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68화 (68/325)

#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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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윤 대표의 부름을 받고 대표실을 방문하였다.

대표실 안에서는 민 여사와 윤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민수가 대표실 안으로 들어오자 윤 대표는 애써 웃으며 민수에게 자리를 권하였다.

“왔느냐? 우선 앉아라.”

민수는 별다른 말 없이 윤 대표가 권한 자리에 몸을 실었다. 민수가 자리에 앉자 윤 대표는 바로 이야기를 꺼내었다.

“너도 봤겠지만… 상황이 조금 어렵게 되었어.

네가 정신과에서 치료받은 병력에 대한 이야기를 전역하게 된 이유랑 묶어서 기사가 나오는 바람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천지”에서 기사가 시작되어 버렸기 때문에 당장은 마땅히 해결책이 보이지가 않는구나.”

“그렇군요.”

“내가 RD의 정보력을 너무 만만하게 본 모양이야… 절대 비밀을 보장하는 정신과의 진료 정보를 무슨 수로 구했는지 모르겠구나.”

민수는 윤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 상황을 가장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은 “천지일보”의 신뢰성이었다.

특히 “천지일보”의 사회면은 “천지일보”의 기사 중에서도 가장 날카롭고 정확하다고 정평을 듣고 있었으니 그곳에 민수의 이야기가 올라 버린 이상 사람들 사이에서 민수에 대한 편견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리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그렇게 사람들에게 신뢰를 줄 정도로 정확한 기사만 기재해 왔다는 것인데, 이번에는 무슨 연유로 교묘하게 꼬인 기사를 올린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떤 연유로 이런 일이 발생했던지 어쨌든, 일을 벌어 졌고 남은 것은 수습뿐이었다.

그리고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마땅히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일이 그렇게 되어버렸으니… 처음처럼 그런 방법은 안 통할 거다.

물론 이번에는 정확한 사실 위주로 기사를 계속 내보내긴 할 거야. 하지만 아마 크게 효과를 보기는 어려울 거야.”

윤 대표의 설명을 들은 민수는 그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민수도 충분히 예상하는 바였으니 말이다.

민수와 윤 대표의 대화를 옆에서 듣기만 하던 민 여사는 미안한 목소리로 민수에게 사과부터 했다.

민 여사는 자신이 사전에 정 대표와 “천지”의 만남을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았다.

“미안해, 민수 씨.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

항상 밝고 여유 있는 모습만 보여주던 민 여사의 침울한 모습에 민수는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민수는 솔직히 처음에 나온 루머들을 막아 준 것만 해도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리온이 말했듯이 루머란 건 막는 게 아니라 그냥 흘러가게 두고 버티는 것이니까 말이다.

“아니에요, 여사님. 그런 생각하지 마세요. 전 충분히 괜찮으니까요. 민 여사님은 할 만큼 하신 거 같아요.”

민수가 웃으며 위로하자 민 여사는 조금 조심스러운 태도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제가 생각한 해결책이 두 가지가 있긴 해요.

먼저, 민수 씨에 대한 더 큰 이슈를 만드는 거예요.

전 혜민이의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어요. 가장 사람들이 비난하고 있는 민수 씨의 인성에 대한 문제나, 민수 씨가 정신질환으로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일소시킬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음으로 생각해 본 건… 일을 아주 크게 만들어 버리는 거예요.

지금 민수 씨에 관한 이슈는 어찌 보면 군의 안정성에 대한 불신과 연결되어있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 부분에는 상당히 예민하게 받아들이죠. 사실 “천지”의 기사는 교묘하긴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잘못된 기사잖아요.

만약 어떤 언론사가 그 거짓된 기사를 크게 부풀려서 사람들에게 떠들어서 사람들이 군에 안정성에 대하여 불안감이 생긴다면… 그때는 군에서 사실을 바로 잡기 위해 움직일 거에요.

그러면 자연적으로 그 기사가 잘못된 기사라는 사실이 밝혀 지게 되겠죠.”

민 여사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민수는 민 여사의 발상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민수가 처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이고 명확한 해결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해결책을 단 몇 시간 만에 생각해 낸 민 여사의 기지가 정말 대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민수는 도저히 민 여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 우선 혜민이 이야기는….”

민수는 혜민이의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목이 메는지 잠시 물로 목을 축이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제가 기자들을 도망쳐 서울로 무작정 상경했다는 이야기는 들으셨을 거예요. 그때 제 나이가 18살이었죠.

그런데 지금 혜민이가 8살이네요. 그때의 저보다도 10살이나 어린…

아마 그 기사가 나기 시작하면 혜민이에게도 기자들이 붙기 시작할 거에요.

전 그러려고 혜민이를 도와준 게 아니었어요. 제가 살자고 그 아이에게 제가 겪었던 그런 경험을 안겨주는 건… 전 도저히 그럴 수 없어요.

전 혜민이가 특별하지, 않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의 눈이 모이면 결국 그런 혜민이의 삶도 어떤 방향이든 지금과 달라지겠죠.

그러니 첫 번째 의견은 그냥 못들은 걸로 할게요.”

말을 마친 민수는 민 여사가 제안한 두 번째 의견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민 여사의 분석은 정확한 거 같았다.

군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큰 기둥이기도 했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위험한 방아쇠이기도 했다.

그들은 민족과 조국을 위한다는 목적하에 때에 따라서는 다소 비인도적인 행위를 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한때 명예롭지 못한 지도자로 인하여 군이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전적이 있기 때문에 국민들은 군을 자랑스러워하면서도 동시에 조금 두려워하는 면도 있었다.

