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72화 (7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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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에 대한 기사가 사방으로 퍼지기 시작하자 RD 엔터는 조금 난처한 처지가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진 계약서가 공개되어 버린 것이었다.

계약서 공개는 어떤 방향으로든지 모든 소속사에 손해가 되는 일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이 바닥의 불문율이었다.

특히 비밀엄수 조항으로 위약금을 계약금의 2배로 지정해 놨고, 그래서 위약금이 10억이나 되는데 그 돈을 버려가면서까지 불문율을 어기고 계약서를 공개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RD의 안일한 판단이 큰 타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지금 RD 엔터와 윤 엔터는 그런 문제가 사소할 정도로 격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우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쩌면 지금도 윤 엔터가 자신과 대립할 만한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김 이사는 조금 미묘하게 정 대표에게 전달하는 정보를 숨기고 있었으니까.

아니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빨리 행동하리라고는 생각 못 했을 것이다. 기사가 나오자마자 바로 10억을 미련 없이 던져 버릴 거라고는 말이다.

게다가 또 하나의 문제는 설마 이수연이 계약금 0원을 받고 계약했을 거라고는 짐작하지 못한 점이다.

수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RD 측은 예전에 수연이 윤 엔터에서 어떤 계약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윤 엔터의 계약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했으니 지금 이수연의 경력과 위치를 생각해서 당연히 적어도 자신들이 지급했던 5억 이상은 지급했을 거로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이수연의 계약금은 0원이었고, 결과적으로 어제 퍼져 나갔던 이수연에 대한 기사들은 다 완전히 거짓이 되어버렸다.

그냥 단순히 거짓이 된 것보다 더 치명적으로, 자신들이 기사를 뿌린 덕분에 이수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조차 완전히 사라져 버렸으니, 정우철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실책을 범한 셈이었다.

그리고 RD 엔터의 수난은 이제 시작이었다.

RD 엔터가 여론에 안 좋은 눈초리를 받기 시작하는 그때 언론에 묘한 기사가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정 기획사가 가수들의 정산을 불투명하게 하고 있다는 기사였다.

기사에서는 어떤 기획사라고 언급하고 있지 않았지만 판타즘의 팬들이 그 회사가 RD라고 확정 지으면서 정산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RD에서는 서둘러 진화하려고 했지만 판타즘의 팬들이 움직이고 그에 따라 기사들까지 하나둘씩 올라오기 시작하자 RD 측은 점점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건의 종지부를 찍은 일이 발생하였다. 기사가 나도는 가운데 RD 엔터의 배우팀 실장인 박찬수가 RD 측에 부도덕한 이중장부가 존재하며, 직원들이 작당하고 연예인의 돈을 횡령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심 고백해 버린 것이다.

언론에서는 대서특필로 이 이야기를 다루기 시작했고 이젠 RD 측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일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결국 RD의 모회사 격인 진룡 미디어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진룡 미디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내부 자체 감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진룡 미디어는 자체 감사를 통해 충분히 조사해 보고 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전했지만, 사람들은 그저 의심 어린 눈초리로 지켜볼 뿐이었다.

그렇게 RD 엔터가 된서리를 맞고 고전하고 있을 시기, 윤 엔터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평화를 한가롭게 만끽하고 있었다.

민수의 기사와 수연의 기사는 완전히 사라지고 지금은 RD 엔터에 대한 기사만이 지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수연은 그런 기사들을 매일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나하나 읽어 보고 있었다.

이제 중반부에 들어선 “송포유”의 시청률은 회차가 거듭할수록 미세하게 오르고 있어, 최준과 준성이 클럽에서 도망치면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고 각자 각오를 다지는 7화에는 결국 20%를 넘어갔고, 이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최준의 밴드 “June’s” 의 공연장에서 최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조명을 미주가 몸을 날려 막는 8화에서는 21%를 기록하였다.

반면 민수가 자신의 일이 워낙 급박하게 흘러가서 별로 신경 쓰지 못했던 “신데렐라의 남자”는 계속 비슷한 시청률을 기록하다가 9화 10화에 들어서서는 미세하게 시청률이 떨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상하네. 드라마는 분명 재미가 있었는데…”

그렇게 의아해하던 중 우연히 민수는 “신데렐라의 남자”를 분석한 어느 유명 블로거의 글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데렐라의 남자는 지금 분명 산으로 가고 있다.

처음부터 원작과는 너무 다른 분위기로 위화감을 준 신데렐라의 남자는 차라리 그냥 끝까지 그 분위기로 갔어야 했다.

