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14화 (114/325)

# 114

3

윤 엔터 홍보팀 직원들은 모두 모여 찬진이 홍보용으로 쓰라고 보내준 설아와 민수의 대련 장면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1분이 겨우 넘는 짧은 영상이었지만 영상이 끝난 뒤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하였다.

오직 신음과 한숨, 터져 나오는 탄성이 홍보팀 사무실에 가득 찰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가까스로 정신을 추스른 직원들은 이제 이 영상을 어떻게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열띤 토론을 시작하였다.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가는 도중에 한 직원이 홍보팀장에게 원론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거 쓸 수 있겠습니까?

이거 따로 메이킹 영상으로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우선 보기에 엄청 화려하고 멋있긴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안 믿을 거 같은데요.

우리야 저게 원 테이크로 찍은 편집 없는 영상이라 걸 아니까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사람들 눈에는 그냥 영화 영상 잘라온 것처럼 보일 겁니다.

나중에 영화가 나온 다음에는 모르겠지만, 지금 저걸 올리는 건 별로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홍보팀장 이미영은 직원이 말하고 있는 바를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애당초 메이킹 영상으로 홍보를 할 생각이 없었던 윤 대표는 당연히 영화 촬영 중에 잡스러운(?) 카메라가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받은 영상은 촬영용 카메라로 찍은 것이었고, 덕분에 화질이 선명하고 퀄리티가 높은 건 좋았지만 이건 누가 봐도 그냥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그러니 무편집 영상이라고 우겨본다 한들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에 설마? 라는 생각이 항상 따를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게 되고, 진짜 편집과 특수효과까지 가미된 영상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면 그때는 이 영상이 무편집 영상이란 것을 믿겠지만, 사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이 믿는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게다가 만약에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된다면, 결국 홍보팀에서 영화 촬영 영상을 대놓고 뿌려서 홍보를 하는 셈인데, 요즘 사람들은 그렇게 직접적인 홍보에는 조금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다.

애당초 미영이 원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냥 촬영장에서 혹시 홍보용으로 쓸만한 평범한 영상이 있으며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윤 엔터 배우들의 친분이라는 기사를 쓸만한 사이 좋게 이야기하는 민수와 태준의 다정한 모습이라든지, 부자간의 진검 승부 같은 기사를 쓸 수 있을 만한 태준과 강철이 열띤 토론을 하는 모습이라든지.

그런 영상을 유출된 것처럼 슬쩍 올려서 자연스럽게 사람의 관심을 끄는, 그런 평범한 방법을 쓰려고 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런 평범한 영상을 원했던 건데, 홍보용 영상을 원한다는 자신의 요청에 최고의 영상이 있다며 강환과 찬진이 합심해서 이 영상을 보내온 것이다.

워낙 뛰어난 영상이라서 보자마자 직원들이 흥분하는 바람에 미영까지 덩달아 냉정함을 잃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직원의 말처럼 이건 그냥 빛 좋은 개살구였다.

미영은 아무리 홍보팀이 계획하는 것이 개봉 전까지 사람들의 관심을 계속 끌어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 관심이 노이즈 마케팅처럼 흘러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윤 대표의 마지막 작품일 것이 거의 확실한 이 영화에 사소한 오점 하나라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결국 이 영상은 그냥 아무런 의미 없는 영상이었다.

그냥 엄청나게 멋있기만 할 뿐, 정작 홍보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영상.

그래도 보고 엄청나게 기분 좋고 잠시 설레긴 했으니 전혀 의미가 없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걸 못 쓴다는 생각에 허탈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는 역작용을 막을 순 없었지만 말이다.

한 직원의 말에 많은 의견들이 다 공염불이 되어버리고, 사람들이 허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데 그나마 빨리 정신을 차린 미영이 다시 촬영팀 쪽으로 연락을 보냈다.

이런 거 말고 따로 찍어놓은 소소한 영상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한참을 촬영팀 여기저기에 수소문하던 미영은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 한숨만 쉬고 있었다.

결국 촬영 중에 배우들의 신경을 건드릴 수 있는 사소한 장치조차 거부하는 윤 대표의 고집과 한동안 독립영화만 찍어서 홍보에 대해서는 완전히 감을 잃은 김찬진 감독의 무지가 일으킨 참극이었다.

그렇게 늘어져 있는 홍보팀 사이에서 한 직원이 부지런히 전화기를 돌려대고 있었다.

몇 명에서 전화를 돌렸을까.

