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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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시간 민수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민 여사는 빠르게 최 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제 시작되었어요. 제가 말한 그대로 준비시켜 주세요.”
[예, 아가씨]
그리고 전화를 끊은 후 바로 홍보팀 직원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기사 하나도 놓치면 안 돼요. 모든 기사마다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하나씩 만드세요.
사실에 근거해도 좋고, 아니면 그냥 소설을 써도 좋아요.
어차피 상대도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신경 안 써도 돼요.
그렇게 뼈대를 잡으면 거기다가 살면 붙여서 바로 기사로 나갈 거예요.”
민 여사의 지시에 홍보팀 직원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두 눈을 번뜩이면서 기사를 하나하나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의에 가득 찬 직원들의 모습에 민 여사는 조금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상황은 심각했지만, 마음이 다소 편해진 민 여사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감돌자, 이미영 팀장은 민 여사에게 따듯한 커피를 내밀었다.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어서 처음에는 직원들이 조금 당황했지만, 막상 일이 시작되려고 하니 새로운 일에 흥분이 되는지 직원들 전원이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고마운 일이네, 기약도 없는 갑작스러운 야근이 며칠이나 계속될 텐데… 나중에 일이 끝나면 보너스라도 두둑이 준비해야겠어.”
“예, 여사님 그러면 직원들이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던 이미영 팀장은 조심스럽게 민 여사에게 자신의 솔직한 기분을 말하였다.
“솔직히.. 지금까지 홍보팀이 제대로 뭔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들은 홍보팀이 필요가 없는 분들이고, 태준 씨는 그냥 자기가 알아서 너무 잘 커버려서… 홍보팀이 진짜 왜 있어야 하나 회의감이 든 적도 많았습니다.
사실, 이런 생각 하면 안되지만, 홍보팀으로서 제대로 일할 기회가 생긴 것 같아 조금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미영의 솔직한 고백에 민 여사는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하였다. 그간 윤 엔터는 아무 일 없이 구르는 바퀴처럼 알아서 잘 굴러갔으니까.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아가며 편하기도 했겠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마음이 무겁기도 했을 것이다.
윤 엔터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다 자신의 손을 거친 아이들이었으니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도 조금 있었으리라.
그런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며 자신의 조심스레 살피는 미영의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민 여사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풋,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지만 이런 거지 같은 일은 좀 피하고 싶어.”
그리고 미영도 민 여사의 그 말에는 충분히 동감하는 바였다.
미영은 민 여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미영에게도 많은 기사를 요약한 자료가 수시로 보고되었다. 그 자료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는 미영을 보며 민 여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확실히, 정우철… 영악한 놈. 언론을 제대로 쓸 줄을 아는구나… 초반에 밑밥만 안 깔았어도 그냥 메이저 언론사에 손을 잡고 독점으로 해명자료 내놓으면, 일이 이렇게 지저분하게는 되지는 않았을 건데.”
민 여사의 말대로 만약 민수의 과거에 대한 자세한 기사가 미리 나오지 않고 바로 민수를 음해하는 기사가 나왔다면, 민 여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메이저 언론사의 손을 잡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하나에 민수의 힘들었던 과거와 이력을 자세하게 인터뷰한다면 지금 올라오고 있는 말도 안 되는 찌라시 기사는 그냥 거짓으로 치부되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정우철 대표는 미리 조사한 민수의 이력을 가장 먼저 공개해 버려 훗날 윤 엔터의 해명을 익숙한 변명처럼 느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윤 엔터에서 아무리 사실을 무기로 해명을 해 봤자 사람들이 듣기에는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밖에 되지 않을 테니, 그것보다는 처음 듣는 온갖 루머들이 그들의 기억 속에 더 오래 남을 것이다.
게다가 이미 밝혀져서 특종이 되지 못하는 민수의 과거에 메이저 언론사가 관심을 가질 가능성은 희박해 졌으니, 사실과 신뢰성을 무기로 이 상황을 반전시킬 방법도 요원한 것이 되어버렸다.
“그래, 정우철… 네가 개싸움을 원한다면 같은 방법으로 싸워줄게..”
