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82화 (8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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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쇼케이스 현장은 이미 수많은 팬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좌석이 지정된 쇼케이스지만 오랜만에 공식활동을 시작하는 이카루스를 멀리서라도 보기 위해 수많은 팬이 모여든 것이었다.

촬영장에서는 조금 허술하고 착해 보이는 청년이지만 역시 배우 방필수와 가수 리온은 전혀 다른 사람인 모양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리온을 보기 위해 모여있다니.

정해진 주차장에 차를 대고 먼저 내린 민수는 스텝들이 이동하는 통로 쪽을 살펴보고 있는데 미리 기다리던 형우가 민수를 반겨 주었다.

“와~ 민수형. 이런 데서 보니까 또 다르네.”

웃으면서 다가오던 형우는 민수를 보자마자 반갑게 입을 열고 떠들기 시작했다.

“하! 어제 소속사 건물 안에서 엄청난 여신을 발견했어. 그분도 소속사 배우님이신가? 처음 보는 얼굴이었는데.

세상에… 그냥 편한 옷을 입고 걸치고 있는데도 그냥 그 자태가…..”

형우가 떠드는 사이에 차 안에 있던 나머지 일행들이 내려 민수 쪽으로 다가왔다.

“헉! 여신이다!”

형우가 지금까지 떠들어 대던 여신이 설아였는지 민수의 곁으로 설아가 다가오자 그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형우가 조금 창피했던 민수는 애써 웃음 지으면서 설아에게 형우를 소개했다.

조금 얼어있는 표정의 형우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인 설아는 혜민을 데리고 먼저 안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 형우의 모습에 고개를 저으면서 민수가 설아를 뒤따라 가려고 하자 형우는 민수에게 따라붙으면서 묻기 시작했다.

“뭐야. 민수형. 형이 저 여신이랑 왜 같이 와?”

실없는 형우의 질문에 민수는 설아가 연기자 지망생이라고 소개하고, 앞으로 어쩌면 네가 설아를 담당할 수도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와…. 그래? 그런데 난 저렇게 예쁜 사람 눈앞에서 본건 처음이야. 이수연 배우님도 예쁘긴 하지만 귀여운 스타일이잖아. 와…꾸며 놓으니까 더 장난 아닌데.”

감탄한 듯한 표정으로 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우를 보면서 민수는 혀를 차면서 그의 뒤통수를 가볍게 내리쳤다.

“감탄으로 끝내라? 조형우. 매니저랑 연예인 사내 연애는 완전 아웃이거든.”

민수의 말에 형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허탈하게 웃으면서 민수의 뒤를 따랐다.

“형. 나도 내 주제는 알거든. 그리고 예쁜 건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거야. 내가 저분 매니저가 되면 달라붙은 날파리들을 어떻게든 퇴치하겠어!”

굳은 의지를 보이는 형우를 모습에 민수는 저놈도 설아의 지옥 18단계를 경험해 봐야 정신을 차릴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별다른 말 없이 설아를 따라갔다.

아직 시작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우선 민수는 설아와 혜민이를 데리고 이카루스의 대기실을 찾았다.

이카루스 멤버들은 경험이 많은 가수답게 별로 긴장하지 않고 대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사실, 이 쇼케이스도 활동 전에 팬들에게 먼저 인사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팬 서비스에 불과했다.

이카루스가 신인도 아니고 이런 쇼케이스를 할 필요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실 문을 열고 민수 일행이 들어오자 리온이 먼저 일어나서 민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하하하 형님 오셨어요.”

리온은 민수에게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려다가 뒤따라 오는 설아와 혜민을 발견하고는 바로 웃으면서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 아리따운 여성분이랑 꼬마 숙녀분도 반갑습니다. 이카루스의 리온이에요”

민수는 리온에게 혜민이 이카루스의 팬이라 이카루스를 만나고 싶어 해서 데려왔다고 솔직히 이야기하고 멤버들의 양해를 구했다.

이카루스의 멤버들도 어쩌면 조금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흔쾌히 혜민이를 반겨 주었다.

“요~ 이 꼬마 숙녀분이 우리 팬이었어? 어? 그러고 보니 좀 익숙한 숙녀분인데….”

“형. 저분 그분이잖아 정민수 씨가 도와줬다는 그 꼬마 숙녀분.”

