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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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가 윤 엔터에 합류하면서 박찬수와 그를 따르는 일단의 무리가 무사히 윤 엔터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박찬수는 RD에서처럼 배우팀을 총괄하는 실장의 자리를 맡겼다.
박 실장과 그의 부하들은 생각보다 더 유능했다. 체계적으로 배우를 뒷받침해 본 경험이 없던 윤 엔터의 직원들에게 빠르게 노하우를 전수했고, 덕분에 윤 엔터는 전보다 더욱 유기적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그런 윤 엔터에 이제 남은 과제는 하나였다. 그건 바로 민수의 이미지 개선이었다.
RD와의 언론전이 지속된 시간이 3주, 그리고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민수에 대한 터무니없는 루머는 더 기사로 나오지 않았고, 민수에 대한 잘못된 사실을 정정하는 기사들만 여러 곳에서 올라오고 있었지만, 아직 무게 있는 한방이 부족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 배우팀을 맡게 된 박 실장의 제일 과제로 떠올랐다.
박 실장과 윤 대표, 그리고 민 여사는 대표실에 앉아 그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박 실장은 윤 대표의 몇 가지 실책을 지적하면서, 지금 당장 시행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들을 대안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너무 안일하셨습니다. 찌라시로 돌아다니는 기사들이라 많은 사람이 믿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쌓이면 배우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걸 너무 가볍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물론 정우철을 날려버리면 당연히 이런 찌라시가 더 나오지 않을 거라는 것은 옳은 생각이긴 한데… 그보다 배우를 보호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셨으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더 좋았을 텐데요.”
박 실장은 윤 엔터의 그간 행적을 이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윤 대표와 민 여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윤 대표는 공격으로 상대를 제거하는 것에 언제나 초점을 맞추고 있는 민 여사의 성향을 알고 있었음에도 자신이 제어 하지 못한 것, 그리고 예전의 경험으로 자신도 모르게 쌓인 정우철에 대한 적개심으로 자신의 평정심이 흔들렸다는 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결국 민수를 보호하겠다고 결심하고 한 일들이 결국에는 민수를 전혀 보호하지 못한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완전히 신인 배우인 정민수 씨가 제 생각대로 원하는 시기에 방송에서 인터뷰하는 것은 무리였겠지만, 윤 엔터에 정민수 씨만 있는 것이 아니잖습니까?
하다못해 윤태준 씨 같은 경우는 언제든지 방송 인터뷰 정도는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윤태준 씨를 예능에 내보내서 넌지시 이야기를 하거나 이수연 씨 정도면 정민수 씨와 끼워서 인터뷰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충분히 이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윤 대표는 민수에게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자신이 부족했다.
“결국 사람들이 그런 루머에 휘둘리는 것은 그냥 정민수 씨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이제 드라마의 인기도 어느 정도 올라왔고, 사람들도 충분히 배우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이니… 우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겠습니다.”
윤 대표는 그냥 박 실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모습에 박 실장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일의 경위를 다 전해 들은 박 실장은 조금 답답함을 느꼈다.
그가 보기에 이곳 배우들이나 대표님이나 너무 외골수들이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에 저변에는 자신이 좋은 연기를 하면 사람들이 분명히 인정해 줄 거라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배우는 좋은 연기만 하면 된다는 그런 편향된 신념도 함께 존재했다.
박 실장은 그런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사실이긴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더 빠르고 쉬운 길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더 어려운 길로 가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박 실장이 생각하기에 이곳은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기보다는 그냥 배우들의 집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부터 모든 배우들이 배우의 시각에서만 모든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민수 씨도 예능에라도 내보내 달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이겠지.
박 실장은 그런 것 하나하나부터 조금씩 바꾸어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번 주 “송포유” 방송이 마치는 대로 주연 배우들을 모아서 섹션 연예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그때 민수 씨의 루머에 대한 질문을 넣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건 그냥 솔직하게만 대답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MBS 쪽에 다음 주 방송분인 “TV 라디오 쇼” 에 태준 씨 민수 씨, 그리고 수연 씨까지 한꺼번에 출연을 급하게 약속 지었습니다. 다행히 예능에 거의 얼굴을 안 내미는 태준 씨의 성향 덕분에 바로 승낙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도 민수 씨의 솔직한 모습을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여기까지 말한 박 실장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윤 대표에게 말했다.
“대표님,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건 옳은 소리지만, 때에 따라서는 다른 길도 찾아봐야 합니다.
그리고 밖에서 아무리 찌라시가 난무해도, 민수 씨가 범죄나 도박, 마약을 하지 않는 이상 예능으로도 충분히 만회 할 수 있으니 너무 고심하지 마십시오.
대표님이 보지 못하시는 것을 보라고 저 같은 사람이 있는 거니까요”
박 실장의 말에 윤 대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박 실장이 나가고 윤 대표는 민 여사를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런 윤 대표를 민 여사가 미안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하하하, 참… 내가 정말 많이 부족하구먼… 난 내가 방송가 생리를 잘 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혀 아니었군.
내가 아는 건 그냥 배우들의 생리였지, 방송가의 생리가 아니었어.
