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88화 (88/325)

# 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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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고 여성의 무고죄에 대한 수사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났다.

여성의 계좌에는 2000만 원이라는 거금이 입금된 정황이 있었는데, 여성은 이 돈이 어떤 돈인지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였다.

심증적으로 확신을 얻은 김지희 검사는 여러모로 여성을 압박했다.

물론 여성도 처음에는 발뺌하고 범행을 부인했다. 자신은 그냥 속은 것뿐이라는 것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정도에서 그냥 무죄로 넘어갈 무고죄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랐다.

김지희 검사의 성향과 사람들의 관심이 과하게 집중된 사건이라는 점이 상황을 흐지부지 넘어갈 수 없게 만들었다.

사건을 빨리 해결해 버리기 위해 많은 경찰이 움직였고, 때마침 그 근처를 지나갔던 한 차량의 차주가 자신의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함으로써 사건 해결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그렇게 한 남자가 잡혀 오고 계속 우기면 무조건 최고형량으로 공소제기 하겠다는 김지희 검사의 협박 아닌 협박과 적당히 실토하면 민사상으로는 귀찮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 주겠다는 회유에 여성은 울면서 자신의 죄를 실토했다.

다만 문제는 여성에게 2000만 원을 제공한 사람의 실체였는데 수사는 그 부분에서 막히고 말았다. 계좌 자체도 대포 통장이라 정확한 주인을 알 수 없었고, 여성의 입에서는 자신을 RD에서 연예인으로 만들어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는 증언을 확보했지만, 그 증언은 어떤 증거도 될 수 없었다.

그때 RD 측에서 한발 먼저 움직였다.

내부 감사 결과 배임, 횡령의 혐의가 있는 전 대표인 정우철을 고소한 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정우철이 유용한 회사 자금을 챙기는 계좌가 있다는 사실을 검찰 측에 살짝 흘렸고, 검찰은 그 계좌가 문제의 대포 통장이라는 사실을 금방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계좌의 주인까지 확정되자 김지희 검사는 조사 결과를 전부 언론에 발표하였고, 신고 여성에게는 징역 1년을 구형하였다.

김지희 검사가 여성에게 벌금형이 아니라 실형을 구형하자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들고 일어나 그녀를 맹비난했지만, 김지희 검사는 “자신의 금전적 이득을 위하여 남을 무고한 정황이 지나치게 악질적이라 실형을 구형할 수밖에 없다. 다만 스스로 자백한 점을 미루어 형량을 낮추어 공소제기 하게 되었다.”라는 입장만을 밝힌 채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지희 검사가 투명하게 수사 과정과 결과를 공개했고, 양형 사유도 명확하게 공개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일이 이렇게 흘러가니 일부 여성단체의 목소리는 공염불이 될 수 없었고, 많은 남성들은 우선 무고를 한 여성이 실형을 구형되었다는 사실 하나로도 쌓였던 울분을 조금 풀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의 일이었지만 그 여성은 결국 징역 1년을 인정받기는 했지만 집행 유예 3년으로 형을 살게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명확한 사례를 남김으로써 훗날 많은 남성들이 무고에서 벗어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어이없게도 이 진행 과정 어디에도 민수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이 사건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가장 크게 받은 곳은 두 군데였다.

먼저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준성 식품”이었다.

민수가 광고한 “준성 사이다”는 처음에는 조금씩 판매량이 느는 것에 그쳤지만 결국 여성에게 실형이 구형되자 갑작스럽게 판매량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폭발적인 판매량은 잠시 동안 유지되는데 그쳤지만, 그 후에도 평소보다는 적어도 20% 이상 늘어난 판매량을 꾸준히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곳은 “천지일보”였다.

민수가 수사를 받기도 전에 기사를 올린 “천지일보”는 사람들의 직접적인 비난을 받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의 기억 속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 주고 말았다.

그리고 내부 조사를 통해 루머사건 이후로 개인적으로 가진 민수에 대한 원한을 가지고 정우철에게 향응을 받고 후 기사를 올린 연예부 부장은 퇴직처분을 받게 되었다.

