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89화 (8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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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는 열리는 시상식이란 일반적으로 문화체육부에서 주관하는 4개의 시상식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청룡 영화상, 백호 가요제, 주작 방송 연기대상, 현무 방송대상 이렇게 4개의 시상식이 한 해를 결산하는데 이 중에 배우들이 대상이 되는 시상은 청룡 영화상과 주작 방송 연기대상이었다.

연말 시상식은 그 심사 과정부터 투명하고 여러 가지 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그 권위가 상당했다.

게다가 일 년에 20개의 드라마만 초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우선 자신의 드라마가 주작 연기대상에 초청되었다는 것만으로도 그 한 해를 보람차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작품 운이 좋지 못한 배우는 몇 년 동안 시상식에 초청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입상하는 것은 더더욱 그러했다. 일 년 동안 방송했던 모든 드라마 중 선별된 20개, 그리고 그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 전체를 대상으로 그 우열을 가리게 되니 입상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배우들조차 별다른 입상 경력이 없는 경우가 상당했다.

그야말로 운과 실력을 모두 갖춰야 입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공동수상을 인정한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배우를 대상으로 하는 수상은 대상, 남녀 최우수 연기상, 남녀 우수 연기상, 남녀 조연상, 남녀 신인상 이렇게 9가지뿐인데 만약 공동 수상까지 인정하지 않았다면 정말 피 튀기는 싸움이라고밖에는 표현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태준의 “별에서 온 당신”과 수연, 민수의 “널 위한 노래 : Song For You” 는 당당하게 주작 방송 연기대상에 초청된 작품이었다.

그리고 윤 대표는 내심 태준의 대상 수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만약 주작에서 대상을 받을 수 있으면 태준이의 가치는 완벽하게 한 단계가 올라 갈 수 있을 거야. 솔직히 말해서 드라마 시청률이란 건 그야말로 럭비공 같은 거잖아. 그야말로 짐작을 할 수가 없다는 거지.

이번에 대상을 받지 못한다면 아마 영원 받지 못할 수도 있어.”

“아마 경쟁자는 “태풍”의 조태식 씨겠죠?”

“그렇겠지. 태풍이라… 확실히 사람들이 태풍을 제대로 만든 한국형 블록버스터 드라마라고 부르더군. 그래서 그만큼 시청률도 좋았고, 사실 태식이 연기도 나무랄 데가 없긴 했지만….”

“역시 문제는 해외 반응이랄까요.”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요즘 이상하게 심사위원들이 외국에 진출한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 왠지 조금 문체부의 입김이 들어간 기분이지만.”

“그러면 태준이가 더 가능성이 있긴 하겠군요.”

“그건 그래. 그래서 더 기대를 하는 거고.”

“그럼 수연이랑 민수 쪽은 어때요?”

“알 수 없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아. 송포유도 리온 때문에 지금 한창 일본과 중국 쪽에서 방송을 시작했으니까.

문제는 시청률이 조금 미묘했다는 것인데….”

“그 정도면 아주 좋은 시청률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 평균 시청률은 높은데… 문제는 최고 시청률이 평균 시청률이라 별반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거지. 심사위원들이 어떤 생각으로 점수를 주느냐가 관건이긴 하겠어.”

민 여사와 윤 대표가 연말 시상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을 때, 민수와 패거리들은 민수의 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민수는 태준과 잠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나저나, 이번 시상식에서 대상은 우리 윤 배우님 것인가?”

민수가 장난스럽게 묻자 태준은 살짝 웃으면서 조금 능청스러운 태도로 민수에게 대답했다.

“맞아. 올해는 내가 맡겨 놨으니 가서 찾아오기만 하면 돼.”

“하하하. 정말 못 말리겠군.”

태준의 태도에 민수가 웃음을 터트리자 잠시 같이 웃던 태준은 조금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잘 모르지.

국내 성적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태풍은 막상 해외 진출은 못 했단 말이야. 그래서 내가 더 유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대상은 배우의 경력도 은근히 따진단 말이야. 그렇게 따지면 내가 태식 선배한테 조금 부족하긴 하지.”

태준의 말의 민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피식 웃으면서 태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런데 경력 말고도 배우의 그해 활동 전체를 평가 기준에 포함했던 거 같은데, 우리가 잊고 있었지만, 윤 배우는 올해 드라마를 한 개만 찍은 게 아니야.

올해 초에 넌 “서쪽 해변”도 찍었잖아. 비록 주작에 초청받지는 못했지만 말이야.”

민수의 말에 태준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하였다.

“그러고 보니…. 완전히 잊고 있었군. 그리고 “서쪽 해변”도 나름 일본에서 선전했었지. 덕분에 “별당신”이 일본으로 수출하는 게 더욱 수월했고 말이야.”

“그러니 믿어. 윤 배우.”

민수의 말에 태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크게 기지개를 켜면서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난 정 배우가 그렇게 기자 회견을 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 그때는 조금 놀랐다고.”

태준이 말을 돌려 민수의 기자회견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자 민수도 자연스럽게 그때 자신의 기분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그러게. 나도 잘 몰랐어. 그때는 정말로 화가 났었어. 그런데 막상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랬을까 싶어.

너도 알고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감정 기복이 심한 놈은 아니잖아? 그런데 그때는 진짜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났어.”

조금 심각한 표정의 민수를 보면서 태준은 이 친구가 또 말도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가 싶어 조금 타박하는 어투로 이야기했다.

