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69화 (69/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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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이 지나는 동안 민수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이해할 수 없는 인신공격과 비방, 그리고 욕설 섞인 말에 민수의 기분 역시 조금씩 가라앉아 갔다. 확실히 자신을 대놓고 욕하는 글을 보는 것은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민수의 하차를 요구한다든지, 드라마의 시청을 거부한다든지 그런 움직임은 전혀 없었기에 촬영은 별 탈 없이 계속되었다.

    초반에 걱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제작팀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제는 그냥 상황을 의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촬영 중 쉬는 시간이 되자 민수는 자신의 기사에 달린 사람들의 반응을 조금 살펴보았다.

    민수에 대한 질타와 인신공격이 즐비한 가운데 상황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민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읽어 보고 있었다.

    -막말로 지금 군에서 5년 동안 정신병자를 복무하게 했다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장담하는데 이거 나중에 분명 정정기사 나고 쓸데없이 욕질한 세끼들은 정의구현 당할 거다. 그리고 이글은 성지가 되겠지.

    -다른 기사보니 전역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데 그냥 전역한담에 우울증같은거 온거 아니야?

    -근데 쟤가 정신병자이든 병신이든 그게 니네들이랑 대체 무슨상관이냐? 그게 그렇게 욕할 일이야?

    그렇게 글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리온이 민수를 찾아 왔다.

    평소처럼 웃는 모습의 리온을 보니 문득 민수는 이카루스의 팬클럽인 “태양”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민수가 리온에게 피해를 준다고 생각된다면 “태양”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리온과의 사이가 조금 난감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수가 리온에게 “태양” 쪽 반응이 어떤지 조심스럽게 물어 보자 리온은 웃으며 민수를 안심시켰다.

    “아, 아마 팬클럽 중에 루머에 가장 신경 안 쓰는 게 “태양” 일 거에요.

    저희가 데뷔 초에 워낙 루머에 시달렸어야죠. 이제 “태양”은 기사보다 저희 말을 더 믿거든요.

    제가 루머가 시작될 때 이미 “태양” 애들한테 말해 놨어요.

    다 개 뻥이고, 지금 어디서 언플질하고 있는 거라고.”

    리온은 당당하게 말했지만 민수는 그 말을 100% 신뢰 할 순 없었다.

    “태양” 에게는 전생에 ‘서쪽 해변’을 한 방에 날려버린 전적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어쨌든 리온이 미리 이야기했다면 크게 동요하진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하긴, 지금은 리온이 주연이고 심지어 드라마가 잘 될 조짐이니… 별문제 없겠지. 어쨌든 그 녀석들의 목적은 리온이 잘되는 거니까’

    “태양”에 대한 걱정이 잦아들자 민수는 리온에게 조금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시작했다.

    “이카루스도 초반에 루머가 많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이미지도 많이 망가졌을 텐데 그건 어떻게 회복했나요?”

    리온의 말대로 루머의 가장 시달린 아이돌이 아마 이카루스 일 것이다.

    그런 만큼 욕도 많이 먹었고, 어쩌면 배우보다 팬덤에 민감한 아이돌인 리온이 그런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했을지 궁금했다.

    “아…. 그랬죠. 그런데 조금 힘들긴 해도 시간이 다 해결해 주더라고요.

    그 인터넷에서 남한테 욕하는 애들은 사실 특별히 누가 싫어서 욕한다기보다는 그냥 심심해서 욕하는 게 대부분이거든요.

    뭐.. 가끔가다 진짜 진지하게 안티인 애들도 있긴 한데, 그건 사실 드무니까요. 솔직히 진지하게 남을 미워하는 것도 엄청 심력을 낭비하는 일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정말 미워서 욕하는 애들은 좀 드물더라고요.

    나머지는 그냥 심심해서, 그냥 욕할 거리가 있길래. 뭐 그런 거더라고요.

    한번은 진짜 심한 욕한 애들만 쫙~ 고소해서 불러 모았는데, 보니까 저희를 특별히 증오해서 그런 것 아니고 그냥 습관적으로 욕한 애들이 대부분이었어요.

    허무해서 그냥 다 훈방조치 해달라고 하긴 했는데… 그래서 그 뒤에는 그냥 욕하는 거에 대해서는 신경 끄고 있어요.

    그때 그놈들도 또 어딘가에서 습관적으로 욕하고 있겠죠.

    아! 어쩌면 그놈들이 지금은 형님 욕을 신나게 적고 있을 수도 있겠네요.”

