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94화 (94/325)

#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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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의 코디 조수정은 민수가 보기에는 조금 이상한 아이였다.

아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많은 나이였지만 조그마한 키에 앳된 얼굴은 실제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수정이 민수를 전담한 지가 이제 겨우 5개월 정도.

별로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정은 왠지 민수에게 조금 헌신적이었다.

리온에게 옷을 양보했을 때도 자신보다 더 속상해했고, 자신이 기죽는다며 “힐링 멘토”에서 엉뚱한 짓을 벌이려고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니.

“힐링 멘토” 접속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좀 더 오래 알았다고 치더라도 조금 과하지 않은가.

민수는 바로 코디 팀으로 이동해서 수정을 찾았다.

수정은 민수가 자신을 찾아오자 영문을 몰랐지만 그래도 반가운 얼굴로 민수를 맞이해 주었다.

“배우님이 웬일로 절 찾아오셨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 별건 아닌데. 좀 물어볼게 있어서.”

민수는 얼굴에 의아함을 가득 담고 있는 수정을 향하여 팬 카페에 관하여 물어 보았다.

“내가 우연히 “힐링 멘토”에서 내 팬 카페를 발견했어. 그런데 소모임의 회장이 수정이, 너더라고.”

민수의 말에 수정은 겨우 그걸 물어보러 왔냐는 듯이 실망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에이. 그걸 이제 봤어요? 하긴 요즘 좀 어수선하긴 했었죠.

음, 우선 처음 만든 건 제가 아니었어요. 배우님 데뷔한 이후에 어떤 분인 반 장난으로 만드신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이 호응이 좋아서 참가자 수가 막 늘어나 버린 거예요.

그래서 저도 가입은 했지만 사실 그때는 특별히 무슨 활동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문제는 그다음인데, 전에 인터넷에서 벌어진 일들 때문에 커뮤니티가 배우님으로 대동단결 된 거 혹시 기억하세요?

그때부터 커뮤니티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소모임에 가입했고, 배우님이 유명해진 이후에는 배우님의 팬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힐링 멘토”에 많이 문의했나 봐요.

그러다 보니 결국 “힐링 멘토” 운영진도 소모임을 따로 운영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사람을 찾는데 역시 마땅히 할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님하고 가까이에 있는 제가 그냥 하기로 한 거예요.

별로 할 일도 많지 않으니까요.”

“아….”

수정의 설명을 들어보니 대충 어떤 식으로 흘러갔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하긴 루머사건 당시에 “힐링 멘토”가 일시적으로 욕설로 도배되었었다.

그것은 운영진 입장에서는 전혀 반갑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민수네]에 가입하자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민수의 대한 이야기는 [민수네]에서만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자 반갑게 생각했겠지.

문제는 자신이 유명해진 후, 자신의 팬 카페에 가입할 의사가 있던 외부 사람들이었다.

“힐링 멘토”에 가입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은 [민수네]에 가입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모르긴 해도 지인들을 통해서 약간의 문의가 오가지 않았을까?

어쨌든 귀찮은 상황에 직면한 운영진이 소모임을 분리해서 운영하기로 결정하게 되었고, 결국 그 운영을 수정이 하기로 되었다는 것인데….

“하…. 그래도 “힐링 멘토” 내에 팬 카페는 좀 너무한데, 게다가 공식 팬 카페란 말은 또 뭐야?”

“에이, 어쩔 수 없었어요. 솔직히 배우님 팬들은 아직도 거의 커뮤니티 분들이라고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배우님을 의심하지 않은 분들. 외부인원은 이제 겨우 천명 정도 될까요? 상황이 조금 이상해져서 외부에 따로 팬 카페를 만들기는 이미 늦었잖아요.

아. 그리고 공식이야 간단하죠. 제가 그냥 홍보팀에 가서 보고했더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배우 팬 카페란 게 원래 그렇죠. 뭐.”

수정이 말이 맞긴 했다. 커뮤니티 분들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항상 응원해주었지.

아마 자신의 진정한 팬들이라면 역시 그분들이 아닐까.

다만 문제는 소모임으로 독립이 되었다고 해도 [민수네]는 외부에서 자신의 팬 카페에 가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겠지만…. 생각해 보니 그게 무슨 문제인가 싶었다.

“[민수네] 내부에서도 배우님 팬들이 가입하는데 번거로워서 인원이 많이 늘지 않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는데, 많은 분들이 차라리 잘됐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입 절차가 번거로울수록 진짜 배우님 팬들만 오지 않겠냐고요. 수가 좀 적어도 그게 더 좋다고 하네요.

