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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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성 선생님은 은퇴 작을 찾던 중 제대로 된 한국형 느와르를 찍어 보자는 조태수 선배의 설득으로 이 영화에 합류 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진행되다 보니 상영 등급을 걱정한 투자자 측에서 몇 개의 장면은 빼고, 일부 장면은 수정하자고 했고 결국 그렇게 촬영을 마친 상황이란다.
그 과정에서 감독과 투자자 측의 갈등이 사뭇 심각했던 모양이다.
역시 아까 촬영장 분위기가 좋지 않더니 그런 이유였나 보다.
하지만 전생에 기억을 더듬어 보던 민수는 조금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저 영화는 여러 장면을 들어냈다고는 하지만 결국 미성년자 관람 불가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투자자 측은 그냥 헛짓만 한 셈인데, 그럴 바에는 그냥 장면을 빼지 말고 감독이 찍자는 데로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요약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작품이 나오지 않아서 지금 조진성 선생님과 조태수 선배가 불쾌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가 나오자 진성의 기분도 조금 진정이 되었는지 조금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은퇴 작을 따로 찍으신 다고요?”
“어. 강철이 놈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망할 놈이 늙은이 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조금 툴툴거리는 어투로 말하는 진성을 바라보면서 태수는 괜히 그런다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대단한 게 나올 수도 있겠네요. 윤강철 선배에 태준이하고 선생님까지 합류한다니, 특히 그 선배가 다시 영화를 찍을 줄은 몰랐어요.
저도 어떤 놈이 튀어나올지 기대가 좀 되긴 하네요. 하하”
“나도 원래, 이 영화를 내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영화가 이렇게 되니 마음이 찝찝하고 성에 차지 않았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싶기도 해.
강철이가 두 손 걷어붙이고 찍는 영화니 내 영화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만한 작품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어”
“하긴 그렇긴 하네요. 윤 선배가 심혈을 기울인 영화라…. “
한동안 앞으로 진성과 윤 엔터 식구들이 찍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이야기는 자신들의 영화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투자하는 입장에서야 신경이 쓰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중간에 씬을 바꾸다니 이건 경우가 아니죠.
투자자가 설치는 영화 중에 잘되는 영화를 못 봤는데, 아휴…”
“그런다고 이 영화가 청불을 안 맞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둘의 한탄과 속 풀이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민수는 별다른 말 없이 둘의 대화를 들으면서 식사에 열중할 뿐이었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자 태수는 민수에게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떠나가고 민수와 진성 동원은 다시 차에 올랐다.
진성은 자신의 집으로 차를 몰려고 하는 동원에게 다시 하나의 주소를 입력해 주고 그쪽으로 가자고 지시했다.
그리고 차는 천천히 다시 출발하기 시작했다.
민수는 차가 출발하자 바로 진성에게 대본 2개를 건네주었다.
별 생각 없이 대본을 받아 든 진성은 첫 번째 대본이 중국어로 되어 있는 것을 보고는 인상이 조금 구겨졌다.
“하…. 윤강철 이 녀석 평범하게는 못하겠다는 건가? 기어코 진룡 없이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사례를 만들겠다는 거냐.
에잉, 그래도 그렇지 다 늙어서 뭐 하는 짓인지…..”
진성은 대본을 받아 들고 조금 투덜거리다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 자신을 보며 미소 짓고 있는 민수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진성은 민수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수연이 떠나고 공허한 기분으로 하루하루 살던 윤 대표의 마음을 잡게 해줬다는 것, 자신도 해법을 찾지 못했던 설아의 대사 문제를 해결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결국 수연까지 소속사로 다시 끌고 왔다는 것 등등.
진성이 볼 때 민수가 소속사를 위해 해준 일은 정말 단순한 것이 아니었고, 진성은 그래서 민수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전 태준이 찾아왔을 때, 태준은 민수를 크게 될 녀석이라고 말했었다.
태준이 서글서글하고 조금 가벼워 보일 때도 있지만, 사람에 대한 평가는 냉정하고 정확했다.
특히 배우를 평가할 때는 더 냉혹하게 평가하곤 했는데 민수에 대하여서는 저렇게 평가가 좋았으니 진성도 자연히 민수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진성은 민수에 대한 인간적인 호감을 접어 두고 배우로서 민수에 대하여 관심이 생겨 민수가 출연한 드라마를 처음부터 천천히 살펴보았다.
