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100화 (100/325)

#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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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부터 출발한 민수와 설아가 도착한 곳은 액션 스쿨 “투지”, 민수는 이곳에 도착하여 건물에 적힌 간판을 볼 때부터 특별한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투지”가 자신이 예전에 몸담았던 그곳이었기 때문이다.

“참, 인연이란 게 묘하네. 정말…. “

하지만 어느 정도 예상은 할 수 있었던 게 자신이 이곳에 몸담고 있었을 때도 배우들이 가장 많이 액션 연기를 배우러 오는 곳이 이곳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여기라니. 흠….”

혼자 먼저 차에서 내려 이상하게 감동한 표정으로 건물을 살펴보는 민수의 모습을 보며 고개를 살짝 갸우뚱한 설아는 민수에게 다가가 살짝 어깨를 두드렸다.

“민수 오빠 여기에 무슨 추억이라도 있으세요?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세요?”

“아, 그건 아니에요. 뭐 그냥 새로운 연기를 배울 수 있겠다 싶어서요? 하하하”

“왠지 조금 수상한데요. 그 끝에 말꼬리가 올라가니까 더 수상하고요.”

조금 의심에 찬 눈으로 자신을 위아래로 살펴보는 설아에게 멋쩍은 웃음을 지어준 민수는 설아를 데리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카운터에서 예약한 배우임을 알리고 내부로 들어서자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는 한 남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다른 교육생이나 액션 스쿨의 스턴트맨들은 아직 나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역시 정웅 선배네.’

전생에서도 외부에서 연예인이 액션 연기를 연습하러 오면 대부분 정웅 선배가 배우들을 가르치곤 했었다.

제법 거친 남자들 사이에서 정웅 선배가 가장 성격이 온화한 편이었고, 가르치는 것에 더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웅 선배가 가장 강한 인내심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찾는 배우 중에서는 정말 가관인 자들도 많았는데 그들은 대부분 몇 가지 스킬과 요행을 배워 빠르게 익혀 나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배운다면 촬영 중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절대 그렇게 가르쳐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그런 요구를 거절하면 결국 배우와 갈등이 생기게 되고 점점 가르치는 게 피곤해지는 것이었다.

특히 전혀 몸을 써보지 않은 여배우들을 가르치기가 가장 힘들다.

몇몇 여배우들은 접촉하는 것 자체를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세를 잡아줄 때 접촉하는 것도 불가능했고, 운동 신경도 남자 배우보다는 다소 떨어지며, 동작에 대한 이해도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배우 자신도 엄청 스트레스를 받으니 평소보다 더 예민해지고 결국 배우는 내내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기 일쑤였다.

민수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전생에 정웅 이후로 가장 많은 배우를 가르쳐 본 사람이 민수였기 때문이다.

스턴트맨답지 않은 말끔한 외모와 타인의 비난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무감각한 성격 때문에 민수의 스턴트 연기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후에는 정웅 대신에 민수가 배우들을 도맡아 가르치곤 했었다.

그때 정웅은 드디어 해방이라고 크게 웃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젠 민수가 이곳에 없으니 아마 더 오래 정웅이 배우들을 가르쳐야 하리라.

민수와 설아가 들어오는 것을 발견한 정웅은 천천히 웃으면서 민수에게 다가왔다.

웃으면서 다가오지만, 왠지 조금 우울해 보이는 정웅의 눈빛을 보니 민수는 지금 정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젊은 배우 두 명, 게다가 한 명은 앳된 여배우, 게다가 초 미녀, 남자는 혈기 왕성한 젊은 놈.

진짜 내가 생각해도 최악의 조합으로 보이긴 하겠네. 큭큭’

미녀 여배우만큼은 아니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놈도 액션 스쿨에서는 꽤 피곤한 존재였다. 우선 실력도 없으면서 신체 능력만 믿고 더 고난도 동작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것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만약 다치기라도 한다면 스쿨 측이 다 책임을 져야 할 테니 얼마나 피곤한가.

게다가 그런 놈들은 대부분 말도 더럽게 듣지 않는다. 기초부터 가르치면 지루해하면서 딴청을 피우기가 일쑤이니 그것도 무척 거슬리고 말이다.

어쨌든 애써 웃으면서 다가온 정웅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민수와 설아에게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오라고 지시했다.

민수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설아와 함께 탈의실로 이동해 빠르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정웅에게 다가갔다.

정웅은 가지런히 서 있는 두 배우에게 우선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액션 연기는 격투와는 다르기 때문에 남에게 보여주는 동작의 멋이 중요하다는 점을 시작으로 액션 연기의 합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 지를 설명한 후, 기본적으로 손을 뻗고 몸을 움직이는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하였다.

그리고 한참을 설명한 후 정웅은 화면에서 더 멋있게 보이는 방법들을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고 배우들이 따라 할 수 있게 천천히 같이 동작을 연습하고, 잘못된 동작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하여 배우들의 움직임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렇게 두 배우의 움직임을 살펴보던 정웅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 힘들어졌다.

