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95화 (9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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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표의 고민은 집안에 와서도 계속되었다.

윤 대표는 진룡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판단이 소속 배우들에게 악영향을 미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진룡의 제안을 거절하는 것이 대표인 윤 강철이 냉정하게 판단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 윤 강철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하여 아집을 부리는 것인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다.

한동안 강철이 소파에 앉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자 부인인 민 아리, 자식인 태준과 설아까지 나와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태준은 술을 한잔 따라 강철에게 내밀었다.

“이야기 들었어요. 진룡에서 또 개수작을 부린다고요?”

태준의 강한 어조로 이야기하자 강철은 피식 웃으면서 태준을 바라보았다.

“그래? 민 여사가 다 말한 모양이구나. 맞아. 그들이 이상한 제안을 하긴 했지.”

태준이 내민 술잔을 입에 대고 살짝 목을 축인 강철은 태준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솔직히 기분이 나빠. 자기들이 온갖 분탕질은 다 쳐놓고 고압적인 자세로 나오는 걸 보니 울화통이 치밀어. 게다가 그 제안조차 우리가 아니라 삼화 때문에 변수를 줄이려고 한 제안에 불과해.

그놈들 눈에는 우린 그냥 허수아비에 불과한 거지.”

“만약 우리가 고개를 숙였다고 그걸로 끝일까요? 진룡의 위치가 더 높아진 후 진룡이 또 저번에 일을 문제 삼으면 우리는 어떡해야 하는 거죠? 그때가 되면 지금 보다 더 납작 엎드려야 할 거 같은데요.”

“달링, 진시첸 사장이 자존심이 높다고 했죠.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작은 원한도 잊지 않아요.

게다가 그렇게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고만 살아온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거스르는 사람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아요.

그들은 자신의 자존심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사니까요.

아마 태준이 말대로 우리가 고개를 숙인다고 해도 그게 끝이 아닐 가능성이 더 커요.

설령 우리 배우들이 가치가 있다 해도 그건 변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만약 진시첸이라면 우리가 삼화의 손을 놓기만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그러면 더 쉽게 숨통을 조일 수 있을 테니까요.”

민 여사가 말을 마치자 강철은 다시 말없이 술 한 모금을 삼킨다..

“그냥 우리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달링,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아요. 어차피 진룡은 우리랑 손잡고 갈 상대가 아니에요. 어차피 싸울 거면 우리가 먼저 선빵을 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저번에도 먼저 두들겨 맞기만 했잖아요.”

“풋, 엄마 선빵이 뭐에요. 선제공격! 좋은 말이 있잖아요. 하지만 저번에 저희가 두들겨 맞기만 한 건 아니지 않아요?”

“얘는, 원래 이럴 때는 직관적인 말이 더 입에 달라붙는 법이란다. 그리고 저번에는 자기들이 제풀에 넘어진 거지 우리가 때린 거니? 게다가 귀염둥이는 만신창이가 될 뻔했는데.”

“맞아, 그랬지. 아빠 이번에는 가능하면 우리가 먼저 때려요. 또 누가 얻어맞기 전에요.”

“우리 집안 여사님들은 대체 왜 이렇게 호전적인 거야? 하지만 또 틀린 말은 아니네”

온 가족이 뜻을 모아 공격을 외치자 강철은 자신이 하는 고민이 왠지 우스워졌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민 여사가 웃으면서 조언했다.

“진룡이 아무리 짓누른다 해도 윤 엔터가 망하진 않아요. 그냥 지금보다 좀더 힘들어 질 뿐이지.

태준이는 여전히 연기할 수 있을 테고, 설아는 뭐…. 할 게 없으면 시집이라도 보내면 되죠.

저렇게 잘 키워놨으니 어디 데리고 가겠다는 사람이 한 둘이겠어요?

그리고 소속사 식구들도 그냥 진룡한테 납작 엎드리기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 걸요. 마음속으로 결정하기가 힘들다면 그들의 생각도 한번 들어보세요.

그리고 만약 그들의 뜻도 저희랑 같다면 더는 망설이지 말아요.”

마지막 남은 술을 천천히 삼키면서 강철은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이제는 확실히 방향을 정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동안 식어 있던 윤강철의 심장은 그렇게 조금씩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음날 윤 대표는 가장 먼저 박 실장과 오 팀장을 불렀다.