    조금 심각한 내용을 너무나도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리온을 보니 민수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조금은 가볍게 느껴졌다.

    “요점은 이런 거 같아요. 저를 진짜 싫어하는 놈들도 있을 거고, 혹은 아무 생각 없이 욕부터 하는 애들도 있을 거고, 그리고 저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어차피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으니, 적어도 저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노래하면 된다. 전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있거든요.”

    민수는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연예계 생활을 오래 해서, 자신만의 확고한 생각을 하는 리온이 조금 멋있게 느껴졌다.

    누가 지금 리온을 보고 자신한테 쓸데없이 신경전을 벌이던 그 신인 배우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래요? 필수 씨 참 멋있네요”

    민수가 웃으며 리온을 칭찬하자, 리온은 멋쩍은지 그냥 웃기만 했다.

    민수는 그냥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자신은 남이 자신을 욕하든 말든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감정이 섬세한 놈도 아니었고, 정신연령이 어린놈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몇 가지 불안감이 그의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었다.

    먼저 연기력에 대한 불안감, 민수는 이제 처음 연기를 시작하면서 스스로 연기력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검증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게 안 좋은 이미지만 쌓인다면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를 제대로 봐주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감은 의외로 가볍게 해결되었다.

    지금 민수가 엄청난 욕설과 논란에 쌓여 있는데도 그 많은 욕 중에 민수의 연기를 욕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차라리 욕 대부분은 연기는 잘하면 뭐하냐? 인간성이 엉망인데. 같은 연기력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욕들뿐이었다.

    그리고 전생처럼 혼자 남게 될 거라는 불안감.

    민수는 많은 사람의 질타를 받으면서 두려움을 느꼈다.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면 아무도 자신 주변에 남지 않을 거 같은 두려움, 그리고 전생처럼 그렇게 외롭게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공포였다.

    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미움을 받는 와중에 자신을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자신을 달래 주고 위로해 주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만든 어둠에 불과했다. 전생의 민수는 이제 세상에는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지막 불안감은 자신의 이미지가 주홍글씨가 박히듯 안 좋은 이미지로 영원히 남는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아마 어떤 제작자도 자신을 찾지 않게 될 것이다.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이미지를 주고 있는 배우는 아마 아무도 써 주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 찍고 있는 “송포유”도 드라마가 시작하고 루머가 퍼졌기에 망정이지, 이런 루머가 만약 캐스팅 과정에서 퍼지기 시작했으면 민수는 분명 드라마를 시작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리온의 말을 듣고 잘 생각해 보니, 지금 당장 이렇게 이미지가 좋지 않지만 분명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 만큼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충분히 지워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까짓것, 뭐, 정 그러면 드라마 끝나고 대표님이랑 몇 개월 정도 연기연습이나 더 하지 뭐. 그럼 대충 잊지 않겠어?’

    민수는 리온과 대화를 통하여 자신이 가진 막연한 불안감의 실체를 완전하게 파악 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이젠 더는 불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막상 일이 벌어지고 나니 그렇게 마음 아프지도 않았다.

    전생에서는 악플을 보고 자살하거나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배우들도 있었는데, 자신은 그런 부류는 확실히 아닌가 보다.

    다만 그래도 자신에게 쓸데없는 감정 소모와 불안감, 그리고 훗날의 고생길을 강요한 RD에 대하여 좋은 생각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민 여사님이 RD 쪽에 빅엿이나 하나 안겨 주셨으면 좋겠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때마침 전화기가 울렸다. 민수가 슬쩍 확인해 보니 RD의 김주성 팀장이었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민수는 조금 불쾌감을 느끼면서 무슨 소리를 할까 궁금해서 전화를 받았다.

    [정민수 씨, 오랜만입니다. RD의 김주성 팀장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시죠?”

    [하하하. 생각을 좀 해보셨나 해서요. 어떻습니까? 혹시 생각이 있으십니까?]

    민수는 김주성의 말에 RD는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졌다.

    “음… 제가 지금 조금 안 좋은 상황에 부닥쳐 있는데… RD로 가면 혹시 무슨 해결책이 있나요?”

    살짝 떠보는 민수의 말에 전화기에서 너머로 밝은 음성이 들려왔다.

    [하하. RD정도로 큰 회사로 옮기면 그런 루머 따위 금방 사라질 겁니다.]

