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3
진룡은 분장제로 영화를 수입할 권리를 얻게 되자, 할리우드 영화사와 협조를 꾀하는 한편 그 권리의 일부를 한국으로 돌리는 방안을 생각하게 되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중국에서의 투자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될 것이고 자본의 압박에서 벗어난 블록버스터급 영화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반기에 한편, 후반기에 한편 2편의 영화를 중국을 목표로 한 블록버스터로 계획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삼화의 진출을 저지할 목적으로 가능성 있는 한국 영화들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전반기에 진룡이 투자한 영화가 평소보다 월등하게 늘어난 것은 그런 이유였다.
“시류의 흐름이 그런 것인데, 대표님 때문이라고 생각하기는 좀 그렇네요. 그럼 이번에 진룡에서 200억가량을 투자하게 되는 블록버스터 영화인 “유적 탐색자”는 어떻게 될 거 같은가요?”
“진룡에서만 200억, 그리고 아마 총 투자금은 300억가량 되지 않을까?
아마 저 영화를 첫 번째 중국행 수입영화로 결정하겠군. 아마도 한국에서 제작은 하겠지만 거의 중국영화 같은 스타일이 될 거야.
그들이 원하는 건 중국보다 뛰어난 한국의 촬영기술과 편집기술, 그리고 CG 기술일 테니까.
주연 배우가 한국의 남자배우 민현우, 여자 주연이 중국 배우인 시웨이. 사실 민현우는 한국 배우이긴 하지만 한국보다는 중국에서 더 유명하긴 하지.
중국에서 드라마를 두 편을 찍었으니까. 게다가 중국 로케도 제법 잡혀있고, 확실히 중국 색에 맞는 영화가 나오긴 하겠군.”
“조금 의문이군요. 그럴 바에는 아예 합작영화나 중국영화를 제작하는 게 편하지 않나요?”
민 여사의 의문에 고개를 끄덕인 윤 대표는 조금 설명을 덧붙였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진룡은 그럴 수가 없어. 전에 말했었잖아.
중국에 3개의 미디어 그룹이 있다고 그중에 투자 규모가 큰 자국 영화는 남은 미디어 그룹인 “천루” 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이야.
이게 무슨 법칙은 아니지만 지금 상황에서 진룡이 그쪽 영역을 넘본다면, 아마 바로 개싸움이 시작되지 않을까 싶군.
그러니 그런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
쉽게 풀이하자면 자국 내에서는 “천루”가 영화를 “삼화”가 드라마를 그리고 가요는 “진룡”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지.
대신 수입 콘텐츠에 대하여서는 아직 정리가 안 되고 서로 영역이 겹치면서 경쟁이 만연한 상태인 거야.
결국 자국 내 미디어에 대해서는 거의 고착화가 되어버려서 수입 콘텐츠로 영역 다툼을 하고 있다는 거지.”
“오호… 그런 거군요. 그럼 “천루”는 어떤 콘텐츠를 수입하고 있나요?”
“천루 쪽은 드라마나 영화 수입에는 아직 별로 관심이 없어. 자국 영화산업 발전에는 관심이 있지만 말이야.
천루쪽은 지금 예능 프로그램의 플랫폼을 수입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더군. 한국이나 일본의 예능 프로그램 말이야.
덕분에 그 영역에서 제법 이익을 보고 있기도 해.”
잠시 중국의 미디어 상황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 민 여사와 윤 대표는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방향에 대하여 논의하기 시작했다.
“결국은 지금 전반기 영화시장을 진룡에서 독점하다시피 하려고 한다는 거죠?”
“맞아, 그게 문제야. 사실 독점은 아니지 투자 규모가 작은 것들은 신경 쓰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야.
문제는 그런 영화를 만약 수연이나 민수가 찍게 되면 아마 MJ에서는 상영관에 올려 주지 않을 거라는 거지.
아기자기한 로맨스 같은 영화를 찍는다면 그냥 MJ 없이도 다른 곳에 올려서 손익분기점을 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거야.
하지만 제작사 입장에서 MJ에 올리지 않을 각오를 하고 과연 수연이나 민수를 써줄 것이냐 라고 생각해 본다면 역시 그건 조금 어렵지 않을까?”
“결국 당장은 진룡 자본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흥행 가능성이 높은 영화를 찾아야 한다는 거네요.”
“결론은 그래. 그래서 지금 좀 고민이야.”
“그럼 차라리 그냥 드라마는 어때요?”
“드라마라….. 드라마는 가능하겠지. 그런데 딱히 추천해 줄 만한 작품도 없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애들이 드라마를 별로 찍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지.”
“흠…. 조금 곤란하네요. 그건.”
조금 난처한 처지에 처한 윤 대표의 고민은 길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서울로 돌아온 민수는 바로 부모님의 봉안당을 옮길 준비에 착수하고 있었다.
