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10화 (110/325)

#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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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예 대결이 시작되자 여러 명의 무장이 차례로 나와 승부를 겨루었다. 화려한 공방이 이어지고, 승자는 자리에 남고 패자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오늘 저 안에서 합을 맞추는 배우들은 민 단장이 데려온 투지의 인원들이었다.

사전에 충실한 연습으로 단련되어 있고, 항상 합을 맞춰오던 투지의 단원들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무예 대결을 빛내주고 있었다.

그렇게 몇 명이 대결을 마친 후, 다음 도전자로 평의 호위무사가 무대에 올라섰다.

평의 호위 무사 역할을 맡은 배우는 민 단장의 수재자 중 한 명으로 이미 여러 영화에 악역으로 연기를 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이었다.

전생에서 민수가 투지에 있을 때도 알고 지내던 저 선배는 생긴 건 아주 우락부락하고 거칠어 보이지만 막상 공처가에 딸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주는 딸 바보였다.

하지만 외모 때문에 자주 사람들의 오해를 사곤 했는데 그때마다 침울해 있는 선배의 얼굴을 보며 단원들은 그 아픔을 같이 나누곤 했었다.

파괴적인 외모 때문에 가정적인 성품이 드러나지 않는 아주 전형적인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고 대신 평의 호위 무사. 태랑 입니다.”

태랑이 나선 후 몇 명의 도전자가 있었지만, 누구도 태랑을 넘보진 못하였다.

태랑은 평의 휘하에 있는 장수들에게는 아량을 보였지만, 황제 휘하의 장수들은 거칠게 처리하였다.

오늘 황제의 명으로 대회에 참가한 장수들은 앞으로 다시는 검을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는 태랑을 보며 황제는 입맛을 다시며 자신의 호위 무사에게 작게 물어보았다.

“어떤가? 저놈은.”

이십 년을 넘게 자신을 섬긴 호위무사 “탄”은 황제가 가장 믿고 있는 자신의 측근이었다.

그 호위무사 엮은 강환이 맡고 있었는데, 이 호위무사가 중반부 반전의 주요 인물이었다.

“대단합니다. 제국에서 일 대 일이라면 저놈을 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역시 그렇군.

가치 없는 딸 하나로 상대가 가진 가장 강한 무기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했으니…. 손해는 아니군.

운이 좋으면 저 아이의 고운 미색으로 홀려서 내 쪽으로 당길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잠시 도전자가 끊긴 상황, 황제가 마음속으로 태랑을 우승자로 확정 지으려고 하는 찰나, 연회 구석에서 대결을 지켜보기만 했던 진이 천천히 걸음을 옮겨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황태자와 연화 공주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처음 보는 무사가 태랑에게 도전하는 것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황태자는 연화의 처지가 안타깝긴 했지만, 이렇게 진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았기에 인상을 잔뜩 구긴 채로 진을 노려보았고, 연화는 생각지도 못한 진이 나서자 그저 멍한 눈으로 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공주 연화의 호위무사 진입니다.”

황제는 진이 연화의 호위무사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파안대소를 터트리며 크게 웃었다.

저 가녀린 몸을 가진 무사가 공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고 말이다.

“하하하! 공주의 호위가 공주를 지키러 나왔단 말이지? 그래 어디 한번 공주를 지켜보아라.”

그렇게 시작된 대결, 진과 태랑은 사람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진은 자신보다 근력이 강한 태랑과 검을 맞대지 않고, 최대한 흘리면서 태랑의 빈틈을 노리고 들어갔다.

선배와의 전투는 설아와의 전투와는 다르게 철저하게 합을 맞추는 액션이었다.

이미 어떤 식으로 움직일지 정해진 그런 액션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민수는 최대한 박진감을 살리기 위하여 계속 스치듯이 피하면서 동작을 이어갔다.

그리고 아마 영화 끝날 때쯤이 되면 이런 살 떨리는 회피 동작이 민수의 상징처럼 굳어질 것이다.

