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65화 (65/325)

# 65

2

그렇게 네 명의 배우가 즐겁게 드라마를 시청하던 그 시간.

아리 재단 이사장실에서는 민 여사와 박 이사, 최 이사가 그간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국 지금까지는 우리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군요.”

민 여사가 가볍게 운을 띄우자 거대한 덩치에 험상궂은 얼굴의 최 이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민 여사에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네, 아가씨. 하지만 이렇게 언제까지 소모전만 하고 있을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최 이사는 무슨 좋은 생각이 있나요?”

민 여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최 이사를 바라보자 그는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좋은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냥 규모가 큰 언론사부터 기사 올리는 기자 놈들 한 스무 명 정도만 손모가지를 비틀어서 몇 주 병원 신세를 지게 하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 민수 씨한테 안 좋은 기사를 쓰면 병원에 실려 간다는 소문을 내는 겁니다.

그런 소문이 돌면 당분간 그런 기사를 쓸 생각을 못 할 테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기사들이 수그러들 겁니다.”

최 이사의 말에 민 여사는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런 민 여사와 최 이사를 보며 박 이사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최 이사를 노려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래, 그리고 아리 재단에 경찰들이 들이닥치겠지.”

“흥, 내가 보낼 애들 중에 우리 재단의 이름을 입에 담을 녀석은 하나도 없어.”

최 이사와 박 이사의 논쟁을 가만히 바라보던 민 여사는 천천히 손을 들어 두 사람의 분위기가 과열되는 것을 막았다.

그리고 미소를 잃지 않은 얼굴로 최 이사를 달랬다.

“확실히 효과 면에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하네요. 고마운 말이지만… 이제 우리 애들한테 그런 일은 시키지 않은 지 오래되었잖아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시키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그 방법 쓰는 순간 아마 제가 가장 먼저 이혼서류에 도장 찍게 될 거에요.

경찰은 모르겠지만 우리 윤 대표는 바로 알아챌 테니까요.

그래도 계속 소모전만 할 수는 없다는 말에는 저도 동의해요.

우선 민수의 이름을 그대로 기사로 낸 곳부터 고소장 접수해 주세요.

대놓고 이름 올린곳들은 최소한의 대가를 치루긴 해야죠.

우리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가 대놓고 강하게 나가면 적어도 정신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박힌 곳들은 발을 뺄거에요.

뭐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안하는 것 보다는 낫겠죠.

그런 다음에 상황을 더 지켜보도록 하겠어요."

민 여사의 말에 최 이사는 머리를 긁적이며 아쉬운 눈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런 최 이사를 보며 박 이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으면서 민 여사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네. 그건은 우선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런데 확실히, RD 내부도 심상치 않습니다. 분위기가 참 묘한 게… 지금 정 대표 쪽 사람들과 다른 직원들 사이에 조금씩 알력이 생겨나고 있는 거 같습니다.”

박 이사의 보고에 민 여사는 눈을 감고 고민에 빠져들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났을까, 이사장실 문을 열고 조 이사가 이수연의 매니저이자 이수연과 윤설아 전담팀의 팀장 오봉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오봉수는 거대한 최 이사를 보고는 흠칫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민 여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건네는 봉수의 눈에는 자신이 이곳에 불려온 것에 대해 의아함이 가득했다.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수연 배우님을 담당하고 있는 오봉수라고 합니다.”

그런 오봉수를 부드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민 여사는 가볍게 차를 한잔 건네면서 따듯한 말로 봉수를 안심시켰다.

“반가워요. 민아리 라고 해요. 아리 재단의 이사장을 맡고 있고, 윤 엔터에서는 고문의 자리를 맡고 있어요.

지난 시간 동안 우리 수연이를 잘 돌봐줘서 고마워요. 수연이가 오 팀장을 많이 의지하는 거 같아요. 앞으로도 수연이를 잘 부탁해요.”

민 여사의 말에 오 팀장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깐의 시간 동안 서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 후 민 여사는 오 팀장을 바라보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오 팀장도 지금 소속사 내의 상황에 대하여 들었을 거예요.”

민 여사가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봉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 표정으로 민 여사의 말을 끝까지 경청했다.

“제가 지금 오 팀장을 부른 건 개인적으로 궁금한 이야기가 있어서 에요. 그냥 솔직하게 말해 주시면 돼요.”

“네, 말씀하십시오”

오 팀장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대답하자 민 여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아요. 지금 RD 엔터 내에 묘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들었는데… 그 소문을 오 팀장도 들은 적이 있나요?”

“네, 저는 그냥 지나가면서 듣는 수준이었지만… 제가 알기론 실장급 인사만 돼도 어느 정도 확신을 하고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어떻게 그런 소문이 사내에 돌아다닐 수 있냐는 거에요. 당연히 가장 먼저 입단속에 들어가야 할 거 같은 소문인데…”

민 여사의 말에 오 팀장은 잠시 긴장되는지 찻잔을 들어 찻물을 한 모금 삼키더니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리고는 민 여사를 눈치를 보며 천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 여사님… 제가 사내 권력 관계에는 조금 어두운 사람입니다. 흔히 말하는 반골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확실한 대답은 못 해 드리겠지만… 제가 RD에서 생활하면서 느낀 것이 있는데… 그냥 전적으로 제 짐작일 뿐이라 이런 말씀을 드려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민 여사는 조심스러운 오 팀장의 태도를 바라보며 작게 웃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이기만 했다.

“제..생각에서는 김익수 이사가 소문을 막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세간에는 김 이사가 정 대표의 오른팔이라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조금 다릅니다.

