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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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신을 찾아온 팬클럽 임원들을 처음 봤을 때 민수는 살짝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다 자신의 부모뻘의 어른들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처음 만난 조윤희 선생님부터 모든 분이 다 그 연배의 분들로 보였다.
어른들은 민수의 어깨를 두드려보면서, 자신의 자식처럼 자랑스러워하셨다.
수정은 민수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오늘 민수를 만나러 오신 분들에 대한 설명해 주었다.
수정의 말을 들어 보니 팬클럽 “민수네”의 임원들은 조윤희 선생님처럼 자식을 잃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이란다.
부모를 잃고 이제는 번듯하게 잘 자란 민수, 그들은 민수의 모습에서 이제는 없지만 잘 자랐으면 민수같이 훌륭하게 컸을 자신의 자식들을 추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식을 잃고 심해진 우울증이 그래도 민수를 보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힐링 멘토” 내에서 가장 흔한 정신 질환인 우울증을 앓고 계시는 많은 어르신이 그렇게 민수를 응원하고 있단다.
그분들은 동질감이 느껴지는 민수가 좋은 모습을 보일수록 더 기운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신다고 한다.
물론 “민수네”가 탄생한 계기가 자신이 잘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욕을 먹을 때 언론사를 욕하기 위해서였다는 사실은 조금 아이러니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은 자신이 그들에게 힘을 주고 있다고 하니 그건 민수로써도 상당한 영광이었다.
그렇게 수정의 설명을 듣고 나서 보니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그분들의 모습 하나하나에서 민수는 코끝이 살짝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왠지 민수도 자신의 어깨를 두드리는 어른들이 마치 자신의 부모님 같기도 했다.
자신의 부모님도 살아 계신다면 아마 저렇게 자신을 자랑스럽다며 어깨를 두르려 주시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자 조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고 말이다.
잠시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감사 인사를 건네던 중에 민수는 한 어른이 저쪽에 앉은 강철을 슬쩍슬쩍 살펴보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차마 말은 못 하고, 강철을 힐끔 훔쳐보는 모습에서 민수는 어르신의 뜻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연배가 연배이니만큼 팬심은 아무래도 자신보다는 강철이나 진성에게 쏠려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어려운 걸음을 했는데 기회가 왔을 때 팬심이라도 채워야 하지 않겠는가?
민수는 즐거운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강철과 진성에게 인도했다. 그리고 강철과 진성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인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 드렸다.
강철과 진성도 민수의 팬이라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몰려오자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즐거운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며 웃으면서 사인을 해 주었다.
그리고 민수는 강철과 진성의 사인을 받고 즐거워하는 어르신들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조금 예상 밖에 일이었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민수는 마치 부모님이 자신이 존경하는 배우들의 사인을 받고 즐거워하는 것을 본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민수는 밥을 먹는 와중에 아까 팬들이 강철에게 다가가 사인을 받은 것이 궁금했는지 자신에게 이것저것 캐묻는 수연에게 조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아…..”
순간 일행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 그랬군요. 하긴 이런 데 나와서는 아들의 사인보다는 역시 우상의 사인이 더 필요하겠죠.”
“미안해, 민수야. 내가 나쁜 년이야. 그런 것도 모르고… 널 놀릴 생각부터 했다니…”
당황하는 수연과 설아의 모습에 민수는 피식 웃으면서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그래도 왠지 힘이 더 나는 기분이에요.
왠지 저분들은 제 부모님처럼 끝까지 저를 응원해 주실 것만 같으니까요.”
민수의 말에도 분위기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수연은 조금 미안해하면서도 죄책감을 가지는 듯한 이상한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만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숙연해지는 분위기에 민수는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설아가 적당한 시기에 말을 돌려주었다.
“어때요? 민수 오빠의 액션 연기가. 아마 다들 엄청나게 놀랬을 걸요.”
설아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수연은 기다렸다는 듯 웃으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빨리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민수의 연기를 보고 놀란 것도 사실이었다.
그들도 실제로 눈으로 민수의 액션 연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무술 감독이 침이 마를 정도로 칭찬하던 그 액션, 액션을 전혀 모르는 수연이 보기에도 민수의 액션에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게, 나도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보다 보니 배우들이 저렇게 결투씬을 찍거나, 전쟁 장면을 찍는 건 많이 봤었는데, 오늘 본 건 조금 느낌이 달랐어.
더 긴장된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잘하더라. 정민수. 멋있었어.”
남자 같은 말투로 민수의 어깨를 팡팡 두드린 수연은 웃으면서 민수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이 진짜 옆집 형 같아서 민수는 피식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준도 그런 수연을 조금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민수의 액션 연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건 젊은 배우들이 그룹만은 아니었다.
식사를 마치고 민수의 팬들에게 한바탕 사인을 해준 강철과 진성은 잠시 쉬는 시간에 아까 오전에 촬영한 부분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일행에는 같이 식사를 나눈 강환도 끼어있었다.
“하…. 강철아 넌 알고 있었냐?”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형님.”
“그 왜, 민수 말이야. 저렇게 액션 연기에 능숙하다는 걸 말이다.”
진성이 감탄을 내뱉으며 말을 꺼내자 강철은 조금 쓰게 웃으며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몸이 날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저건 타고 난 거야. 민수 보다 앞서서 여러 스턴트맨들이 액션 연기를 했었잖아?
그런데 마지막에 민수가 연기한 거 밖에 기억이 안 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그 녀석의 동작들은 더 멋이 살아 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정말 대단하긴 하더구나.”
“에이, 더러운 세상. 저렇게 잘생긴 놈이 저렇게 액션까지 잘하네 그래.
