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26화 (126/325)

#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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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은 마지막 기운을 쥐어짜며 족장에게 달려들었다.

거대한 도끼 창이 사방으로 휘둘러지고 진은 창을 피해 이리저리 분주하게 움직여 댔다.

그리고 족장의 도끼 창이 진의 몸을 스쳐 떨어졌고 기회를 포착해 몸을 날린 진은 도끼날을 사이로 달려들다가 족장이 휘두른 발에 맞고 저 멀리까지 굴러갔다.

진이 저쪽 구속에서 피를 토하고 다시 일어서자 족장은 즐거운 듯 웃으며 진을 바라보았다.

“네놈이 상대의 빈틈을 그렇게 잘 파고들더구나. 하지만 그 방식은 우리 전사를 상대로 충분히 써먹지 않았느냐.”

족장에 조롱에 이를 갈며 진은 다시 족장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한참을 싸우고 지쳐 갈 때쯤.

족장은 다시 창을 강하게 휘둘렀고 진은 그 창의 옆면을 검으로 빗겨냈다.

그리고 도끼날이 중심을 잃고 옆으로 휘둘러져 땅을 찍자 그 틈을 타 진이 창 자루를 타고 뛰어올라 족장을 넘어 그의 뒤를 점하였다.

그리고 족장의 몸통으로 파고들어 결국 그의 가슴에 칼날을 박아 넣었다.

이런 동작이 한 수에 다 이루어졌고, 민수의 그림 같은 움직임에 찬진은 순간 말을 잃고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하하…. 미치겠네! 진짜.”

태준도 민수의 모습에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냥 웃기만 했고, 어이가 없는 건 다른 배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족장을 제거하는 데 성공한 진은 남은 힘을 다 모아 일갈을 내질렀다.

“족장이 죽었다! 너희는 패배했다! 제국이 승리했다!”

진의 외침을 들은 관문 방어군과 암월단은 죽을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댔고 공격하던 야만족 전사들은 순간 기세를 잃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그들이 복수하러 달려들지도 그렇다고 도망가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그들의 생각을 결정해 주겠다는 듯 멀리서 나팔소리가 들려왔다.

“부~~~웅~”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자 적들의 동요는 더 거세졌고 방어군은 신이나 소리를 질러댔다.

“지원군이다! 관문을 지켰다!”

병사들이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자 야만족 전사들은 빠르게 관문에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하하!”

진은 몸을 겨우 가누며 관문 위에서 도망가는 야만족 전사의 뒤를 바라보았다.

거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고 관문에 문이 열리더니 수천은 넘어 보이는 기병이 야만족 진영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중앙군 기병대였다.

“흐흐흐, 황태자 나리가…. 그래도 약속은 지켰군, 그래…..”

관문의 안전이 확인되자 진은 몸을 지탱하던 검을 내던지고 그대로 벌렁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살아남은 암월단들도 일부는 발을 끌고 어떤 이는 기어서 진 쪽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모여들어 진 근처에 누워 하늘을 보고 있었다.

이곳에 온 동료들이 대충 천명이었지만 지금 남은 자는 이백 명 남짓이었다.

그마저도 심한 부상자가 너무 많아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속하게도 하늘은 너무나도 맑았다.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진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원수의 아들로…. 역적의 아들로…. 그렇게 태어났지만 말이야…..

갈 때는 이렇게 영웅으로 이름을 남겼으니…. 나쁘지 않은 삶이었어…..”

스스로 나쁘지 않은 삶이었다고 평가하며 자조하던 진의 표정이 조금씩 어두워져 갔다.

“연화가 보고 싶구나…..

이름도 한번 못 불러 봤는데……

울지나 않았으면 좋으련만……”

중얼거리던 진의 말이 멈추고 진의 고개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어져 갔다.

진 주변으로 모여든 암월단 역시 진과 다르지 않았다.

시기는 다르지만 하나둘씩 그렇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진 휘하 암월단 1000명, 절명 관에서 야만족 3만과 대적하여 족장 포함 1만 7천여를 주살하고 명예롭게 옥쇄하다.

그들은 그렇게 역사의 한 페이지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었다.

진이 죽음으로서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이제는 밤에 기습해서 화공을 하는 장면만 촬영하면 되었기 때문에 막간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촬영이 끝나자 미친 듯이 싸워대던 선배들과 아리 재단 사람들은 온몸에 힘이 다 떨어진 듯 한쪽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민수도 지쳐서 한숨을 몰아쉬는데 민 단장이 흥분된 얼굴로 민수에게 다가와 민수를 강하게 한번 끌어안았다.

그리고 민수의 등을 여러 번 두드린 민 단장은 감동한 듯 감탄 섞인 말을 내뱉었다.

