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60화 (60/325)

# 60

2

잠시 생각하던 민 여사는 고개를 들고 박 이사를 바라보았다.

민 여사의 기품 있는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자 살짝 고개를 숙인 박 이사는 자신이 알아본 바를 민 여사에게 보고했다.

“가장 먼저, 정우철 대표는 근래 특별한 행동을 보이진 않고 있습니다. 다만… 4일 전 천지일보 쪽 연예부 부장과 만나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고 합니다.”

박 이사의 말에 곱게 단장되어서 가지런한 민 여사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민 여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박 이사는 이어서 계속 보고했다.

“문제는 김인수 이사가 따로 쓰는 직원들인데.. 이 직원들이 지금도 한창 삼류 연예 매거진이나, 찌라시를 뿌려대는 언론사들의 기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박 이사의 보고가 이어지자 고운 민 여사의 눈매가 조금씩 날카로워지고 미간에 미묘한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언론사를 따지지 않고 거의 무작위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워낙 많은 언론사가 있다 보니 모든 언론사를 만나고 다니는 것이 아니지만…”

“그래서, 대충 비율은 얼마나 되죠?”

“어림잡아 30%~40% 정도는 되는 거 같습니다.”

박 이사의 말에 민 여사의 입에서 신음이 세어 나왔다. 그리고 민 여사는 잠깐 박 이사의 말을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았다.

“만약, 정우철이 사주한다면 메이저 언론사인 “천지” 쪽에서 민수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내보낼 수 있을까요?”

민 여사의 말 하자 옆에서 이사들의 보고를 듣고만 있던 한 비서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사장님, 그건 힘들 겁니다. 천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아마 사실을 기반으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포함한 기사를 올리는 정도 일 겁니다.

허위나 가십성 기사를 내보냈다가는 자신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거밖에 안 될 테니까요.

그리고 그 전에 그런 악의적인 기사를 싣는다는 건 최우철이한테 돈을 받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았다는 건데…

4대 메이저 언론사에서 그런 일이 있다가는 그날부로 광고주들이 다 떨어져 나갈 겁니다.”

민 여사는 한 비서의 설명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중소 언론사들이 난립하고 있는 시대에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고 있는 네 개의 언론사가 있었다.

“대한 문화 일보” ,“천지일보”, “데일리 조선”, “한국 뉴스” 이 네 곳이 그 주인공인데 사람들은 이 네 곳을 메이저 언론사라고 불렀다.

이 네 곳이 메이저 언론사라고 불리는 것은 결코 규모가 가장 커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이 네 곳에서 나오는 기사들이 가장 믿을 만하기 때문이다. 즉 신뢰도가 메이저라는 것이었다.

우선 첫째, 이 네 곳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언론사가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가운데 이 4곳은 가장 짧은 곳도 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둘째, 이 네 곳은 특정 자본 세력에 잠식되지 않은 언론사였다.

메이저 언론사라 불리는 네 곳 외에 그보다 더 규모가 큰 언론사들은 모두 특정 자본을 근간으로 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특정 기업, 특정 세력에 근간을 둔 언론사들은 결국 기사의 방향이 특정 기업이나 세력을 정당화하는데 치우칠 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런 언론사들의 기사는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점차 알게 된 것이다.

반면, 이 네 곳은 사주가 언론사의 지배권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다른 기업의 압박에서 조금 자유롭게 된 것이다.

유일하게 받는 압박은 대기업의 광고였는데 4대 메이저라는 이름값은 대기업의 작은 압박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대기업 한둘 정도와는 척을 저도 사람들이 가장 신뢰하는 신문에 광고를 올리고 싶어 하는 광고주들은 줄을 섰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사주들은 자신의 언론사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올리는 기사가 객관성을 잃는 순간 자신들은 그냥 평범한 언론사가 되어 여타의 많은 언론사처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무기인 객관성을 철저하게 지켜 나갔다.

셋째, 이 네 곳의 기자들은 확실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있었다.

애당초 뽑을 때부터 사명감이 있는 기자들만 선발했고 자체 정화 작업을 통하여 청탁이나 향응을 받는 기자들은 바로 퇴사 처리당한다.

이런 기자들이 기사를 작성하니 이 네 곳의 기사들은 다른 곳에 비하여 확실히 객관성이 있었다.

메이저 언론사의 관하여 잠시 고민해 보던 민 여사는 확실히 한 비서의 말대로 “천지”에서 대가를 받고 음해성 기사를 내보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아직 일렀다. 그들도 결국은 한낱 언론사에 불과하고 공익단체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큰 먹이가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예상치 못한 기사로 자신들의 뒤통수를 칠 수 있으리라.

그렇기에 민 여사의 머릿속에는 대체 왜 만났을까 하는 의문이 맴돌았지만, 지금 당장은 알 수 없으니 궁금증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였다.

“그럼, 역시 당장은 수많은 언론사를 이용해서 RD 측에서 언론 플레이를 할 가능성이 가장 크겠군요.”

민 여사의 지적에 박 이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삼류라도 다 같은 삼류가 아니잖아요.

규모가 작더라도 비교적 정확한 기사를 실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신뢰도를 쌓은 곳도 있을 거예요.

아니면 찌라시라도 기사를 재미있게 쓰거나 자극적으로 잘 써서 사람들이 많이 보는 곳들이 있을 거고요.

그런 곳들 위주로 조사해 보세요.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혹시 건물에 세 들어 있으면 그 건물의 주인이 누군지도 알아보세요.

그리고 RD 쪽이 접촉하지 않은 언론사들하고 조금씩 접촉해 보세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부터 순차적으로. 어쩌면 같이 맞불을 놓아야 할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천지”의 행보를 주의해서 살펴보세요. 정우철이 그냥 만나진 않았을 거예요.

