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22화 (122/325)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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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은 민수가 NG를 내고 감독에게 지적받은 후에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잘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자 일이 쉽게 풀려나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 왜 저러지?”

수연이 민수의 연기에 강한 의문을 느끼자 태준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수연에게 설명해 주었다.

“정 배우가 이상하게 사랑 같은 긍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애를 먹더라고.

그리고 사실 저 녀석이 연기를 워낙 잘해서 우리가 잊고 있는 게 있는데, 저 녀석 이

제 연기 배운지 1년 정도밖에 안 된 놈이거든.

그러니 확실히 연기 경험이 부족하다는 거지.”

태준의 설명에도 수연은 이 상황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었다.

송포유에서는 자신을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연기를 곧잘 했었기 때문이다.

“아, 그거?

그거 왠지 조금 익숙하지 않디?

정 배우 말이 그 연기는 내가 하이 스쿨에서 했던 걸 그대로 따라 했다고 하더라고.

생각보다 준비 기간이 길었을 걸, 그거 하는데.

그러니 사실 그때 그 연기는 자기감정이 아니었던 거지.”

태준의 설명에 수연은 기가 막히기도 했지만 어이가 없기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사람의 연기를 따라 하는 것보다는 지금 민수가 할 연기가 훨씬 더 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해내는 주제에 저런 단순한 연기에 애를 먹다니.

그리고 애당초 그렇게 남을 완벽하게 따라 하는 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했다.

“하… 그게 그거였어. 어쩐지…. 엄청나게 가슴을 쥐어온다 했더니.…”

“뭐?”

그리고 그 당시 민수를 볼 때마다 태준이 생각나서 스트레스받았던 걸 떠올리며 수연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고 태준은 수연을 말이 너무 작아 듣지 못했는지 무슨 말인지 되묻고 있었다.

“아… 아니야.

그보다 어쨌든 저게 민수가 잘 못 하는 부분이고, 그래서 쉽지 않다는 거네.

게다가 준비 기간도 없었으니 더 그럴 테고.”

“아무래도 그렇지.”

“경험 문제라고 하기에는 설아나 민수나 마찬가지 아니야?

어차피 둘 다 연기 경력 1년에 불과하고, 심지어 둘 다 모태솔로라는 것도 같은데 왜 저런 차이가 있는 거야?”

민수에 비해서 설아의 연기가 너무나 출중하다 보니 수연은 이 상황이 더 이해하기 힘들었다.

처음에는 태준도 설아의 연기가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좀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자 대충 상황을 알만했다.

저 차이가 무엇인지.

“하… 윤설아 저게 연기를 하랬더니….”

“응? 왜?”

수연은 설아가 저렇게 말랑말랑한 연기를 잘 하는 것이 대견하기도 했지만, 저 연기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사실 자신도 누군가를 그렇게 가슴 떨리게 그리워했던 경험이 있기 전에는 저런 연기를 자연스럽게 하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 설아는 사실 민수를 저렇게 보는 게 좀 익숙하다고 할까.

아니 저렇게는 아니지. 그냥 호감이 있는 정도니까.

하지만 어떤 것이든지 시작이 어렵지 거기에 추가하는 건 쉬우니까 저 정도도 어렵지는 않겠지.

시간도 제법 많이 있어서 준비도 충분히 했을 거고.

아마 차라리 격한 애정씬이 아니라서 더 상황에 맞았다고 해야 하나.

저렇게 조금 미묘한 게 더 실감 난다고 해야 하나.

거참….”

설아가 민수에게 어느 정도 호감을 느낀 사실을 수연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태준의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킥킥킥, 미치겠네.

저게 그럼 연기가 아니라는 거네.

아우, 우리 설아는 대체 왜 저렇게 귀여운 거야.

네 말대로라면 지금 설아한테 저것보다 쉬운 연기가 없겠는데.

저 상태에서 감정이 크게 더 나아가는 건 아니잖아.”

태준은 수연의 말에 그냥 허탈하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일 뿐이었다.

“저건 진짜 몰입하는 수밖에 없겠는데.

민수가 설아와 연화를 동일시하고 둘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는 거 밖에는 단시간 내에 해결할 방법이 없겠어.

