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70화 (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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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사다난한 한 주의 시간이 흐르고 다시 “송포유”가 방영하는 날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도 평소와 같이 캔맥주를 든 빌런들이 민수의 보금자리를 침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민수가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어락에 번호를 눌러 출입문을 정복하였고, 민수가 허락하지 않아도 티브이 앞에 자리를 잡고 캔맥주를 딴 후, 민수는 신경 쓰지도 않고 자신들끼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맥주를 기울였다.

이제는 이 상황이 조금 익숙해진 민수는 그냥 그런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어느 정도 이야기를 나눈 후 그들의 이야기의 주제가 민수에게로 옮겨져 왔다.

설아는 한 주간의 민수의 행동에 대하여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솔직히 믿을 수가 없어요. 전 처음에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줄 알았어요.

만약 저라면 온종일 그냥 이불 속에서 펑펑 울기만 했을 거 같은데, 그래도 남자니까 잘 견디고 있구나. 이렇게 생각했었거든요. “

“그런데 그게 그냥 진짜 아무렇지도 않은 거였어.

세상에 어제인가? 촬영을 나갔는데 구경하던 웬 남녀가 민수를 보면서 뭐라고 수군거리는 거야.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별로 좋진 않았어.

그런데 저 녀석은 그냥 신경도 안 쓰고 자기 일만 하는 거 있지?

속이 무딘 건지, 아니면 의지가 강한 건지…”

이해할 수 없다는 태도의 설아와 수연을 보며 민수는 뭐라고 설명을 시작하려 했지만, 태준이 서둘러 민수를 막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 정민수 전문가인 내가 보기엔 말이야. 지금 정 배우는 그냥 자신이 있는 거야. 자! 너희들이 내 연기를 보고도 날 욕할 수 있어!? 내 연기를 보면 반할 수밖에 없을 걸?!

어때 내 생각이 맞는 거 같지 않아?”

자신만만하게 만화에서나 나올 거 같은 말을 하는 태준을 설아와 수연은 조금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고, 민수는 그냥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아니, 윤 배우. 내가 그렇게 자의식에 넘치진 않아. 그리고 내 주제를 잘 알고 있고 말이야.

음…. 솔직히 나도 처음에는 조금 답답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그리고 화가 나기도 했어. 그런데 리온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고.”

민수는 천천히 리온이 루머에 대하여 자신에게 한 말을 천천히 설명했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런 거 같더라고.

그 사람들에게 난 그냥 껌 같은 존재인 거 같아. 껌을 씹다가 단물이 빠지면 껌을 버리잖아. 그리고는 기억조차 하지 않지.

그냥 그런 거 아닐까? 그런데 내가 그거에 그렇게 열을 낼 이유가 없겠더라고.”

민수의 말을 들은 수연은 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야, 그게 기분이 나쁜 거잖아. 지들이 뭐라고 남을 껌 취급하면서 씹어?”

수연의 말에 태준과 설아도 묘하게 동감한다는 표정이었다. 민수는 그런 셋을 보면서 어떻게 설명을 해줘야 할까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잠시 생각이 정리되자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수연 선배, 그건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아요. 아마 나도 그들을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요?

음… 만약 설아 씨나 수연 선배, 그리고 윤 배우가 나에게 화가 났어요. 그리고 막 욕을 했다고 가정해 보면… 제가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이유를 물어보고 제가 잘못했으면 사과를 하고. 혹은 오해였으면 오해를 풀거나 다음 행동이 있을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길을 가는데 웬 개가 달려와서 저한테 막 짖어요. 그럼 전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무시하고 지나갈 거에요.

그냥 그런 거예요. “

민수에 설명에 태준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헛웃음만 내뱉었고, 설아와 수연은 조금 무서운 것을 본다는 듯이 묘하게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좀 기가 막힌 일이네…”

“와, 가차 없네요. 민수 오빠.”

“우린 저 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좀 주의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우리가 좀 무례하긴 했지.”