잠시 결과를 기다리던 직원은 자신의 컴퓨터로 넘어온 영상을 확인하고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미영에게 뛰어갔다.

“팀장님 있습니다. 영상이 있어요. 여기 와서 이것 좀 보세요.”

직원의 말에 모든 직원이 모니터 앞에 모여들었다.

영상은 휴대폰으로 촬영된 영상이었다.

조금 거리가 있는지 그렇게 화질이 좋진 않았지만, 배우들의 얼굴을 확인할 정도는 되었다.

영상은 방금 자신들이 보고 흥분했던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이기에 외부로 흘리기에 더없이 좋은 영상이었다.

지금 미영이 딱 필요한 그런 영상, 미영은 조금 흥분된 기분을 가라앉히며 직원에게 이 영상의 출처를 물었다.

“아… 이건 말이죠. 그 매니저 팀에 막내 있잖습니까? 조형우라고…..”

그렇다.

이 영상은 형우가 찍은 것이었다.

형우는 민수랑 설아와 함께 민수의 부모님을 뵙고 온 후부터 설아랑 더욱 죽이 맞아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설아를 보면서 항상 엄청나게 성공한 배우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형우는 그때부터 설아의 사진과 영상을 조금씩 찍어 놓고 있었다.

나중에 설아가 데뷔를 하고 유명한 스타가 되면 그 후에는 자신이 지금 찍어 놓은 자료들이 의미 있는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었는데 딴에는 훗날 자신이 케어할 수도 있는 배우를 위하여 사전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돈이 있어도 구하지 못할 영상이나 사진들이기 때문에 형우가 설아를 촬영하는 마음은 사뭇 진지하고 경건했다.

그리고 이 영상은 그런 설아를 몰래 촬영하던 형우가 휴대폰으로 작정하고 찍은 영상이었다.

그날 설아의 모습이 너무나도 우아했고, 민수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어쩌면 좋은 그림이 나올 거 같은 데다가 촬영이 시작되기 전 설아가 형우에게 몰래 민수를 좀 찍어 달라고 따로 부탁까지 했었기 때문에 형우의 촬영은 거침없었다.

특히 설아와 민수가 연기할 때는 강철이나 진성과 촬영을 같이 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민수는 누가 자신을 찍든 말든 전혀 구애받지 않는 성격이다 보니 별 간섭 없이 무난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형우가 보내온 영상은 한 개가 아니었다.

민수가 촬영 중에 했던 기묘한 액션들, 특히 지붕에 올라갈 때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멋들어지게 한발로 벽을 차고 한 번에 뛰어 올라가는 장면과 날아오는 화살을 잡아채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들은 조금만 만지면 정말 좋은 홍보영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박이야….”

작게 혼자서 중얼거리는 미영에게 직원은 다시 다른 영상을 보여주었다.

직원이 미영에게 이번에 보여준 영상은 설아가 수연을 뒤에서 꼭 껴안고 있고, 수연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안겨 있는 영상이었다.

“이거…. 엄청 귀엽잖아……”

영화와는 상관없는 영상이었지만 영상 자체가 워낙 귀여웠다.

애당초 굉장한 미모를 자랑하는 여배우 둘이었다.

그 둘의 천진한 모습에 왠지 기분 좋은 느낌이 들어 미영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탈출에 실패하고 퉁퉁 부은 표정의 수연이나 그런 수연을 포근하게 안고는 헤헤거리고 있는 설아는 왠지 나이가 바뀐 듯한 느낌을 주고 있었고, 둘 사이가 너무나도 친밀해 보여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고 있었다.

영상 속에 여배우 둘은 나이가 바뀐 친한 자매처럼 정다워 보였다.

미영은 이 영상을 보는 순간 이건 분명히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좋은 영상이 너무 많네요.

이거 괜찮은 거 같아요. 매니저들한테 연락을 넣으세요.

앞으로 촬영 중에 윤 대표님한테 걸리지 말고, 몰래몰래 배우들 영상을 찍으라고요.

만약 걸리면 제 이름을 대라고 하세요.

대표님하고 제가 단판을 테니.

그래도 가능하면 안 걸리는 게 제일 좋겠지만요.”

그렇게 지시를 내린 이 팀장은 겨우 단서를 발견하고 마음 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직원들에게 손뼉을 치며 이제 작업을 시작해 보자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까보다 원활한 분위기로 어떤 식으로 영상을 편집할지 의견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날 유튜브 사이트에 한 영상이 올라왔다.

