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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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가 윤 대표를 찾아 대표실을 찾았을 때 대표실에는 윤 대표와 민 여사, 그리고 박 실장과 태준까지 모여 심각하게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토론이라기보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윤 대표는 듣고만 있었지만 말이다.
민수는 소란을 피우지 않고 재빠르게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이야기를 경청했다.
“그러니까 박 실장 말은 단순히 허락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어야 한다는 것이군?”
“네, 대표님. 지금 그쪽에서 이런 제안을 하게 된 배경부터 올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중국은 지금 3개의 미디어 그룹이 콘텐츠 산업의 80% 정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지금 우리와 대단히 불편한 관계인 진룡이고요.
게다가 3개의 미디어 그룹은 자신의 자국 내 점유율을 확보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상태입니다. “
“3개라 거의 삼국지 같은 상황이군”
“네, 맞습니다. 지금 저희에게 제안한 삼화 엔터테인먼트는 삼화 미디어의 직속 산하 조직 중 하나인데, 원래 삼화는 한국의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것에 진룡과는 다르게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이 변했다?”
“맞습니다. 진룡이 판타즘을 이용해 몇 년 동안 제법 재미를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삼화 쪽에서도 생각을 조금 달리 먹은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아마도 확실히 생각을 바꿨다기보다는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을 해보자는 입장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시범적으로 별당신을 자신들의 인터넷 플랫폼에 끌어왔는데…”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별당신이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게 되었고, 그 주인공인 태준에 대한 관심은 한껏 높아져 버렸어. 그리고 그 배우는 자신들의 적인 진룡하고는 미묘한 적대 관계에 있는 소속사의 배우이고.”
“중국에서 적당히 써먹어 볼 가치가 있는 데다가 설령 인기몰이한다고 해도 적어도 자신의 적인 진룡하고는 손잡지 않을 배우. 그런 배우를 써보지 않을 이유가 없는 거죠. 삼화 입장에서는 말입니다.
삼화는 태준 씨를 이용해서 확신을 얻고 싶을 겁니다. 한국 배우가 중국에서 확실히 통하나 안 통하나.”
한국의 드라마는 예전에는 중국에서 나름 괜찮은 시청률을 보여왔다. 특히 사극 “대장금”의 인기는 가히 상상하기 힘든 정도였다.
하지만 그 뒤 중국의 정책이 바뀌면서 드라마 수출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몇 년간 드라마의 주제가 천편일률적으로 같았던 것도 중국 내 인기를 잃어버린 원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에서 한류가 힘을 잃자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힘을 잃게 되었다. 요 몇 년간 중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한국 배우들은 중국에서 중국드라마를 찍은 한국인 배우들뿐이었다.
중국 내 정책 변화로 대부분 인터넷 플랫폼을 통하여 간간이 방송되었지만 크게 인기를 끌지는 못했던 한국 드라마, 하지만 이번에 삼화에서 실험적으로 끌어왔던 별당신이 대박을 터트린 것이다.
“드라마의 성공… 그리고 만약… 중국 국민들이 그런 태준이를 반겨주고 태준이가 광고효과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네. 삼화에서는 아마 그다음으로 영화 산업에 눈을 돌릴 것입니다.”
“삼화의 스크린에서… 한국영화를 튼다… 이 말이지….”
현재 중국의 상영관 수는 약 5000개, 그리고 스크린은 25000개가량이었다. 규모가 작은 곳을 제외하고는 삼화가 가진 스크린 수는 대략 6500개 그리고 진룡이 가진 스크린 수가 대략 7000개였다.
하지만 수출된 한국영화를 상영해 주는 곳은 주로 진룡이었다. 진룡이 국내에 큰 영향력을 가진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런데 만약 삼화에서도 한국영화를 틀어준다면 삼화와 진룡은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국내에서 진룡의 영향력이 줄어듬과 동시에 한국 영화는 좀 더 좋은 조건으로 계약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확실히 박 실장을 말을 들어보니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분명히 알겠군. 하지만 자네도 같이 가야 할 거 같아. 난 중국 내 사정에 자네만큼 밝지 않아.”
“네. 대표님 준비하겠습니다. 그런데 대표님 통역은 어떻게…”
“아, 그건 괜찮아. 중국 표준어와 북경어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삼화의 본거지가 북경이라고 했던가.”
