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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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연 선배.”
“아씨, 깜짝이야!”
민수가 슬쩍 다가가 수연을 부르자 수연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라며 민수를 노려보았다.
수연의 반응이 너무 과격해서 민수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바로 사과했다.
“미안해요, 선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셨나 봐요. 이렇게 접근하는데도 전혀 모르시다니.”
“아?... 아…. 뭐….”
자신에 말에 수연이 급하게 얼버무리자 민수는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굳지 따져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황하는 수연을 위하여 말을 돌리면서 이야기했다.
“하… 타이트하게 촬영하다가 막판이 되니까 좀 루즈해져 버렸네요. 원래 드라마 촬영은 일반적으로 후반으로 갈수록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거 아닌가요?”
“그..그렇지. 원래 작가가 사람들 반응에 따라 쪽 대본을 계속 바꾸면서 던지고 그러면 재촬영에 재촬영…. 이런 식으로 계속 늘어지는데, 우리 작가님은 대본을 잘 안 바꾸시니까.
지금 사람들이 불만 있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
7화 이후 20%를 넘어선 “송포유”의 시청률은 그 이후 몇 화 동안 고착화 상태에 이르렀다. 사람들은 시청률이 더 올라가지 않는 이유를 최준과 미주, 준성의 삼각관계가 주던 긴장감이 사라져 버려 극의 진행이 조금 늘어지게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가가 회심의 한 수라고 선택한 것이 악수가 되어버린 것인데, 그런 설정은 다시 돌아갈 수도 없으니 작가 입장에서는 밤에 잠을 못 잘 정도로 속 쓰린 일일 것이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나와 있어요? 집에서 쉬시지.”
“갑자기 휴일이 생겨버렸는데, 마땅히 할 일이 없네. 요 몇 주 바쁘게 살다 보니 그 루틴이 몸에 박혀 버렸나 봐.
그래서 설아나 보러 왔는데, 이 녀석은 선생님이 내준 과제를 하느라고 바쁘다더라고, 그리고 태준은 너도 알다시피 지금 한창 중국에 있을 거고.”
“아…. 선배는 공백도 길었는데, 그럼 그 시간 동안은 뭐하면서 지냈어요?”
“연예인이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니? 밖에 나다니면 여기저기서 귀찮게만 할 텐데. 그래서 난 그냥 집에 박혀서 게임이나 하면서 지냈지.”
“게임이요?”
한창때의 여자 연예인이 1년의 공백 동안 집에서 게임이나 하면서 보냈다니, 게임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연이 집에서 게임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하지만 수연의 말대로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면, 독서나 영화 감상. 그리고 게임 정도가 가장 보편적인 취미이리라.
“그 있어. 다섯 명씩 팀으로 하는 게임인데. 다섯 명의 적군보다 한 명의 아군이 더 무서운 그런 게임이 있어.”
수연은 말을 하고도 어이가 없는지 피식 웃더니 다시 설명을 계속했다.
“내가 그 게임을 한 이유는 팀에 못 하는 놈이 있으면 마음 놓고 욕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야.”
민수는 수연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민수가 아리송하다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수연은 조금 자세히 부연 설명했다.
“그때 내가 조금 답답한 기분으로 살았잖아. 어디 가서 실컷 욕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럴 수도 없고 그럴 때 게임을 한 거야.
잘 풀려서 이기면 기분이 좋아지고, 지면 신나게 욕을 해서 풀고. 오 만 가지 욕을 퍼붓고 나면 조금 기분이 나아지거든.
그냥 그렇게 지낸 거지.”
그제야 민수는 수연의 말을 정확히 이해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배가 욕하면 상대도 욕 할 거 아니에요. 악플에 욕설은 제법 신경 쓰시더니 그런 건 괜찮으셨어요?”
민수의 말에 수연은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차면서 민수를 바라보았다.
“야. 악플이 왜 기분 나쁜지 알아? 그놈들은 나한테 일방적으로 욕하는데 난 그놈들을 욕할 수 없기 때문이야. 서로 욕하는 거면 억울하지나 않지. 이건 무슨….”
이 말 한마디로 민수는 수연의 성향을 상당히 엿볼 수 있었다. 범상치 않은 사고방식의 소유자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 선배는 생각보다 더 호전적인 사람인가 보다.