시급한 사항들이니 되도록 빨리 움직이세요”

민 여사가 말을 마치자 민 여사의 말을 꼼꼼히 기록한 박 이사는 고개를 숙이고는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후….”

박 이사에게 다음 행동을 지시한 민 여사가 한숨을 쉬며 지친 기색이 역력하여 보이자 다음 보고자인 조 이사는 그런 민 여사를 따듯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잠시 지친 정신을 달래며 쉬고 있던 민 여사는 그런 조 이사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조 이사님은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민 여사의 어조에 조금의 투정과 애교 섞인 힐난이 포함되어 있자, 조 이사는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민 여사에게 대답했다.

“아가씨는 여전하다 싶어서요. 예전하고 다를 바 없으십니다.”

조 이사의 말에 민 여사는 그냥 웃기만 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신적인 피로가 가시자 다시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작게 심호흡을 한 후 조 이사에게 물어봤다.

“어때요? 제가 말한 건… 작은 거라도 찾은 게 있나요?”

민 여사의 질문에 조 이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런 조 이사의 표정에는 황당함과 어이없음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상식밖에 일이라….”

조 이사의 설명이 계속되자 민 여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그리고 조 이사가 설명을 마치자 민 여사는 조금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조 이사를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그리고 그걸 그렇게 쉽게 알아낼 수 있다니… 혹시 함정 같은 거 아닐까요?”

민 여사가 쉽사리 믿지 못하는 듯하자 조 이사는 차분하게 보충하여 설명했다.

“우선 그렇게 쉽게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내부에서 은근히 흘려보내고 있다는 느낌은 조금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 자체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 이사의 말에 민 여사는 조금 생각을 정리한 후 그에게 천천히 다시 조사 해 볼 것을 지시했다.

“내부에서 흘려보낸 내용이면 수뇌부들 간에 알력다툼이 있을 수도 있겠군요.

그것을 중점으로 다시 한번 조사해 보세요.

대체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지 알아야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사실인지도 확실히 조사해 보시고요.”

“네, 아가씨”

민 여사의 지시에 조 이사는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이사장실을 나섰다.

조 이사까지 방을 나서자 민 여사는 오늘 보고 받은 자료들을 차례로 정리한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표님께 가십니까?”

옆에서 대기하던 한 비서가 묻자 민 여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홍보팀도 알아야 할 일이니까.”

말을 마친 민 여사는 평소의 그 느긋한 걸음으로 천천히 7층 대표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7층 대표실

윤 대표와 홍보팀 이미영 팀장은 그녀가 들고 온 자료를 보면서 심각한 분위기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정확한 의도는 파악할 수 없지만, 분명히 어떤 목적을 위한 기사라는 거지?”

“네, 대표님. 민수 씨의 지금까지 행적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리고 있습니다.

당연히 지금까지 민수 씨의 과거에 대하여 문의를 받은 적은 있지만 어떤 직원들도 답변을 준 적은 없고요.

결국 그렇다면 자신들이 조사했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자신들이 들인 노력에 비하여 그들이 얻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그들도 받은 자료이다?”

“네, 분명히 누군가가 목적을 가지고 건네준 자료가 확실합니다.”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대표실의 문이 열리면서 민 여사가 우아한 걸음걸이로 들어와 윤 대표의 옆에 살포시 걸터앉았다.

민 여사가 자리에 앉자 설명을 이어가던 이미영 팀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 모습에 민 여사는 피식하고 웃으며 미영을 나무랐다.

“어머, 미영아. 왜 이렇게 오버야?

편하게 편하게~. 그나저나 재미있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거 같네요.”

민 여사가 운을 띄우자 미영이 바로 설명을 시작했다. 민수의 행적이 다소 정확하게 여러 언론사에서 언급이 되기 시작했고, 그 느낌이 심상치 않다는 미영의 설명에 민 여사는 윤 대표에게 차분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였다.

“아마 밑밥부터 깔기 시작하는 거예요.”

민 여사의 말에 윤 대표는 의문을 느끼며 그 의미를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밑밥…. 밑밥… 아.. 설마…”

윤 대표가 무엇을 깨달은 듯하자 민 여사는 오늘 자신이 들은 보고들을 하나하나 윤 대표에게 집어 주었다.

다만 마지막에 조 이사에게 들은 이야기는 확실한 것이 아니라 제외한 체, 그 외에는 빠짐없이 설명해 주었다.

윤 대표의 얼굴에는 민 여사의 설명이 하나하나 계속될수록 짜증과 불쾌함으로 물들어 갔다.

“그 자식이 그럼 민수를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해보자는 건데.. 하지만 이건 상당한 비용이 드는 일이야. 그래서 그놈이 얻는 것은 뭐지?

민수가 사고를 친 것도 아니니 그놈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무작정 음해하는 것뿐이잖아? 그리고 그런 것들은 그냥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텐데..”

윤 대표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민 여사를 바라보자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그가 알아듣기 쉽게 분석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대표님. 모든 사람이 대표님 같지는 않아서 사람이라면 자신의 루머가 돌기 시작하면 흔들리게 되어있어요.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간에 말이에요.”

배우였을 당시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루머에도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던 윤 대표는 민 여사가 웃으면서 말을 시작하자 ‘끙’하며 신음을 내뱉었다.

“하.. 민 여사,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신경이 무뎌서 그런 쪽으로는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었지.

그건 그냥 내가 별나서 그런 거고, 다른 배우들이 다 나 같을 순 없다는 거 말이야.

그래서, 결국 루머를 이용해서 우선 민수를 흔들어 보겠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