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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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놀라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여유 있는 몸짓으로 정식에게 다가갔다.
그리고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정식에게 준성이 최준의 밴드에 독설하던 그 표정을 지으며 걱정스럽다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어때요? 괜찮겠어요?”
민수가 정식에게 그 표정을 지은 이유는 간단했다. 자신이 지을 수 있는 표정 중에 가장 밥맛 없는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표정을 지었기 때문일까 스턴트맨들 가운데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어? 정민수다.”
“아, 긴가민가 했는데 정민수네. 그 있잖아, 송포유에서 준성으로 나왔던 배우.”
“아…. 맞네! 안경이 없어서 몰라봤는데, 저 모습 보니까 맞네, 맞아.”
사람들이 민수를 알아보기 시작하자 정식은 더 난감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었다. 결국 외부에서 교육을 받으러 온 배우에게 대놓고 무례를 저지른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지어 내기에서조차 패배할 위기에 처했으니 정식은 얼굴이 붉어진 채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정식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는 사이 저쪽에서 검술을 손봐줄 민현기 단장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여기에 다들 모여있어? 다들 각자 자기 일들 하러 가봐.”
민현기 단장은 오자마자 우선 모여있는 단원들을 해산시켰다. 그리고는 정식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주의를 준 후 민수를 바라보았다.
민 단장이 처음 들어 왔을 때 본 것은 민수가 중앙에서 몸을 푸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또 애들이 텀블링 내기를 하나 싶어서 별생각 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잠시 후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몸놀림을 보게 되었고 민 단장은 자신도 모르게 커진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의 문하생으로 생각했던 사람이 전혀 생소한 녀석이지 않은가?
그래서 확인 차 서둘러 다가오게 된 것이다.
“투지의 단장 민현기라고 한다. 오늘부터 검술 교정을 받을 배우 정민수, 윤설아 맞나?”
민현기의 투박한 말에 민수는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민현기는 윤 대표 정도의 연배에 온몸을 단단하고 날렵한 근육으로 무장한 남자였다.
민 단장은 한때 연기자로서도 활동한 이력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액션 연기가 좋고 많은 사람에게 액션 연기를 제대로 가르치고 싶어서 액션 스쿨을 만든 그런 사람이었다.
민 단장은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아니라면 거의 이런 태도였다.
하지만 조금 투박한 태도조차 그를 감싸고 있는 근엄한 분위기 때문에 상대방은 불쾌함을 느끼기보다 장인이나 명인을 만난 듯한 느낌을 받아 민 단장의 신뢰를 높여 줄 뿐이었다.
“네, 반갑습니다. 정민수 하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윤설아예요.”
상대의 정체가 완전하게 파악되자 민 단장의 고개가 옆으로 살짝 기울어졌다.
전문가의 눈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법.
몸 푸는 모습, 도움닫기, 그리고 텀블링을 하는 모습에서 민 단장은 민수가 이미 액션 연기에 매우 익숙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액션 연기를 배우겠다고 찾아온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네는 별로 배울 게 없을 텐데. 대체 뭘 배우러 온 거지?”
민 단장에 말에 민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쩝, 역시 귀신이시네.’
민 단장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으니 민수는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민수의 모습을 의아하게 바라보던 민 단장은 옆에 있는 설아에게로 눈이 옮겨갔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피식 웃으면서 민수에게 다시 말하였다.
“뭐. 자네도 사정이 있겠지. 어쨌든 간에 배우러 왔으니 난 그냥 최선을 다해 가르칠 테니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워가게나.”
민 단장은 길게 묻지 않고 바로 교육을 시작하였다.
검을 잡는 방법부터 휘두르는 법까지 실제 검술은 아니었지만, 최대한 카메라에서 멋있게 보일 수 있게 검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그에 따라 실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설아는 처음에는 무언가를 휘두르는 것이 어색했지만 몇 번 휘둘러 보더니 감을 잡고 조금씩 멋있게 휘두르는 방법을 깨우쳐 가고 있었다.
민수는 그런 설아를 조금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고 민 단장은 그런 둘의 모습을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펴보고 있었다.
첫날 교육이 끝나가는 시간에 민 단장은 민수에게 한번 합을 맞춰 보자고 말을 꺼냈다. 민수의 실력을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민수도 자신의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지 확실히 알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승낙했고, 둘은 합을 짜면서 체육관 가운데로 이동했다.
민 단장은 민수의 실력에 대하여 어느 정도 예상하는 바가 있어서 빡빡하게 합을 짜는 것보다 조금 여유를 두고 기본적인 몇 가지만 정하였다.
민수도 민 단장의 실력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았다.
자신이 어떻게 움직여도 민 단장이 거기에 맞춰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수는 이 기회에 자신의 모든 실력을 확인해볼 심산이었다.
둘이 목검을 들고 서로를 바라보자 체육관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민 단장은 강하게 발을 구르며 민수의 머리부터 아래쪽으로 검을 내리그었다.
가장 기본적인 수직 배기, 민수가 옆으로 피하면서 다음 공격을 하고 자신이 막고 다시 공격하고 이렇게 진행하기로 약속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민수는 민 단장의 검이 자신의 머리에 거의 닿기 직전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민수의 실력을 어느 정도 믿고 검에 속력을 제법 높인 민 단장은 민수가 바로 피하지 않자 조금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이미 늦어서 검을 멈출 수도 없었고, 그대로 내리칠 수도 없는 상황, 민 단장이 검을 내던져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민수가 몸을 움직였다.
검이 민수의 몸에 닿기 직전이 되어서야 몸을 움직인 민수는 아주 약간의 움직임으로 검을 피하였다.