아마 지금 군이 “명예”와 “자부심”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전적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는 그런 수치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말이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항상 군에 대한 경각심을 자극하는 “천지일보”의 기사 같은 그런 기사가 주기적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군 내부적으로는 “명예”와 “자부심”을 철저히 고양하고, 군 외부에서는 그런 군에 양면성을 정확하게 인식한다.

이것이 지금 군과 사회가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민 여사의 말대로 군의 안전성을 의심하는 기사를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면 사람들은 분명히 동요할 것이다.

“천지일보”에서 민수라는 분명한 예시를 들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리라.

그리고 국민들이 그렇게 동요하게 되면 군은 어쩔 수 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 민 여사님. 이건 정말 너무 스케일이 크네요. 배우 하나 구제해 주기 위하여 대체 몇 명을 움직여야 하나요?’

군은 많은 제약이 있고 그만큼 큰 권한도 있었다. 그래서 거의 움직이지 않지만 움직이면 분명 큰 풍파를 일으킨다.

그리고 그것이 군의 명예에 관한 것이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정확히 예상하기 힘들었다.

한 일화가 있다. 아마 민수가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을 것이다.

어떤 정신 나간 언론사 하나가 군 내부에 비리에 대하여 있지도 않은 사실들을 허위로 유포한 적이 있었다.

그 기사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고, 결국 군도 그에 대응할 수 밖에 없었다.

군의 1차 경고, 2차 경고가 이어졌지만, 언론사는 무슨 생각인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그 결과 군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 언론사는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언론사 사주, 그리고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은 내란에 관한 죄와 국가 안보를 위협했다는 혐의가 인정되어서 헌병대로 끌려갔다.

어이없지만 경찰서가 아니라 진짜 헌병대에 끌려갔다. 사람들은 놀랐지만 그게 헌법에서 보장한 군의 권리였다.

물론 헌병대의 강도 높은 조사 끝에 타국에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란 사실이 밝혀져서 군사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피했지만, 사회에서도 실형을 받게 되었다.

아마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민간인이 헌병대에 끌려간 것이.

법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은 군에 그런 권한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많이 놀랐지만, 제한이 워낙 많은 권한이라 그 언론사처럼 정말 미친 짓을 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고, 그 후에는 오히려 군이 가져야 할 당연한 권한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하여간, 지금 “천지일보”에서 살짝 먹잇감을 던진 후, 후속 기사도 전혀 내보내지 않고, 다른 언론사에서도 그 먹잇감을 쳐다보지도 않고 다만 연예 기사로만 민수의 이야기를 내보내는 건 저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즉, “천지” 측도 일이 커지는 건 전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런 기사를 냈지만, 막상 일이 커지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에 슬쩍 발을 빼겠다는 태도였다.

그런데 민 여사는 이 일을 키워서 군이 움직일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이다. 그런 민 여사의 대담한 스케일에 민수는 매우 놀랐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 여사님.. 민 여사님의 말씀을 듣기만 해도 민 여사님이 저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선 민 여사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민수는 이어서 자기 생각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너무 부담이 큰 계획이에요, 그건… 저 하나 때문에 몇 명이나 피해를 봐야 할지… 그리고 일도 너무 커질 테고… 저로서는 어떻게 흘러갈지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그리고 다시 물을 한잔 마신 민수는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제가 어리석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저 나름의 신념이랄까요? 신조라고 할까요. 그런 게 있어요.

적어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살고 싶진 않아요. 그 때문에 제가 조금 손해를 본다 해도 그건 제가 감수할게요.

그리고 제가 아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루머란 건 그냥 소나기 같은 거래요. 그러니까 한번 기다려 볼게요.

그리고 그치면 그때 한번 대책을 생각해 봐야죠.”

민수의 말에 민 여사와 윤 대표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의 침묵이 그들을 감싸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그래… 그럼 조금만 기다려라. 그렇게 길진 않을 거다.”

윤 대표는 민수에게 이런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런 윤 대표를 두고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냥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는 대표실을 나섰다.

민수가 대표실을 나서자 민 여사는 깊게 한숨을 쉬면서 입을 열었다.

“저런 면이, 우리 귀염둥이답긴 하지만… 후….”

“예상했지 않았는가, 저럴 거라고. 저 녀석 말이 맞긴 하지… 시간이 지나면 루머는 사그라질 거야.

하지만 그동안 받을 고통은 사라지지 않겠지.”

“문제는 정우철이 사라지고, 루머가 확산이 멈춘다 해도 민수 씨의 이름 앞에 주홍글씨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거네요.”

“한번 생각해 보지. 어떻게 해야 이후에 민수의 이미지를 개선 시킬지 말이야.”

윤 대표의 말에 민 여사는 이를 갈면서 대답했다.

“우선 정우철부터 날려버리고 생각해 보려고요. 만약 다음 주에도 “송포유”의 시청률이 떨어지지 않으면 그 자식은 분명 우리가 생각한 대로 움직일 거에요.”

“만약 정우철이 지금 민수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졌다고 16%까지 올라간 드라마의 시청률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건 정말 배우랑 드라마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반푼이라는 말밖에 안 돼.”

“내기할래요? 대표님? 다음 주에 정우철이 움직이나 안 움직이나?”

낙관하는 민 여사를 보며 윤 대표가 우려하자 민 여사는 살며시 웃으며 윤 대표를 도발했다. 그런 민 여사를 보며 윤 대표는 실소를 내뱉고는 민 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좋아, 내가 지면 민수의 이미지 개선을 내가 책임지지.”

“좋네요. 내내 마음에 걸렸는데…”

민 여사와 윤 대표는 앞으로의 행방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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