민 여사는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굳은 각오를 다졌다.
다음날 언제나처럼 촬영장으로 출발한 민수는 인터넷에서 자신에 대한 무수한 루머가 떠도는 것을 발견 할 수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온갖 소설을 써 놓은 기사들을 읽으며 민수는 기가 막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자신이 고등학교 때 근방에서 알아주는 일진이었고, 폭력사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퇴했으며, 그 뒤 군대로 도망갔다는 기사는 자신이 읽어도 ‘오, 그럴싸한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교하게 조작되어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참 대단한 사람들이야…”
그런 기사 뒤에는 어김없이 자신에 대한 욕설이 뒤따랐다. 그래도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조건 믿는 사람들, 혹은 기사를 의심하는 사람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어?’ 하며 그래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아니면 민수의 기사가 갑작스럽게 쏟아져 나오자 혹시 지금 무슨 정치권에서 큰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 그런 많은 사람의 반응을 보며 민수는 이게 참 무슨 난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어제처럼 그렇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한번 각오를 다져서인지, 아니면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인지 민수는 생각보다 자신이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촬영장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촬영장의 분위기가 생각보다 무거웠다. 민수는 왠지 그 이유가 자신인 것 같아 스텝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민수가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자신의 대기실로 가고 있는데 저쪽에서 리온이 한걸음에 달려와 민수에게 한탄하기 시작했다.
“와.. 도대체… 무슨 기사를 그렇게 거지같이 쓸 수가 있어요? 형님, 전 제가 눈으로 본 형님만 믿습니다. 그딴 소설 같은 기사 절대 안 믿어요.”
왠지 자신보다 더 흥분한 리온을 보니 민수는 그냥 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흥분하며 기자들을 욕하던 리온은 마지막으로 민수를 응원하며 자리를 떠났다.
“형님, 제가 루머라면 예전부터 꽤 시달려 왔었는데 그거 진짜 별거 아니더라고요. 그냥 시간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져 버려요. 그러니 형님도 신경 쓰지 말고 마음 단단히 먹으세요.”
리온의 격려에 민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자신의 대기실로 이동했다.
민수는 이제 겨우 며칠 보지도 않은 리온이 자신을 믿고 응원한다는 말에 가슴이 조금 따듯해졌다.
한편, 한쪽에서 촬영을 기다리며 준비하던 조우명 PD는 한숨을 쉬며 담배만 계속 피워대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카메라 감독이 그를 위로했다.
“와.. 젠장, 정말. 호사다마라더니… 무슨 기사가 그런 식으로 나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민수 씨가 그런 사람은 아닌데…
아니 애당초 이 작은 나라에 언론사가 너무 많은 거 아니야?
언론사라고 이름만 붙여 놓고는 막 써갈기는 놈들 중에 주소조차 파악안되는 놈들이 쌔고 쌨어.
아마 저놈들도 찾아보면 주소조차 제대로 파악이 안되서 소장조차 못날리는 애들이 대부분일 걸.
그런 놈들이 돈이나 받아 먹고 똥을 토해놓고 있으니....
정부 놈들도 문제야.
인터넷 사업자등록 관리가 그렇게 허술하니 피해자가 속출하는 거잖아.
에잉, 진짜."
우영은 정부가 너무 무관심해서 그렇다고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다.
이제 드라마가 들어가서 사람들이 좋은 반응을 보이는데 갑작스레 주연 중 한 명인 민수에 대한 말도 안 되는 루머가 퍼져 나오자 우명의 속은 말이 아니었다.
이런 말이라도 하지 않으면 아마 속이 끓어 올라 진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차피 이 바닥에 루머가 끊이는 날이 있었어? 그냥 액땜한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금방 잦아들 거야.
“하… 진짜 이거 설마 MBS 새끼들이 수작 부리는 건 아니겠지? 우리가 신데렐라 보다 잘나갈 거 같으니까 수 쓰는 거 아니야?”
카메라 감독의 위로에도 안정을 찾지 못하는 우명의 머릿속에는 온갖 상상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런 우명을 보며 카메라 감독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카메라 감독이 보기에 우명의 망상은 답이 없었다.
