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25화 (125/325)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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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할 협곡 전투가 촬영될 장소에 도착한 민수는 촬영지의 모습을 보고 크게 탄성을 내질렀다.

거대한 관문 양옆에는 CG 처리를 위해 거대한 녹색 천이 새워져 있었고 관문에도 CG를 덧씌우기 위하여 여러 가지 처리를 마친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앞쪽 평원에는 수많은 사람이 촬영준비에 한창이었다.

민수가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은 붉은 범에서 파견 나온 선배들이었다.

그들은 암월단의 검은 옷을 차려입은 채로 민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야. 네가 민수구나. 적호에서 인물이 하나 났어. 하하하.”

“오늘 우리가 싸울 게 저 앞에 모여있는 덩어리들이란 말이지.”

“다 조져 버려.”

반갑게 맞이해 주는 건 좋았지만, 흥분된 듯 전투적인 태도를 보이는 선배들의 모습에 민수는 겸연쩍은 웃음을 건넬 뿐이었다.

“싸움은 아닌데 말이죠.

너무 감정이 격해지지 않게 조심해 주세요. 선배님들.

다치면 안 되니까요.”

염려가 섞인 민수의 말에 그들은 웃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왠지 민수는 걱정이 줄어들지 않았다.

그리고 야만인 진형에는 덩치가 큰 남자들 수백에 민 단장까지 가세해 있었다.

이번 마지막 장면에서 민 단장은 야만인들의 족장을 연기하게 되었다.

그 선택은 민수로써도 의외였는데, 민 단장이 영화에 직접 출연한 것은 5년 전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손댄 영화 중에 최고의 작품이 될 수도 있는데 내가 이렇게 손 놓고 있을 수야 없지. 그리고 너 같은 놈이랑 또 영화를 언제 찍을 줄 알고.”

민 단장도 민수와 마지막 전투를 장식할 생각에 가슴이 뛰고 있었다.

강철이 큰소리를 쳤던 200명의 인원은 아리 재단의 인원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모여보니 강철이 예상했던 200명을 월등히 초과해서 300이 넘는 수가 모여들었다.

민수는 조금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들이 300명이나 모여들자 다시 한번 아리 재단의 정체에 대하여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큰 남자들이 야만인으로 꾸미고 분장까지 마치자 그 위압감이 상당했다.

아마 선배들이 덩어리라고 부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인 거 같았다.

남자들도 전의에 찬 얼굴로 관문 쪽에 모여있는 경호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거참… 이거 괜찮은 거냐….”

민수가 중얼거리고 있는데 설아가 민수 곁으로 다가왔다.

마지막 촬영을 보기 위하여 배우들도 근처에 모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설아는 민수에게 다가와 힘내라고 말한 다음에 바로 아리 재단의 남자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남자들은 오~ 하고 함성을 지르며 설아를 반겨 주었고, 설아도 왠지 저 남자들을 대부분 아는 분위기였다.

민수가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는데 태준이 슬쩍 다가와 설아가 아리 재단의 2대 마스코트였다고 웃으면서 이야기해 주었다.

더 어이없는 건 초대 마스코트가 민 여사님이고 이제는 3대 마스코트로 혜민이가 활약하고 있다니 저 남자들이 왠지 정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 촬영은 몇 장면으로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이 많은 인원을 다시 동원하기는 무리였으니 오늘 안에 무조건 촬영을 마무리 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배우들과 스텝들도, 감독까지 서둘러 촬영 준비를 마치기 위하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진은 관문에 도착한 후 관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아직 야만인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진은 서둘러 암월단과 함께 관문을 점검했다.

물자는 그렇게 부족하지 않았다.

하지만 관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야만인이 몰려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고 겁에 질려 있었다.

관문에 남은 병사의 수는 대략 천명.

진과 함께 온 암월단까지 포함하면 대략 2000명이었다.

관의 정비를 마친 진은 야만족을 기다리며 관문 위에 적힌 절명 관이라는 이름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단주.”

암월단의 수족 하나가 진에게 다가와 관의 정비가 마무리되었음을 알렸다.

“절명 관…. 절명 관이라….이 관문이 이번에는 누구의 목숨을 끊을지 모르겠구나….”

작게 중얼거린 진은 병사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진이 단상 위에 오르자 병사들과 암월의 눈이 진에게 모여들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일주일을 버텨야 한다.

관문의 병사들. 긴말하지 않겠다.

너희들의 가족이 지금 저 뒤에 있을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위해 싸워라.