그런 셋의 묘한 반응에 민수는 피식 웃으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내 말이 조금 이상했나. 하지만 난 진짜 그런걸. 내 주변에서 날 알고, 날 좋아해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그리고 내 연기를 보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생각하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너무 버거운 일이야.

그런데 나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날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내가 신경 쓸 수는 없잖아.

그래서 그냥 신경 쓰지 않겠다고 결론 내린 거야.”

태준은 민수의 말을 듣더니 조금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음… 정 배우 말이 아주 틀린 건 아닌데… 뭐랄까. 난 좀 다르게 생각해. 어쨌든 난 배우고, 내 연기를 가능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래서 날 싫어하는 사람들도 내 연기를 봐줬으면 좋겠어. 그러니 난 내 이미지도 중요하게 생각해.

우리가 혼자서 방에서 연기하고 자기만족 할 게 아니라면,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는 건 좀 위험한 생각이 아닐까?”

태준의 말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맞네, 그건. 어쨌든 그래서 나도 해명은 하고 있잖아. 더 해명할 말이 없고, 그리고 사람들이 별로 믿어주지 않는 분위기라 그런 거지.”

“태준 오빠 말이 맞긴 맞는데… 정말 날 미워하는 안티가 있다면 그냥 민수 오빠처럼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는 좋을 거 같긴 해요. 그게 가능하다면 말이에요.”

“맞아, 말이 쉽지. 연예인이 어떻게 민수처럼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어. 연예인들이 다 민수처럼 저렇다면 우울증에 걸리는 애들은 하나도 없을걸?”

민수도 태준의 말에 조금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래도 자기 생각이 전혀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팬과 안티, 악플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티브이에서는 “송포유” 5화가 시작하고 있었다.

5화의 시작은 최준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던 최준은 준성에게 밴드를 하겠다고 하고 자신이 과거에 몸담았던 밴드 멤버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흔쾌히 최준을 도와주겠다고 하자 그들과 같이 연습을 시작한다.

최준을 도와주는 밴드 인원 네 명이 화면에 등장하자 태준은 그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민수에게 말을 걸었다.

“쟤들은 어디 애들이야? 연기는 괜찮게들 해? 혹시 추천해줄 만한 배우가 있다 던 지?”

민수는 태준의 말에 바로 고개를 저으면서 이야기했다.

“저 사람들 청월 연기학원인가 그쪽 사람들일 거야. 실력은 뭐 그냥저냥인데 굳이 추천하라면 글쎄…”

“쟤들 좀 웃긴 애들이야. 신인 주제에 자기들이 주연 배우에 텃세 부리려고 했다니까. 내가 기가 막혀서.”

수연은 처음에 저들하고 연기하는데 자신을 바라보는 눈초리가 기분 나빠서 연기로 보내줬다고 당당하게 태준에게 자랑했다.

“기 싸움은 이렇게 하는 거지. 리온처럼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수연을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날 수연의 행동은 자신과 이야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날카롭게 반응한 것이 아니라 진짜 기를 죽이려고 작업(?)에 들어간 것인가 보다.

그 말을 들은 태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못쓰겠네… 내가 요즘 RD에서 하는 모양새를 보니 우리도 조금 덩치를 키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진짜 괜찮은 사람을 찾아보는데 역시 쉽지 않더라.

아~ 딱 정 배우 정도 되는 배우가 어디 없나 몰라”

태준이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민수는 조금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그냥 잘 가르쳐 줘서 열심히 배운 것뿐인데, 그래도 태준은 역시 자신을 좀 높게 보는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민수는 인정받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조금 좋아지기도 했다.

태준의 말이 끝나자 수연은 어림없다는 듯 그냥 고개를 저으면서 태준을 바라본다.

“야. 저런 애를 또 찾겠다고? 그게 쉬우면 연예기획사가 망하는 일은 없겠지.

아, 리온 정도면 확실히 탐나긴 하더라. 애가 성격도 괜찮은 것 같고 연기도 잘해서.