검이 민수의 몸을 스치듯이 지나갔고 민수의 검이 민 단장의 옆구리를 향하여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민수에 대한 걱정으로 잠시 집중력이 흐트러진 민 단장은 겨우 민수의 검을 막아 냈지만, 검이 뒤로 튕겨 나가는 것을 막지는 못하였다.
검을 놓쳐버린 민 단장은 순간 놀란 눈으로 민수를 바라보았고, 상황을 파악한 후에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하하. 이런 미친 녀석을 봤나.”
액션에 합을 맞출 때 역시 가장 실감 나는 게 하는 방법은 역시 상대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험성이 높은 데다가 상대를 실력을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다면 상대의 공격에 얻어맞게 되니 함부로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처음 자신과 합을 맞추는 녀석이 자신의 공격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치듯 피해냈다.
민 단장의 방금 민수의 행동 하나에 온몸으로 소름이 돋아 오는 것을 느꼈다. 정말 대단한 기량에 대단한 배짱이었다.
민 단장은 자신이 놓친 검을 다시 주워와서 다시 한번 합을 맞춰보자고 청했고, 민수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집중력이 한껏 올라간 민수의 눈과 감각에는 민 단장의 검밖에 느껴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민 단장의 조금 전처럼 민수의 머리를 향하여 검을 내리그었다.
민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그 검을 피하고는 민 단장의 옆구리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아까와 같은 추태를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한 민 단장은 민수의 검을 빗겨내듯 흘리고 다시 몸을 한 바퀴 돌린 후 민수가 했던 것처럼 옆구리를 향하여 검을 휘둘렀다.
막고 공격하고 피하고, 그런 일련의 동작이 계속 이어졌다.
화려한 몸동작과 군더더기 없이 휘둘러지는 두 개의 검, 이건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액션 씬 이었다.
그리고 그런 두 남자를 지켜보는 단원들과 설아의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감탄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동안 어울렸을까. 민 단장은 몸을 뒤로 두 걸음 물린 후, 검을 내렸다.
격하게 움직여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민 단장은 민수를 감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런 합을 맞춰본 적이 있었던가. 민 단장 자신도 모르는 사이 탄식을 터트리면서 민수에게 말하였다.
“하… 넌 진짜 미친 녀석이야.
한국에서 이렇게 즉흥적으로 멋진 액션 씬을 만들 수 있는 액션 배우는 없어.
어떤 배우든 너랑 합을 맞추면 최고의 액션을 선보일 수 있을 거야.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민 단장의 탄식은 민수에게는 최고의 찬사가 되었다. 그리고 민수는 조금 전 민 단장과 검을 맞댄 것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가 집중을 하자 민 단장의 검이 너무나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의 시선과 팔의 움직임 그리고 발의 움직임이 느껴지자, 민 단장이 다음에 취할 행동이 바로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대를 때려눕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멋진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목표인 이상, 민수가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할 가능성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거기다가 월등해진 동체 시력과 민첩성은 상대와 합을 맞추는 것을 너무나도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민수는 확실히 검술 연기로 상대와 합을 맞추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검술이 아니라 단순한 격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시 후 충격에서 벗어난 민 단장은 애써 웃으면서 오늘의 교육을 마쳤다. 그리고 민수에게 배울 것이 없더라도 자주 들리라고 말하였다.
“하긴 내가 말을 안 해도 자주 오긴 하겠지만 말이야.”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는 민 단장을 뒤로하고 설아와 민수는 소속사로 돌아오기 위하여 차에 올라탔다.
차에 올라탄 설아는 흥분된 얼굴로 민수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와… 민수 오빠. 정말 대단하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인 줄은 몰랐네요.”
감탄하는 설아를 민수는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기만 했다. 왠지 여기서 무슨 말을 하면 잘난 척밖에 되지 않을 거 같아 그냥 말을 아낀 것이었다.
“큭큭, 그러고 보니 아까 텀블링하는 것도 정말 재미있었는데요. 멋지게 딱 끝낸 후에 싸가지 없는 준성처럼 재수 없게 웃으면서 그 사람한테 비꼬는데 와…. 인성이 정말……. 아마 저라면 창피해서 당분간은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어요”.
설아가 과장되게 이야기하자 민수는 피식 웃으면서 설아를 바라보았다.
“제가 조금 심했나요? 흠….”
“아뇨 멋있었어요. 솔직히 조금 민수 오빠답지는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초면에 그렇게 반말부터 던지는 무례한 사람은 완전히 극혐이거든요.
게다가 딱 멀리서부터 절 위아래로 쓱 훑어보는데, 아윽….”
민수는 자신이 설아에게 설명하는 동안에도 그놈이 설아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던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설아도 그놈이 싫었다고 하니 자신이 오버해서 행동한 건 아닌가 보다.
설아는 오늘 민수가 조금 다시 보였다.
꽉 막힌 사람인 줄만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시원한 면도 있었다고 해야 하나, 설아는 당연히 평소처럼 민수가 시비 거는 상대를 별로 상대해 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사고를 치고 다니는 남자보다야 민수처럼 조금 신중하고 다른 사람과 마찰을 피하는 남자가 더 제대로 된 사람이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가끔은 반전매력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 않은가.
설아는 사실 자신이 민수에게 상당한 호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민수가 가진 인간적인 매력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민수랑 무엇을 같이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제법 즐거웠으니 말이다.
재수 없어 보이는 사람을 한 번에 입 다물게 한 행동, 그리고 마지막에 단장님하고의 놀라운 시범까지 오늘의 민수는 확실히 평소보다 조금 더 멋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