“천지일보”도 자신에게 고개를 돌린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믿음을 주기 위해서는 큰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무고죄에 대한 수사가 종결되는 순간, 큰 이슈가 잦아들기를 기다리던 날개 엔터에서는 이카루스의 타이틀곡 “너와 함께”의 개인 버전 5곡과 6편의 뮤직비디오를 일제히 발표했다.

이카루스의 팬들뿐만이 아니라 다소 감미로운 부드러운 “너와 함께”를 즐겨 듣던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매력이 담긴 다양한 버전의 솔로 곡을 들으면서 이카루스의 숨겨진 음악성에 감탄했고, 뮤직 비디오를 보면서는 탄성을 터트렸다.

특히 원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K-G의 솔로 곡은 조금 늘어지는 듯 끈적한 재즈풍의 멜로디에 낮게 읊조리는 듯한 K-G의 랩이 너무 잘 어울려 가장 많은 호평을 받았다.

특히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면서 여주인공으로 출연한 설아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는데, 다소 발랄하고 귀여운 분위기의 4명의 뮤직비디오와 섹시하고 관능적인 느낌의 K-G의 뮤직비디오를 한 명의 여주인공으로 촬영했다는 점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설아는 그렇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와 자신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여지없이 각인시켰다.

설아가 당장 특별한 활동을 할 계획은 없지만 이렇게 얼굴을 한번 비춘 것만으로 도 다음 활동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민수도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섹시하고 관능적으로 변한 설아의 모습에 마음속으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특히 조금 촉촉이 젖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할 때는 묘한 퇴폐미까지 느껴져서 설아의 모습과 예전에 자신이 경애하던 “세라”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니 왠지 지금도 매일 만나 가끔은 투정 부리고 귀엽게 웃는 설아가 조금 매력적으로 보이기까지 했으니 민수는 자신이 남자는 남자인가보다 싶기도 했다.

“내 취향이 확실히 큐티보다는 섹시에 가까운가 보다.”

뜬금없는 일이었지만 설아의 뮤직비디오에서 민수는 자신의 여성 취향을 조금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날이 지나고, 서서히 연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상식 시즌이 다가오자 태준도 슬슬 중국 활동을 마무리 짓고 윤 엔터로 돌아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상식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태준과 윤 대표 일행은 자신들의 따듯한 보금자리로 돌아왔다.

태준이 중국 활동을 시작한 지 대충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태준은 중국에서 많은 것을 얻어왔다.

가장 먼저 직접적인 금전적 이익이었다. 태준은 중국에서 찍은 CF 촬영 그리고 각종 행사에 참여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인기와 인지도를 얻음으로써 지금보다 더 높은 이름값을 가지게 된 것이다.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데 이제 앞으로 태준이 출연하는 드라마와 영화는 더 수월하게 중국에 진출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작품 선택에 폭넓은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단적인 예를 들어 지금 윤 엔터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진룡 미디어가 직접 투자한 제작물이 아니라면 태준이 원하는 작품을 선택했을 때 제작사가 태준을 진룡과의 관계 때문에 거부할 소지가 없어진 것이다.

조금 쉽게 부연 설명하자면 진룡과 협력관계에 있는 여러 제작사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수평적 동맹 관계에 가깝다. 그리고 그들은 진룡과 서로 이익을 주고받는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태준의 참여가 특정 드라마나 영화에 큰 수익을 보장하게 된다면 진룡이 그보다 더 큰 이득을 제공하지 않는 한 제작사에서는 진룡의 눈치를 보지 않고 태준의 합류를 반길 수 있는 것이었다.

만약, 진룡이 별다른 대가를 지급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에게 압력을 가한다면 결국 그들은 자신의 동맹들만 잃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기는 배우 개인의 사생활에는 큰 제약을 주는 유명세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취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에 큰 자유를 부여하는 날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태준은 이번에 완벽한 날개를 달고 돌아온 것이다.

마지막으로 얻은 건 윤 엔터가 태준의 활동으로 중국의 삼화 미디어와 안면을 트게 된 것이다. 이것이 당장 이익으로 작용하진 않겠지만, 앞으로 여러 배우가 활동을 하는데 다양한 긍정적인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오랜만에 소속사를 찾은 태준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밝은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는 태준의 모습에 민수는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밀어 태준을 반겨 주었다.

