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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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지금도 리온과 틈틈이 연락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카루스가 중국으로 콘서트를 하러 간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중국에서 돈을 잔뜩 끌어 오겠다고 당차게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에 생생했다.
역시 땅이 넓은 만큼 돈 나오는 스케일 자체가 한국과는 급이 다르다고 했던가?
그러고 보니 리온은 자신이 돈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사실을 민수에게 솔직히 말하곤 했었다.
확실히 돈을 많이 버는 게 나쁜 일은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이카루스가 생각보다 중국에서 인기가 엄청나.
사실 진룡에서 일방적으로 판타즘을 밀어줘서 그렇지 가수로써 본다는 판타즘보다는 이카루스 아니겠어?”
“그런데 지금까지 그래도 진룡쪽이랑 계속 계약을 했었잖아. 갑자기 노선을 변경한 이유가 뭐야?”
민수의 의문에 태준은 상황이 재미가 있었는지 작게 웃음을 터트리고는 자신이 알고 있는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이게 진짜 웃긴대, 예전에 송포유 촬영할 때 RD 쪽에서 작업을 쳐서 너한테 근거 없는 낭설들이 퍼져 나왔잖아.
그런데 그걸 지금 날개 쪽에서 알게 된 거야.
일반적으로는 그때 바로 알아채는 게 당연한 거였겠지만 날개의 대표님이 또 워낙 그쪽으로 무관심하잖아.
짜라시 애들하고는 전혀 상종 안 하고 지내고, 알고 지내는 기자라고는 4대 메이저 기자 정도였는데, 그 사람들은 그 일 하고는 무관한 사람이니까 그 당시에는 알 방법이 없었어.
그래서 그때는 발만 동동 구르면서 드라마가 망하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그냥 지켜보기만 한 거지.
사실 타깃이 리온인 것도 아니었고, 뭔가 요란하긴 했지만 별로 문제없이 그냥 그렇게 넘어가긴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그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들이 제법 늘어났거든.
지금 천지가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니까 나머지 메이저 애들도 왜 저렇게 됐는지 알아보게 된 거야.
정민수 잘못 건드리면 X 된다나? 요즘 언론사 애들이 은근히 하는 말이래.
어쨌든, 그래서 결국 지금에서야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 거지.
그걸 뒤늦게 알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가 버린 거야.
RD에서 드라마 망치려고 일부러 그랬다고 말이야.
날개에서는 그때 RD에서 드라마를 망치려고 했던 이유가 자신들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봐.
이카루스의 일반인 인지도가 판타즘의 일반인 인지도를 압도하게 될까 봐 수를 썼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이게 또 말이 되는 게, 리온이 배우로서 성공하게 되면 결국 아이돌에게 관심이 없는 어른들도 리온과 이카루스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버리잖아.
마치 예능에서 이름 날린 아이돌이 팬덤이 생겨나는 것처럼 말이야.
만약 그런 식으로 리온이 유명해져 이카루스가 완전 국민 아이돌로 취급받게 된다면, 사실 RD에서는 재미없는 일일 수밖에 없는 거야.
그러니 날개의 이런 추측도 나름 그럴듯한 근거가 있다고 할 수 있지”
“하… 그래서 그랬나?”
그러고 보니 요즘 리온이 연락할 때마다 조금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그 녀석의 말투에 그대로 묻어나는 바람에 무슨 일인가 싶어 자못 궁금했는데, 지금 그쪽 회사에서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고 있다니 이제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갔다.
하지만 한편으로 정우철의 삐뚤어진 영입전략에 대하여 모르고 있던 리온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루머가 퍼지면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물어뜯는 “태양” 이라는 막강한 팬덤을 가진 자신보다, 신인이라 인지도와 경험이 부족한 민수가 타깃으로 적당해 그런 작업을 당했다고 생각하기에 충분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판타즘 때문에 진룡에서 알게 모르게 이카루스한테 손해를 끼치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야.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쌓여 가는 중에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꾸역꾸역 넘기고 있었는데, 이번 일이 터지면서 완전히 마음을 돌려 버린 거지.
아마 내가 삼화랑 손잡고 중국에서 활동했던 거 보고 자신들도 당연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태준이 설명을 마치자 일이 내막을 완전히 파악한 민수는 이게 무슨 일인 가 싶었다.
