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16화 (11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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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늦은 시간 윤희의 집을 나선 민수는 소속사로 돌아가기 위해 형우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섰다.

    자신의 차에 탑승한 민수는 휘파람을 부는 형우를 바라보았다.

    윤희의 집에 들어가기 전에 민수는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같이 들어가자고 형우에게 청했었다.

    집에 다녀오기도 애매하고 혼자서 특별히 할 일도 없어 보이는 형우를 배려한 것이었는데 형우는 민수의 청을 뿌리치고 혼자서 어디론가 사라졌었다.

    “같이 들어가지 그랬어? 혼자서 뭐 하고 있었냐?”

    형우를 혼자 내버려 둔 것이 못내 안타까웠던 민수가 조금 미안한 표정으로 형우에게 묻자 형우는 피식 웃으며 민수를 비웃었다.

    “하. 이 사람 보게. 이 서울 구석에 이 조형우가 몸담을 곳이 없을까 봐?

    내가 형 같은 사람인 줄 아나 본데.

    나 조형우라고.

    지금도 내가 부르면 나올 녀석들이 연병장 한 바퀴에 헤쳐 모여 하면 사열 종대로 쭉~ 늘어선다는 말이지.”

    “다른 놈이 그런 소리를 하면 웃어넘기겠지만 네가 하니까 왠지 진짜처럼 들리긴 하네.

    하긴, 네 녀석이니 이 근처에도 만날 놈 한둘은 있었겠지.”

    자신만만하게 웃는 형우의 모습을 보니 다행히도 그리 무료하게 보내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 앞에서 자연스럽게 너스레 떠는 형우는 민수가 지금까지 알아 온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지인이 많은 녀석이었다.

    사교성이 좋은 것인지 재주가 좋은 것인지 어쨌든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형우를 싫어하는 사람을 못 봤다.

    원래 사람이란 게 모든 사람하고 친하게 지낼 순 없는 종자들인데, 이상하게 형우는 별별 희한한 놈들이랑도 친하게 잘 지냈다.

    민수로써는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떤 놈이랑 만난 거야?”

    “어? 아…별놈 아니야.

    기자라고 하기도 모호하고, 남 뒤나 좀 캐면서 살던 놈인데 이제 좀 새사람 되고 싶다고 재미있는 거 있으면 하나 달라고 조르더라고.

    그래서 사진 몇 장 던져 줬어.”

    민수는 형우의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뭔가 내용은 좀 이상했지만 형우가 너무 대수롭지 않은 것처럼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민수가 형우에게 진지하게 다시 물어봤다.

    “기자는 뭐야? 사진은 또 뭐고?”

    기자라면 학을 떼는 민수가 진지하게 달려들자 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설명을 시작했다.

    “아, 진짜 별거 아니야.

    홍보팀에서 의도적으로 흘리고 싶어 하는 우리 영화 제작과정 찍은 영상이랑 사진이 있어.

    매니저들이 다 들고 다니면서 혹시 달려드는 애들이 있으면 먹이로 주라고 홍보팀에서 나누어 준 거야.

    그거 중에 괜찮은 거 몇 장 준거뿐이야.

    홍보팀에서 그냥 기회가 되면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게 뿌리라고 했으니, 난 그냥 시키는 대로 한 거지 뭐.

    형이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엔터에 배우들이 참 얼굴 비추는 걸 싫어해.

    심지어 젊은 태준 씨나 수연 씨조차 그런 편이니 말 다 했지.

    영화는 찍는다고 하지, 심지어 괜찮은 느낌이 팍팍 나는데 인터뷰 요청, 촬영 요청은 묵묵부답이니 기자들이 안달이 날수 밖에.

    형 그거 알아?

    요즘 기자들이 대표님 사진이랑 연기하는 영상 구하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났어.

    10년 만에 복귀작이라서 더 그런 거 같은데 어디 그걸 구할 수가 있나.

    아마 윤 대표님 연기 영상은 마지막쯤 딱 하고 뿌릴 모양이던데.

    하여간 참 재미있다니까.”

    민수도 지금 우리 영화가 메이킹 영상을 따로 촬영하고 있지 않은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영화를 촬영할 때는 무조건 촬영에만 집중한다는 것이 윤 대표의 모토였고, 그 정신은 태준 수연 그리고 민수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서 홍보용으로 뿌릴 영상이 없다는 것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진과 영상을 뿌린다니.

    민수는 없는 영상과 사진을 뿌린다고 말하는 형우의 앞뒤가 안 맞는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민수가 계속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짓자 형우는 웃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

    바로 민수 자신의 영상이었다.

    “어….이거….”

