건 아닐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럴 리는 없을 거야.
지금 MJ의 중국진출 사업을 생각하면 진룡에게 손을 내밀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그리고 우리한테 경고까지 날렸던 진룡이 우리 영화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그건 말이 안 되지.
400개라……흠….”
“우리가 만든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을 생각해보면 MJ에서 완전히 우리를 배제한다는 판단은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바로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게 될 테니까요.
요즘에 사람들이 그런 일에 민감하잖아요?
특히 MJ는 지금 상영관의 40%를 혼자 독식하고 있어서 더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단순히 체면치레라고 생각하기에는 400개의 스크린은 너무 많긴 하네요.
혹시 우리 영화랑 진룡의 영화랑 스크린 수를 맞추려고 한 건 아닐까요?
MJ에 400개를 합치면 우리가 2200개라고 했죠?”
민 여사의 예상에 윤 대표는 혹시나 해서 여러 배급사에 연락을 넣어서 “유적 탐색자”의 스크린 수를 정확하게 알아보았다.
민 여사의 예상대로 2200개였다.
맥이 탁하고 풀린 윤 대표는 그냥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조건으로 싸워보자는 듯한 진룡의 태도에 조금 기가 막히기도 했다.
“이해가 안 가는데…..
그쪽에서 만들 영화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 대충 뻔한데, 같은 수의 스크린으로 시작하자고?
우리의 스크린 수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하여 압박을 해도 모자랄 판에.
같은 수로 시작해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진룡에 바보들만 모여있는 게 아닌 다음에야 그런 판단을 할 리가 없는데….”
“음… 이게 상관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요즘 진시첸 사장이 중국에 계속 머물고 있어요.
판타즘 대규모 중국 콘서트 때문인데, 중국 쪽 가수들이랑 협의하는 과정에서 조금 마찰이 있는 바람에 한국 쪽 일은 다른 임원이 처리하고 있다고 해요.”
“중국 가수들은 진룡에서 대부분 잡고 있는 거 아니었어? 마찰이라니?”
“올해부터 중국 내 음반 시장이랑, 가수들 매니지먼트를 진룡의 둘째가 맡아서 담당하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하, 무슨 형제의 난이야?
그러니까 둘째가 셋째인 진시첸을 물고 늘어지고 있는 거로군 지금.
아니 그래도 그렇지…..”
“어쨌거나 뚜껑은 열어봐야 아니까 너무 낙관하는 것은 금물일 거예요.
윤 대표님, 스크린 수가 같다고 방심하거나 그러진 않으시겠죠?”
민 여사가 슬쩍 이야기하자 윤 대표는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큰놈이 작은놈 사냥할 때나 방심하는 거지, 우리 같은 피라미는 끝까지 두 눈 똑바로 뜨고 조심해야지.”
윤 대표의 얼굴에서 단호함이 느껴지자 민 여사도 비로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어쨌든 쉽게 스크린을 확보한 윤 대표도 한시름 놓았다는 듯 가슴을 쭉 폈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에겐 잘된 일이지.
사실 스크린 2000개를 받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이제 찬진이 놈이 후반 작업을 잘해 주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군.
맨날 예술 영화만 찍다가 상업 영화를 찍은 게 오랜만인데…. 이놈이 얼마나 잘해 줄지.”
윤 대표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로 찬진이 완성된 영화를 가지고 자신을 찾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촬영이 완전히 끝난 배우들은 당분간 휴식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설아는 수연, 소희를 데리고 그간 쉬었던 운동을 재개했다.
자신을 좀 더 쉬게 해 달라고 투덜대는 수연에게 설아는 강하고 묵직한 팩트 공격을 연속해서 퍼부었다.
“언니, 언니도 이제 어리지 않아요.
거울로 보이는 나이가 언니의 나이가 아니라고요.
이 십 대도 꺾인 게 한참이고 이제 내일 모래면 서른이에요.
그러니 준비, 준비해야 한다고요!”
“야! 여배우들은 삼십 대가 돼야 진정한 깊이가 나오는 거든!”
“그래요. 그러니까 준비를 해야죠.