그게 언제적 일인데 인제 와서 그런 식으로 폭발하다니,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날개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은연중에 이익을 보는 셈이니 결과적으로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리고 태준의 말 중간에 끼어든 미묘한 단어가 신경이 쓰여서 민수는 태준에게 확인 차 다시 한번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건 무슨 말이야. 날 건드리면 X 된다니?”
“아, 그거? 천지가 너한테 깐죽거리다 지금 4대 메이저에서 완전히 물러났거든.
예전에 군에서 경고받고, 정정기사 올린 것만 해도 치명적인데, 네가 신고당했을 때 유죄인 것처럼 쏘아대다가 그날 바로 무죄가 확정되는 바람에 물타기 할 틈도 없이 바로 과장, 허위기사로 찍혀버리게 된 거지.
워낙 그놈들이 교묘하게 기사를 쓰는 바람에 신고는 못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다 알지.
그때 그놈들이 개수작을 부리고 있었다는 걸 말이야.
결국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천지를 조금씩 외면하고 있는 분위기래.
언론사가 사람들에게 신뢰를 잃으면 그냥 삼류 언론사 취급받는 거지 뭐.
아직 그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4대 메이저라고 존중받던 시절은 다 갔다고 해야 하나.”
4대 메이저를 한 방에 보내버린 정민수.
요즘 기자들은 널 그렇게 부른다더라.
그때 네가 기자회견 했던 것을 보고 괜히 잘못 건드리면 조금 피곤해질 수 있다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나 봐.
참 재미있다고나 할까….”
즐거운 표정으로 썰을 풀어내는 태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민수는 대체 저 친구는 저런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나 싶기도 했다.
“아니, 윤 배우 그런데 넌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뭐 나라고 별다른 게 있나.
지금 홍보팀이 할 일이 없어서 그쪽으로 완전히 귀를 기울이고 있대.
혹시 진룡에서 무슨 수작이라도 들어올까 싶어서.
그래서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알게 된 거라고 홍보팀 이 팀장이 말해 주신 거야.
그러니 우리 정 배우도 앞으로는 홍보팀에 관심 좀 가져 봐.”
태준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좋은 정보이긴 했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지금은 우리를 방해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그렇게 된 거군. 그러면 촬영 중에는 별다른 일이 없다고 보면 되겠네.”
“그래. 연기할 때는 연기만 하자고, 연기만 말이야.”
태준의 말대로 연기할 때는 연기만 하는 게 민수의 가장 큰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다행히 그렇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 날.
오늘 진행될 촬영은 황실 연회 중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무예 대결 장면이었다.
이제 황제와 평의 세력 다툼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에 오르기 직전, 황제와 평은 서로가 가진 무기들을 하나라도 더 확인하기 위하여 서로를 자극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은 연회 중에 발생하게 된다.
평소 연화는 제국에서 가장 강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겠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평은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며 이제 슬슬 공주의 혼처를 알아봐야 하지 않겠냐고 운을 띄운다.
갑작스러운 평의 제안에 황제는 고민에 빠져들고, 평은 황제가 확답을 하기도 전에 그럼 누가 가장 강한지 무예 대결을 해 보자고 제안한다.
제국에서 가장 강한 사내들이 황궁으로 모여드니, 황궁에서 가장 강한 자가 제국에서 가장 사내가 아니겠냐는 논리로, 평은 지금 당장 무장들에게 무예 대결을 시켜보자고 것이었다.
이런 평의 제안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는데 첫째는 황제가 가진 무력이 어떠한지 가늠해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황족인 연화를 혼인이라는 족쇄로 자신의 진영에 확보하는 것이었다.
다만 평이 짐작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황제는 딸인 연화를 위하여 자신의 무기를 공개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황제는 이 상황을 제국 최고의 무사라는 평의 호위무사의 실력을 가름해 보는 기회로 삼기로 하고 적당한 수준의 무사 몇을 대결에 내보내기로 한다.
황제는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딸 정도는 가볍게 던져 줄 수 있는 그런 사내였다.
오늘 촬영은 연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황궁에서 연기하는 모든 배우가 다 같이 촬영에 임하게 된다.
특별히 감정을 교류하는 장면은 아니지만 민수는 그것만으로도 조금의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촬영장에는 모든 배우가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는 상황이었다.