    어제 올라와 이미 수많은 댓글이 달린 영상, 이것은 자신의 연기 장면을 편집해 놓은 영상이었다.

    “이게 뭐야? 대체 언제 찍은 거지?”

    놀라는 민수의 표정에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트린 형우는 잠시 그렇게 웃다가 자신의 휴대폰을 민수에게 보여 주었다.

    “요즘 참 좋아, 폰으로도 저 정도의 화질이 나온다니까?”

    “허….”

    형우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영상과 사진을 찍게 된 계기와 그 영상과 사진이 홍보용으로 쓰이게 된 사유를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미친놈.

    나중에 팬 카페나 팬 미팅할 때 쓰려고 설아 씨 사진이라 영상을 모으고 있었다고?

    세간에서 너 같은 놈을 스토커라고 하지 않디?

    그리고 몰래 그렇게 찍는걸 도촬이라고 한다지?

    세상에, 소속사에 범죄자가 있었어.”

    기막혀하는 민수의 얼굴을 보면서도 형우는 당당했다.

    형우는 어이없어하는 민수를 오히려 불쌍하게 바라보았다.

    “이 답답한 사람. 이렇게 막혀 있어서야.

    만약 내가 그 짓이라도 안 했으면 우린 지금 홍보도 못 하고 홍보팀은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었을걸.

    어쨌든 이제 앞으로 매니저들이 다 몰래 배우들 찍을 거니까 그렇게 아셔.

    아무래도 배우들은 모르는 게 좋겠지.

    그래야 더 자연스러운 게 나올 테고.”

    “이렇게 유튜브에서 돌아다니는데 배우들이 모르겠냐? 금방 알게 되겠지.”

    민수의 말에 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민수의 말에 강하게 반박했다.

    “그래서. 형은 아셨어? 자기 영상이 지금 엄청 핫 하다는 거?”

    “…..”

    “이거 봐. 자기도 몰랐으면서.

    우리 배우님들은 말이야.

    엄청 대단하신 분들이야.

    촬영 중에는 폰을 볼 생각도 안 하고, 촬영 마친 후에도 오늘 찍은 것들 그리고 내일 찍을 것들에 대한 이야기밖에 안 해요.

    그러니 아마 당분간은 모르고 지나갈걸.”

    “하…..”

    형우 말대로이긴 했다.

    촬영에만 집중하는 배우들의 집중력은 무서울 정도였으니 아마 앞으로도 그런 사소한 것들을 확인할 여유는 없을 것이다.

    특히 태준과 수연.

    이 둘은 지금 강철과 함께할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혼신을 힘을 쏟아붓고 있었으니 더더욱 그러하리라.

    “잠깐, 그보다 아까 설명 중에 이상한 내용이 있던데. 내 영상을 설아 씨가 부탁했다고?”

    민수의 지적에 형우는 껄렁껄렁 야비한 웃음을 지으면서 민수의 어깨에 손을 두르면 조용히 속삭였다.

    “왜? 형씨도 설아 씨 사진 하나 필요해? 어디 보자….. 내가 좋은 물건이 있는데 한번 볼래?”

    형우는 거만하게 웃으면서 자기 휴대폰 앨범에 포함된 사진 몇 장을 민수에게 보여 주었다.

    특히 같이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 입었던 검은색 정장을 입은 설아의 모습과 이카루스를 한 번에 매료시킨 반전 매력을 선보였던 시크한 복장에 투명한 화장을 한 설아의 모습을 찍은 사진은 표정도 너무 자연스러웠고, 구도 또한 너무 훌륭했다.

    민수는 이렇게 자연스러운 사진을 남긴 형우의 재능에 감탄하면서도 이런 능력으로 자신의 배우들만 몰래 찍고 있던 형우가 조금 한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사진이 너무 훌륭하다 보니 탐나는 마음을 감추기가 힘들었다.

    “어때? 탐나지?”

    형우의 꼬드김에 민수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쉰 후, 주위를 살펴보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OK 형이 달라는데 내가 또 보내줘야지. 기다려봐. “

    형우가 자신의 폰으로 전송한 설아의 사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민수는 자신의 행동에 당황하며 멈칫 동작을 멈추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그냥 한숨을 쉬면서 그냥 흐르는 대로 두자는 결론을 내린 민수는 자신을 보며 득의에 찬 웃음을 보이는 형우에게 그럼 아까 기자라는 놈에게 준 사진은 뭐냐고 물어보았다.

    “아, 그거?”

    형우가 민수에게 보여준 사진은 며칠 전의 찍은 사진이었다.

    민수가 마음속 깊이 고소해 했던, 설아가 수연을 안고 있던 바로 그 장면 말이다.