“아~ 맞다. 그분이구나. 와 이렇게 귀여운 숙녀분이었다니~”

혜민이가 이카루스 멤버들에게 다가가 배꼽 인사를 건네자 그들은 따듯하게 웃으면서 혜민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시작된 작은 팬 사인회. 혜민이는 멤버 모두의 사인을 받고는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즐거워했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리온만이 조금 심각한 얼굴로 설아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결심했다는 듯 작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민수에게 다가왔다.

“저… 혹시 형님 옆에 분이 누군지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민수는 리온의 의외의 말에 별다른 생각 없이 설아를 리온에게 소개했다.

“아, 이분은 윤 엔터의 배우 지망생 윤설아 씨에요. 인사 나누시겠어요?”

“반갑습니다. 윤설아라고 합니다.”

설아가 살짝 고개를 숙이면서 자신을 소개하자 리온은 설아를 살짝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멤버들을 불러들였다.

“야야! 저분 잘 봐.”

리온의 말에 멤버들은 혜민이를 데리고 우르르 리온 앞으로 모여들어 설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들의 뜨거운 눈빛에 설아는 살짝 당황했지만, 잠시 바라보다 헉! 이라고 외치면서 다시 자기들까지 바라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저들이 더 당황한 거 같아 무슨 말을 해야 할지를 몰라서 민수를 쳐다봤다.

민수도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리온을 바라보면서 무슨 설명을 해주기를 기다렸다.

잠시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리온은 자기들끼리 의견을 완전히 조율했는지 조심스럽게 민수와 설아를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하하. 죄송합니다. 많이 놀라셨죠. 사실은 저희 이번 타이틀곡이 “너와 함께”라는 곡인데 아직 뮤비가 없어요.”

리온이 말을 듣고 있던 민수는 순간 전생에서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번 이카루스의 엘범은 훗날 지금까지 이카루스가 만든 엘범 중에 가장 완성도가 뛰어난 엘범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그래서 타이틀곡은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고, 이카루스 위상은 대한민국 아이돌 중 탑의 위치에 공고하게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 엘범의 타이틀곡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지 않아 사람들은 이점을 매우 궁금해했었다.

“원래 “너와 함께” 라는 곡은 멤버들이 자신의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아기자기하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노래거든요.

그래서 뮤비에서도 여성분을 모시고 촬영을 해야 하는데, 멤버들이 다 의견이 달라서요.”

리온이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태호가 툴툴거리면서 끼어들었다.

“다들 어차피 뮤비를 찍을 거면 곡 해석에 맞게 자신의 이상형과 비슷한 여성분이랑 찍고 싶어 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잖아.

우리가 배우도 아닌데 적어도 우리 이상형 같은 분이 아니면 그런 수줍어하는 내용을 잘 찍을 수나 있겠냐?”

“야. 태호, 말은 솔직하게 하자. 그냥 이 기회에 가상이지만 이상형이랑 그런 기분 한번 내보고 싶은 거라고 말이야.”

“아니. 나만 그런 거 아니잖아. 다들 그런 생각으로 양보하지 않은 거 아니야?”

그런 태호와 K-G 의 말에 리온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설명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이런 생각들이라서요. 아무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아서 각자 멤버들의 이상형을 조합해 봤는데… 그랬더니 아주 말도 안 되는 조합이 나오더라고요.”

“말도 안 되지 그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

“그래서 지금 그냥 뮤비는 없이 가자고 결정을 한 상황이에요.”

“뭐 우리가 꼭 뮤비를 찍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민수는 리온의 설명을 들으면서 조금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하던 “너와 함께”가 뮤비가 촬영되지 않은 이유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이유였다.

세상에 뮤비를 찍으면서 그런 사심을 챙기려고 했다니, 그리고 그게 안 될 거 같으니 결국 뮤비는 포기했다는 리온과 멤버들을 보니 새삼 태준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다가왔다.

‘허… 진성 또라이들이잖아 이거…. 진짜 얘들 팬들은 얘들 이런 거 아나 모르겠네.’

민수의 표정을 본 리온은 부끄럽다는 표정으로 민수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해 안 가실 수도 있겠지만…. 원래 그런 게 저희 작업 스타일이에요. 마음에 드는 것만 하고 그게 아니면 그냥 갈아엎는 거요.