윤 대표가 북경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말에 박 실장은 쾌재를 불렀다.
표준어만 구사 할 수 있어도 물론 충분하긴 했지만 그들의 본거지가 북경인 이상 북경어를 구사할 수 있으면 한층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이야기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중국은 그런 나라였으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 여사는 구석에 앉아 빛나는 눈으로 윤 대표와 박 실장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민수의 모습에 실소를 머금고는 민수를 조용히 불렀다.
“그래, 우리 귀염둥이는 무슨 일로 이곳까지 행차하셨을 까나..?”
민 여사가 웃으면 말을 걸자 민수는 바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아, 별일은 아니고요. 제가 군에서 알던 동생이 혹시 이곳에서 매니저로 일할 수 있을까 해서요. 사람은 참 괜찮은 놈이거든요. 성격도 좋고요”
“어머… 그러니? 흠…. 괜찮겠구나. 그럼 한번 불러와 보겠니?”
민 여사가 웃는 얼굴로 허락하자 민수는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목표를 달성한 민수는 출장 계획에 집중하고 있는 나머지 사람들을 한번 살펴보고는 웃는 얼굴로 밖으로 나섰다.
그렇게 밖으로 나온 민수는 휴게실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수연과 설아를 발견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는지 멀리 떨어져 있는 민수에게까지 웃음 소리가 들릴 지경이었다.
촬영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고, 마지막 촬영은 이카루스의 쇼 케이스에 맞춰서 촬영 일정에는 다소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수연의 표정도 매우 밝았다.
민수가 그런 두 사람 근처로 다가가자 민수를 발견한 설아가 반갑게 민수에게 손을 흔들었다.
“대체 무슨 이야기들이길래 그렇게 웃고 있는 거예요?”
“헤헤… 민수 오빠가 요즘 연기하면서 고생한 이야기요. NG도 몇 번이나 내셨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설아의 이야기를 들은 민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수연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아니, 남이 NG낸 이야기를 뭐 그렇게 재미있게 하세요? 솔직히 그게 사람 할 짓입니까? 설정을 그렇게 해놨으면 씬 순서라도 좀 맞춰 줘야지. 제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아세요?”
수연은 그런 민수를 보면서 어깨를 으쓱하고 고개를 돌렸다. 전혀 호응해 주지 않는 모습에 민수는 쓴웃음을 지었고, 설아는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게, 자업자득이라잖아요. 평소에 얼마나 언니 마음을 상하게 했으면 오빠가 곤란한 이야기를 저렇게 신나게 하겠어요?”
“하… 그래요. 제가 잘못한 거로 합시다.”
그렇게 이야기하던 민수는 아까 촬영에서 리온이 한 말이 생각나서 설아에게 넌지시 물어봤다.
“그 혹시 이카루스 쇼 케이스에 구경 올 생각 있으세요? 데려올 사람 있으면 데려와도 된다고 하던데요.”
민수의 말을 들은 설아는 잠깐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 순간 저쪽에서 민수를 발견한 혜민이가 그 짧은 다리로 도도도도 귀엽게 뛰어 왔다.
“민수 오빠! 안녕하세요”
언제나처럼 웃으면서 자신을 반겨주는 혜민의 모습에 아빠 미소를 지은 민수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혜민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고 혜민이…. 건강하게 잘 있었어?”
민수의 품 안에서 혜민이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혜민이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정말 태준의 말대로 단 며칠뿐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 뒤에는 언론에 특별한 관심을 받고 있지 않다는 소리에 민수는 손으로 가슴을 쓰려 내렸다.
그런 혜민이를 보고 설아는 웃으면서 혜민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혹시 혜민이 이카루스 오빠들 좋아해? 나중에 이카루스 오빠들 보러 갈까?”
민수가 혜민이에게 넌지시 물어보자 혜민이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수연은 민수에게 한숨을 쉬었다.
“어이, 이 무심한 똘추님. 이카루스 쇼 케이스라면 기자들 잔뜩 오지 않겠어요? 혹시 혜민이가 너랑 있는 거 알아보는 기자들이 분명히 있을 건데 괜찮겠니?”
수연의 말에 민수는 아차 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살아가 대답했다.
“그래도 다들 이카루스에만 관심이 있을걸요. 민수 오빠는 이제 떨어진 떡밥이잖아요. 정 그러면 저도 같이 갈게요. 제가 혜민이 옆에서 지키면 되잖아요.”