처음에 자신에게 배울 두 배우가 다가왔을 때 정웅은 이번에도 엄청나게 피곤하겠다고 생각했다. 엄청 예쁜 여배우와 혈기왕성한 젊은 놈 그야말로 피곤함의 정점이 아니던가.

하지만 상황은 자신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선, 여배우는 몸을 풀 때부터 정웅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달리는 속도도 자기 생각 이상이었고 특히 어려서부터 요가나 필라테스를 했는지 몸이 엄청 유연했다. 그리고 운동 신경까지 좋은지 자신이 하는 동작 하나하나를 금방 따라 하고 자세 또한 제법 태가 예쁘게 나왔다.

제법 몸에 힘이 들어가는 동작까지 수월하게 따라 하는 것을 보니 몸에 근력 또한 상당해 보였다.

운동신경 상 근력 중상 유연성 최상 민첩성 상

정웅이 보기에 저 여배우는 액션 배우로 대성할 재목이었다. 특히 저 외모에 저 운동능력이라니 만약 액션 쪽으로 진지하게 임한다면 한국에서 가장 액션 연기를 잘하는 여배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자 놈,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거 같았던 남자 놈은 아무런 군소리 없이 자신의 교육에 집중하고 있었다. 동작들도 오버하지 않고 자신이 시키는 것만 딱딱하고는 다음 단계를 기다렸다.

남자란 동물은 참 미련하게도 주변에 미녀가 있으면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 안달이 나는 족속들이다.

처음에 자신이 똥 밟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젊은 놈 옆에 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경험에 미루어 볼 때 이런 멤버로 교육을 하게 되면 남자 놈은 미녀 앞에서 센 척을 하고 싶어 별별 짓을 다 벌이곤 했다. 특히 젊은 놈일 경우에는 더 그랬고 말이다.

하지만 저놈은 어떠한가.

자신이 여배우에게 동작을 가르칠 때나 아주 기본적인 것을 교정해 줄줄 때 같이 경청해 주기만 할 뿐 아무런 참견도 없었다.

물론 배우는 입장에서 그게 당연하다지만 어디 사람 일이란 게 그렇게 맞게만 흘러가던가. 아마 다른 놈 같았으면 잘난 척하면서 지가 여배우를 가르치려 할 것이다.

쥐뿔도 모르면서 말이다.

게다가 동작 또한 대단했다.

민수의 동작을 본 정웅은 민수에게 매우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마치 맨날 같이 연습하던 동기들한테서나 들던 그런 느낌이었다.

의아한 기분이 든 정웅은 민수에게 혹시 따로 스턴트나 액션 교육을 받았는지 물어보기까지 했다. 물론 민수는 그런 건 아니고 귀 동량으로 여기저기서 듣기만 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어쨌든 정웅은 완전히 스트레스의 근원이 될 거로 생각했던 이번 교육이 생각보다 쉽게 흘러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남자 녀석은 그냥 따로 가르칠 것도 없이 동작만 보여주면 알아서 잘했고, 여배우분은 조금만 다듬어 줘도 곧 좋은 동작들이 튀어나오곤 했다.

정웅이 매우 큰 만족을 준 아침 교육은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이제 잠시 휴식 후 다음 훈련을 받게 될 것이다.

설아는 아침 교육 동안 지친 몸으로 바로 매트 위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민수는 피식 웃으면서 그런 설아에게 물병을 건네준 후 설아 옆에 자리 잡았다.

아무리 운동으로 단련된 설아라도 생소한 동작과 움직임을 계속 따라 하는 것은 역시 피곤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른 시간에는 완전히 비어있던 체육관 안에도 하나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어 자신의 운동과 여러 동작을 연습하곤 했다. 저렇게 몸을 푼 후 아마 단체 연습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설아는 다른 스턴트맨들이 여러 동작을 연습하는 것을 살펴보더니 민수에게 말을 걸었다.

“민수 오빠. 다들 저렇게 멋있게 움직이는데 제가 움직일 땐 왜 멋이 안 나올까요?”

민수가 볼 때 설아의 움직임은 초보자치고는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역시 만족스럽지 않은 가보다.

잠시 생각하던 민수는 그냥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설아에게 설명했다.

“그건 그냥 설아 씨가 익숙하지가 않아서 그래요. 평소에 움직임하고 액션에서의 움직임은 조금 다르잖아요.

카메라로 보기에 동작이 더 선명하고, 굵직하게, 어떤 부분에서는 과감하게 어쩌면 많이 과장되게 표현하는 게 중요하죠.

결국 부드럽게 넘어갈 부분과 과장해서 표현할 부분을 구별하고 그렇게 움직이는 게 키 포인트인데, 그건 사실 경험이 필요할 테니까요.