태준의 말대로 연기는 정말 좋았다.
세 명의 주연 배우들 모두 연기가 좋았지만, 진성의 눈에는 민수의 연기가 단연 돋보였다.
그렇게 민수의 연기를 보다가 문득 예전에 자신이 데뷔했을 때가 떠올랐다.
진성이 보기에는 민수도 자신처럼 연기보다는 외모에 사람들의 눈이 집중되어 있었다.
많은 악플에 시달릴 때조차 사람들은 민수의 외모와 연결 지어 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모습이 왠지 자신의 데뷔 시절과 연결되면서 진성은 민수에게 조금의 동질성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진성은 오늘 민수를 불렀다. 직접 어떤 녀석인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그런데 직접 본 민수는 생각보다 더 괜찮은 녀석이었다. 느낌도 좋았고 말이다.
대선배인 자신과 잘나가는 선배인 태수를 앞에 두고도 별 동요가 없는 데다가 전혀 위축되지도 않았다.
우선 그 대범함과 평정심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을 불러 놓고 그 앞에서 두 선배가 자신들의 이야기만 하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취급했는데도 전혀 기분 나빠하는 기색이 없었다.
진성의 나이 때쯤 되면 이제 상대의 가식적인 행동은 어느 정도 바로 간파할 수 있었는데 진성의 보기에 민수는 정말 별로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진성은 민수의 그런 인간 됨됨이가 더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진성은 이 녀석을 자신의 친구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었다. 만약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바로 집으로 보냈겠지만 말이다.
진성이 대본을 살펴보는 동안 차는 달려 목적지에 도달했다.
서울 근교에 자리 잡은 고즈넉한 분위기에 한 술집, 민수와 진성이 예약된 방으로 들어서자 내부에서는 이미 진성의 또래쯤 되어 보이는 어르신 세 분이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조가야. 늦었구나. 오호.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서 꼬리를 달고 왔는고?”
한 어르신이 민수를 보며 호기심에 빛나는 눈으로 진성에게 물어보자 진성은 민수를 자신의 후배라고 하면서 앞으로 티브이나 영화관에서 많이 보게 될 거라고 소개했다.
“안녕하십니까. 정민수라고 합니다.”
“젊은 녀석이 조가 놈 젊을 때를 보는 것처럼 희멀끔하게 잘 생겼구나, 하하.”
“어서 와서 잔부터 받아라.”
별다른 말 없이 반겨주시는 어르신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민수는 우선 주시는 술잔을 받아 들고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조가 놈아 영화는 잘 나왔냐? 대충 말을 들어 보니 생각보다는 안 나왔다고 하던데.”
“몰라 이놈아. 속 쓰린데 그 이야기는 집어치워.”
“쯧쯧, 저놈 반응을 보니 이번 영화도 틀렸구먼.”
“이놈아, 언제 제대로 된 영화 찍고, 마음 편하게 은퇴할 거냐? 그렇게 속 끓이지 말고 그냥 은퇴나 해라.”
“저거, 말로만 은퇴하고 싶다고 하고 막상 은퇴할 생각은 없는 거 아니야?”
“킥킥, 오 년째 은퇴 노래를 불렀는데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
한창 진성의 은퇴로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르신들은 진성이 다음에 한 말에 사뭇 진지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진짜 은퇴 작 찍을 거다. 강철이랑.
이제 금방 촬영 들어갈 거야.
박가 놈은 스크린이나 넉넉하게 확보해 둬. 나중에 자리 없다고 징징대지 말고.”
“뭐? 강철이랑 영화를 찍는다고? 그놈 이제 연기는 안 하는 거 아니었어?”
“오호라, 일이 그렇게 되는 거였군.”
“뭔데?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썰좀 풀어놔 봐.”
“지금 이수연 때문에 RD가 피해를 본 다음에 윤 엔터하고 진룡하고 사이가 미묘하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지.
강철이가 진성이 놈까지 끌고 영화를 만든다는 건 진룡이 다음에 만들 영화랑 한국에서 한판 붙어 보겠다는 거야.”
한 어르신은 이쪽 방면에 종사하고 계신 분인지, 제법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계셨다.