왠지 수연은 악플러와의 키보드 베틀도 전혀 피하지 않을 거 같았다. 저 얼굴로 온갖 욕설을 날리는 모습을 상상하자 너무 어울리지 않아 민수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뭐야. 기분 나쁘게, 실실 웃기는. 하… 답답하니 집에서 게임이나 해야겠다. 그럼 나중에 봐.”
수연은 민수를 뒤로하고 윤 엔터를 나섰다.
“하… 윤태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이놈이라도 없으니까 허전하네…. 그리고 왠지 좀…..”
집으로 향하는 수연의 걸음이 어째선지 조금 무겁게 느껴졌다.
며칠 후.
이카루스의 쇼 케이스이자 “송포유”의 엔딩 장면 촬영 날이 되었다.
며칠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 형우는 오 팀장 밑에서 일을 배우는데 우선 수연의 팀에 합류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태준은 중국에서 몇 개의 광고를 찍고 중국 팬들을 만날 기회를 가졌다고 한다. 조금 흥분한 듯한 태준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기도 했는데 그중 재미있었던 것은 별당신에 대한 이야기였다.
원래 중국에서는 드라마 수입을 허락할 때 드라마의 내용이나 소재에 따라 허락하기도 하고 불허하기도 하는데, 별당신의 주인공이 다른 별에서 온 사람이라는 설정 때문에 외계인에 포함된다고 수입허가가 나지 않을 뻔했다고 한다.
“삼화” 쪽에서 움직여서 일명 “꽌시”로 허가를 받아 내긴 했지만 그런 이유로 드라마가 수입 제한될 수 있다니 민수는 중국이라는 나라가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민수는 어쨌든 태준이 중국에서 별문제 없이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희는 오늘 강환 선생님과 테스트 영상을 촬영한다고 했고, 설아는 오늘 하루 쉬기 위해서 며칠 동안 조금 빡빡하게 과제 영상을 촬영했으니 이따가 혜민이와 쇼케이스 현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엔딩 장면 촬영 전에 에피소드 영상 촬영이 있다.
이따가 쇼케이스까지 진행해야 하는 리온은 빠지고 나머지 인물들에 대한 에필로그가 촬영된다. 그래 봤자 리온이 없기 때문에 미주 개인 영상과 준성, 진주의 촬영뿐이었지만 말이다.
왠지 오르지 않는 시청률 때문에 막판에 무슨 사고라도 칠까 걱정되었지만, 작가가 그 정도 분별력은 있었는지 에필로그는 무난했다.
미주는 국내에서 의상 제작과 쇼핑몰, 그리고 최준의 전속 디자이너로 활동을 하게 된다. 외국에서 배우는 것보다 성공하기는 힘들겠지만, 미주가 원하는 대로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이었다. 결국 미주는 일보다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최준은 방송 활동은 하지 많지만, 공연장에서 노래할 때마다 많은 사람이 환호하는 그런 가수가 되었다.
언제까지 그런 날이 계속될지는 알 수 없지만, 최준은 미주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준성은 여전했다. 변함없이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완전히 친구가 되어버린 미주를 평온한 눈 바라보고 사람 된 최준을 예전처럼 투덜대면서 대하고 있었다. 다만…
진주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날 준성에게 선전 포고를 했다.
진주의 당돌한 고백에 준성은 어이가 없었지만 어린 녀석의 치기로 받아들였는데, 시간이 지나도 계속 저돌적으로 달려들자 이제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진주는 솔로 여가수로 방송에 데뷔하게 되었다. 감미로운 노래로 팬들을 사로잡고, 사차원적인 엉뚱한 사고방식으로 예능방송을 헤집고 다녔다.
특히 몇 년 동안 소속사 프로듀서를 쫓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공개해 정 엔터 식구들을 경악시키기도 했다.
에필로그를 살펴보던 민수는 작가님이 에필로그에서는 진주 쪽으로 조금 무게를 준 것을 느꼈다.
하긴 진주가 연기를 잘해준 것에 비해 배역의 비중이 조금 낮아져서 미안하게 생각했었는데 드라마 끝에라도 진주의 이야기가 정리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전에 진주와 민수가 진주 에필로그 부분을 대부분 촬영했다. 그리고 미주가 쇼핑몰을 차리고, 디자인하는 개인 촬영까지 마치자, 얼추 쇼케이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민수가 쇼케이스 현장으로 출발하려고 차에 오르는데 차 안에서 설아와 혜민이 민수를 반갑게 맞이했다.