아직 설아 씨에게 그게 없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예요.”

민수가 설아에게 알기 쉽게 설명을 해주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 민수에게 시비를 걸었다.

“호…. 첨 보는 얼굴인데 대단한 액션 스타가 납시셨구만. 그렇게 잘 알면 어디 한번 시범을 보여주지 그래?”

‘하…. 김정식인가…’

김정식 일명 개자식 민수는 이 남자를 전생에서 개자식이라고 불렀다. 이놈은 그야말로 그냥 뇌에 주름이 없는 놈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놈은 결국 외부에서 교육받으러 온 배우하고 크게 시비가 붙어서 쫓겨났다.

지금 상황만 봐도 어이가 없다.

처음 보는 예쁜 수강생에 눈이 돌아갔는지 지금 상황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저 멍청함을 민수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설마 자신을 그냥 처음 본 스턴트맨 지망생 정도로만 생각하고, 외부 교육생인 설아에게 잘난 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배알이 꼬인 건가?

‘사실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긴 한데….’

사실 전생에 그와 악연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민수는 그냥 고개를 저을 것이다.

왜냐하면 전생에서는 저놈이 뭐라고 하든 간에 날파리로 생각하고 별로 대꾸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냥 그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저놈의 성향을 생각해 봤을 때 피하면 더 달라붙어 사람을 짜증 나게 할 것이 자명했다.

상책은 역시 그냥 넘어간 후 단장님이나 데스크 쪽에 항의하는 것일 테고, 중책은 자신과 설아가 교육을 받는 배우라는 걸 알려주고 무례한 태도를 지적해서 꺼지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저놈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산다면 외부 배우한테 대놓고 무례를 저지르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하책은 자신이 지금 직접 나서서 저놈이 콧대를 꺾어 주는 것이었다.

평소라면 민수라면 바로 상책을 선택했겠지만, 오늘은 그냥 하책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유를 묻는다면 사실 그냥 좀 짜증 났기 때문이다.

저놈은 분명히 자신을 뭉갠 후에 설아에게 이것저것 참견하면서 가르치려고 들 것이기 때문이다.

저런 놈이 설아 옆에서 자세를 잡아 준답시고 귀찮게 굴 것을 생각하니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다.

‘나도 남자가 맞긴 하군. 설아 씨가 앞에 있다고 꿀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말이야.

게다가 의사 선생님도 자신의 감정에 놀라지 말고 그대로 따라 보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하셨으니…..’

“뭐 좋군요. 시범을 보이라니 하나 보여드리죠. 그냥 시범을 보이면 심심하니, 텀블링으로 내기 어때요?”

“하? 나랑 텀블링으로 내기를 하자고? 이거 진짜 웃기는 놈이네. 그래 뭐를 걸고 할 건데?”

스턴트맨들이 심심할 때 기량을 겨루려고 하는 게 바로 텀블링 내기다.

이건 한 명이 먼저 텀블링을 하면 다음 사람이 그 사람이 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는 내기로 첫 사람이 한 동작을 뒷사람이 못 따라 하면 첫 번째 사람이 이기는 그런 단순한 내기였다. 만약에 따라 한다면 바로 공수를 교대해서 다시 진행하게 된다.

자신만만한 상대의 태도에 민수는 실소를 머금을 수밖에 없었다. 하긴 원래 텀블링이나 공중 아크로바틱이 특기이니 자신감이 충만하기는 하겠지.

“제가 이기면 제가 교육받는 중에 그쪽 얼굴을 안 봤으면 좋겠군요.”

“이 자식이 누구보고 나가라 말라야. 내가 이기면 넌 그냥 여기서 꺼져라.”

민수는 정식의 한마디만 듣고서도 그가 자신을 그냥 평범한 스턴트맨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말든 민수는 중앙으로 나와 몸을 풀었다.

민수와 정식이 언쟁을 시작할 때부터 둘을 멀리서 바라보던 단원들이 서서히 중앙으로 모여 둘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하여간 참 웃긴 놈들이다. 아마 무료한 오전 시간에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생긴 것을 크게 반가워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자신이 있을 때도 그랬다.

누가 내기만 한다고 하면 다들 우르르 몰려와 구경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저 많은 사람 중에 배우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민수는 묘한 좌절감을 느꼈다. 자신도 나름 티브이에 나온 배우였는데 말이다.

첫발을 구르고 도움닫기를 시작하는데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분명 예전에는 내가 네놈보다 실력이 좀 떨어졌지. 하지만 말이야…..’

민수는 앞으로 연속으로 두 번을 돈 후 크게 뛰어올라 공중에서 몸을 크게 뒤틀어 팽이처럼 두 번을 돌고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바닥에 착지하자 마자 바로 역동작으로 뒤로 두 바퀴를 돌아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마치 기계체조 선수들이나 할 법한 놀라운 기예였다.

응원하며 소리치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조용해 졌다.

그리고 정식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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