[반도의 흔한 액션 배우] 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민수가 지금까지 촬영 중에 해왔던 몇 가지 기발한 액션들이 짤막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 대망의 대련 장면까지 대충 20분 정도의 짧은 영상이었지만 그 파장은 작지 않았다.

편집은 겨우 영상과 영상을 합치는 작업뿐이었고, 연기를 시작하기 전과 마치는 순간까지는 전혀 편집하지 않은 데다가, 어떤 영상에는 민수가 연기 전에 무술 감독과 어떻게 할 거라고 설명하는 부분까지 들어간 것도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영상의 진위를 의심할 수 없었다.

영상 밑에는 수많은 사람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미친

-저거 뭐야? 저거 민수형이잖아.

-민수형 요즘 영화 찍는구나. 액션영화인가?

-저번달에 윤태준이랑 윤강철이 찍는다고 한창 시끄러웠던 영화가 우습게도 주연이 정민수다.

-아 그게 민수형이 찍는 영화였어? 왜 난 몰랐지

-모든 매체가 강철하고 태준에게만 포커스를 날리니 몰랐을 수밖에.

사람들은 뒤늦게 민수가 주연임을 알게 되기도 했고.

-그런데 영화 대체 뭐야? 저거 무협이야? 사람이 화살을 손으로 잡네. 어? 촉이 안달리고 약하게 쏘긴 했지만 저게 말이 되는거야?

-원래 사람이 쏘는 모습찍고 컷 자른 다음에 옆에서 화살 던져 주는거 받는 것만 찍는 방식으로 촬영하는 거 아닌가? 저건 왜저래?

-와 미쳤어, 대체 합을 얼마나 맞춰봤길래 저걸 저렇게 한큐에 가지?

-일분동안 서로 공방합 맞추는거 실화냐?

말도 안 되는 액션에 기막혀하기도 했으며

-어 그런데, 저기 저 여배우 왠지 익숙한데….. 많이 본 여자인데.

-저기 나오니 배우긴 한데…. 왜 익숙한데 본기억이 안 나지

-그거네 그 여신 바텐더. 이카루스 뮤비에 나온 게네.

-윤설아 란다. 윤태준 여동생. 이번에 저걸로 데뷔

-앜. 아빠가 윤강철에 오빠가 윤태준이야. 타고난 유전자

-쟤도 엄청나다, 일분 동안이나 검을 계속 휘두르네

-무슨 무협에 나오는 무당파 여고수인줄.

-저렇게 입혀 놓으니까 또 다르네.

-여신 바텐더 내가 격하게 아낀다.

-응 니 관심은 필요없어

사람들이 설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그나저나 정민수 대단하다. 저게 하루 이틀 해서 될게 아닌데. 드라마 끝나고 미친듯이 저것만 했을 거 아니야? 어쩐지 이제 막 뜨기 시작했는데 예능 같은 것도 전혀 안나온다 해서 이상하게 생각했더니.

-민수형이 된 사람이긴 하지.

자기 욕하던 아해들은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고, 무고 날린 뇬은 철저하게 고소해 주시고 기자들한테는 가볍게 일침 날려주시고 자기가 번돈은 쿨하게 새 생명을 위하여 투척해 주시고 겉멋들 시간에 저렇게 노력하시다니 내가 내 x알을 탁 치게 된다.

-ㅋㅋㅋㅋ 예전에 정민수가 그x 고소할 때 자기들도 인실좆 될까봐 찌그러져 있던 찌꺼기들이 민수가 쿨하게 넘어가니까 은근히 뒤에서 찬양하고 있는거 알고있냐?

처음에 지들이 미친듯이 깐주제에 말이야.

-ㅅㅂ 몰랐잖아. 알고 나선 안깜.

-ㅅㅂ 음주운전이나 도박, 마약하기전에는 안깜

-저거 보니까 더 못까겠어. 진짜 칼들고 달려오면 난 죽을듯

-진짜 움직이는 거보면 저런애가 와서 삥뜯으면 내돈 다줬겠다.

-그래 민수형이 너같은애한테 돈뜯어서 가난한애들 빵사줬겠지.

그렇게 과거의 민수의 행적이 다시 한번 회자되기도 했다.

어쨌든 홍보팀의 영상은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용의 울음”을 상기하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민수의 영상을 보고 용의 울음이 자신들이 생각하던 그런 조금 지루한 사극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들이 자신에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을 때, 민수는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