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67화 (67/325)
  • # 67

    2

    이제 오늘의 마지막 씬 은 최준과 준성이 대화하는 씬이었다.

    미주를 등에 업은 준성과 최준이 걸어가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둘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중요한 씬 이었다.

    (씬 7-3-8)

    최준은 미주를 업고 가는 준성의 모습에서 그가 미주를 업는 게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모습에서 묘한 기분을 느낀 최준은 퉁명스럽게 준성에게 묻는다.

    “어째.. 업는 모양이 익숙해 보인다?”

    “그래, 익숙하지. 이 녀석을 업고 도망친 게 한두 번이 아니니까.”

    학창시절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미주 때문에 불량배들로부터 미주를 보호하기 위하여 항상 업고 도망치던 기억이 떠올라 준성의 입에는 쓴웃음만 가득했다.

    그리고 평소와는 달리 존댓말을 하지 않는 준성의 모습에 최준은 조금 당황을 느끼며 소리쳤다.

    “허.. 왜 갑자기 반말이야? 안 어울리게…”

    “그럼 밖에서까지 존댓말을 할까? 회사에서야 공적인 관계니까 존댓말 해주는 거고. 뭐가 예쁘다고 밖에서까지 존댓말을 써?”

    “허… 그건.. 그렇네…. 그렇게 말하니까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준성의 말에 최준이 당황하면서 얼버무리자 준성은 표정을 구기면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미주는 착한 아이지. 옛날부터 지금까지… 그래서 난 너 같은 자식이 미주에게 달라붙는 게 싫어. 그러니… 적당히 하고 떨어져 나가”

    차가운 준성의 말에 최준은 속에서 불이 뿜어져 나오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를 느끼며 최준은 애써 마음을 가다듬고 최대한 차분하게 물었다.

    “내가 어때서? 내가 어떤 놈인데?”

    “흥, 아주 이기적인 놈이지.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란 피해는 다 주는 놈, 항상 주변 사람들을 난도질해서 힘들게 만드는 놈. 그게 너란 놈이지, 아니야?”

    준성의 말에 순간 최준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뒤이어 가슴속에서 끓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그 분노의 대상은 자신이기도 했고 준성이기도 했다. 그리고 울분에 찬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준성을 노려보았다.

    “흥. 그래? 그렇게 잘 알면 진작에 미주를 데려가지 그랬어? 어차피 그러지도 못했으면 그쪽도 그런 말 할 자격은 없는 거 아닌가? 그리고 네가 뭐라고 하던지… 난 미주 포기 안 해.”

    최준의 말에 준성은 아무 대답도 없이 길을 걷기만 했다. 금방 미주의 집 앞에 도착했다.

    “OK!”

    이번 씬 촬영이 끝나자 수연은 서둘러 민수의 등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민수의 등판을 두어 번 두드리면서 미소를 지었다.

    “짜식… 탑승감이 좋던데. 좋은 등이었어!”

    그런 수연을 민수는 그냥 웃으면서 바라보았고, 리온은 그런 둘을 조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와, 선배님은 민수 형님이랑 같은 소속사 식구가 되더니 급격히 사이가 좋아지셨네요. 조금 부러워요. 우리 소속사에는 배우가 없어서…”

    “그래도 필수 씨는 좋은 팀 동료들이 있잖아요. 저번에 K-G씨 보니까 정말 필수 씨를 아껴주시는 거 같던데요”

    “하하하, 그건 그래요. 저희 팀 애들도 정말 좋은 녀석들이죠”

    수연과 민수의 사이를 부러워하던 리온은 민수가 이카루스 멤버들을 들먹이자 고개를 끄덕이면서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리온을 바라보던 수연은 고개를 저으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휴, 리온씨가 몰라서 그런데 소속사 식구들은 그냥 다 웬수들이에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다들 시건방을 얼마나 떠는지…”

    수연의 말에도 리온이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할 뿐 전혀 믿는 기색이 아니자 그녀는 그냥 한숨을 쉬면서 입을 다물었다.

    “에휴… 사람들이 이것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수연의 한탄을 뒤로하고 이제 최준과 준성의 마지막 독백 촬영이 시작되었다.