초반에 좀 유치하긴 했지만, 뭐 그 정도는 정말 귀여운 거지.”

수연의 말에 민수도 바로 공감할 수 있었다. 리온 정도라면 정말 괜찮은 배우였으니까.

하지만 자신의 팀이 있고, 팀원 간에 사이도 정말 좋은 리온이 다른 소속사로 옮긴다는 건 역시 상상하기 힘들었다.

“수연아, 이카루스 팔면 우리 이수연 배우 한 10명은 살 수 있을걸?

그 녀석들, 잘나가는 아이돌 중에서도 진짜 탑이잖아.”

태준이 실실 웃으면서 수연을 자극하듯 말을 꺼내자 수연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진다. 그 모습을 본 설아는 한숨을 쉬면서 수연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민수는 그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요즘은 저런 모습 보는 재미로 산다고 생각하며 다시 티브이로 눈을 돌렸다.

티브이에서는 이제 팀으로 합류한 밴드가 최준과 함께 즐겁게 연습하는 장면들과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준성과 미주의 모습이 차례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최준의 요청에 따라 준성이 건방진 말투와 행동으로 밴드의 인원들을 교육하는 장면이 차례로 지나갔다.

“왁… 진짜 준성… 저 비열한 듯, 저열한 듯한 건방진 표정….”

설아가 보면서 기겁을 하자, 태준은 그 모습을 보면서 활짝 웃으면서 민수를 바라보았다.

“정말, 정 배우는 어떻게 그런 얼굴을 하고 저런 표정이 나오지? 와… 진짜… “

뜬금없는 외모 지적에 민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민수가 생각하기엔 저 얼굴을 가지고 비열한 악당과 뒷골목 깡패, 사기꾼 같은 악랄한 역할도 무난하게 소화하는 태준이 더 이상한데, 자신을 지적하다니 민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긴, 그래. 예전에 말했듯이 진짜 호스트에 딱 맞은 얼굴이거든… 그리고 사실 은근히 좀… 여자들한테 먹히는 얼굴? 약간 우수를 불러일으키고, 모성본능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얼굴이야, 저게.”

수연까지 옆에서 동의하고 나서자 설아는 그냥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고만 있었다.

“그런데 그런 얼굴로 저렇게 자연스럽게 독설을 쏟아 내고 있으니.”

“그런데 더 웃긴 건 별로 위화감도 없고”

“거기다 매회 미주를 볼 때마다 심쿵 유발하고…”

세 사람이 한마디씩 말을 꺼내자 민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못 하고 헛기침만 하고 있는데 태준이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진짜 만약, 이번에 RD에서 거지 같은 짓만 안 했으면 이 드라마가 끝나면 정 배우 팬층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났을 걸. 솔직히 여자들한테는 나보다 정 배우 같은 얼굴이 더 잘 먹혀”

태준의 말에 완벽하게 동의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고맙게 생각하면서 민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민수가 궁금한 것은 그런 인기나 그런 게 아니라 자신이 연기 그 자체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태준에게 물어봤다.

“그 윤 배우. 솔직히 연기는 어때? 보기에 아직 많이 부족한가?”

태준은 민수의 말에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다가 민수의 표정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둘을 수연이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음.. 정 배우 연기를 보면서 난 솔직히 부족하다거나 그런 건방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그 처음에 “서쪽 해변”에서 봤을 때도 말이야.

그때도 부족한 스킬을 감정으로 먹어 버렸었잖아.

지금은 이제 그 스킬 조차 보충했고, 이제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때가 된 거 같아.”

전생에서는 그냥 우상일 뿐이었고, 현생에서는 이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남자가 자신의 연기를 인정하고 있는 모습에 민수는 조금 뿌듯함을 느꼈다.

물론 아직 자신은 멀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민수의 표정을 읽은 수연은 어이없다는 듯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아주 놀고들 있네…”

그렇게 밤은 깊어 갔고 그날 “송포유” 5화의 시청률은 18.2 %를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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