“큭큭, 강철이 그놈 지금 제정신이 아니야. 그 영화에 나랑 자기 말고도 윤숙이랑 강환이, 태준이 그리고 저기 앉은 저놈이랑, 수연이 설아 까지 다 데리고 찍을 생각이야.”
“하하. 그건 식구들 다 데리고 지들끼리 찍겠다는 거네. 그런데 윤 엔터에 배우가 그렇게 많았어? 언제 그렇게 늘어 난 거야?”
“설아면 그 강철이네 예쁘장한 딸내미잖아? 아리를 닮아서 여간 귀여운 게 아니었는데 녀석이 벌써 그렇게 컸어?
“이 바보 녀석아, 어린 애들이야 한해 한해가 다른 건데 마지막에 만난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러니 이제 다 컸겠지”
민수는 옆에서 이카루스라는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게 설아라고 설명해 드리고 싶었지만 겨우 참고 입을 꾹 다물었다.
“강철이 그놈도, 그렇게 상황이 어려우면 어른들한테 부탁이라도 해볼 일이지. 혼자 그렇게 들이받을 생각부터 하다니.”
“이놈아, 한국에서 콘텐츠 만드는 애들 중에 진룡이랑 안 엮인 애들이 누가 있냐? 몇 년 동안 여기저기 손을 안 댄 것이 없는데.”
“흥, 진룡 따위.”
“망할 놈. 허세는…..”
“자자, 됐고. 강철이 그놈 성격이 그런 일로 남한테 손 벌릴 놈인가. 그나마 나랑 윤숙이한테 부탁한 것만 해도 용한 거지.
어쨌든 이번에 강철이가 제대로 들이받을 생각이야. 지금 난 중국어 대본까지 받았어.”
“그냥 한국에서 들이받는 걸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군.
만약 진룡 말고 다른 루트가 뚫린 데다가, 성공까지 한다면 진룡에서 확실히 곤란하긴 하겠어.”
“그런데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길래 강철이가 그렇게 발끈한 가야?”
진성은 궁금해하는 친구를 위하여 자신이 강철에게 들은 말을 정리해서 전해 주었다.
“이상하군. 진시첸이 자존심이 세긴 하지만, 적어도 사업적으로는 앞을 내다보는 녀석이야.
그런데 태준이가 있는 윤 엔터를 그렇게 무례하게 대했다고?.
게다가 삼화랑 선이 닿아 있는 소속사에 그런 무례를 범한다.? 그건 사업가의 마인드가 아니지.”
“큭큭, 진룡이 덩치가 큰 만큼 벌레들이 많지. 거기에 대해선 내가 조금 아는데, 진룡 미디어 한국지부를 진시첸이 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게 아니야.
거기에는 진시첸 말고 첫째나 둘째를 밀고 있는 임원진들도 있어.
그들 중에는 아마 진시첸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게 불안한 놈들도 있을 거고 말이야.”
“아, 그리고 그 예전에 RD 대표로 있던 그놈 누구더라? 정우칠 이라고 했던가, 우철이라고 했던가. 어쨌든 그놈한테 기름 잔뜩 칠해진 놈들도 진시첸 사장한테 다소 불만이 있다고 하더라고.”
“어쨌든 진시첸 사장의 뜻은 아닐 가능성이 커졌군. 아마 가운데서 누군가가 슬쩍 말을 바꿨다든지 말이야.”
“그렇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어. 차라리 윤 대표의 판단이 옳아.
지금 넘어간다고 진룡이 윤 엔터를 가만히 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진룡이 더 커지기 전에 진룡의 성장도 억제하고 배우들 기반을 잡는 게 난 좋은 판단이라고 보네.”
대체 무슨 일을 하는 분들이신지 정말 많은 정보를 가지고 계셨다.
민수도 처음에 진룡에서 경고를 날렸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시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자존심이 엄청나게 상했나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넘어갔는데 어르신들의 말을 들어보니 진시첸의 뜻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민수는 진룡이 덩치가 커도 한마음 한뜻으로 움직이고 있지 않다면 우리 영화가 그 빈틈을 비집고 들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시끄럽고, 박가 놈은 스크린이나 준비해놔 여름쯤 되면 개봉할 테니까.”
“망할 놈. 알았다 이놈아. 영화나 제대로 찍어라.”
민수의 눈에 스크린을 준비 놓겠다는 어르신이 아주 멋있게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