너희가 쓰러지면 그들은 잔인한 야만인들에게 도륙당하거나, 아니면 그들의 노예가 될 것이다.”

진의 말에 병사들의 표정이 결연해진다.

그리고 조금 껄렁껄렁해 보이는 암월을 보며 진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암월

우린 잘 알고 있다.

흑월에서도 우린 그냥 애물단지다.

인간말종, 쓰레기.

사람들은 우리를 그렇게 불렀지.

어떤 놈은 백정이요, 어떤 놈은 관리를 베고 도망쳤고, 어떤 놈은 귀족에게 복수했다.

네놈들은 쓰레기지만, 그래도 가슴속에 품고 있던 한가지 생각은 있었을 것이다.

이 나라는 썩었다는 거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나라를 뒤집었다.

탐관오리들을 다 베었고, 결국 그 수장인 평까지 우리 손으로 처단했다.

이제 이 나라는 바뀐다.

우리가 지켜내기만 한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따라와 준 너희에게 감사한다.

난 이곳을 지켜낼 것이고, 결국 이곳에서 뼈를 묻을 생각이다.

너희들은 이름 없는 영웅으로 죽어가겠지만, 역사는 너희를 기억할 것이다.

너희에게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겠다.

여기서 죽어라.

그리고 하늘에서 지켜봐라.

우리가 지킨 나라가 이제 어떻게 바뀌어 가는지.”

진이 말을 마치자 분위기가 숙연해 졌다.

“어차피 단장 아니었으면 벌써 어디서 뒤져서 나자빠져 있었겠지.”

“그래도 단장 덕분에 복수는 실컷 했으니 여한은 없수다.”

“킥킥, 그 원수 놈의 목은 내가 베었지.”

“그래 마지막 뒤질 때는 영웅으로 뒤져 보자고.”

“인간 백정에 살인자 주제에 영웅으로 죽는다니 이보다 호사는 없을 거요”

암월의 인원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분연한 목소리로 외쳤다. 자신들도 진과 함께 죽겠다고 말이다.

진은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그렇게 진과 암월이 의지를 다지는 사이 관문 밖에는 야만인들이 접근하고 있었다.

야만인들의 접근이 알려지고 진은 관문의 꼭대기로 올라섰다.

저 멀리 수많은 야만인이 보였다.

대충 봐도 수만은 되어 보였다.

“하…. 진짜 더럽게 많네.”

그 수에 질려버린 병사 한 명이 한탄하듯 입을 열었다.

병사들은 상대의 수에 질려 조금씩 공포에 물 들어갔다.

그때 야만족들의 무리에서 한 명이 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제국에는 약골들은 들어라! 네놈 중에 이 체레븨세 의 도끼를 받아 내는 놈이 있으면 하루 동안 관문을 공격하지 않겠다.

나의 도끼를 받아낼 용기 있는 놈이 있으면 어서 나서라!”

진은 야만족 전사의 외침에 같잖은 수작을 본 듯 인상을 썼다.

하지만 저놈 한 놈이라도 줄여 놓으면 그건 그거대로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문을 열고 나가지 못할 거로 생각하고 저런 수작을 부리나 본데….”

진은 밧줄을 꺼내 들고 기둥에 묶은 후 관문 아래로 뛰어내렸다. 줄을 손에 잡은 채 단 두 걸음으로 관문 아래로 내려온 진은 검을 꺼내 들고 상대에게 다가섰다.

촬영장면을 지켜보던 배우들은 민수가 단번에 관문 아래로 내려서자 감탄을 터트리고 있었다.

“와… 저 미친놈 진짜 저걸 하네….”

야만인 진영에서 민수를 지켜보던 민 단장은 처음에 자기가 말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을 민수가 한 번에 해내자 기가 막힌 표정이 되었다.

“대체 어떻게 돼 먹은 놈이지 저건.”

아무리 생각해도 민수는 정말 미스터리했다.

진은 검을 들고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도끼를 든 상대는 갑자기 관문에서 뛰어내린 진을 당황한 듯 바라보다가 서둘러 도끼를 들고 진을 상대했다.

도끼를 든 상대는 어제 태랑 역할을 소화했던 험상궂은 선배였다.

하지만 분장을 과하게 했으니 아마 아마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역시 액션 스턴트의 백미는 돌려쓰기 아니겠는가.

수합을 겨루던 중 상대의 거대한 도끼가 땅을 내쳐지자 진은 그 틈을 타 옆으로 돌아 들어가 그의 옆구리에 검을 박아 넣었다.