그래야 자유분방한 음악이 나온다고 예전부터 이런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요.”

이카루스의 음악성을 위하여 “날개”가 전혀 제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였다니, 소속사 입장에서는 제법 속이 터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각자 원하는 여성분을 모시고 5명의 여성분이랑 뮤비를 촬영하면 되잖아요.”

옆에서 듣고 있던 설아가 지적하자 리온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했다.

“저도 그러면 좋겠지만…. 소울이가 말하기를 그러면 구도가 너무 안 좋아지고, 게다가 돈도 너무 많이 들어서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도 맞는 게 런타임 4분 정도에 10명이 번갈아 가면서 나오면 혼란스럽기만 하잖아요.

그렇게 되면 저희가 생각하는 퀄리티가 나오지 않을 거고 그럴 바에는 하지 말자. 이렇게 된 겁니다.”

민수는 리온의 말에서 그래도 그들이 최소한의 생각과 브레이크는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리온의 말의 저의는 전혀 파악하지 못해서 조금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아. 말이 샜는데… 어쨌든 그렇게 포기하고 있었는데…. 여기 그런 분이 계시네요! 모든 멤버들이 수긍할 만한 그런 그런 뮤비 주인공이요.”

설아를 바라보며 감탄하듯이 말하는 리온의 모습에 설아는 눈을 크게 뜨고 민수를 쳐다보았다.

당황한 민수도 리온에게 확인하듯 다시 물어보았다.

“대체 이상형 조합은 어떤 식으로 나왔는지 혹시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민수의 질문에 태호가 신나 하면서 설명을 시작했다.

“음…. 우선 살짝 도도한 듯 시크한 데다가 그러면서도 은근히 귀엽고, 쌍꺼풀이 없는 데도 은근히 큰 눈에 미끈하게 쭉 빠진 다리와 완벽한 콜라병 형태의 몸매, 그리고 곡선이 매우 매력적인 여성분이요.

좀 세세하게 들어가면 얼굴은 고양이상에 앙칼진 매서움을 가지고 있으면서 눈가는 살짝 내려와 귀여움과 애교 섞인 웃음을 지을 수 있어야 하고, 키는 162가 넘어야 하고 170이 넘으면 안 돼요.

특히 다리는 다리를 모으고 섰을 때 일자로 쪽 곧게 붙어야 하며, 엉덩이는 최대한 공격적인 형태의 사과 형이면 좋겠고, 허리는 특히 날씬해서 몸 선이 너무나도 우아하게 연결되고, 그..흠흠 가슴은 적어도 C컵 정도는 되는….”

“야, 이 자식아! 여성분도 계시는데 그렇게 막 다 까발리는 거야?”

당황한 멤버들이 서둘러 태호의 입을 막았고 설아는 그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조금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일인데 설아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무던하게 웃으면서 넘어갔다.

어쨌든 설명을 들은 민수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5명이나 되는 남자들의 이상형을 조합한 것이니 저런 말도 안 되는 게 나오긴 하겠다 싶었다.

아니 그나마 특정 조건을 다른 사람이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조건들을 잘 생각해보니 지금이 앞에 그런 여자가 있었다.

“딱 설아 씨네요. 그거….”

설아와 묘하게 딱 들어 맞는 조건에 민수의 입에서는 작은 탄성이 흘러나왔고 새삼스레 그녀의 우월한 외모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쨌든 그런 상황이라….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뮤비에 출현해주실 의향이 있으신가 해서요.”

“아…. 그건 우선 소속사에 물어보기도 해야 하고, 그쪽도 아주 급한 상황인 거 같아 미안하지만, 그래도 하루만 시간을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당연하죠. 부담 없이 연락해 주세요.”

설아와의 이야기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민수는 이카루스 멤버들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응원해 준 후 혜민이랑 설아를 데리고 대기실 밖으로 나섰다.

원래 혜민이에게 이카루스를 소개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는데, 왠지 설아를 소개하러 온 셈이 되어버린 민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카루스의 노래가 큰 인기를 누릴 게 분명하니, 만약 설아가 뮤비에 출연하게 된다면 자신의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은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선택은 본인과 회사가 하는 것이니 민수는 설아에게 특별히 권유하지는 않았다. 아니 어쩌면 설아가 이카루스 전원의 이상형과 합치 한다는 사실에 조금 얼떨떨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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