형님은 좋겠수다.
남자 배우 두 놈이 아주 날아다니니 말이요.
한 놈은 연기력이 점점 미쳐가고, 한 놈은 말 그대로 그냥 날아다니고 말이오.
윤 엔터가 노가 났어. 아주”
옆에서 툴툴거리는 강환의 말에 강철은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강철은 강환의 말을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잘한다고만 생각했던 윤 엔터의 배우들은 정말 자신의 기대 이상이었다.
같이 연기를 해보니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예전에 역대급 기록을 세운 레전드를 찍을 때도 이렇게 촬영이 원활하게 흘러가지는 않았었다.
태준은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출 때마다 자신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사실 강철이 민수의 액션 연기를 오늘에서야 확인하게 된 이유는 강철이 지금 자신의 연기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강철은 요즘 그런 태준을 보면서 새삼스레 격세지감을 느꼈다.
첫날에는 약간 긴장한 듯 제 연기를 못하는가 싶더니, 어제 찍은 장면에서는 놀랍도록 집중해서 자신조차 긴장시키는 뛰어난 연기를 펼쳐 보였다.
마지막까지 아들 앞에서 위대한 아버지가 되고 싶은 강철은 제 생각 이상인 태준의 기량 때문에 더 집중하고, 더 몰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찬진이 방방 뛰더라도 민수의 연기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
다른 것에 신경 쓰다가 혹시라도 아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게 된다면, 강철은 아마 부끄러워서 잠을 이루지 못하게 될 것이다.
태준이 기대 이상의 연기를 보여 줬다며 오늘 민수가 보여준 액션은 그야말로 상상 그 이상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강철은 아직도 왜 민수의 액션이 다른 액션과 다른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뭔가 다른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니, 자신의 연기경력에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였다.
분명한 것은 민수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뛰어난 액션 배우라는 것이다.
거기다 수연과 설아까지 강철이 흡족할 정도로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강철은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모두 모아 한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이 상황에 감사하고 있었다.
어쨌든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배우들은 지금 이렇듯 상당한 시너지를 보이고 있었다.
이제 3월이 되어 진성이 잠시 촬영장을 떠나고, 윤숙과 소희가 극에 합류했을 때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현재로서는 그냥 더할 나위 없이 좋을 뿐이었다.
“윤숙이가 와도 별로 다르지 않을 거야. 준비가 긴 만큼 완벽하게 준비해서 오겠지.”
진성의 말에 강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강철도 윤숙을 누구보다 믿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윤숙 스스로 준비 기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합류를 늦추었으니, 아마 올 때는 완벽하게 준비해서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소희도 마찬가지, 지금 중국어로 연기하는 건 윤 엔터의 모든 배우 중에 소희가 가장 뛰어났다.
소희에게 중국어는 그냥 한국말이랑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에 평소에 연기하던 실력이랑 중국어로 연기하는 능력이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소희의 중국어 실력과 과거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게 된 강철은 차라리 소희가 한국어를 저 만큼 능숙하게 하는 것에 놀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민수가 설아랑 찍은 거 있잖아요? 그거를 홍보영상으로 쓰고 싶다고 하던데요. 홍보팀에서 대표님이 연락을 안 받는다고 꼭 전해 달랍니다.”
“홍보영상이라…..”
“요즘은 예전하고 달라요. 영화 찍는 동안 관심 안 끊기게 홍보도 자꾸 해줘야 한다니까요.”
벽창호 같은 선배들 사이에서 그나마 요즘 사람인 강환은 홍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강환은 자신의 말에도 쉽게 허락의 뜻을 표하지 않는 강철을 보면서 강환은 어쩔 수 없이 자극적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게 고루하게 구니까 진룡 따위한테 얻어터지기나 하는 거요. 형님.
시대가 바뀌었다니까요. 형님이 마지막 영화 찍고 강산이 한번 변했다고요.”
강철은 강환이 묵직하게 팩트로 공격하자 잠시 할 말을 잃고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런 강철에게 강환은 연속하여 다다다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니, 태준이나 민수 수연이는 별말 안 해요?
지금 크랭크인 들어가고 거의 보름이 넘은 상황에서 아무런 홍보도 안 하고 있는데도?
이러면 사람들이 다 잊어버린다니까요.
우리 영화 개봉할 때가 되면 어? 저 영화 뭐지? 이런다니까요?”
애써 정신을 차린 강철은 윤 엔터의 다른 젊은 배우들도 홍보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강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강환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 진짜, 그 대표에 그 배우 아니랄까 봐, 하…. 정말.
제가 연극을 할 때를 생각 해봐도, 제 얼굴 딱 박힌 포스터로 홍보하는 거랑 그냥 그림 포스터로 홍보하는 거랑 관객 수가 다르다고요.
그러니까 홍보 좀 해요. 홍보 좀.
그 홍보팀이 알아서 한다니까, 그냥 대표님이 허락했다고만 전할게요.
그리고 연락 좀 받읍시다.
홍보팀 속 터지겠네 아주.
그리고 그 작품 할 때는 아무하고도 연락 안 하는 거.
그거 아주 더러운 버릇이에요. 그러지 좀 맙시다. 거 좀.”
강환은 자기가 할 말을 다 마치고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꽁무니를 뺀 강환에 모습에 진성은 피식하고 웃으며 당황한 듯한 강철을 바라보았다.
“저놈이 불만이 많았나 보다. 대체 얼마나 부려먹은 거야?”
“하… 저놈 참….”
강환을 항상 부려먹은 게 사실이라 강철은 진성에게 뭐라고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였다.
그렇게 민수의 촬영 영상은 홍보팀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