윤 엔터는 민수의 요구를 빠르게 수용하여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했으며 며칠 만에 이전작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서울 근교에 부모님의 봉안당을 이전한 민수는 이제 앞으로 자주 부모님께 인사를 오기로 하고 다시 자신의 생활로 돌아갔다.
새로운 해로 넘어가는 시점, 윤 엔터의 배우들은 한가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바쁜 것은 아직 연기를 배우고 있는 소희였다. 한가한 윤 엔터의 배우들은 소희가 연기를 연습할 때마다 옆에서 상대역이 되어주고 있었다.
RD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관심에 소희는 다른 배우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도 소희가 연습을 하는데 민수가 합류하여 연습을 도와주고 있었다.
연습실에서 단둘이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소희와 민수를 밖에서 쳐다보고 있던 설아는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랜만에 윤 엔터에 들린 태준은 그런 설아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설아에게 다가갔다.
“뭐야? 표정이 왜 그 모양이야?”
태준이 묻었지만 설아는 태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연습실 안을 계속 주시하면서 입을 열었다.
“저기요, 오라버니. 저기 안에 민수 오빠랑 소희 언니요. 왠지 조금 다정해 보이지 않아요?”
설아의 말을 들은 태준은 설아의 옆에서 연기하고 있는 민수와 소희를 바라보았다.
잠시 바라보던 태준은 피식 웃고는 문을 열고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간 태준은 민수의 주변에서 그들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잘 들어 보았다.
“소희 씨. 조금 전에 대사 할 때 무슨 생각 하셨어요? 여기 주인공이………..”
“아, 제가 생각하기에는요. 그러니까……………………”
“그건 그렇네요. 하지만 이건…………….”
“음….. 그렇긴 하네요. 이건 선생님께 다시 한번 여쭈어봐야겠어요.”
자신이 들어 왔는데도 신경 쓰지 않고 방금 연기한 것을 녹화한 영상을 보면서 토론하고 있는 둘을 보고 태준은 실실 웃으면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설아는 태준이 나오자마자 안에 상황이 어떤지 눈빛으로 물어보고 있었지만, 태준은 아무 말 없이 설아를 데리고 휴게실로 이동했다.
“하…. 동생아.”
태준이 설아를 부르자 설아는 귀를 쫑긋 세우고는 태준의 말에 집중했다.
“원래 연애라는 건 사냥과 같은 거야.
곰이 사슴을 잡아먹기 위해서 공격을 한다든지, 아니면 늑대와 화랑이가 서로 먹이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운다든지 말이야.
어쨌든 누군가가 육식동물처럼 공격을 하고 달려들어야 연애가 시작된다는 말이야.”
“그게 무슨 뜻이야?”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설아에게 태준은 웃으면서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데 저기 안에 두 명은 그냥 사슴이랑 토끼야.
그냥 서로 멀뚱멀뚱 보면서 풀만 뜯고 있어. 그러니 무슨 일이 일어날 리가 있나.
그러니 걱정은 단단히 붙들어 매셔.”
마치 네 마음을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어깨를 두드리는 태준의 모습에 설아는 얼굴을 잔뜩 붉히고는 태준의 손을 탁탁 털어냈다.
“걱정은 무슨 걱정!?”
설아는 벌떡 일어나서 콧방귀를 뀌면서 서둘러 도망쳤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준이 피식 웃는데 설아는 저만치 달아나서 태준의 말을 생각하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다. 섹시한 스타일이라고 했는데…. 소희 언니가 딱 얼굴 자체에서 색기가 샥 흐르는데….
내가 너무 예민했나?
그나저나 누가 먼저 달려들어야 연애가 시작된다고? 흠….”
수연은 요즘 설아에게 끌려가 밤마다 운동하면서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희까지 덩달아 수연 잡혀서 그 고통을 나누고 있었다.
민수에게는 별다른 타격이 없었던 설아의 지옥 18단계는 수연과 소희에게는 엄청난 고난으로 다가왔다.
조금 운동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온 수연이라면 모를까, 얼마 전까지 걸그룹 연습생으로 댄스연습을 하던 소희에게까지 벅찬 운동량이라니, 역시 설아의 지옥 18단계는 명불허전이었다.
민수는 자신에게 설아가 운동을 청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는데 수연과 소희가 설아와 운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나랑 하면 재미가 없으니 수연 선배하고 소희 씨로 갈아탔군. 확실히 몸매 가꾸기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으니 수연 선배가 합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어.
난 나중에 낮에나 가서 혼자 운동해야겠군.”
운동량과는 상관없이 삼부 레깅스를 입은 설아를 감당하기가 조금 벅찼던 민수는 설아가 자신을 대신해 수연을 선택한 것에 마음속 깊이 감사했다.