수연과 태준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민수는 죽을 맛이었다.

귀여워하는 감정에 남녀 간의 연정이 추가되어야 한다는데, 대체 그 연정이 어떤 식으로 들어가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 설아가 워낙 잘해주고 있어서 약간의 참고는 되고 있었다.

설아의 눈을 보니 왠지 진짜 설아가 자신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설아의 눈빛을 따라 하려고 했지만 당장 따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찬진은 어쩔 수 없이 촬영을 중단하고 민수에게 조금의 시간을 더 주기로 했다.

그리고 촬영은 우선 윤숙과 소희가 먼저 하기로 했다.

민수는 너덜너덜해진 가슴을 부여잡고 태준과 수연이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나 자신보다 경력이 많은 그들이라면 무슨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런 민수를 설아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뒤따르고 있었다.

태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민수와 설아를 반겨 주었다.

그리고 설아가 다가오자 가볍게 알밤을 한 대 때린 태준은 설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고 말았다.

“요 녀석아.

연기하라고 했더니 왜 사심을 채우고 있어?”

“왜 때려. 바보 오라버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뭐.

그래서 내 연기에 무슨 불만이라도?”

알밤을 맞고 입을 삐죽 내미는 설아를 보며 수연은 귀엽다는 듯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그래. 잘했어.

우리 설아. 연기가 세상에서 제일 쉬웠지?

나도 짜증 나는 애한테 물 뿌리거나 따귀 때릴 때 연기가 가장 쉽더라고.

사람이 원래 그런 거지 뭐.”

“피, 언니 놀리기나 하고.

그래도 진이 민수 오빠랑 은근히 비슷하긴 하지.

팍팍 잘 싸우는 것도 그렇고.

한 가지만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렇고.

그래서 연기하기가 조금 편하긴 해.”

민수는 세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뭔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연애 경험도 연기 경험도 짧은 설아가 왠지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했더니, 사적인 감정을 넣어서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설아 씨 설마…”

순간 무슨 낌새를 눈치챈 민수가 무슨 말을 하려다 말문이 막히자 살짝 움찔하던 설아는 차라리 잘되었다는 듯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민수를 바라봤다.

“사실 오빠도 조금은 알고 있었잖아요.

제가 오빠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요.

아직은 관심 정도지만…. 그래도 저런 연기하기는 충분하죠. 뭐.”

설아의 말에 수연은 작게 휘파람을 불며 설아를 응원해 주었다.

“올~ 윤설아 용감한데!”

“내가 뭐 죄지은 것도 아닌데.

호감 있으면 호감 있다고 말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이런 기회 아니면 말하기도 힘들 거 같고, 그렇다고 저 오빠 성격에 나한테 먼저 말할 거 같지도 않으니까.

말이 나온 김에 오빠도 솔직히 말해봐요.

오빠도 저한테 호감 있으신 거잖아요.”

설아의 묵직한 돌직구에 민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순간 자신이 젊은 사람의 감성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자기도 겨우 이십 대 중반에 불과한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던 민수는 한편으로는 설아에게 저런 저돌적인 면이 있었나 싶기도 했다.

“하….”

설아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맞지만 그 감정의 정체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민수는 딱히 뭐라고 대답할 말을 찾기가 힘들었다.

민수가 머뭇머뭇 거리기만 하자 설아는 이 기회에 결판을 내겠다는 듯 민수에게 조금 다그치듯 말을 이었다.

“뭐 좋아요. 민수 오빠가 원래 이런 분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놀랍진 않아요.

그럼 간단하게 이지선다로 생각해 봐요.

첫째 나 윤설아가 예쁘다 안 예쁘다.

둘째 나 윤설아랑 같이 장소에 있는 것이 좋다 싫다.

셋째 나 윤설아가 호감이다 비호감이다.

……”

지금, 이 상황에 어울리는 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민수는 그래도 설아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하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던 수연과 태준은 기가 막힌 듯 별말 없이 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질문이 끝나고 설아는 당당하게 민수에게 말했다.

“봐요. 이 정도면 호감 있는 거지.

전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그렇다고 제가 당장 뭘 어쩌자는 건 아니에요.