가장 상석에는 황제가 그리고 그 아래 단에는 황태자와 태자비 그리고 그 건너편에는 최고 대신 평이 자리를 잡았다.
이번 연회의 상품이 될 공주 연화는 황태자와 태자비 바로 아래 단에 따로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평소에 즐겨 입던 경장이 아니라 하늘하늘한 궁중 예복을 입은 아름다운 연화의 모습은 뭇 남성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연회장 중앙에는 크게 비어있는 장소를 만들었고 그곳에는 연회 중에 풍악을 울릴 궁중 악사들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여러 무장이 자신의 위치에서 촬영 시작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수가 자리 잡은 곳은 무장들이 모여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촬영이 시작되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중앙에 궁중 악사들은 풍악을 울리는 척 연기를 시작했고, 촬영장에는 다들 즐기고 마시는 분위기가 되었다.
음악도 없는데 마치 음악이 있는 것처럼 흥겨운 분위기였다.
황제는 조금 심드렁한 얼굴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요즘 들어 황제는 자신이 평에게 조금씩 말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분명히 허점을 노린 것 같은데 자신이 공격하는 곳마다 평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결과 손해가 중첩되고, 자신의 세력만 조금씩 깎여 가고 있었다.
흐뭇하게 웃으며 연회를 바라보던 평, 평이 일어서서 손을 치켜들자 순간 궁중 악사들의 연주가 일제히 중지되었다.
황제의 명령도 없이 중지된 연회, 궁내에서 힘의 저울추가 어디로 기울었는지 바로 보여주는 이런 장면에서 황제는 깊은 모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황제는 억지로 이를 악물고 최대한 티 내지 않으며 화를 속으로만 삭이고 있었다.
“황제 폐하, 이제 공주님의 연치도 어느새 약관에 이르셨으니, 슬슬 혼처를 생각해 보셔야 할 때가 아닐는지요.”
“그래, 대신의 말은 옳으나 그 문제가 연회 중에 논의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만.”
황제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평은 웃으면서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갔다.
“공주마마께서 어려서부터 무예에 관심이 많으셔서 항상 제국 최고의 무사와 혼례를 치르시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여기 지금 이렇게 제국 최고의 장수들이 다 모였으니, 이 기회에 무예를 겨루어 이 중에 가장 으뜸인 자를 공주님의 부마로 삼으심이 어떠하올는지요.”
평의 제안에 황제의 미간이 살짝 구겨지며 잠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황태자는 순간 인상을 구기며 일어나 노성을 터트리려고 했지만, 옆에 태자비 현이 황태자의 손을 잡고 그의 행동을 만류했다.
자신을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젓는 현의 모습에 황태자는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상황이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기로 한다.
태자비 현은 평의 손녀였지만, 어려서 황태자에게 시집을 온 이후 항상 황태자를 위하는 진정 황태자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은근히 황태자를 핍박하려는 평의 의도를 막기 위해 황태자의 방패를 자처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마음속에는 본가의 위상보다는 황실의 안녕과 황태자의 평안함이 가장 첫 줄에 있었다.
비록 너무 어려서부터 오래 같이 지내다 보니 부부라기보다는 오누이 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그녀가 평보다 황태자를 더 위한다는 것은 황궁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답답한 궁에서 태자비까지 없었으면 아마 황태자는 지금처럼 제정신으로 살아 있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연화가 이를 악물고 아버지의 입만 바라보고 있었지만, 황제에게서는 연화가 기대하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대신의 말이 옳구나. 이곳에 제국에 충성스러운 무장들이 다 모여있으니 말이다.
그중에 으뜸되는 자에게 공주를 준다라…. 오늘 제국 최고의 무장이라 소문이 자자한, 대신이 총애하는 그 호위 무장도 볼 수 있겠구나.
그래, 내가 허락한다. 한번 마음껏 기량을 뽐내 보아라”
황제의 허락이 떨어지자 무장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중앙에 있던 악사들이 빠져나가면서 중앙에 큰 공터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진은 그 모습을 보면서 끌끌 혀를 차며 슬쩍 저 위에서 인상을 쓰고 있는 연화 공주를 바라보았다.
“정말 개판이군 그래. 태자가 말했던 것 이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