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77화 (77/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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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의 사회부 부장은 아침에 날라온 한 장의 경고문을 보면서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자신을 찾아오자 그를 향해 경고문을 집어 던졌다.

기자는 자신에게 날라온 문서를 잡아 들고는 그 내용을 확인했다.

[경고문]

귀사가 작성한 군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작성한 기사는 군 사기 저하 및 군에 관한 잘못된 오해를 유발하여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아 이를 우려하는바, 이 경고문이 발송된 시점부터 7일 이내에 신속하게 정정할 것을 권고한다.

그 밖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적혀 있었지만 주된 내용은 그러했다. 당장 기사를 정정하라는 명령. 말은 권고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딱딱하고 권위적인 어조로 적힌 문서를 본 기자는 발끈하면서 부장을 바라보았다.

“이건… 언론 탄압입니다. 멀쩡한 기사를 정정하라니요.”

부장은 화난 표정의 기자를 바라보더니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사실확인에 나섰다.

“솔직히…. 그래, 언론사는 결과만을 말하지. 어쨌든 그 기사가 클릭 수가 제일 높았으니까.

그래서 별말 하진 않았지만… 이런 게 날라온 이상 사실 확인은 해야겠어.

김 기자, 자네가 멀쩡한 기사라고 해서 하는 말인데… 혹시 그 기사 사실확인은 한 건가?”

부장의 말에 김 기자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부장을 바라보았다.

“아니, 어디서 확인을 합니까? 군에다가 물어봅니까? 아니 그냥 쓰라고 주신 그대로 쓴 거 아닙니까?”

김 기자의 말에 부장은 목소리를 높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게 내가 준 대로 쓴 거라고?! 무슨 개소리야! 여기 뒤에 사족이 붙었잖아! 이거 확인하고 쓴 거냐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부장에게 김 기자는 찔끔한 표정을 지으면서 작게 말했다.

“그거야… 그냥 양념처럼 붙인….”

“아…. 양념처럼 특정 부대 이름을 떡 하니 부쳤다고? 모 부대도 아니고, 모 배우도 아니고. 빼도 박도 못하게 적호 사단의 정민수라고?”

“그건….”

“좋아, 결국 그냥 확인도 안 하고 쓴 거네…. 네가 직접 알아보고 쓴 건 아닐 테고, 그럼 이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나? 네가 그냥 마음대로 쓴 건 아닐 거 아냐? 좋아, 네 아니요, 로만 대답해.

이거 혹시 연예부에 있는 너희 삼촌인 김 부장이 쓰라고 한 기사 맞아? 아니야?”

그 말에 김 기자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부장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 바로 사과문하고 정정기사 올려. 그리고 내규에 따라 넌 감봉 3개월. 나가봐.”

김 기자는 뭐라고 항변하려고 하다가 부장의 인상을 보고는 작게 고개 숙이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런 김 기자를 바라보면서 부장은 한숨을 계속 내쉬었다.

“천지가 어떻게 되려고 자꾸 인맥으로 저런 기자들을 받아. 하…. 젠장…. 기본도 모르는 새끼라니….”

신입 기자가 올린 기획 기사를 확인하고 며칠간 속을 끓이면서 상황을 주시하던 사회부 부장은 며칠 동안 국방부가 조용하자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하지만 느닷없이 이렇게 경고문이 날아오자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냥 주기적으로 올리던 기획 기사고 내용까지 다 알려준 기사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올린 부주의한 과거의 자신을 계속 원망했다.

그리고 뒤에서 이런 짓거리를 벌린 연예부의 김 부장에게 큰 분노를 느꼈다.

“X 자식… 내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어젯밤에 방영했던 “명사 초대석”은 많은 사람에게 큰 감흥을 남겼다.

사람들은 지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유니 조가 그런 아픈 과거를 안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했다.

그리고 그런 윤희에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민수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특히 사람들은 민수가 거액의 치료비를 부담해서 한 소녀의 생명을 살렸다는 사실에 큰 호감을 느꼈다.