    형우는 그 사진을 보여주면서 많이 아쉬운지 계속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아. 이건 진짜 내가 나중에 딱 쓸려고 마음먹은 사진인데, 뭐 별수 있나.

    홍보팀에서 쓴다는데 내가 줘야지.”

    사진을 보던 민수도 그 당시의 장면이 떠올랐는지 피식 웃으며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으로 이 장면을 다시 보니 참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두 명의 배우는 확실히 그림이 되었다.

    특히 뚱해 있는 듯한 수연의 얼굴과 그런 수연을 난로처럼 꼭 안고 행복해하는 설아의 얼굴이 절로 웃음을 짓게 했다.

    “귀엽네. 사진.

    이거 사람들한테 공개되면 사람들이 좋아할까?”

    “어. 당연하지.

    그냥 둘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봐도 사진 자체가 워낙 예쁘니 관심이 안 가질 수가 없을걸.

    그놈이 언제 쓸 줄은 모르겠지만 당장에는 쓰지 말라고 경고해 두었으니까.

    좀 지나서 나오지 않을까 싶어.”

    “그 사람. 믿을 수는 있는 사람이야?”

    “걱정 마. 적어도 헛수작은 안 부릴 거야.

    저번에 형 사건 때 좋은 기사 올려주던 애야.

    어렸을 때 나랑 좀 알던 애인데, 형한테 나쁜 기사 쓴 놈이 아니라서 참 다행이야.

    그지?

    만약 그랬으면 오늘 걸어서 집에 못 갔을 텐데 말이야.

    킥킥, 소속사에 연락했다가 내 번호 받고 조금 익숙한 번호라 긴가민가했다네.

    내가 지금 거기서 일한다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리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더라고.”

    그렇게 말하면서 웃어대는 형우를 보면서 민수는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서 살았던 거냐? 넌.”

    “뭐 별로.”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쿨하게 고개를 저으며 형우는 차를 몰아 소속사로 출발했다..

    가면서 자신의 영상에 달린 글들을 보던 민수는 그래도 형우의 영상을 이용한 홍보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응들도 나쁘지 않았고, 영화에 대한 기대감도 조금 더 커진 느낌이었다.

    조금 늦은 시간에 자신의 방에 도착한 민수는 자신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설아와 태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대체 왜 여기 있어 이 시간에?”

    “늦어요!”

    자신의 말에 대답할 생각이 전혀 없는지 남의 집에서 술판을 벌이고 있던 문제아 남매는 별다른 설명 없이 자신이 늦은 것만 타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민수는 이 남매의 입을 다물게 할 강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민수는 자신이 어디를 갔다 왔으며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었는지 웃으면서 남매에게 설명했고, 역시 민수의 예상대로 남매의 분위기는 순간적으로 숙연해졌다.

    이제 이런 일들에 익숙해 질만도 했는데, 이 남매는 항상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자신보다 더 가슴 아파하곤 한다.

    그리고 아마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자신을 기다린 것도 사고무친인 자신이 조금이라도 외로워하지 않기를 바라서일 것이다.

    “음…. 정 배우. 사실 우리 아버지도 너처럼 완전 혈혈단신이셨거든.

    어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야.

    하지만 지금 봐.

    이렇게 멋진 아들도 있고, 귀여운 딸내미에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행복하게 살고 계시잖아.”

    자신을 스스로 멋진 아들이라고 평가하는 면은 조금 뻔뻔하긴 했지만, 그래도 윤 대표가 혈혈단신이었다는 사실은 조금 놀라웠다.

    과거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었는데, 윤 대표도 과거에 제법 쉽지 않은 삶을 살았었나 보다.

    민수가 놀라운 사실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태준은 웃으면서 민수의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중요한 것은 정말 든든한 처가와 예쁜 아내를 얻는 것 아니겠어?

    그게 행복의 첫걸음이지. 그럼 그럼.”

    태준의 말은 초점이 조금 빗나간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래서 더 태준스러웠다.

    저런 장난이 빠진다면 태준이 아니지.

    “그래, 그런 처가를 얻기 위해 우리 윤 배우는 어떤 여성을 꼬시고 있으신가?”

    더 물러 날 수 없었던 민수가 회심의 공격을 날렸지만 태준은 태연하게 민수의 말을 받아넘겼다.

    “하. 이 나는 내가 이미 다 가졌기 때문에 그런 처가가 필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예쁜 아내라…. 그건 좀 필요할 지도 모르겠네.”

    민수의 공격력은 역시 태준에게 타격을 주긴 무리였나 보다.

    설아는 그렇게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태준과 민수를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민수와 배우들은 각자 설 연휴를 나름 즐겁게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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