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
3
이번에 민수가 촬영할 영화의 제목은 “용의 울음”으로 결정되었고 중국으로 수출하는 버전은 “龍鳴”으로 정해졌다.
용의 울음은 어떤 가상의 제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황제 “성”과 최고 대신 (중국판에서는 승상) “평” 그리고 황태자 “천”의 궁중 쟁투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영화였다.
폭군인 전대 황제를 끌어 내리고 반정에 성공한 평은 국가가 유지되기 위하여서는 황제의 권력보다 황제를 제어할 수 있는 신권이 더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대신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손으로 옹립한 황제 성에게 최소한의 권력만을 넘긴 채 수십 년 동안 국가를 좌지우지하고 있었고, 자신의 손녀를 황태자 비로 만들어 다음 세대의 권력까지 손에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 하였다.
처음 반정을 시도할 때 평이 가졌던 제국을 위한 충심은 진심이었고, 처음 황제의 권한을 축소한 것은 제국을 위해서가 맞았지만, 오랜 시간 권력을 가지게 된 평에게는 이제 그런 충심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에게 남은 것은 추한 권력욕뿐이었다.
그리고 허수아비 황제로 수십 년 동안 멸시받고 살아온 황제 성은 황제의 권위를 되찾기 위하여 절치부심하여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한 많은 사내였다.
그렇게 이를 갈면서 수십 년 동안 물밑 작업을 통하여 힘을 모으고 있던 성은 이제 수십 년이 지난 지금 평에게 대립을 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모으게 되었다.
그런 황제에게 남은 마음은 권력에 대한 욕망, 그리고 자신을 허수아비로 만든 평에 대한 복수심뿐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봐 온 황태자 천, 그는 성의 아들이자 평의 손녀사위였기 때문에 양쪽 모두에게 보호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어느 쪽 편도 아닌 그런 애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천은 적어도 권력을 찾아오기 위하여 두 눈이 부릅뜬 황제의 가슴속에도, 수십 년 동안 권력을 탐닉해오며, 이제는 부패해 버려 처음 반정을 일으킬 때 가졌던 의기조차 완전히 잊어버린 평의 머릿속에도 백성이라는 단어가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가 시작되는 시점은 그런 황제와 평의 대립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황제와 평의 물밑 대립이 시작되자, 민생은 더욱 어려워지고 그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천은 점점 더 괴로워한다.
유리걸식하며 절망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이 상황을 정리하고자 마음먹은 천은 평과 황제까지 모두 몰아내고 진정한 제국을 되찾기로 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람도 없고 힘도 없는 황태자 천.
우선 자신과 발맞출 세력을 찾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지만 궁에는 황제와 평의 사람들뿐이었다.
결국 궁 밖으로 눈을 돌리게 된 천이 선택한 것은 전대 황제의 비선이자, 지금은 숙청당해 백성의 세력이 되어버린 “흑월”이었다.
흑월의 월주 “설”은 평에게 흑월의 가족들, 그리고 자신의 부모들 심지어는 자신의 정절까지 잃은 비운의 인물이었다.
그리고 겨우 평에게서 도망쳐 살아남은 설은 음지로 숨어들어 흑월을 재건하고 평에게 복수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설의 아들인 “진”.
사실 설과 평의 피를 모두 이어받은 진은 흑월의 실질적인 무력인 암월단을 이끄는 수장이자 설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비수였다.
자신의 모든 것을 망친 평을 평의 피를 이어받은 진이 제거하는 것, 그것이 설이 계획한 가장 완벽한 복수였다.
그렇게 서로의 목적을 위하여 손을 잡은 천과 설.
진은 이제 천의 수족이 되어 황제와 평 모두를 제거하기 위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결국 궁중에서는 천이 황제와 평 사이에서 모략을 벌이고, 궁 밖에서는 진이 황제와 평의 세력을 조금씩 일소해 가는 과정을 그린 그런 영화였다.