그리고 시기에 맞춰서 민수의 도움으로 생명을 건진 혜민의 이야기가 기사로 다뤄지면서 민수를 욕하던 사람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치료비가 2억 2천이란다. 그냥 2천도 아니고 2억 2천….

-EEEEE!

-누가 저 위에 쓰레기좀 치워라 더럽다.

-정민수가 싸이코패스니, 정신병자니 하는 세끼들은 다 아닥했네.. 다들 어디갔어?

-근데 미친건 맞지 않나? 방향은 틀렸지만 남에게 전제산 다 던지는게 정상은 아닌거 같은데…

-그건또 그렇네… 그냥 잘못미친게 아니라 좋은 방향으로 미쳐서 그렇지.

-재대로 미쳤다. 잘 미쳤다. 이런거지 민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저렇게 잘 미쳤으면 좋겠다. 잘못미치지 말고.

-근데 아이가 엄청 귀엽네. 잘살렸다 정민수.

-민수 덕분에 우리는 미래에 미녀하나를 또 얻었구나.

-네 다음 철컹철컹 쟤가 크려면 10년은 걸려.

-누가 뭐라고 하냐? 그냥 귀엽다는 건데 그따위로 받아들여?

-얘가 그래도 8살이다 엉뚱한 말은 자제하자.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별다른 뜻은 아니엿다. 그냥 솔직하게 귀엽다고 한거야.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

기사에 쓰인 댓글 중 혹시 혜민이가 상처받을 만한 이야기가 있나 관심 가지고 살펴보던 민수는 그래도 사람들이 최소한의 분별력은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러 댓글을 살펴보았지만 혜민의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너무 과한 걱정을 했구나 싶었지만 지금도 자기 생각이 틀렸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자신이 조윤희 선생님의 방송 출연을 알았다면 혜민의 이야기는 하지 않아 주셨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아마 그래서 자신에게 아예 숨긴 것일 테지만 말이다.

어젯밤은 너무 늦어 아침에 연락 드린 조윤희 선생님은 민수가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미리 이야기하지 않아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더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셨다.

그리고 혹시 자신도 가족의 봉안당을 찾지 않고 있다면 가능하면 빨리 방문해 보라는 충고를 덧붙이셨다.

선생님의 말씀에 민수는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전생의 민수도 30년 동안 부모님의 봉안당을 찾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것은 현생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아마 봉안당을 찾아가는 일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뒤이어 바로 “천지일보”는 사회면에 기사에 대한 사과와 정정기사를 내보냈다.

웬만하면 정정기사를 내지는 않는 언론사의 특성상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갑론을박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연히 상황을 짐작한 한 네티즌의 댓글은 자신의 말대로 성지처럼 취급받았다.

아마 본인도 진짜 자신의 말대로 그렇게 될 거로 생각하고 쓴 글은 아니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건의 자초지종을 정확하게 짐작했다. 언론사가 미치지 않고서야 이유 없이 정정기사를 내지는 않을 테니 분명 군에서의 항의가 있었을 거라 짐작한 것이다.

어쨌거나 이 일로 “천지일보”는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주게 되었다. 이름값이 있어서 당장 큰 지장은 없지만,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분명 메이저 언론사라는 이름값마저 잃어버리게 되리라.

민수도 정정기사를 확인하고는 묘한 기분이 되었다. 군까지 자신을 위해 (비록 군인들의 사기를 위해서였지만) 나서준 것 같아 기분 좋은 고양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분을 아이들이 우스갯소리로 우주가 날 도와주는 기분이라고들 하던가?”

민수 자신도 어이가 없어 픽 웃으면서 기사들을 하나둘씩 다시 체크해 나갔다.

그리고 몇 일 후 민수, 태준, 수연은 계획되어 있던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다.