결국 내가 부족해서 민수에게 오물을 뿌린 거였어. 하…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다니…”
요즘 방송가에서 많은 요청이 있지만 예능에는 얼굴을 거의 내보이지 않는 태준, 그런 태준을 이용해서 촬영분을 최대한 당겨서 다음주에 방송되도록 거래하는 것은 윤 대표로서는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게 가진 것을 바로 철저하게 이용하는 능력, 그것은 윤 대표는 가지지 못한 능력이었다.
민 여사도 자신의 실책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후… 저도 너무 정우철한테 원한 갚을 생각밖에 안 했던 거 같아요. 사야가 너무 좁았어요.”
“당신이야, 원래 사업가지. 방송가 사람이 아니었잖아.
결국은 지금 대표로 앉은 김익수, 이 사람하고 정우철의 알력과 정우철의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정우철을 날려버린 방아쇠는 그래도 당신이 당긴 거니까.
그래서 우리 목표는 달성한 셈이고… 어쨌든 박 실장에게 배울 만한 점이 많겠어.”
윤 대표는 자신이 자신만만했던 것에 비해서 턱없이 모자란 대표란 사실을 완전히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박 실장이 일 처리하는 방식을 하나하나 모두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런 윤 대표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 박 실장을 반대했던 민 여사는 자신이 끝까지 박 실장을 반대하지 않고 윤 대표의 판단을 신뢰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가 없었다면 어쩌면 자신들은 지금도 조금 난감한 처지에 놓여 있었을지도 몰랐다.
[띠리리리리.]
그 때 윤 대표의 전화기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누구세요?”
윤 대표는 처음 듣는 목소리에 의아하면서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잠시간의 통화를 끝으로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통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은 윤 대표는 조금 놀란 얼굴로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이거… 잘하면…. 생각보다 빠를 수 있겠어….”
그런 윤 대표의 말에 민 여사는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윤 대표를 바라보기만 했다.
새로 합류한 배우인 소희는 가장 먼저 강환 선생님의 발음, 발성, 호흡 교육을 받게 되었다.
지금까지 주로 가수팀에서 연습했다는 소희는 사실 아이돌로 데뷔하기는 조금 늦은 나이인 21살이었다.
가수로 데뷔를 못 하고 속을 끓이던 차에 박 실장이 배우로 전향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말을 믿고 연기 연습을 시작하려던 차 박 실장이 RD에서 퇴사하게 되자 고민 끝에 박 실장을 따라 나왔다고 한다.
어쨌거나 지금까지 춤과 노래를 주로 배워왔던 소희는 노래를 해서인지 호흡 습관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가다듬을 곳이 있었고, 민수처럼 발음은 별로 좋지 않았으며, 발성은 조금 미묘하게 부족했다.
강환은 그래도 어리고 예쁜 여자 수강생(?) 을 교육하게 된 것을 나름대로 기분 좋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야! 그래도 네놈 같은 시커먼 놈보다는 저렇게 예쁜 여자가 가르칠 맛도 나는 거지.”
민수는 자신의 피부가 매우 탱탱하고 뽀얗다는 것을 강조하다가 강환에게 뒤통수를 응징당하고 연습실에서 쫓겨났다.
아마 당분간 소희는 강환에게 교육을 받게 되리라.
어차피 수연과 민수는 거의 매일 촬영장으로 출근을 했고, 태준은 자기대로 여러 가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자신의 시간을 갖기 위하여 낮에는 소속사에 없었기 때문에 소희를 주로 만나게 되는 건 아직은 백수 신분인 설아였다.
둘은 나이 차이도 한 살밖에 나지 않아 금방 친해질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역시 그 원인은 소희의 성격 때문이었다.
처음에 설아가 따라붙어 이것저것 친절하게 물어보았지만, 너무 소심한 소희가 대답을 단답식으로 끊어 버리니 설아 입장에서는 조금 오해를 하게 된 것이다.
그 뒤부터 설아는 소희를 조금 뒤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리고 저녁에 민수와 수연이 퇴근(?)하자 설아는 뾰로통한 얼굴로 민수와 수연을 맞이했다.
그런 설아의 얼굴을 보며 수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이유를 물었다.
“왜 그래? 설아야. 무슨 일 있어?”
“소희 씨 좀 이상해요. 뭐라고 말을 걸어도 신통치 않고 그냥 연습실에서만 살고 있어요. 연기에 집중하고 있는 건지, 뭔지…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솔직한 설아의 말에 수연은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설아에게 물었다.
“여자 정민수 같은 사람인가? 연기에 집중하면 다른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
수연의 말에 설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조금 답답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에에~ 그거랑은 다르죠. 음…. 그냥 왠지 좀 무시당하는 느낌이라… 뭐랄까… 별로 날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느낌? 하여간 별로 좋진 않아요.”
설아의 말은 들은 민수는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현생에선 완전히 초면인 소희에 대하여 설아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 그냥 너무 소심해서 그런 거일 텐데…’
하지만 그렇다고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되었는데 이상한 오해가 쌓이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수는 이 문제는 좀 고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아에게는 별로 좋은 첫인상을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소희가 수연에게는 좋은 인상을 주었나 보다. 아마 첫날 존경한다고 말한 게 생각보다 효과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투정 부리는 설아를 보면서 수연은 그래도 좀 더 두고 보자고 부드럽게 달래주었다.
민수는 어쨌든 정말 진지하게 설아와 소희가 이야기할 기회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