우린 아직 어리고 서로 알아갈 시간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래도 상대에게 관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려주고 싶었어요.

안 그러면 너무 답답하잖아요.”

당당하게 말하던 설아지만 말을 마치고는 조금 부끄러운지 귀가 빨갛게 변한 상태로 쏜살같이 어디론가 달려갔다.

엉겁결에 자신이 민수에게 관심 있음을 고백하고 사라져 버린 설아.

얼떨결에 설아에게 호감을 느낀 것을 밝히게 된 민수.

민수는 상황이 갑자기 왜 이렇게 됐나 싶어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수연은 그런 민수를 보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21살, 저 감각을 따라갈 수가 없군. 저렇게 당차다니”

“좀 늦긴 했지만, 첫사랑 하기에 나쁘지 않은 때지.”

조금 당황하던 민수도 수연과 태준의 말에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21살, 기껏해야 이제 대학교에 들어가서 첫사랑에 한창 가슴 졸일 때가 아니던가.

물론 요즘에는 더 젊을 때 사랑에 불타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어쨌든 어린 나이란 것은 사실이었다.

나이 어린 여자가 좋아한다, 사랑한다도 아니고 그냥 관심 있다고 말한 것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서로 가지고 있던 마음을 확인한 것뿐이니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하, 갑자기 일이 이상하게 돼 버렸는데.

그보다 이젠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네.”

민수가 난감해하자 태준은 조금 씁쓸하게 웃으면서 민수에게 말하였다.

“흠……

그런데 정 배우 진짜 우리 설아한테 관심 있는 게 맞아?”

태준의 말에 민수는 작게 한숨을 쉬면서 한탄했다.

“아니, 너까지 왜 이래? 지금 그게 중요해?”

“아니, 그게 아니라 만약 그렇다면 아주 쉬운 방법이 있잖아.”

“쉬운 방법?”

“지금 설아가 하는 것처럼 해.

배우들이 배역에 몰입해서 상대배우를 그 배역과 동일시 해서 애정이 생기는 것처럼, 그 반대도 있는 거니까.

만약 정 배우가 설아한테 관심이 있다면, 연화를 보고 설아를 떠올리면서 연기해봐.

그냥 설아를 생각하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다면 어쩌면 상황에 어울리는 연기가 나올지도 몰라.

다행히 농도 짙은 멜로가 아니라 단순히 말랑말랑하고 풋풋한 느낌이니까

충분히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민수는 태준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이미 설아가 충분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태준의 말에 민수는 조용히 눈을 감고 잠시 설아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다시 민수의 촬영 순서가 다가왔다.

민수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촬영장으로 들어갔고 설아가 그 뒤를 따라 촬영장으로 들어왔다.

자기 혼자 할 말 다하고 귀가 빨개진 채로 도망갔던 설아의 모습이 떠오르자 순간 민수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런 설아의 모습은 솔직히 조금 귀여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 찬진이 조심스럽게 촬영 시작을 알렸고 민수와 설아는 연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 멀리서 그 장면을 살펴보던 수연은 달라진 민수의 연기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이제 잘하네.”

“음….. 이거 참….”

“엄청 풋풋하네.

하지만 왠지 중학생 애들이 첫 사랑하는 느낌이야.

그래서 왠지 지금 극 상황이랑 어울리고.”

“아니… 설아야 21살이니 그렇다 치지만…. 정 배우는 26살인데… 저게 저렇게 되나?”

태준은 자신이 추천한 방법이라지만 저렇게 되자 조금 기분이 이상해졌다.

민수가 설아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것이다.

민수는 좋은 녀석이 분명했고, 자신도 반은 장난이긴 했지만 민수와 설아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듯이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정작 이렇게 되니 조금 착잡한 기분이었다.

역시 오빠란 존재는 원래 여동생의 연애를 반기는 자들은 아니었으니, 태준도 이럴 때는 결국 그냥 평범한 오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태준은 그래도 민수와 설아가 당장 서로 사귄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기 때문에 마음에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아버지에게는 비밀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민수와 설아의 촬영이 급물살을 타고 있었다.

저 감정선을 유지하기만 한다면 아마 나머지 촬영도 수월할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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