원래 MBS 드라마국에서는 애초에 지금 방영 중인 SBC 드라마 주연을 MBS 예능에서 홍보해주는 상황을 결사반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드라마국 입장이고, 예능국의 입장은 드라마와 상관없이 요즘 가장 핫한 배우인 윤태준과 예능에 완전 첫 출연인 이수연이라는 카드를 놓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방송 출연이 결정될 당시만 해도 민수는 그냥 곁다리에 불과했었다.

처음에 윤 엔터의 요청이 들어왔을 때 “TV 라디오 쇼”의 PD와 작가들은 적지 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윤태준과 이수연은 참 좋은데 과연 정민수를 같이 쓸 것인가에 대하여는 서로 의견이 달랐다.

요즘 시청률 좋은 드라마의 주연이라 같이 출연하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굳이 SBC 드라마의 주연을 지금 시기에 출연진으로 쓰는 건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PD는 “걔들이 지금 왜 예능에 나오려고 하는 건지 생각은 해봤어? 정민수 거절하면, 윤태준이랑 이수연이가 나오기나 한대?” 라는 한마디로 모든 작가의 침묵을 이끌었다.

어쨌든 그렇게 PD의 주장대로 세 명의 출연이 확정되고 촬영하기 직전 “명사 초대석”의 방송되고 무수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민수의 무게감이 확 올라가게 되자 일을 주도한 PD의 어깨도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렇게 출연하게 된 예능이었지만 역시 정민수와 윤태준은 재미없는 남자들이었다.

연기할 때와는 다르게 이상하게 긴장한 두 남자는 MC들의 질문에 충실히 대답하긴 했지만, 인터뷰하듯이 왠지 딱딱하게만 대답했고, 간간이 단답식으로 짧게 대답하며 MC의 말을 끊어 먹기 일쑤였다.

그런 지경이니 아무리 MC가 살려주려고 해도 살릴 것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태준에게는 별당신 촬영 당시의 에피소드 하나를 건질 수 있었고, 민수에는 군대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 하나와 유니에서 의상을 협찬받은 에피소드 하나를 겨우 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수연은 조금 달랐다. MC들이 어떤 질문을 해도 시원시원하게 잘 대답했고, 말에 막힘이 없었다.

특히 MC 하나가 짓궂게 그래도 CF는 많이 찍었으니 돈은 많이 벌지 않았냐는 질문에 피식 웃으면서 아버지가 잘못 선 보증을 다 해결하고 아버지 치료비를 낸 후 부모님 앞으로 과수원 하나 차려주고 나니 내 손은 빈털터리라고 시원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그래도 남 좋은 일 많이 한 거니까 죽어서 천당에는 가지 않겠냐고 반문해 MC들을 웃게 했다.

그리고 평소에 민수와 태준의 모습을 여과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해서 민수와 태준을 곤란에 빠뜨렸다.

수연에 폭로에 이를 가는 민수와 태준의 모습으로 또 다른 재미를 선사한 것이다

물론 MC들도 거기에 가세해 엄청나게 신을 냈고 있는 말이다.

수연은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설아에게 “언니가 완전히 케리 했어!” 라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면서 즐거워했고, 태준과 민수는 그냥 한숨만 쉬었다.

어쨌든 윤 엔터 배우 삼인 방의 예능 출연은 그들에게 제법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대중들이 조금 멀게 느끼던 태준은 조금 친근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었고, 민수는 자신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을 소개하는 기회를 얻었다.

가장 큰 수혜를 본 것은 수연이었다.

지금까지 번 돈을 전부 부모님을 위하여 사용한 것이 알려지면서 “효녀”라는 이미지를 얻은 데다가 보기와는 다르게 털털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전혀 새로운 매력을 어필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예능까지 나가서 자신을 알리게 된 민수는 이제 자신을 둘러쌓고 있던 루머들에서 대부분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유일하게 남은 건 알 수 없는 이상한 놈, 혹은 정말 잘 미친놈이라는 욕도 아닌 칭찬도 아닌 이상한 호칭이었는데, 민수도 그건 그냥 별다른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

민수도 속으로 어쩌면 그 호칭이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말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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