회원분들 중에 예전에 덕질 좀 해보신 분이 있는데 그분 말이 오합지졸 만 명보다는 정예인원 백 명이 훨씬 낫다고 하더라고요.”

민수의 고개가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연예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태도일지는 몰라도 민수는 그래도 팬 카페의 인원이라면 무조건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민수네]라는 이름처럼 정말 자신이 마음을 기댈 수 있는 그런 곳이 될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일이 없어도 네가 코디 일을 하면서 팬 카페를 관리하는 게 번거롭지 않겠니?”

민수가 조금 걱정스럽게 말하자 수정은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배우님, 솔직히 제가 진짜 할 일이 없다는 거 모르시는구나.

어떻게 돼 먹은 피부인지 화장도 한번 먹으면 별로 고칠 일도 없고, 의상 가끔 교체하는 거 빼고는 제가 할 일이 없어요. 완전 월급 루팡이라고요.

스케줄이 많으신 것도 아니고 심지어 한창 드라마 촬영할 때도 그냥 대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만 있었거든요.

이거라도 없었으면 어쩔 뻔했는지. 이거라도 하니까 은혜 갚음 하는 거 같아서 전 차라리 좋답니다.”

“은혜 갚음이라니?”

“아. 기억 못 하시는구나. 하긴 상담해준 게 한두 명이래야지. 사실 제가 조언 왕님께 상담받은 사람 중 한 명이거든요.

뭐, 배우님은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요.”

생각지도 못한 수정의 말에 민수는 잠시 기억을 가다듬어 봤지만, 수정의 말대로 그 당시 워낙 많은 사람을 상담해 주었기 때문에 수정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노력하는 듯한 민수의 모습에 수정은 웃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별거 아니었어요. 제가 홀어머니랑 같이 살았거든요. 아버지는 전혀 기억이 안 났는데 그게 사실 정말 만난 적이 없어서 그렇더라고요.

어머니도 아버지 이야기를 안 해 주시다가 나중에야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는 사실만 말씀해 주시곤 했죠.

그래도 그렇게 둘이 잘살고 있었는데, 작년에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셨어요.

혼자 남은 것이 너무 힘들어서 저는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그런데 올해 갑자기 자신이 아버지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저를 보고 싶다는 거예요.

만나봐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되어서 “힐링 멘토”에 글을 올린 건데 그때 배우님이 저에게 딱 명쾌한 대답을 해 주신 거죠.”

“그거야…”

수정이 설명을 시작하자 민수는 비로소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민수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그냥 무난하고 평범하게 대답했던 것 같았는데, 지금 수정은 명쾌하다고 하니 민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배우님이 사람은 만나봐야 알 수 있다고 우선 만나는 보라고 하셨죠.

홀로 남은 사람에게 가족은 큰 힘이 될 수 있다면서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으니 만나는 보고, 대신 신중하게 살피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별로 가진 것이 없기 때문에 빼앗길 것도 없어서 걱정이 없지만, 혹시 나쁜 의도일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만나보라고 하셨고, 또 혹시 아버지라는 사람이 폭력적이거나, 도박하는 낌새가 있거나 음주량이 많다면 바로 도망치라고 하셨는데….

뭔가 좀 현실적이면서도 재미있었다고나 할까요. 저렇게 조심할 게 많은데 대체 왜 만나라고 하는지 웃기기도 했고요.

하여간 배우님 말을 듣고 우선 만나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좀 외로웠거든요.

그리고 아버지를 만났는데, 아버지 말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조금 위험한 일을 했었는지 교도소에서 제법 오래 계셨더라고요.

면목이 없어서 찾지 못하고 있다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불안해서 연락했다고, 미안하다고 하시는데 제가 보기에는 그래도 좋은 분 같았어요..

그리고 홀어머니랑 사는데 생각보다 금전적으로는 크게 안 힘들다 했더니 그게 다 아리 재단이랑 아버지가 생활비를 지원해 주시고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감옥에 계실 때는 아리 재단이, 출옥 후에는 아버지가 말이에요.

지금은 아버지랑 잘 지내고 있어요. 배우님 말대로 살펴보니 음주 안 하시고 흡연 안 하시고 도박 안 하시고 마약 같은 것도 안 하시고 폭력적이지 않으시더라고요.

그렇게 조금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이제 무엇을 할까, 패션 공부나 제대로 해볼까 고민 중이었는데 아리 재단에서 코디네이터를 뽑는다면서 아버지가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들어온 게 윤 엔터였고요.