농후한 깊이가 나오는 삼 십 대에 최전성기를 누리려면 그만큼 체력이 필요하니까요.
언니는 선천적으로 몸이 유연하지 못한데 그래서는 안 돼요.
몸이 유연하지 못하면 빨리 늙는단 말이에요.
그러니 빨리 무브무브!
당장 움직여야 해요!”
수연은 결국 설아에게 끌려가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몸이 너무 힘들다는 요구에 맞춰서 근력운동보다는 유연성에 집중된 필라테스와 요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덜 힘들다는 말에 혹했던 수연은 온몸이 비명을 지르자 차라리 자신을 죽이라고 설아를 노려보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아는 전혀 물러나지 않았다.
“그냥…. 언니랑 오래오래 활동하고 싶고, 오래오래 같이 지내고 싶어서 그런 건데….. 안돼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설아가 저렇게 말하자 수연도 할 말을 잃고 그때부터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다.
“와…. 설아 씨한테 저런 면이….”
“아이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법이지.
예전에 순진하던 설아가 아니야.”
“아니 그런데 헬스뿐만 아니라 필라테스랑 요가까지 정통하고 있는 거였어?”
“아 정 배우랑 할 때는 저거까지는 안 했나 보네.
정 배우의 운동능력이 너무 월등하다 보니 거기에 혹해서 그랬나?
그래도 여자애잖아.
애당초 몸매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었어.
그러니 헬스보다 필라테스랑 요가가 주 종목이라 볼 수 있지.”
“대단하네 진짜….”
소희는 수연과 다르게 군말 없이 설아를 따르는 편이었다.
RD에서 다소 불규칙적으로 생활하고 편중된 방향으로만 운동하다가 이곳에서 설아와 체계적으로 운동하는 한편, 설아가 시키는 대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다 보니 하루가 다르게 볼륨과 맵시가 살아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에 와서 잠시 운동을 하는 사이에 좋아진 라인은 이번 영화를 찍을 때도 한몫을 단단히 했으니 소희로서는 확실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만 했다.
게다가 운동과는 담을 쌓은 수연과는 다르게 기본적으로 체력이 괜찮은 편이었으니 힘들긴 해도 이를 악물면 수연처럼 비명을 지를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자신보다 한 살 어리지만, 언니라고 부르고 싶을 정도로 가슴 떨리는 설아의 아름다운 라인은 소희로써도 매우 탐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언감생심이었는데 왠지 설아가 시키는 대로 하다 보니 조금씩 좋아지는 게, 이제는 어쩌면? 이렇게 되어 버리니 점점 욕심이 생겨나고 있었다.
설아는 소희가 딱 붙는 운동복을 입은 자신의 몸매를 살펴보면서 종종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소희가 자신처럼 되는 데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원래 0 에서 90%까지 가는 데 1년이 걸린다면 90%에서 100%까지 되는 데는 그보다 몇 배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이다.
물론 소희가 지금처럼 자신의 말을 잘 따른다면 시간이 걸릴 뿐 불가능은 아니었다.
그래도 선천적인 요소인 가슴만은 어쩔 수 없겠지만 말이다.
민수는 조금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여성들이 운동하는 모습을 간간이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 최고 수혜자는 수연이었다.
원체 운동과는 거리가 먼 몸이다 보니 성과가 금방 눈으로 드러났다.
처음 소속사로 넘어와 영화 촬영 전까지 계속 해왔던 헬스로 어느 정도 기초를 잡았고, 이번에 필라테스로 곡선이 더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수연은 조금 작은 키에 비해 비율은 아주 좋은 편이었고, 생각보다 숨은 살이 좀 있었다.
그런데 그 숨은 살들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점점 맵시가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야….. 진짜, 수연 선배는 설아를 업고 다녀야겠네.
세상에 저런 선생님께 배우려면 대체 얼마를 줘야 하는 거야?”
비록 자신이 원한 바는 아니었지만, 수연의 미모가 더 살아나고 있었다.
전부 설아의 공이었고, 민수와 태준이 해준 것은 지나다니며 휘파람으로 수연을 응원해 준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