원래 김 이사는 정 대표 쪽 사람이 아니라 진룡쪽에서 직접 내려보낸 이사입니다.

게다가 RD의 규모가 커지면서 시작부터 정 대표를 따르던 사람들이랑 진룡에서 직접 임명받은 김 이사를 따르는 사람들간에 알력다툼이 제법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김 이사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정 대표가 어쩔 수 없이 김 이사를 중용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김 이사가 정 대표의 지시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지만, 워낙 속마음을 감추는데 능숙한 사람이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사실 그런 소문들을 가장 먼저 접했을 사람이 김 이사인데, 계속 소문이 떠돈다면 그건 김 이사가 그 소문을 그냥 방치하고 있다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에는 김 이사가 뭔가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됩니다.”

민 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조 이사를 바라보자 조 이사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요. 좋은 이야기를 해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RD 쪽에 자기주장이 강하고 대쪽 같아서 자기 할 말 다하는 반골 같은 인사가 더 있나요? 만약 능력도 뛰어나면 더 좋고요.”

민 여사의 말에 오 팀장은 신중하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고 생각을 마친 오 팀장은 담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RD에서 반골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사람이라면 능력은 확실히 보장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들 중에 자기 할 말 다 하는 사람이면… 우선 가장 먼저 배우팀 박 실장 이 생각나는군요. 수연이 건으로 대표님하고 가장 격하게 대립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듣고 가장 분개한 사람이기도 하고요.”

“그래요? 마지막으로 오 팀장은 그 소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이라고 생각하나요?”

민 여사의 질문에 오 팀장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하는 목소리에는 짙은 허무함이 묻어났다.

“참 기가 막힌 일이지만… 불가능하진 않다고 봅니다. 정 대표 패거리가 작당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죠.

게다가 따지고 보면 정 대표 패거리들은 결국 정 대표 따라다니던 삼류 양아치들이잖습니까?

그런 놈들이 돈맛을 봤다면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죠.”

민 여사가 오 팀장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자 오 팀장도 깊게 고개를 숙이고 이사장실을 나섰다.

오 팀장이 이사장실을 나서자 조 이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마 역공작 같은 것은 아닌 거 같습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김 이사의 행적이 묘하게 의심스럽기도 하고요.”

민 여사는 조 이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사들을 둘러 보며 말했다.

“참… 세상에 별일이 다 있군요… 어쨌든 좋은 무기가 될 수도 있겠어요.

이 이야기가 퍼지면 가장 이득 볼만한 곳이…. TD나 날개겠죠? 이걸 이득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아마 그럴 겁니다. 반사적 이익이긴 하지만요.”

“좋아요. 날개는 언플 청정 구역이잖아요? 회사가 하도 언플을 안 해서 팬들이 대신 언플을 해준다는 곳이요, 그럼 TD 쪽에 몰래 흘려 보세요. 쉽게 믿지는 않겠지만 천천히 반응이 올 거예요.

또 조 이사님은 박 실장이란 사람에 대하여 조사해 보고 혹시 이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그리고 이사님들, 지금 대단히 수고가 많은 걸 잘 알고 있어요.

매우 감사드려요. 그리고 앞으로도 RD가 포기하는 순간까지 계속 같은 방법으로 진행 할 거예요.

그러니 조금만 수고해 주세요.”

민 여사의 말에 세 명의 이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이사장실을 벗어났다.

한편 RD 엔터의 대표 정우철은 지금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누구지? 대체 어느 놈이…”

이미 언론플레이를 위하여 상당한 금액을 사용한 정 대표는 자신과 같거나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써서 민수를 보호하고 있는 상대가 누군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누군지 파악이 안 된 거야?”

“아무래도 윤 엔터 쪽이 아니겠습니까? 그쪽 말고는 그런 기사를 올릴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요.”

정답에 근접한 김 이사의 말에 정 대표는 한껏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작은 회사에서 배우 하나를 위해서 그 많은 돈을 쓴다고?”

“그래도, 윤 엔터가 작은 회사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김 이사가 차분하게 이야기했지만 정 대표는 절대 인정할 수 없었다.

“배우가 다섯 명밖에 없고, 그것도 제대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는 한 명뿐인데, 그게 어떻게 작은 회사가 아니야?.. 하… 됐어… 좋아.

지금 무조건 그 어린놈을 흔들어서 데려와야 해. 다음 단계로 넘어가.

천지 쪽에도 연락 넣고.”

점점 막다른 길에 몰리는 듯한 답답함을 느낀 정 대표는 조금 전 보았던 민수의 연기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다시금 욕심이 피어올랐다. 지금 쓰고 있는 돈도 저놈만 데려오면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자 정 대표의 시야는 조금씩 좁아지고 있었다.

김 이사는 그런 생각에 잠긴 정 대표를 바라보며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다.

“대표님, 그래도 조금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김 이사의 말은 단편적이었지만 정 대표는 그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코웃음을 치면서 대꾸했다.

“흥, 그놈들은 엉덩이가 엄청 무거운 놈들이지. 이런 작은 일을 신경이라도 쓸 거 같아?

지금 분위기라면 일파만파로 사람들에게 알려질 거야. 사람들의 오해는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갈 거고, 그럼 아무리 찌라시를 뿌려도 진화가 안 되겠지”

김 이사는 일파만파로 알려질 이 일이 작은 일이라고 말하는 정 대표가 착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정 대표의 생각을 바로잡진 않았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숙이고는 대표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밤, “일진 정민수” 말고 전혀 다른 이야기가 세상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