    뻔뻔한 주성의 말에 기가 막힌 민수는 더는 대화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 그렇군요. 참 대단한 회사네요. 하지만 전 그냥 평범한 배우라 그런 대단한 회사에 몸담기에는 너무 부족하네요. 제안은 거절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저. 민수 씨? 민수 씨?]

    민수는 자기가 할 말만 다 하고는 그냥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바로 주성의 번호를 수신 거부로 바꾼 후 한숨을 쉬었다.

    “너희가 뿌린 루머니까 당연히 너희 회사로 가면 사라지긴 하겠지.”

    민수는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지금 앞에 리온이 있다는 사실을 깜박 잊고 말았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앞을 보다가 리온이 자신을 바라보며 두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속으로 아차 싶었다.

    “아.. 그 루머가… 지금 RD에서 나오고 있던 거였어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리온은 민수의 말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고 민수는 속으로 쓴웃음만 지었다.

    잠시 생각한 리온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민수에게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하여간 거기도 참 더러운 회사라니까요. 요즘 이상한 소문이 있어요. 그 뭐야. RD에서 지금 제일 잘 나가는 게 판타즘이거든요.

    근데 판타즘 팬들 사이에서 RD가 판타즘의 행사비를 착복하고 있다는 말이 돌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팬덤이 묘하게 들썩이는 중이에요.”

    리온의 말에 민수는 당황해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민수가 입을 살짝 벌린 체 아무 말 못 하고 있자, 그 모습을 본 리온은 피식 웃으며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말은 안 되는데 생각해보니까, 불가능은 아니더라고요.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1000만 원짜리 행사를 950만 원에 해준다고 비밀 지키라고 하면 다들 그냥 입 다물고 다른 데다가 떠들지 않거든요. 그럼 그냥 900만짜리 행사로 올리고 50만 원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거에요.

    섭외 받는 직원이랑 스케줄 관리 하는 직원 그리고 회계 직원, 이렇게 셋만 입 다물면 아무도 모를걸요.”

    아주 쉬운 리온의 설명에 민수는 바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론적으로 이해가 되는 거랑 실제로 그걸 실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 설마 그럴까 하는 의심도 들었다.

    “뭐, 그냥 소문이라서요. 하지만 왠지 그럴 거 같지 않아요? 원래 RD 하면 더러운 수작 부리기로는 이 바닥에서 유명하잖아요. 계약서도 더럽고”

    리온의 말에 RD의 수작질을 직접 경험한 민수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긴 한데….”

    “그냥, 뭐. 그런 말이 있다. 이런 거죠.”

    어쨌든 리온과의 대화로 자신의 마음을 확실히 확인한 민수는 사람들의 온갖 욕설과 모욕을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며칠이 지나자 이제는 그 욕설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이게 진정 불가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가 아닐까?”

    자신의 상황을 그렇게 정리한 민수는 그냥 하루하루 촬영에만 집중하였다.

    촬영은 이제 서 작가의 말대로 스튜디오 촬영 외에도 야외촬영이 번갈아 가면서 계속되었다.

    야외 촬영 시 민수의 너무나도 예민해진 청력에 사람들이 멀리서 조금 수군수군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성가시긴 했지만, 자신에게 직접 해를 입히는 것은 아니라 그냥 무던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런 민수에 비해서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보다. 수정의 말에 의하면 “힐링 멘토” 내에서는 한동안 기자들에 대한 욕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욕을 하면 바로 강퇴당하는 커뮤니티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욕을 하는 바람에 이 건에 대하여서는 규율을 적용하지 않겠다고 운영진 측에서도 밝혔다고 한다.

    그리고 민수와 가장 자주 접해서 이젠 그냥 가족이 아닌가 가끔 착각하고 있는 태준,설아 남매는 항상 민수의 방으로 놀러 와 민수를 달래 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젠 수연까지 합세해 3명이 된 불청객들은 이제 밤마다 민수의 방을 술집처럼 이용했다. 도대체 그렇게 매일 캔맥주를 먹고 있는데 왜 살이 찌지 않는지 민수는 계속 의문이었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수연은 아마 살이 조금만 붙었다 하면 드라마를 마치고 바로 설아에게 끌려가 지옥의 트레이닝을 받을 거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관리를 못 한 수연의 잘못일 테니, 자신을 스스로 탓하리라. 그때는 아마 자신이 귀엽다고 노래를 부르는 설아의 악마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러는 가운데 한 주가 지나 “송포유” 5화를 방송하는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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