그리고 저 멀리에서도 아련히 들려오는 수연의 비명에 민수가 할 수 있는 일은 조용히 명복을 비는 일뿐이었다.
“설마 나중에 혜민이까지 저 대열에 합류하는 건 아니겠지?”
왠지 진짜 몇 년만 더 지난다면 그렇게 될 거 같아 민수는 혀를 차면서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온 민수는 오랜만에 인터넷을 접속하고 자신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역시 요즘은 별다른 말이 없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힐링 멘토로 넘어가려는데 한구석에 이상한 글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배우 정민수 팬클럽 가입방법.]
“응? 뭐지 이건?”
민수가 그 글을 클릭하자 글의 내용이 펼쳐졌다.
-안녕하세요.
요즘 정민수 배우에게 관심이 생겨 팬 카페에 가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정민수 팬클럽이라는 [민수네]를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입하기를 눌렀더니, 우선 커뮤니티에 가입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조금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마음먹은 거 커뮤니티까지 가입신청을 눌렀어요.
그랬더니 커뮤니티 가입조건과 규칙이 쭉 나오더군요.
실명 사용, 비속어 사용금지 이런 것들은 다 좋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커뮤니티에 가입하려면 정신과 진료기록이나, 가족의 정신과 진료기록을 첨부해야 한다고 해서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정민수 팬 카페 혹시 다른 곳은 없나요?
“허…. 이게 무슨 소리지?”
당황한 민수의 눈은 자연스럽게 이 글에 달린 답변과 댓글로 향하였다.
-사스가 정민수! 정말 예상을 포기하게 만드는 남자구나!
-정민수 패기!
-와 진짜 웃긴다. 이런 데다가 팬카페를 파 놓다니.
-저기 대체 무슨 커뮤니티인데 실명사용에 비속어 사용금지야?
-있다 그런데가. 우리나라 인터넷 3대 청정구역이라고 들어나 봤냐?
-(우수답변) 정민수 배우님의 정식 팬 카페는 “힐링 멘토” 내에 [민수네]뿐 입니다. 하지만 커뮤니티 힐링 멘토는 접근이 매우 어려운 커뮤니티인 만큼 우회 경로로 팬카페에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정민수 배우의 팬 카페의 따로 가입하고 싶으신 분은 [email protected] 으로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댓글을 살펴보던 민수는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서둘러 “힐링 멘토”에 접속하였다.
“힐링 멘토도 오랜만이네. 다들 별일은 없겠지?”
대충 글을 살펴보니 요즘 특별한 이슈는 없는 것 같았다.
“글도 좀 줄어든 것 같기도 하고…. “
왠지 글이 좀 줄어든 것 같아 잘 살펴보니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한때 자신 때문에 글이 폭발하던 시기가 있어서 상대적으로 글이 적게 느껴진다고 생각한 민수는 서둘러 소모임 란에서 [민수네]를 찾기 시작했다.
“아 있네…. 뭐야 회원 수가 3271명? 이거 지금 직접 활동하고 있는 힐링 멘토 회원 수 보다 많은 거 아니야?”
민수가 서둘러 [민수네]를 클릭하자 그곳에 자신의 사진과 자신의 이력 등이 상세히 기록된 페이지로 이동하게 되었다.
한쪽에 자신의 스케줄 표까지 올라가 있었는데 요즘 스케줄은 공란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어디 보자…. 회장이 어? 조수정? 아니 이 녀석은 대체… 게다가 여기가 진짜 공식 펜 카페라고? 대체 누가 인정했다고 공식이야?”
그리고 커다랗게 쓰여 있는 [민수네] 옆에 “윤 엔터테인먼트 정민수 배우 공식 팬 카페”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하…. 이게 무슨 일이야. 내 주제에 팬이 3천 명이 넘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
그리고 글을 보니 이제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힐링 멘토 자유게시판이 아닌 이곳에서만 하기로 했나 보다.
하긴 자신의 이야기로 게시판이 도배된 때도 있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운영진 입장에서도 차라리 이게 낫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아. 임시회원 신분으로 소모임에 가입할 수 있게 바꾼 거구나.
임시회원의 권한은 소모임만 가입할 수 있고, 소모임 내에서만 글을 쓸 수 있게 해놨으니 딱히 커뮤니티에 문제 생길 것도 없고.
그래서 회원 수가 저렇게 많아질 수 있었던 거군. “
그래도 따로 저 이메일로 문의를 하고 가입을 하는 귀찮음을 감수해야 할 테니 이곳에 가입한 사람들은 확실히 자신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나저나…. 조수정 진짜… 얘는 무슨 생각이야?”
민수는 자신의 코디인 수정과 진짜 진지한 이야기를 해봐야 하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