작품의 황제는 윤강철이, 평을 조진성이, 그리고 천은 윤태준이 맡았고 설은 정윤숙이 그리고 진을 민수가 연기하게 되었다.
그밖에 황제의 호위무사인 “탄”을 강환이, 천의 동생이자 진을 호위무사로 맞이하게 된 공주 “연화”는 윤설아가, 황태자비이자 평의 손녀인 “현”을 이수연이, 그리고 흑월의 차기 월주이자 진의 여동생인 “수월”을 진소희가 연기하게 될 것이다.
살펴보던 대본을 덮은 윤 대표는 눈앞에서 웃고 있는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완성된 대본은 어때요? 느낌이 오나요?”
“느낌은 잘 모르겠군. 하지만 나쁘진 않아.
그리고 내 마지막 추억이 될 거라는 생각은 드는군.
내가 태준이에게 조금 무심했던 걸까.
대본을 받아 들고 태준이랑 연기한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조금 이상해.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
내가 만약 연기를 계속했으면 이런 기회가 더 빨리 왔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렇게 모두를 데리고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알 거 같아.”
“축복이죠. 당신의 복이기도 하고요.
당신이 인생을 제대로 살지 않았으면 진성 오라버니나 윤숙 언니, 그리고 강환이가 그렇게 조건 없이 당신과 영화를 찍겠어요?
사실 태준이도 많이 기대하고 있더라고요.
데뷔작을 수연이랑 찍을 때 빼고 태준이가 저렇게 흥분한 것은 처음 봐요.
말은 못 했지만 당신이 너무 빨리 은퇴한 것에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을 거예요.”
“그래….. 그때는 더 이상 할 게 없을 거로 생각했지. 한국에서는 더 올라갈 곳이 없었고
할리우드는 불가능, 중국 시장은 제대로 열리지도 않아서 정말 사방이 막힌 느낌이었으니까.
아직 데뷔도 한참 남은 아들을 위해서 계속 연기를 하는 건 솔직히 조금 무리였어.
그러다가 결국 내가 배우라는 사실을 조금씩 잊어 가게 된 거고.”
“차라리 잘 됐잖아요. 태준이가 진짜 무르익었을 때 같이 연기를 해 볼 수 있게 됐으니까요.”
“태준이, 수연이, 설아와 민수. 그리고 소희까지
정말 빼어난 재능들이야.
어쩌면 나중에 내가 저놈들을 데리고 한꺼번에 영화를 찍은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
그리고 나도 아이들에게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안 되겠지.
민 여사. 이제 남은 일을 잘 부탁해.
나도 그 녀석들이랑 연기하려면 대표 윤강철이 아니라 배우 윤강철이 되어야 해.
그러니 앞으로 연기 외적인 일들은 다 민 여사한테 맡길게.
여러 가지 일들이 다 주인을 찾아갔으니 이제 기다렸다가 촬영 시작하고, 그 뒤에 소소한 일들만 처리하면 될 거야.
영화와 관련된 문제들은 찬진이가 하자는 대로 하면 될 거고, 그 외의 것들은 그냥 민 여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이제 나는 촬영 전까지 대본 분석하고, 배역에 몰입하는 것에 집중해야겠어.”
의지에 찬 윤 대표의 눈빛을 보며 민 여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 여사도 예전에 자신이 반한 윤 강철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민 여사는 아내이기 이전에 윤 강철의 가장 열렬한 팬이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촬영 준비는 차근차근 별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민수를 중심으로 한 젊은 배우들은 소희 덕분에 조금 더 쉽게 대본을 마스터 할 수 있었다.
게다가 다 같은 소속사에 모여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장면들을 서로 연습해보고 토론해 볼 수 있는 시간까지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어두운 도시”의 개봉이 3월로 정해진 진성은 개봉 일정과 “용의 울음” 크랭크인 이후 일정이 중복되게 되어 마음속으로 욕설을 날리고 있었다.