진이 상대를 가볍게 제압하자 관문에 병사들은 사기가 올라가 커다란 함성을 질러댔다.

그리고 진은 다시 유유히 관문 벽에 늘어진 밧줄을 잡고 발을 박차며 벽을 오르기 시작했다.

가볍게 벽을 타고 올라 다시 자기의 자리에 도착한 진은 늘어진 밧줄을 위로 올려 아까 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반응이 없는 진의 태도에 야만인들은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때 야만인 족장이 나서서 전사들을 말렸다.

“우린 지금 지쳤다.

총공격은 내일로 한다.

오늘은 일찍 푹 쉰다. 내일 저 관문을 넘는다”

진은 저들이 오늘 푹 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꼴을 지켜보고 있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저놈들은 지금 미쳤어.

우리가 수가 적다는 이유로 나오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건지.

아주 편하게 쉬고 있군그래.

하루 공격은 안 해주겠다는 같잖은 소리나 하면서 말이야.”

진이 이끄는 암월단은 야습에 특화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화공을 준비한 채 조용히 밧줄을 타고 관문 아래로 내려왔다.

“목표는 상대의 병참이다.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말고 불을 지른 후 바로 복귀한다.”

진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암월단은 서둘러 상대의 진지 안으로 침투하였다.

이윽고 진지 안에서 불이 올라오고 상대가 놀라서 허둥대는 사이에 병참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힘겹게 화재를 진압하고 습격자를 찾아 나섰지만 이미 진과 암월단은 몰래 관문 안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화공 장면은 모든 촬영을 마치고 밤에 이루어졌는데 짚단에 불을 내고 활활 타는 짚단 사이에서 허둥대는 아리 재단 사람들을 멀리서 지켜보며 선배들은 호탕은 웃음을 터트렸다.

민수는 이 선배들이 은근히 나잇값을 못 한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병참을 상당수 잃은 야만족은 마음이 급해져 다음 날 아침부터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관문을 끼고 용맹한 병사들이 악을 쓰며 버티자 관문을 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야만족이 취할 방법은 차륜 전 뿐이었고, 그들은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계속 공격했다.

본격적인 전투 장면이 시작되자 관문 밖에 있던 험상궂은 남자들이 인상을 쓰며 달려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벽을 기어 올라오더니, 검은 옷을 입은 붉은 범 선배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선배들도 기다렸다는 듯 그들에게 달려들었고 이내 사내들은 자기네들끼리 뭉쳐서 싸우기 시작했다.

비록 온몸에 장치를 꾸며 놓아 조금의 충격에도 피가 흐르는 것처럼 해 놓은 데다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보호구까지 보이지 않게 입은 상태였지만, 그 기세가 사뭇 날카로워 민수는 혀를 차며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거 저 사람들은 무슨 원수를 졌나, 저러다 다치는데….”

하지만 민수가 걱정할 틈도 없이 스턴트맨들이 달려들어 정해진 합대로 연기하는 바람에 민수는 자신의 연기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만약 NG가 나면 저 사람들은 다시 저렇게 하지 못할 거란 것을 말이다.

민수는 NG가 나지 않게, 그리고 만약을 대비해 최대한 뒤쪽에 저 사람들이랑 그림이 겹치지 않게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들이 싸우는 모습은 카메라로 따로 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방에서 싸우는 모습이 필요한 것이니 우선 찍어만 놓아도 나중에 다시 붙여서 잘 써먹을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수성에 임하는 마음은 굳건했지만, 그렇게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시간이 이어지자 암월단도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암월단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도 진은 포기하지 않고 관문에 기어오르는 전사들을 베어내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암월단보다 훨씬 많은 수의 야만인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이제 결판을 내야 한다고 생각한 족장은 몸소 관문에 기어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서 자신의 전사들을 종횡무진 베어내는 진을 발견하게 되었다.

족장은 직감적으로 저놈을 죽일 수만 있으면 관문을 바로 함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네놈이구나. 이 빌어먹을 관문을 지키는 장수가.”

이미 계속된 전투로 기력이 쇠한 진은 거대한 도끼 창을 들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족장을 보며 마른 웃음을 지었다.

심한 갈증으로 입이 마른 지는 이미 오래였고, 지금 며칠이 지났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여기까지인 것 같은데, 결국 자신이 나라를 구하지는 못한 것 같아 가슴이 조금 아려왔다.

“족장인가…. 그래, 저승 길동무로 나쁘지 않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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