“와….”
설아는 평소의 편한 옷이 아니라 작정하고 차려입은 듯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 주었다.
짧은 붉은 색 시티치 스커트에 롱 부츠를 신고, 가죽 소재의 반코트를 걸쳤는데 전체적으로 조금 시크해 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에 비해서 화장은 너무 투명하여 청순한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었는데, 그런 약간의 언벨런스가 설아의 매력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었다.
‘저건… 작정했네. 특히 화장이…. ‘
민수는 설아의 화장 상태를 보고는 왠지 처음 수연이 미주로 변신한 화장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마 진짜로 수연의 메이크업 팀에 도움을 받았던지, 아니면 샵에 가서 화장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아름답긴 했지만, 겨울날에는 조금 추워 보이는 설아의 의상에 고개를 저으면서 혜민을 바라보니 그래도 혜민이는 평범하게 따듯하고 귀여운 코트와 두꺼운 털장갑을 끼고 있었다.
한껏 차려입고 민수의 반응을 기다리던 설아는 민수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고 혜민을 바라보자 심통이 난 듯 삐죽이 입을 내밀었다.
“뭐에요? 그 반응은…. 이 정도 차려입고 나와 줬는데 입 바랜 칭찬이라도 하나 해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 예뻐요. 의상도 화장도 너무 예쁜데. 참…. 뭐랄까…. 혹시 추울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결국 예쁘다는 말을 들은 설아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민수를 바라보았다.
“조금 그렇긴 한데, 어차피 실내에서 하는 행사니까요. 그리고 원래 여자의 아름다움은 그만큼의 대가가 따르는 법이라고요.”
내심 아름다움보다는 건강을 챙기길 바랐던 민수지만 오랜만에 외출에 더 예쁜 모습을 하고 싶다는 설아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 할 수 있었다.
“그래요. 그건 그렇죠. 그런데 어떻게 이 차에 타고 있어요?”
“민 여사님이 설아 씨랑 혜민이를 민수 씨 차에 태우라고 말씀하셔서 제가 윤 엔터로 가서 모시고 왔습니다. 이수연 배우님 차에는 아무래도 코디랑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있으니까요.”
동원에 설명에 민수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확실히 여배우는 코디랑 스타일리스트 짐도 많고 설아랑 혜민까지 합류하면 조금 북적이리라. 게다가 그 차에는 이제 합류한 형우까지 있지 않은가.
“그렇네요. 그럼 어서 출발하죠.”
민수가 차에 탑승하자 차는 천천히 목적지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 안에 있던 수정은 연신 감탄하면서 설아를 보다가 민수를 보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설아 씨 진짜 여자가 봐도 너무 아름답네요. 나도 여배우 스타일리스트로 갔어야 했는데, 그냥 봐도 팍팍 꾸미고 싶은 욕구가 솟구치는 것이….”
조금 한탄하는 듯한 수정의 말에 민수는 쓴웃음을 지으면서 타박하는 어조로 수정에게 말하였다.
“하~ 그러게 말이다. 그랬으면 나도 댕댕거리는 스타일리스트가 없어서 조금 편하게 다녔겠지.”
“뭐에요? 제가 어때서요. 저야말로 꾸며도 별로 티도 안 나는 배우님 별로 거든요.”
설아는 발끈하는 수정과 한숨짓는 민수의 모습을 보면서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 혜민은 그런 둘과는 상관없이 시종일관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까닥이고 있었다.
그런 혜민의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민수는 혜민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혜민이는 기분이 좋아 보이네. 이카루스 오빠들 만나는 게 좋아요?”
“네! 가서 사인 잔뜩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친구들도 엄청나게 부러워했어요.”
친구들 몫의 사인까지 어떻게든 받아 내겠다는 혜민의 말에 민수는 그저 미소 짓기만 했다.
개인적으로 인사를 나누기 위하여 리온을 찾아갈 생각인 민수는 어쩌면 혜민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도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간 이동했을까 민수의 차는 정해진 목적지에 무사히 도달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