    (씬 7-3-9)

    미주를 데려다주고 나오는 최준은 홀로 거리를 걸어 나간다.

    “상처라… 주변에 상처 주는… 후…”

    그렇게 걷다가 잠시 하늘을 본 최준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내뱉었다.

    “후….. 그래.. 그랬지… 하지만 미주에게는 절대 상처 주지 않아… 그리고 미주를 놓치지도 않을 거야.”

    최준이 단호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OK!”

    (씬 7-3-10)

    떠나는 최준을 준성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그리고 자신도 뒤로 돌아 길을 걷기 시작한다..

    “하… 왜 미주를 데려가지 않았냐고? 내가 한 발자국씩 다가가면 두 발자국씩 도망가는 녀석인데… 어떻게 잡아? 그리고 제발 더 다가오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애처로운 눈으로 날 바라보는데… “

    준성은 평소에 미주를 바라보던 그 슬픈 눈으로 천천히 걸어나갔다.

    “OK!!”

    촬영이 끝나고 스텝들은 분주하게 장비를 정리했다.

    그런 스텝들에게 인사하고 돌아서는 민수에게 수연이 다가갔다.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하네.”

    “그러게요. 그래서 더 불안하네요.”

    “흠….”

    “뭐, 좋은 게 좋은 거죠. 그냥 편하게 생각하려고요. 일이 닥치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죠.”

    조금 달관한 듯한 민수의 모습을 보면서 수연은 조금 안심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층 성숙해진 느낌을 주는 민수는 가끔씩 자신보다 두 살이나 어린 주제에 연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민수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수연은 손을 흔들어 인사한 후 자신의 밴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날 밤 민수와 수연이 걱정했던 대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시작은 “천지일보”의 사회면이었다.

    “천지일보”의 사회면에 하나의 기사가 올라왔다.

    기사는 군에 대한 기사였는데, 국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총기를 다루는 단체이니만큼 군인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군인 자격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기사 자체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기사였다.

    세계적으로 총기에 대한 사고가 빈번해지고 있는 시점이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도 총기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군인들의 자격심사는 엄격하게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잊을 만하면 나와서 국방부의 신경을 건드리는 이런 내용의 기사는 국방부 입장에서는 그냥 앞으로도 지금처럼 군인들이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는 끝에 묘한 단서를 달고 있었다.

    이 기사의 끝자락에는 한때 군복을 입었고 지금은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정민수는 정신적 질환의 병력이 있으며 그런 사람이 한 때라도 군복을 입고 총을 다루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금할 수 없다고 적었다.

    그리고 민수가 입대했던 “적호 부대”의 부대명을 정확히 언급하면서 어떻게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입대를 할 수 있었는지, 입대 심사가 엄격하게 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이 기사가 올라간 이후 민수의 정신과 병력에 대한 허위 기사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수를 정신이상자나 사이코패스로 취급하는 이 기사들은 “천지일보”에서 올린 기사 덕분에 묘한 설득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종전에 퍼졌던 “일진설”이나 인성이 나쁘다는 기사들까지 덩달아 힘을 받게 된 것이다.

    민수가 진급누락 되어 전역하게 된 일과 사회에서 정신과에 상담을 받고 치료받은 일이 합쳐져 생성된 거대한 루머는 윤 엔터 홍보팀에 의하여서 뿌려지는 진화 기사에도 사그라지지 않고 점점 커지기만 했다.

    게다가 어디에서 언론사를 고소한다는 소문이라도 돌았는지 이제 민수의 이름을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정확히 이름을 밝히지 않아도 기사에서 말하는 사람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수이 정확하게 올라간 기사는 "천지"의 기사가 유일했다.

    아리 재단 4층 이사장실.

    분노한 민 여사의 손이 탁자를 내려치자 “쾅”하는 거대한 소리가 이사장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앞에는 긴장한 표정의 최 이사와 박 이사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걸 몰랐다고요? 분명 “천지”의 동향에 대하여서도 신경 쓰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분노를 삭이면서 애써 차분하게 말하는 민 여사의 모습에 최 이사는 괴로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작게 대답했다.