“마지막으로 물어볼게 있어서 불렀어. 난 사실 진룡과 손을 잡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할 생각이야. 만약 그렇게 결정했는데 앞으로의 일이 잘 안 풀린다면 최악의 경우, 오 팀장하고 박 실장은 이 바닥을 떠야 할지도 몰라.

그러니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해 줬으면 좋겠어.”

“어제 저하고 은밀하게 연락하는 지인이랑 따로 이야기를 해봤는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지금 진룡쪽 수뇌부가 저희에게 가진 악감정이 가벼운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이수연 씨가 소속사를 옮길 때 RD 쪽에서 입은 피해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군요.

게다가 저번에 정민수 씨가 성추행으로 조사를 받을 때 일이 커져서 결국 정우철까지 잡혀 들어간 것까지 기분 나빠하는 분위기라 진룡하게 좋게 가는 것은 물 건너간 거 같습니다.

그러면 결국 싸워야죠.”

박 실장은 기본적으로 진룡하고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피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을 보니 그렇게 녹녹하지가 않았다.

우선 상대의 분노를 풀어주고 훗날 뛰어난 배우들의 가치로 공생관계를 걸을 수 있을 거라는 박 실장의 계획은 진룡이 품고 있는 원한이 생각보다 커서 시작하기도 전에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진룡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로 생각하긴 했습니다. 만약 이 바닥에 발붙일 곳이 없어지면 저희 팀 애들 밥만 굶지 않게 해주십시오.”

오 팀장은 애당초 이수연과 소속사를 옮길 때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진룡과는 같은 길을 걷지 못할 것이라고 짐작했었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확실히 진룡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날 필요성이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진룡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자기 생각을 들은 윤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을 내보낸 후, 민수와 수연을 불러들였다.

두 사람이 들어오자 사정을 이야기하고 생각을 물었다.

“아 그래요? 하긴 거기 되놈들은 참 어지간히 질척질척하다니까.

뭐 괜찮아요. 원래 은퇴할 생각까지 있었으니까요. 이번에 드라마 찍고 CF로 돈도 적당히 댕겨 놨고, 정 짜증 나게 굴면 내려가서 아버지 과수원에서 과일이나 따죠. 뭐.”

아 그리고, 망해도 태준이는 살아남을 거 아닌가요? 그럼 됐죠. 뭐.”

이수연은 쿨하게 받아들였고.

“아…. 그렇게 됐나요.”

민수가 들어봐도 딱히 별다른 대안은 없었다. 자기가 생각해봐도 진룡의 제안은 윤 엔터에 찍어 누르겠다는 것밖에 안 되었기 때문이다.

진룡의 수작은 자신이 생각했을 때 시간을 끌면서 자신들의 자존심을 챙기자는 기만책밖에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진룡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민수 자신과 수연을 제외한다고 치더라도 지금 소속사에는 지금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 중 한 명인 태준이 있다. 그리고 많은 활동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움직이기만 하면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조진성, 정윤숙까지 속해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배우란 무조건 대체할 수 있는 존재일 뿐인 걸까. 만약 자신이라면 굳이 적극적으로 적을 만드는 일을 사서 하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진룡은 그렇게 움직였고 우리도 결국 그에 맞춰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연기 인생이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이제 연기에 대한 욕심은 남았지만, 집착은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된 민수는 되도록이면 상황을 편하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진룡하고 완전히 사이가 틀어져도 방송국에서 거의 자체 제작하는 아침드라마나, 독립 영화는 찍을 수 있는 거잖아요. 만약 일이 꼬이면 한동안 독립 영화판에서 연기나 더 배우죠. 뭐…

게다가 말 들어보니 저희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대표님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을게요, 전.

지금 상황 최고의 선택을 해 주실 거라 믿어요.”

민수는 그렇게 윤 대표에게 믿음을 표시했다.

이번 일로 피해를 볼 만한 모든 가족의 의견을 들은 윤 대표는 진룡하고 완전히 척을 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묵직한 한방이 되어야 하리라.

민수는 자신의 방으로 이동하면서 오늘 윤 대표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윤 대표의 말대로 진룡하고 완전히 척을 진다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민수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될 수도 있었다.