아니 그냥 처음부터 다른 재목에 아예 다른 드라마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그냥 좋은 드라마로 좋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것이다.

원작의 이름을 등에 업고 사람들에게 기대감만 심어준 후 전혀 다른 분위기의 드라마를 만들어 원작의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더니, 이제는 시청률이 나오지 않아 극의 분위기를 원작과 비슷하게 따라가려 하니, 결국 원작의 팬들과 새롭게 생긴 드라마의 팬들까지 모두 등을 돌리고 만 것이다.]

분석 글을 보고 나서야 민수는 “신데렐라의 남자”의 실패 원인을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오르지 않는 시청률에 대한 부담감과 원작 팬들의 성화로 작가가 극의 분위기를 바꿔 버린 것이다.

민수가 생각하기에 분명 캐릭터가 원작과 성격이 달랐는데 이제 와서 원작을 따라가려고 했으니 시청자들은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고, 드라마의 재미를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는 조심해야 하는데 말이야…”

자신의 의문점이 풀린 민수는 가벼운 마음으로 촬영장을 향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송포유”가 즐거운 분위기로 촬영에 임하고 있는 시간

자신의 작전대로 RD 엔터가 수렁에 빠지고 장우철이 위기에 빠진 것에 조금 마음의 짐을 덜게 된 민 여사는 대표실에서 윤 대표와 상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는 박 이사와 오 팀장을 발견하였다.

“다들 여긴 무슨 일이에요?”

민 여사가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묻자 박 이사와 오 팀장은 일어나서 민 여사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민 여사는 서둘러 윤 대표 옆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옆에 윤 대표는 한창 여러 곳에서 오는 통화에 진통을 겪고 있었다.

대부분 제법 규모가 큰 기획사, 그리고 몇몇 배우 기획사였다.

계약서 공개는 윤 대표에게도 조금 부담스러운 행동이긴 했다.

계약서를 대중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이 그들 사이에 묵시적인 약속인 건 확실했으니, 큰 기획사들은 조금 경고하는 듯한 태도로 윤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고 윤 대표는 웃으면서 계속 사죄의 말만 전했다.

그러면서 RD의 배우 계약서가 너무 저질이니 차라리 공개되어 버리면 다른 소속사들은 이익을 보지 않겠냐고 웃으면서 달랬다. 물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사과한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배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기획사들은 오히려 RD 엔터의 계약서가 공개된 것보다, 혹시 앞으로 윤 엔터의 계약서를 공개할 것인지 여부를 더 궁금해했다.

윤 대표는 웃으면서 내가 왜 남의 소속사에서 연기 잘하고 있는 배우들을 흔들겠냐고 절대 그런 일 없다고 그들은 안심시켰다.

그렇게 한참 통화를 하던 윤 대표는 민 여사 들어온 것을 발견하고는 전화를 끊으면서 손으로 자리를 권했다

민 여사가 자리에 앉자 윤 대표는 조금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RD의 박찬수 실장이 결국 퇴사를 한 모양이야.”

“그렇겠죠. 아무래도 내부 고발은 좀 껄끄러운 문제 아니겠어요?”

“그래.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별로 받아줄 마음이 없는 것 같고. 난 조금 책임감이 느껴져.”

윤 대표의 말에 민 여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런 민 여사의 모습을 바라보던 박 이사는 조금 곤란한 목소리로 윤 대표에게 설명했다.

“사실, 저희가 바란 건 아니었습니다. 저희는 그냥 내부의 사정을 조금 알려 달라는 거였는데…. 설마 그렇게 대놓고 폭탄을 터트릴 거라고는…”

“대표님, 이건 그렇게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에요.

지금도 RD 하고는 원수지간이고, 당연히 진룡하고도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아요. 그런데 내부 고발자를 회사에 받았다가는….”

민 여사가 우려 섞인 목소리로 윤 대표를 만류하자, 윤 대표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참을 고민했다.

그런 윤 대표를 바라보며 오 팀장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박 실장은… 능력 있는 남자입니다. 도리가 무엇인지도 알고, 아까운 사람이죠.”

“진룡하고 완전히 척을 지면서 까지 얻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요?”

민 여사가 조금 날카로운 목소리로 오 팀장을 추궁하자 윤 대표가 손을 들어 민 여사를 만류했다.