무술 감독인 민 단장은 이 장면을 태랑의 무기가 망가지는 것으로 끝내기로 했고 지금 민수가 태랑과 검을 맞대지 않는 이유에 그것도 포함되고 있었다.

태랑이 무기가 사실 아슬아슬하게 금이 간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 가든지 태랑의 검이 부러지면 액션을 끝내기로 합의를 본 상황이니 민수는 가장 멋있게 태랑의 검에 큰 충격을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극 중 진이 태랑 보다 근력이 부족하다는 설정인데 자신이 뜬금없이 태랑의 검날을 날려 버린다면, 설정파괴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민수는 이점을 잘 고려해야 했다.

결국 민수는 강한 기합과 함께 허리를 최대한 이용하며 양손으로 검을 잡고 태랑의 검날에 옆면을 가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챙~”

진의 혼신이 담긴 일격에 태랑의 검이 반 토막 났고, 태랑은 아쉬운 눈으로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본 무사인 진이 제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태랑을 제압하자 무장들은 놀란 눈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조금 삐딱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승자로 결정된 진은 황제의 앞으로 불려 나갔다.

황제는 전혀 예상하지 않은 무사가 태랑을 제압하자, 진을 은근히 탐내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사 진이 우승자가 되었다. 진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진은 잠시 생각을 한 후 황제에게 자신의 청을 올렸다.

“전 공주님의 호위무사로 공주님을 위하여 검을 드는 자이옵니다.

그러니 공주님이 원하지 않는 혼인을 물러 주시고, 공주님이 원하는 자와 혼인할 수 있도록 살펴 주시옵소서.”

황제는 진의 말에 조금 이채가 띤 눈으로 진을 살피고서 진에게 넌지시 유혹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에게 말했다.

황제 입장에서는 이런 무사가 공주의 짝이 되어 자신을 섬긴다면 전혀 나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주가 네 것이 될 수도 있다.

난 그렇게 명했고 말이다. 그래도 뜻을 바꿀 생각이 없느냐?”

“꽃은 대지 위에 피어있을 때는 그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바라볼 수 있지만, 화병에 꺾어다 놓으면 금방 시들어 버리옵니다.”

가타부타 더는 언급을 자제한 채 고개를 숙인 진을 보며, 황제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는 공주가 어려서부터 무예만 익히고 돌아다니는 바람에 고관들 사이에서 평가도 좋지 않은 데다, 평의 눈치를 보느라 황실과 연관되지 않기 위하여 연화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저 반반한 여식은 쓸 데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쓸모없는 것이 생각보다 대어를 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는 황제의 기분 좋은 오산이었다.

“그래 너의 뜻을 존중하겠노라.

다만 그 청은 공주를 위한 부탁이요, 너를 위한 것이 아니니 한가지 청을 더 들어주겠노라.

무장 진은 너 자신을 위한 청을 한 가지 더 올리도록 하여라.”

황제의 말에 별다른 생각이 없던 진은 그냥 생각나는 데로 한가지 청을 올렸다.

“천한 제가 감히 폐하의 어주 한잔을 하사받기를 청하옵나이다.”

단청 아래에서 황제의 자리를 올려다보던 진은 저 위에 있는 황제는 무슨 술을 마시고 있는지 조금 궁금했었다.

진이 어떤 청을 할까 궁금해하던 황제는 진이 엉뚱한 청을 올리자 크게 웃으며 진에게 술을 한잔 하사해 주었다.

“하하하. 그래. 황실 제일의 무장이 아니더냐. 내 너에게 친히 어주를 하사해 주마.”

황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진에게 술을 한 잔 따라 주었다.

진은 황제가 내린 술을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자리에서 바로 들이켰다.

조금 고급스러운 느낌의 술이었지만, 단상 아래에서 마시던 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자신이 하사한 술을 마시는 진에게 황제가 넌지시 지나가듯 물어보았다.

“진, 과연 훌륭한 무예였다. 혹시 나를 섬길 생각은 없느냐?”

황제의 제안에 진은 고개를 숙인 후 말을 돌리며 자연스럽게 고사했다.