다행히 배우들이 다 한 식구라 진성의 일정에 촬영 날짜를 맞추는 것에는 별 무리가 없겠지만 급하게 촬영에 임해야 한다는 점은 역시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진성은 연기 연습에 열중하는 강철을 불러내 한바탕 화풀이를 벌렸는데, 차라리 그런 모습에서 과거의 추억을 되살린 강철은 더욱더 빨리 배우로서 집중력을 되살릴 수 있었다.
게다가 가끔은 강환과 정윤숙까지 그 자리에 참석했으니 그렇게 모인 네 명은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창때의 열망을 떠올렸고 그런 추억들은 그들의 마음속 깊이 숨어있던 열정을 끌어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1월이 지나고 2월이 시작되는 순간 이제 영화의 크랭크인이 한발 앞으로 다가왔다.
1월의 영화계는 크랭크인에 들어간 “유적 탐색자”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무려 약 300억 이상의 제작비가 투자된 한국형 블록버스터. 그것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제작된 영화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규모의 영화였다.
사람들은 그 많은 제작비로 어떤 영화가 나올지 벌써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미처 끝나기도 전, 한국 영화계에 또 다른 폭탄이 떨어져 내렸다.
윤태준 정민수 주연. 조진성 윤강철 정윤숙 그리고 이수연까지 출연하는 또 다른 영화인 “용의 울음”이 2월에 크랭크인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전해진 것이다.
연예 정보지와 연예 뉴스에는 갑자기 알려진 소식에 온갖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제작비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윤강철의 10년 만에 복귀작. 그리고 최고의 배우가 된 아들과의 합작.
윤강철 조진성 정도 되는 대 배우들이 조연으로 나온다는 점등
“용의 울음” 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미쳤네. 조진성 윤강철이 조연으로 나온다고.?
-자존심 때문에라도 조연으로 안나오려고 했을텐데.
-윤강철이면 레전드 찍고 진짜 영화 제목그대로 레전드가 되어서 사라져 버린 그 배우 맞냐?
-ㅇㅇ 윤태준 아버지이기도 하지.
-그러고보니 저 부자야 말로 진짜 개사기네.
-그래봐야 이제 퇴물아니냐? 뭘 그렇게 흥분하고 난리야.
-위에 놈 최소 20살미만 확정이네 십 년 전에 레전드를 보기만 했어도 저딴 소리가 안나올텐데 말이야
-레전드가 그때 당시 관객수가 1800만이었던가? 그게 지금 한국 최고 기록 아닌가?
-10년동안 레전드를 뛰어넘는 영화가 아직 안나옴
-저거 출연료만 대충잡아도 50억은 나올텐데 그래서야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지기나 할까 모르겠네
-제작비가 얼마인지는 아직 공개 안한거 아닌가. 대충 백억잡아도 저 배우들 가지고는 제대로 영화 못만들텐데.
-무슨 영화가 나올지는 몰라도 300억앞에서는 그냥 깡통처럼 찌그러질걸
-미친X 돈만 때려 부어서 명작이 나올거면 심감독이 그렇게 D-War를 말이 먹지도 않았겠지.
사람들은 배우들의 면모에 흥분을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영화가 제대로 만들어질 수 있을지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막상 윤 엔터, 아니 민 여사는 금전적으로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있었다.
윤 대표가 배우들 출연료를 전부 러닝 개런티로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배우들 누구도 출연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영화 제작비에서 배우들 출연료는 0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런 배우들의 성향도 윤 대표의 운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 까.
배우들 출연료를 제외하고 예상 제작비 170역.
이것이 영화 “용의 울음”에 투입될 자금이었다.
윤 엔터에서는 이 금액을 미리 밝히지 않았다. 만약 배우들 출연료를 지급했으면 220억이 넘을 제작비.
“용의 울음”은 “유적 탐색자”에 꿀리지 않는 규모를 가진 영화였고 나중에 영화가 개봉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가장 먼저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돌아다니던 기사가 서서히 잦아들 때쯤 “용의 울음”이 드디어 크랭크인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