    “연예부 쪽만 살펴 보다 보니… 설마 사회부 쪽에서 기사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해서…”

    한 숨을 쉰 민 여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지 쉽게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고민하고 고민을 반복했지만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 민 여사를 바라보며 박 이사가 조심스럽게 간언했다.

    “그러면 더 크게 관심 가질 만한 이슈를 던져 보는 것이 어떨까요?”

    박 이사의 말에 민 여사는 여러 가지 변수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빠르게 생각해 봤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민 여사는 중얼거리면서 빠르게 대표실로 이동했다.

    그 시각, 민수도 기사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와… 이걸 이렇게 엮어서….”

    민수는 “천지일보”에 올라온 기사를 읽으면서 솔직히 이 기사를 정면으로 반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전역하게 된 진급누락 사유는 분명 “사회성 부족” 그리고 자신이 사회성이 부족하게 된 이유는 자신의 정신적 질환인 “도피성 몰입 증후군”이 맞긴 했다.

    “도피성 몰입 증후군”이 군 생활을 하기에 위험한 정신 질환인가에 관하여 묻는다면 수긍할 수 없지만 어쨌든 전역하게 된 이유는 결론적으로는 정신적 질환 때문이었으니 이 기사는 참으로 잘 비틀어 놓은 기사였다.

    그리고 정확히 자신의 부대명까지 기록해 놓은 모습에 민수의 기분은 조금 우울해 졌다.

    자신은 분명 부대를 피난처로 삼아 도망쳤다. 그리고 하루하루 별 생각 없이 파도에 휩쓸린 듯 그렇게 5년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다양한 이유로 입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돈일 것이다.

    특별한 기술 없이 훈련을 이겨낼 정신력과 체력이 있다면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군대였다. 민수의 부대에도 가정환경이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돈을 위해 입대한 사람들도 강도 높은 훈련과 다양한 교육, 그리고 실전을 겪어 가면서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국가를 지킨다는 명예를 가슴속에 품게 된다.

    그리고 민수가 복무하던 “적호 사단”은 그러한 명예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부대였다.

    그들은 국경을 지키는 유일한 순수 보병부대였고, 전쟁이 일어나면 국면을 수습할 3분을 벌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겠다는 굳은 각오로 무장된 부대였다.

    강한 훈련과 다양한 교전 경험으로 아프리카나 중동 쪽에 문제가 생겨 파병할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부대이기도 했다.

    그들은 오늘도 가장 전방에서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민수는 그런 전우들이 혹시 자신 때문에 싸잡아 비난받게 될까 봐 조금 염려가 되었다.

    민수는 서둘러서 여러 가지 기사들을 살펴보았다. 사회면은 역시 잠잠했다.

    후속 기사가 없는 것을 보니 “천지”에서도 그냥 의례 던지는 식으로 기사를 작성한 것이지 큰 의미를 둔 기사는 아닌가 보다.

    그리고 각종 연예 기사들을 살펴보니 확실히 군에 대한 기사보다 민수 자신에게 기사가 집중되어있었다.

    “그래도 RD도 완전히 미친 건 아닌 모양이네, 군까지 걸고넘어지진 않는 걸 보니…”

    민수는 그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진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윤 엔터의 대표실.

    윤 대표와 민 여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이면 민수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계속 흘러갈 거란 거군.”

    “네, 처음 기사가 나온 곳이 “천지” 라는 게 가장 커요. 사람들이 신뢰하고 있는 언론사니까요.”

    “다른 곳에서는 별다른 말이 없었소?”

    “대한, 조선, 한국. 모두 굳이 진흙탕에 발을 들여놓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에요.”

    민 여사의 말이 이어질수록 윤 대표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기가 막힌 일이군… 혹시 다른 방법은 없소?”

    윤 대표의 질문에 민 여사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새로운 이슈를 터트리는 것인데…. 제 생각에는 민수가 혜민이를 구한 이야기를 터트렸으면 좋겠어요.”

    민 여사의 말에 윤 대표의 표정이 더 안 좋아졌다.

    “하….”

    깊게 한숨을 쉰 윤 대표는 잠시 눈을 감아 생각을 정리하고는 민 여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우선 민수의 생각을 들어 봅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