“아니, 그건 누구라도 엄청나게 화가 날 일이야. 기자의 바로 앞에서 욕을 하지 않은 것만 해도 대단한 인내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태준의 말에 민수는 씁쓸하게 웃으면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준의 말대로 그 상황은 객관적으로 봐도 민수가 화가 날 상황이 맞았다. 하지만 민수가 걱정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그런 감정이 너무 생소했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세상사에 조금 무감각해져 있는 자신의 감정이 특정 상황에서만 너무 충동적으로 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런 감정의 흐름이 전혀 일관성이 없었다.

그리고 전생에서는 전혀 무관심하던 것들이 지금은 점점 신경 쓰인다는 것도 걱정이었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후 자신에게 쏟아진 욕설을 보면서도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이건 자신의 일반적인 반응이 맞았다. 원래 전생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송포유 초반에 리온이 이상한 이유로 기 싸움을 벌이는 데 자신이 그냥 유니의 의상을 양보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것, 민수가 생각했을 때 이러한 행동은 정말 전형적인 자신의 행동 스타일이었다.

타인과 사소한 것으로 갈등하는 행위 자체를 피하는 것 말이다.

그렇다면 근래의 자신은 어떠했나.

어차피 무죄는 확정 났고 기자들에게 그렇게 공격적으로 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알리고자 하는 바만 이야기하고 그들이 궁금해할 만한 일은 회피하는 것이 평소 자신에게 걸맞은 행동이었다.

그리고 날 고소한 여성에 대해서도 그냥 속으로 “별 미친 X 다 보겠네” 하고 그냥 잊어버리는 게 자신의 평소 행동 패턴이었다.

전생의 자신은 타인의 무의미한 악의에 익숙하고 그것에 일일이 신경 쓰다가는 결국 자신만 피곤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신의 이상 행동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자신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크게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군에서 지내면서도 알고 지낸 것이 형우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요즘 자신은 어떠한가.

설아의 연기 연습에 관여했다. 그리고 수연이 소속사에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생판 모르는 혜민이를 위하여 전 재산을 투척했다. 그리고 소희가 소속사에서 잘 생활하기를 기원하면서 설아와 대화를 틀 기회를 제공했다.

진짜 문제는 정말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자신이 전혀 위화감을 느끼지 않은 것이다. 마치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행동을 한 것처럼.

사실 혜민이의 치료비를 낸 일은 자신의 의도가 포함된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행동으로 자신에게 조금 더 떳떳해질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자신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면 변화의 근거는 있었다. 회귀하고 도피성 몰입 증후군의 존재를 알게 된 후부터 되도록 많은 사람과 접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내 목표이긴 했다.

하지만 그런 목표에 과연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간섭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까지 들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민수는 요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또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마치 전생의 자신이 죽을 때까지 연기의 집착을 놓지 못한 것처럼.

민수의 생각이 거기까지 도달했을 때 태준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 정 배우. 정 그렇게 걱정되면 전문가에게 상담해 보면 어떨까? 난 정확히 네가 뭘 걱정하는지 짐작도 못 하겠어.

혼자 그렇게 고민해 봤자 무슨 답이 나오겠어. 그러니 시간이 나면 바로 선생님부터 찾아보자.”

태준의 말을 들어보니 과연 그러했다. 주기적으로 상담을 해야 했지만 처음 상담 이후에 상담실을 찾아간 적이 없었다.

민수는 태준의 말에 애써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생각해보니 정 배우도 이번에 신인상을 노려볼 수 있으려나….”

태준의 말대로 민수도 신인상 후보에 올라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같은 드라마의 리온도 후보에 올라있으므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가능성이 없진 않았다.

아마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공동으로 수상하는 것일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아마 리온이 받게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민수는 상에 대하여 별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글쎄. 아마 리온이 받지 않을까? 하긴 신인상은 공동으로도 많이 주니… 가능성이 없진 않겠네.”

“그래….”

덤덤한 민수의 태도에 태준은 정말 저 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회였고 신인상은 그야말로 천운이 내리지 않으면 받지 못한다고들 하는 상이었다. 그 상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데 어째서 저렇게 덤덤한 것일까.

민수는 태준의 표정을 보니 왠지 이 친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에이… 나라고 상이 탐나지 않을까. 그런데 진짜 신인상은 신이 점지한다고들 하잖아.

그러니 그냥 덤같이 생각하려고.

솔직히 나로서는 주작에 초대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감격이거든.”

민수의 말은 정말 솔직하게 그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민수는 자신이 주작에 초대되어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일 년을 충실히 보낸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야망 없는 남자! 남자가 야망이 없으면 인기가 없어요.”

태준이 웃으면서 민수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민수는 그의 어깨가 한없이 넓게 느껴졌다.

시상식이 다가오고 있는 시간, 윤 엔터의 코디 팀 사이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시상식 시즌, 특히 여배우가 있는 소속사들이 초긴장을 하는 시기였다.

어떤 여배우가 어떤 옷을 입는가는 일종의 자존심 싸움으로 넘어가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물론 윤 엔터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 있지 않았다.

하지만 유니에서 드레스를 제공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하자 더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게다가 남성복까지 유니에서 제공해 주기로 했다. 심지어 앞으로도 최소 몇 년간은 윤 엔터 배우들의 시상식 의상은 유니에서 전담하기로 했으니 코디 팀의 얼굴에서는 한동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조윤희 선생님의 의견을 전달하게 된 수정은 코디 팀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했다.

그렇게 시상식 날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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