그리고 꿍한 표정의 민 여사를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

“맞아, 민 여사. 우린 지금 진룡하고 척을 졌어. 진룡 정도가 마음먹고 알아보면 뒤에 우리가 있다는 거 당연히 알 수 있겠지.

우리 그걸 다 알고도 수연이랑 민수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거고.

민 여사, 생각해봐.

내 생각에는 어차피 우린 앞으로 진룡과 관련 있는 콘텐츠에는 출연 못 해.

아니 그전에 나부터 그쪽에 우리 배우들 출연 시킬 생각 없어.

그리고 진룡은 어떤 방법이든 우리에게 보복을 할 거야.

우리가 그 사람 안 받는다고 진룡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까?

아마 아닐걸.

그리고 어차피 진룡하고 불편한 관계가 될 거라면 난 우리 사람이라도 늘리고 싶어.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진룡하고 싸우게 된다면 분명 도움이 될 거야.”

윤 대표의 말이 너무나 정석적이라 민 여사는 어떠한 사족도 붙일 수 없었다. 그렇게 민 여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윤 대표는 웃으면서 오 팀장에게 말했다.

“우선 데려오세요.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윤 대표의 말에 박 이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 팀장은 웃음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그런 둘의 뒷모습을 보면서 민 여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윤 대표에게 다가갔다.

“달링, 나도 그런 사람 싫지 않아. 멋있잖아? 자기 잘릴 거 뻔히 아는데 가수들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인 거잖아. 하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야. 또 혹시 이런 일 생길까 봐…”

걱정하는 민 여사를 바라보면서 윤 대표는 손을 들어 민 여사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민 여사는 윤 대표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에 걱정이 조금 사그라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한참을 그냥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윤 대표를 바라보기만 했다.

“우선 만나보고 결정하자.

만약 능력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분명 도움이 될 거야.

그리고 솔직히 배우들이 늘어나면서 배우에 대하여 잘 아는 실장급 인사가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하긴 했어.

우리도 덩치를 키우려면 시스템부터 잘 다듬어 놔야지.

솔직히 우리 직원들 잡무에는 능하지만, 이 바닥 생리에는 조금 서툰 게 사실이잖아.”

“그래요, 그 말엔 동의해요. 우리도 이젠 태준이 하나만 움직이는 그런 기획사는 아니니까…”

결국 자신의 말에 동의하는 민 여사의 모습에 윤 대표는 그냥 미소만 짓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전 RD 엔터 배우팀 실장 박찬수는 오 팀장과 함께 대표실에서 윤 대표를 만났다.

짙은 눈썹에 굳게 다문 입, 부리부리한 눈동자를 빛내고 윤 대표를 바라보는 박찬수는 실직하고 업계에서 백안시 되는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운이 넘쳐 보였다.

찬수는 윤 대표를 만나자마자 깊게 고개 숙이면서 긴 시간 동안 RD에서 고통받은 수연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의 인사를 건넸다.

찬수의 외모부터 당당한 태도, 그리고 수연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 씀씀이까지 윤 대표는 찬수의 모든 면모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찬수를 윤 엔터에서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하자 찬수는 윤 대표에게 바로 윤 엔터에서 배우들과 계약하는 계약서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윤 대표가 웃으면서 계약서 서식을 건네주자 계약서의 내용을 한 자 한 자 꼼꼼히 살펴보았다. 계약서를 다 읽은 찬수는 약간 감동한 눈빛으로 윤 대표를 바라보았다.

“오 팀장이 한 말이 전부 사실이었군요. 이런 기획사가 있었다니…”

그렇게 말한 찬수는 잠시 윤 대표의 제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쉬고 윤 대표를 바라보았다.

“지금 RD에서 제 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장을 잃은 직원이 몇 명 있습니다.”

“데려오세요.”

윤 대표는 찬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까지 다 데려오라고 말했다.

찬수는 윤 대표의 말에 순간 표정이 밝아 졌지만 이내 다시 조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조금 눈치를 보면서 윤 대표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저를 따라서 RD에서 나온 배우 지망생이 하나 있는데…”

배우 지망생이라는 말에 윤 대표는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더니 찬수에게 한번 만나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찬수는 그 말을 듣고 윤 대표에게 정말 가능성은 넘치는 녀석이라고 몇 번이나 강조해서 이야기했다.

그런 찬수의 태도가 조금 못 미더웠지만 윤 대표는 배우를 만나보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도대체 어떤 배우이길래 찬수가 저렇게 가능성을 강조하는지 윤 대표는 조금 궁금증을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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