“정민수 이 미친놈. 진짜 그걸 하다니.”

처음 민수가 창대를 밟고 자신을 넘어서 돌겠다는 말을 했을 때 민 단장은 머릿속으로 그게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냥 도움닫기를 해서 사람을 뛰어넘는 것도 쉬지 않을 텐데 될까?

차라리 그렇게 할 거면 와이어로 당기는 게 맞을 텐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지만 민수가 자신 있게 말했기 때문에 그래 한번 해보기나 하자라고 생각하며 허락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촬영 상황은 생각보다 더 긴박했다.

엑스트라로 온 사람들이 미친 듯이 치고받기 시작했고, 민 단장이 보기에도 지금 NG가 나면 앞으로 촬영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혹시 민수가 NG를 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며 연기를 했었는데 민수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것을 해내고 말았다.

물론 때에 맞춰서 자신도 창대가 단단하게 고정될 수 있게 온 힘을 다 주었지만, 그것은 그저 작은 도움에 불과했다.

“넌 진짜 최고의 액션 배우야.

너 때문에 내 눈이 너무 높아져서 이제 앞으로 웬만한 배우들을 가르치지도 못하겠어.

같이 촬영해서 너무 영광이었다. 이 녀석아.”

민 단장의 찬사에 얼굴을 잠시 붉힌 민수는 지금까지 물심양면으로 노력해준 민 단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저도 단장님이랑 마지막까지 같이 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어요.

감사합니다. 단장님.”

그렇게 훈훈하게 인사를 나눈 민수는 눈을 돌려 오늘 열연해준 선배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들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저들이 쉬지 않고 정말 미친 듯이 움직였기 때문에 이 장면이 정말 멋있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 선배들은 너무 지쳐있어서 암월단이 탈진해 죽는 장면이 너무나도 실감 났다.

“이게… 이렇게 되네, 거참….”

역시 연기 중 가장 실감 나는 것은 사실 연기라고 해야 할까.

촬영할 때는 NG가 나거나, 혹시 다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무사히 미치게 되자 엄청난 결과를 물을 얻게 된 셈이었다.

선배들도 민수의 주변에 모여들고 있었다.

민수는 그들 하나하나에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냥 대충하다 갈 수도 있었는데 영혼을 담아 연기해 주었으니 그 고마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야, 우리도 오랜만에 온 힘을 다해 움직여서 기분이 좋아.”

“캬~ 너 진짜 제법이던데 군에 있을 때도 에이스였다면서?

큭큭, 그래 적호 출신인데 이 정도는 해줘야지.”

선배들은 오히려 민수가 더 수고했다고 생각했는지 그의 어깨를 몇 번이나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민수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준 선배들은 다시 아리 재단의 사나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자기들끼리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서 웃음 짓고 있었다.

재단 사람들도 선배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분위기는 사뭇 부드러웠다.

조금 전 까지 이를 악물고 싸워대던 사람들이라고는 볼 수 없는 분위기에 민수는 그냥 실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한쪽에서는 찬진도 다시 한번 촬영본을 살펴보면서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 살펴본 찬진은 강철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야만족이 중국어를 안 써서 다행이군.

저걸 2번이나 찍으라면 난 진짜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말 거야.

윤강철, 진짜 운이 좋구나 넌….

저 사람들이 엑스트라로 와서 저렇게 열심히 해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래, 재미있는 녀석들이지.

마치고 고기나 거하게 사서 배나 채워줘야겠어. 하하하”

강철도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렇게 밤이 되고, 아리 재단 사람들과 붉은 범의 선배들, 그리고 액션 스쿨 투지의 인원들만 남아서 마지막 화공 장면을 찍은 후 그날 촬영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윤 대표의 말에 의하면 저 사람들은 이제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서 자기들끼리 회포를 푼다고 한다.

윤 대표가 거하게 쏘기로 했다나?

아마 저들이 소고기를 먹는다면 소 한두 마리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민수는 숙소로 돌아와 완전히 퍼지고 말았다.

내일도 마지막 에필로그 촬영이 있었지만 민수는 그냥 늘어져 있기로 했다.

자신의 마지막 장면에서 모든 힘을 쏟아부었는지, 손도 까딱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민수의 촬영분은 오늘로 끝이었기 때문에 민수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민수가 하루 쉬는 동안 영화 “용의 울음” 의 촬영이 완전히 종료되었다.

스텝들은 영화 관련 자제를 옮기는데 정신이 없었고, 찬진의 영화사 식구들과 강철은 소품 때문에 고민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사극하고 퀄리티가 다른 엑스트라 의상, 그리고 황실 의상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일반적인 소품들은 당연히 대여한 것이니 주인에게 돌려주면 별문제 없었지만, 이 옷들은 대여 품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제작을 한 것이었으니, 주인이 윤 엔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 많은 옷을 윤 엔터에서 보관하기도 힘들었고 그렇다고 따로 팔 수도 없었으니 확실히 애물단지이긴 했다.