“윤 배우 격조하셨구먼. 대륙의 물은 많이 드시고 오셨나, 그래. 어떻던가 넓은 땅은?”

“하하하. 대륙에 윤태준 이름 석 자를 확실히 새겨놓고 왔다네, 정 배우.

정 배우도 다사다난한 한 달을 보냈던데 어디 그래. 취조실의 공기는 바깥세상의 공기와는 많이 다르던가?”

자신의 너스레를 더욱 과한 표정과 포즈로 받아들이는 태준을 보면서 민수는 헛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된 거야? 내가 중국에서 기사보고 내 눈을 의심했다니까.”

“그냥 윤 배우가 본 그대로야. 누가 날 신고해서 내가 조사를 받았고, 난 상대를 맞고소 해서 상대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냥 이거지 뭐.

민 여사님이 말씀하시길 그 뒤에 이것저것 복잡한 문제가 있는 모양인데, 내가 그런 거까지 알고 싶지는 않더라고.

아, 어쨌든 그 정우철인가 하는 대표는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데 아마 유죄가 거의 확정이고 감옥으로 가게 될 거라고 하더라고.

그러니 당분간은 그런 이상한 일은 이제 없겠지. 뭐.”

“너무 여유 있게 말하니까 정말 별거 아닌 거처럼 느껴지는데.

어쨌든 그 사람이 잡혀갔다니 속이 좀 시원하네.”

“그렇지. 민 여사님이 수고가 많으셨어. 대표님하고 박 실장님까지 안 계시는데 뒷수습하시느라고 고생하셨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수연이 설아와 함께 다가와 태준의 뒤통수를 살짝 두드렸다.

놀란 태준이 수연을 째려보자 수연은 주먹으로 태준의 복부를 살짝 밀치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야. 이 자식아. 한국에 왔으면 이 누나한테 제일 먼저 보고를 했어야지. 빠져서는.”

그런 수연을 바라보면서 그냥 피식하고 웃기만 했다.

“자, 우리 바보 오라버니가 집으로 돌아온 기념으로 아지트에서 파티를 즐겨 봅시다.”

설아의 외침에 태준과 수연도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오랜만에 즐겁게 지내자는 것에는 찬성이었지만 그 장소가 자신의 방이라는 사실에서 깊은 절망을 느꼈다.

“하…. 진짜 방을 뺄 때가 된 건가….”

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면 신나게 계단을 오르는 빌런들을 따라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7층 대표실

오랜만에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온 윤 대표는 민 여사와 그간의 지내온 일들과 중국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제 삼화도 한국 시장에 관심을 두게 된 거 같아. 앞으로는 지금처럼 진룡 혼자서 한국 영화를 독식하지는 못할 거야.”

“그리고 중국 내 스크린도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면서요?”

“그래. 지금은 2만 5000개 정도에 불과하지만, 인구수를 생각해볼 때 아마 적어도 4만 개에서 5만 개 까지는 더 늘어나게 될 거 같아. 그럼 중국 시장은 더 거대해지겠지.”

중국 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얼마 전 있었던 민수의 일로 옮겨지자 윤 대표는 웃으면서 민 여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이야기 들었어. 혼자서 수고가 많았다고.”

“수고는요 일은 애들이 다 했죠.”

“듣기로는 어르신한테까지 연락했다던데. 괜찮았어?”

“별일도 아닌데요, 뭘. 이제는 서로 부담스러운 부탁은 하지 않으니 괜찮아요.

이제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지나면 그분하고의 연결고리도 서서히 끊어지겠죠.”

“사적으로는 돌아가신 당신 부친의 친우 분이시기도 하잖아. 너무 억지로 그러지 않아도 돼.”

민 여사는 조금 슬프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 후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결국 시상식 때문에 들어온 셈이네요. 이번에 “별에서 온 당신”이 초청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니까요.”

“그렇지. 시상식은 중요하니까. 어쩌면 태준이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도 있을 거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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