“그보다 오늘 촬영은 어쩌지?”
카메라 감독이 당장 맞닥뜨린 문제를 언급하자 우명의 표정은 더욱 썩어들어갔다.
“뭘 어떡해, 망한 거지. 어떤 배우가 이런 상황에서 속 편하게 촬영을 할 수 있겠어?”
카메라 감독을 핀잔 주면서 우명은 오늘의 촬영이 계획했던 촬영의 반만이라도 진행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시간이 되고 배우들이 모여들었다. 수연은 민수를 보고 그냥 피식 웃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한마디 해주겠다는 눈빛으로 민수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런 수연을 보며 민수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수연 선배가 저런 눈으로 날 본다면 골려 주는 게 인지상정이지.’
오늘 촬영을 무사히 마치고 가면서 수연을 놀려줄 생각을 하자 민수는 기운이 부쩍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배우들의 분위기를 살피던 우명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리온은 조금 신경을 쓰는 분위기인데 정작 민수의 표정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저게 연기라면 당장 민수를 아카데미로 보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며 우명은 평소와 같이 촬영을 시작했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조금 굳어 있던 스텝들의 행동도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갔다. 민수가 평소와 같이 연기를 하자 스텝들도 조금씩 오늘 본 기사에 대한 걱정을 잊고 자기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최준과 미주가 서서히 마음을 열어가는 장면을 촬영하였고, 준성은 진주와 엘범을 만드는 장면을 촬영하였다. 그리고 피디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평소보다 빨리 오늘 찍을 분량을 다 촬영하고 말았다.
전혀 예상 못 한 상황에 피디는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촬영을 종료하였다.
그리고 민수도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스텝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신의 대기실로 이동해서 자리를 정리했다.
그런 민수의 뒷모습을 보며 촬영 스텝 하나가 중얼거렸다.
“민수 씨는 정말 한결같네. 왜 저런 사람한테 그런 쓸데없는 루머가 나오는 거지?
정말 거지 같은 애들이 쌔고 쌨는데…
그러자 옆에서 정리를 돕던 조연출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야, 원래 루머도 아무한테나 붙는 게 아니야. 될 거 같은 놈들만 죽어라 따라다니는 게 루머거든.”
그렇게 들어가 짐을 정리하는 민수 옆으로 수연이 다가왔다.
“아, 진짜. 인정머리 없는 놈.”
수연이 오자마자 투덜거리자 민수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펴고 수연을 내려다보듯이 턱을 조금 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민수의 모습에 기가 막혀 어이없는 표정을 지은 수연은 실소를 터트리며 자신의 대기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제는 다 죽어 가더니, 막상 오늘은 기가 살았네. 좋아. 앞으로도 두고 보자고~?”
저런 말이 수연 나름의 위로라는 걸 알고 있는 민수는 수연의 관심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자신의 차로 이동했다.
‘그러고 보니 수연 같은 사람들을 “힐링맨토” 에서 뭐라고 하는 말이 있었는데.’
민수가 차에 오르자 기다리던 동원과 수정은 슬쩍 민수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민수가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자 아무 말 없이 차를 움직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아, 맞아! 츤데레! 츤데레였어.”
고심하던 민수가 입을 열자 그 말을 들은 수정은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지금 우리 둘 다 오빠 눈치만 보고 있는데 오빠는 무슨…”
흥분한 수정에 모습에 민수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커뮤니티에서 수연 선배 같은 사람을 ‘츤데레’라고 부르더라고. 너도 들어 본 적 있지?”
커뮤니티에서 얼핏 본 내용을 기어이 기억해 낸 민수가 환한 미소를 짓자 수정은 자신이 민수를 걱정한 것이 조금 억울하게 느껴져 조금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민수는 그렇게 인상 쓰고 있는 수정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다. 아니 수정뿐만 아니라 자신을 걱정했던 모든 주위 사람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그리고 핸드폰에는 염려의 메시지를 담은 조윤희 선생님과 형우, 그리고 이찬성 조연출의 문자가 도착하여 있었다.
걱정 어린 마음이 절로 느껴지는 문자를 바라보며, 민수의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온몸으로 따듯함이 퍼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