전생에서는 윤 엔터에 젊은 배우는 태준 밖에 없었으니 진룡하고 척을 질 일도 없었고 만약 척을 졌다 해도 별다른 피해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지금도 태준에게 크게 피해갈 일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사실 자신이 수연을 소속사로 다시 데려오면서 자신과 수연 때문에 커진 스노우볼이라 민수는 따로 하소연할 곳도 없었다.

“하긴 그래서 더러우면 뜨라는 말도 있지.”

자신과 수연이 태준 급만 되었어도 그런 제안에 신경 쓸 가치조차 없었을 것이다.

조금 속상한 가슴을 부여 않고 민수는 차가운 물로 속을 달랬다.

하지만 당장 민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으니 그냥 제 일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윤 대표가 결심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소속사 내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다.

민수는 낮에는 소희의 연기를 도와주고, 저녁에는 자신의 팬 카페에 글을 남기면서 소통하면서 편하게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조진성 선생님의 마지막 연기를 보고 싶어 어떤 핑계로 촬영장을 찾아 갈 수 있을지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민수에게 혜민이의 오빠인 준수가 찾아왔다.

“민수 형님. 오랜만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준수는 예전의 그 왜소한 준수가 아니었다.

거의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무슨 짓을 하고 다녔는지 몸이 단단하게 불어난 상태였다.

“와…. 준수 씨. 전혀 몰라보겠네요.”

“에이, 준수 씨라니요. 형님 그냥 편하게 준수야 하고 불러주세요. 하하하”

게다가 성격도 호탕해진 준수를 보면서 민수는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대체 아리 재단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일이 준수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나 보다.

잠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던 준수는 자신에 손에 들고 있던 서류뭉치를 민수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야?”

“제가 전에 말씀드렸었죠. 글을 쓴다고요. 제가 최근에 완성한 시나리오예요. 민수 형님이 가장 먼저 읽어 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가지고 왔습니다. 아리 재단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쓴 제 첫 시나리오입니다.”

민수는 준수가 내민 시나리오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고 천천히 읽어 보았다.

“어…..”

준수가 내민 영화 시나리오는 생각보다 더 재미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끝까지 훑어본 민수는 환하게 웃으면서 준수를 바라보았다.

“와… 재밌어. 내가 작품 보는 눈이 특별히 좋은 건 아니라서 딱 뭐라고 말하기는 힘든데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재미있는데.

혹시 이걸 제작사 쪽에 보낼 생각이야?”

민수가 말하자 준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 듯 살짝 붉어진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하하하. 아직 그 정도는 아니죠. 그냥 혹시 천천히 보시고 수정할 만한 곳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렇게 완성되면 그때나 한번 보내 보려고요.”

“그래. 내가 다시 한번 천천히 살펴볼게.”

민수가 시나리오를 받아 들자 준수는 다시 호탕하게 웃으면서 아리 재단으로 돌아갔다.

“생각보다 재주가 좋네. 이런 글을 쓰다니. 예전에 무슨 공모전에서 상도 받았다더니 글재주가 상당했구나.”

민수가 그렇게 시간을 보낼 때쯤 윤 대표는 앞으로의 행보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7층 대표실.

박 실장과 민 여사를 불러 모은 윤 대표는 모두에게 자기 생각을 전달했다.

“내가 고민해 봤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래, 문제는 간단한 거였어. 진룡이 손쓰기 전에 우리가 더 높은 곳에 가 있으면 돼.

우리가 딱히 진룡을 무너트리겠다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목표는 진룡하고 상관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거니까 말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능하다면 진룡에게 한방 먹여 줄 수 있으면 그것도 좋겠지.

그래서 결정했어.

지금, 우리는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어. 하지만 우리가 마땅히 들어갈 영화가 없지.

그럼 우리가 영화를 만들면 돼. 이건 총력전이야.

내가 소속사 대표로서 빵점짜리라도 해도 영화판이라면 말이 달라지지.

모든 인력과 인맥을 동원해서 영화를 만들 거야.

목표 상영 날짜는 아마도 5월쯤. 진룡에서 만드는 “유적 탐색자” 랑 비슷한 시기에 개봉하는 거야.”

그리고 왜 이런 판단을 내렸고, 영화를 어떤 식으로 제작할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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