고민하는 강철에게 진성이 다가와서 쌓여 있는 옷을 살펴보고는 넌지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거, 따로 쓸 데가 있는 건 아니지?”

“네, 형님. 만들 때는 생각 못 했는데 다 쓰고 나니 의외로 애물단지네요.

저희가 제작사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앞으로 쓸 일도 없을 것 같고, 그렇다고 아무한테나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래? 흠…. 한성 미디어의 정가 놈이 혹시 생각 있으면 자기한테 넘기라고 하더구나.

이번에 자기네들도 사극을 기획 중인데, 우리 의상이 마음에 들었다면서 말이다.

어차피 저거, 중국식 황궁 의상은 조윤희 선생님이 만드신 거라 우리가 보관해야 할 테고, 고려식으로 만든 옷들은 한성 미디어에 넘기는 게 어떠냐?

혹시나 윤 엔터에서 쓸 일이 있는 경우에는 다시 대여할 수 있다는 조건으로 넘기면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오… 정 어르신이요?

이번에 사극 들어가신다고요?

그 어르신이면 잘됐네요.

당장 보내드리지요.

아 그리고, 박 어르신하고 같이 한번 뵈었으면 좋겠는데요.

형님. 언제 시간 되세요?”

“스크린 때문에 그러는 거면 굳이 만나볼 필요도 없어.

대진 시네마 쪽은 이미 말해 놓은 지 오래야.

그놈이 나랑 네 녀석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했더니 지가 몸이 더 달아서 설치고 있어.”

“그래요? 감사한 일이군요.

역시 형님 골수팬이 배급사에 계시니 그런 건 편하네요.”

“배급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우선 저 옷부터 처리하자꾸나. 그럼 내 정가 놈한테 연락하마.”

진성이 연락하기 무섭게 큰 컨테이너 차가 현장에 도착하더니 촬영에 사용된 옷들을 모두 거둬 갔다.

강철은 그 모습을 보며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촬영장으로 돌아온 강철은 촬영장이 완전히 정리될 때까지 그곳에 남아있었다.

배우들과 스텝들이 떠나고 이제 적막함만 남은 그곳을 보며 강철의 표정은 조금 복잡해 보였다.

저 멀리서 작은 발소리가 들리더니 그의 곁으로 한 번도 촬영장을 찾지 않았던 민 여사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여기 이러고 있을 줄 알았어요.”

“하하, 그랬나, 우리 민 여사도 오래만이구나”

작게 웃으며 오랜만이라고 말하는 강철을 샐쭉하게 쳐다보던 민 여사는 이내 웃음을 지으며 강철을 살짝 안았다.

“당신 습관이잖아요. 촬영장을 마지막까지 돌아보는 거요.”

“그래, 그랬지. 내가 항상 그래왔어.”

“어땠어요. 이번 촬영은?

들리는 말이 다 좋은 말뿐이라 특별히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당신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다를 거 같은데요.”

민 여사의 말에 강철의 표정이 조금 아련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촬영이 진행되던 모습 하나하나를 다시 머릿속에 떠올리며 작게 미소 짓고 있었다.

“좋았어.

그리고 재미있었지.

십수 년 동안 연기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번만큼 특별한 촬영은 아마 없었을 거야.

레전드를 찍을 때보다 더 재미있었으니까 말이야.

진성 형님도 태준이도 민수도, 그리고 다른 배우들도 너무 잘해 줬고…..

정말 즐거웠어.

내 연기 인생의 마지막을 장식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작품이야.”

부드럽게 웃음 짓고 있는 강철을 보며 민 여사는 장난스러운 어조로 물어보았다.

“그래서 제가 이번에 강남에 빌딩 한 채를 더 세울 수 있는 거예요?”

민 여사의 말에 강철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빌딩이라…. 빌딩이 문제겠어?”

“자신만만하네요 우리 윤 배우님.

좋아요. 어서 가요.

집에 가서 제가 맛있는 밥 해드릴게요.”

민 여사를 웃으며 바라보던 강철은 순간 그녀가 밥을 해주겠다는 말에 살짝 움찔하더니 환하게 웃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오늘은 따로 우리끼리 분위기 좀 내자고, 그러니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 괜찮지?”

“그래요 그럼. 제가 예약해 놓을게요.

어서 가요.”

민 여사 모르게 작게 한숨을 내쉰 강철은 민 여사의 손을 잡은 채 그녀의 차에 올라탔다.

“용의 울음” 촬영은 이제 진짜 완전히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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