“제국의 모든 무장이 황제 폐하를 섬기고 있사옵니다. 신의 충심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황제는 진이 말을 돌리며 자신을 거절하고 있음을 알고 입맛을 다셨지만, 아무리 황제라도 황족을 호위무사를 함부로 뺏을 순 없는 노릇, 그냥 천천히 진을 관찰하기로 마음 먹을 뿐이었다.

거의 모든 중심 배우들이 참여하고 영화로도 최소한 10분은 방영될 연회 장면과 그에 부속된 여러 장면들의 촬영은 그날 온종일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날 점심시간에 민수는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게 되었는데, 그건 민수의 팬클럽인 “민수네”에서 민수를 위하여 최고급 도시락을 준비해 배우들과 스텝들을 대접한 것이었다.

아기자기한 글씨로 “민수네” 라고 써진 도시락을 보며 민수는 순간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아이돌의 팬클럽과는 다르게 배우들의 팬클럽은 따로 회비를 받지 않았고, 팬클럽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살펴보면 그냥 그 배우에게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배우마다 정성을 다하는 열성 팬들이 분명 존재하겠지만, 어지간한 배우가 아니고서야 사실상 이런 조공을 받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런데 숫자도 얼마 안 되는 자신의 팬클럽에서 이런 걸 준비하다니, 민수는 조금 감동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했다.

민수는 도시락을 한참 바라보다 도시락의 내용물이 예전에 리온의 팬클럽인 “태양”에서 준비했던 도시락과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 사단을 계획한 주모자가 수정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예전에도 자기가 기죽는다고 “힐링 멘토”에서 모금을 준비했던 과거가 있는 만큼 아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조공을 준비한 날짜가 오늘인 것도 배우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큰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바로 오늘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하는 김에 모든 배우를 대접하기 위해서 말이다.

영화 촬영 스케줄을 꿰고 있는 수정이 팬클럽의 회장이기에 날짜를 잡는 것도 매우 쉬었을 것이다.

배우들도 조공 첫 타자가 민수라는 사실에 조금 신기한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 민수도 만약 조공이 온다면 태준이 가장 먼저일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사실 조공을 보낼만한 윤 엔터 배우는 태준이 유일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오…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조공?”

설아는 예전에 민수에게 들었던 조공을 눈으로 처음 확인하고는 매우 신기한 듯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 설아를 보며 귀엽다는 듯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지켜보던 수연은 옆에 태준을 툭 건드리고는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윤태준이 팬클럽이 몇 명인데 “민수네” 보다 행동이 느려? 이거이거 윤태준이도 아직 멀었구만.”

태준은 조금 약 올리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하는 수연을 보며 피식 웃고는 검지로 살짝 딱밤을 날렸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시락을 가져온 팬클럽 회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민수는 바라보며 수연에게 이야기했다.

“아니, 솔직히 정 배우 팬클럽이 좀 이상할 정도로 유별나다는 생각은 안 드냐? 그리고 저기 오신 분들 좀 봐”

수연은 태준이 가리키는 대로 민수와 대화하고 있는 팬들을 바라보았다.

이미 티브이에 출연하여 얼굴을 알고 있던 조윤희부터 전부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어른들뿐이었다.

그 모습에 수연은 태준의 말대로 조금 이상하긴 하다고 생각했다.

원래 이렇게 현장까지 따라오는 팬클럽 임원들은 거의 젊은 여성들이나, 중년의 남성들이었기 때문이다.

저렇게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 배우를 만나러 촬영장에 오시다니, 조금 드문 일이긴 했다.

게다가 민수와 인사를 나눈 어르신들은 민수의 인솔하에 강철과 진성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수줍은 얼굴로 강철과 진성에게 사인을 받는 어른들을 보며 수연은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저분들이 민수의 팬만은 아닌 모양이네.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캬….. 역시.”

수연이 말을 마치자 태준도 피식 웃으면서 환한 표정을 지으며 밥을 먹으러 오고 있는 민수를 바라보았다.

“하여간 특이하다니까, 배우도 특이하고 팬클럽도 특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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