설아의 말을 들은 민수는 설아의 말대로 자신이 떨어진 떡밥이라고 생각하니 크게 별일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쉽게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하긴, 설아랑 혜민이가 민수랑 있으면 혜민이 보다는 설아한테 더 카메라가 가긴 하겠는데… 데뷔 초부터 멋지게 스캔들 하나 터지는 거 아니야? 킥킥”
민수는 수연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스캔들은 무슨요. 그냥 아는 동생이라고 생각하겠죠.”
민수가 너무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자 설아의 표정이 조금 미묘하게 변하였다. 그때 혜민이가 민수의 옷을 잡아당기면서 입을 열었다.
“전 꼭 보고 싶어요. 저도 데려가 주세요.”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혜민의 눈동자를 본 민수는 혜민이를 데려갈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아직 어린아이가 주로 이 건물 내에서만 지내고 있는 사실도 조금 안타깝게 생각되었다.
“그래. 가자 혜민아. 설아 씨가 너를 잘 지켜 줄 거야. 저랑 수연 선배는 아마 자리를 따로 배정할 가능성이 커요. 아마 기자들 가까운 곳이겠죠.
그러니 설아 씨랑 혜민이는 우리랑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자리를 잡으면 기자들이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설아 씨 부탁합니다,
민수가 자신을 슬그머니 빼고 설아만 언급하자 수연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저쪽에서 새롭게 식구가 된 진소희가 지나가고 있었다.
민수는 그 모습을 보고 큰 소리로 소희를 불렀다.
“소희 씨! 잠시만요!”
슬쩍 지나가려던 소희는 민수가 자신을 큰 소리로 부르자 화들짝 놀라며 슬그머니 일행을 행하여 다가왔다.
슬쩍슬쩍 눈치를 보는 소희의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조금 못마땅하게 보는 설아의 모습에 민수는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이 되었다.
“소희 씨, 시간 되시면 혹시 이카루스 쇼 케이스에 가 보실 생각 있으세요?”
민수의 말에 순간 눈을 크게 뜨면서 반가워하던 소희는 잠시 후 바로 시무룩해지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건 힘들 거 같아요. 지금 연기 테스트를 앞두고 있거든요.”
연기 테스트라면 처음에 민수가 와서 설아랑 했던 그 연기력 체크인가 보다. 그 말을 들은 민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소희랑 같이 연기 해줄 만한 상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 그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누구랑 하시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그…. 강환 선생님이요.”
소희가 강환과 테스트 연기를 한다는 말을 들은 민수는 새삼스럽게 세상의 부조리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은 설아라는 폭탄을 안겨주셨으면서, 소희는 강환이라는 연기 스페셜리스트랑 테스트를 시키시다니…
그 당시 끔찍했던 설아를 생각하면서 민수는 고개를 좌우로 여러 번 저었다.
그런 민수의 모습을 보고 설아는 조금 인상을 찡그리면서 이야기했다.
“민수 오빠 설마… 조금 실례되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겠죠?”
설아가 뭐라고 더 말하기 전에 머뭇머뭇하던 소희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다시 연습실로 총총걸음을 옮겼다.
“흠….”
그런 소희의 뒷모습을 수연이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수연 선배.”
“조금 태도가 이상하긴 하네… 뭔가 주눅 든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무슨… 세상 혼자 살 거 같이 생겼으면서… 주눅은 저 얼굴하고 너무 안 어울리는 단어 아닐까요?”
조금 부정적인 설아의 태도에 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사실 RD 연습생 중에 저런 애들이 좀 있었거든.
RD가 워낙 연습을 강하게 시키다 보니… 사람에 따라 나무라는 것보다 칭찬하는 게 더 효과가 좋은 애들이 있는데 RD에서는 나무라기만 하니까.”
수연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가능성 높은 말이라고 생각되어서였다.
하지만 당장 해결될 일은 아니니 차차 생각해보기로 한 민수는 손뼉을 한번 쳐서 주위를 환기했다.
“좋아요. 어쨌든 이카루스 쇼 케이스는 설아 씨랑 혜민이가 오는 거로 알고 있을게요. 수연 선배는 당연히 가야 할 테고요.”
민수의 말에 나머지 일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쇼 케이스 참가 멤버가 확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