어쨌든 요즘은 매우 만족하면서 사는 중이랍니다. 일이 별로 없는 것만 빼면요.”

그러면서 꼭 배우님 때문은 아니지만, 배우님의 말을 듣고 그 핑계로 아버지가 만날 용기가 생겼으니 배우님께 은혜를 입은 거라는 수정에 말에 민수는 그냥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그래도 아버지 만나서 잘 지낸다니 참 다행이네. 아버지도 아리 재단에서 일하시고?”

“네. 그렇다고 하시던데요.”

“그래. 그럼 팬 카페는 잘 부탁할게. 이왕에 하는 거 잘해 봐. 엉뚱한 사람이 하는 것보다야 그래도 네가 더 낫겠지.”

“그럼요. 믿어 주세요.”

민수의 말에 수정은 양 주먹을 굳게 쥐고 올려 보였다. 우스운 이야기였지만 단단하게 쥔 그녀의 두 주먹에서 민수는 왠지 그녀의 굳건한 의지가 느껴지는 듯했다.

민수도 수정이 별로 할 일이 없는 것은 인정했다. 특히 자신은 거의 방송에 출연을 안 하니 다음 작품에 들어가기 전에는 수정은 완전히 개점휴업상태일 것이다.

그리고 왠지 저렇게 의욕에 찬 모습을 보니 말리기도 참 어려웠다.

7층 대표실

윤 대표는 며칠이 지나는 시간 동안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였다. 별다른 해법이 없어서 그런지 여러 가지 가능성만이 그의 머릿속에 떠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윤 대표를 강하게 자극하는 한 가지 사건이 발생하였다.

윤 대표와 민 여사가 같이 있는 대표실, 박 실장의 보고를 들은 윤 대표의 표정이 사정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니까, 일 년 동안 납작 엎드려 있으면 진룡쪽의 블랙리스트에서는 지워 주겠다?”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것도 직접 전한 것도 아니고 돌아 돌아 들려오는 소리가 그렇다고요?”

“네. 하지만 사실 지금까지 진룡의 행보를 생각해보면 이런 메시지는 진룡이 보일 수 있는 가장 온건한 움직임이긴 합니다.”

“이게 가장 온건한 움직임이 다라….

우리한테 직접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자신들하고 직접 대화할 급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데도 우리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삼화 때문이겠네요. 그나마 저렇게라도 하는 걸 보니까, 진룡도 고민은 많겠어요.

혹시 우리가 삼화랑 무슨 작당이라도 할까 싶어 신경이 쓰인다는 거니까요. 아마 태준이 때문이겠죠.”

“우리가 일 년 동안 잠자코 있으면 우리가 굽히고 들어간 게 될 테니 자신의 자존심이나 권위도 살릴 수 있을 테고, 그동안 변수도 줄일 수 있다는 거군.

하지만 이건 조금 웃기지 않나?

자기들이 먼저 건드려 놓고 우리보고 굽히라는 건 대체 우리를 뭐로 생각하는 거야?”

“진룡 입장에서만 본다면 결국 피해는 자신들만 봤으니, 어떻게든 윤 엔터의 양보를 받아내야 할 겁니다.”

“자기들이 먼저 때리려다가 카운터에 맞고 나자빠진 주제에, 우리보고 알아서 고개를 숙이라….”

“사실 이대로 간다면 적어도 올해 1, 2분기는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긴 합니다.”

“기분이 나빠. 아주 많이. 뭐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기분이 아주 더러워.

하지만 바로 반발하기에도 상황이 별로 좋지 않군.

그냥 차라리 태준이나 활동시키면서 한 해 쉬면 어쩌면 그다음부터 좀 편해질 수 있으니, 대표로서는 그게 더 맞는 판단일 수도 있으니 말이야.

박 실장 만약, 진룡쪽에서 보낸 저 제안을 거절한다면 그때는 정말 진룡하고는 끝이겠군. 아닌가?”

“그럴 겁니다. 진시첸 사장은 자존심이 아주 강한 인물이거든요. 아마 저런 제안조차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으면 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존심…. 자존심이라….”

“저희 배우들이 다 탑급에 오른 게 아니기 때문에 진룡과 갈등을 지속하는 것은 사실 별로 좋은 일은 아닙니다.”

“진룡의 도움 없이 모든 배우를 탑급에 올린 다라….”

진룡의 메시지는 윤 대표의 자존심을 상당히 자극하고 들어왔다. 하지만 개인이 아닌 대표의 자리에 앉은 윤 대표는 섣불리 진룡의 메시지를 바로 거절하지는 못하였다.

윤 대표의 고민이 더 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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