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59화 (59/325)

#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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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주 때문이야. 그건”

태준이 말하자 민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태준의 말에도 설아는 의문이 완전히 풀리지 않은 듯 미간을 찌푸리며 아리송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민수는 그런 설아의 모습이 조금 귀여워 슬쩍 눈을 피해 미소를 지었고 태준도 같은 생각인지 자상하게 웃으며 이어서 설명했다.

“가장 심각한 순간이 지나면 바로 진주가 나와서 요란을 떨잖아.

최준과 준성이 엘범 때문에 갈등 할 때도 그렇고 미주가 최준에게 시달리고 나서도 그렇고 말이야.

그런 진주의 엉뚱한 모습 때문에 긴장감이 떨어져서 극의 진행이 무겁지 않게 느껴지는 거야.”

“아.. 그러고보니..”

태준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설아는 그제야 확실히 깨달은 듯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설아의 미소를 뒤로하고 태준은 수연에게 툭 던지듯 무심하게 말을 건넸다.

“이수연.. 확실히 예전 같지는 않네.. 드라마 마치면 바로 아버지가 특별 교육을 받자고 하겠어… 저 정도로 윤강철의 제자라고 할 수 있겠어?”

무심한 얼굴을 한 태준이 약간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힐난하자 수연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리고 그런 둘의 모습을 안절부절못하며 바라보던 설아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태준에게 따졌다.

“왜? 언니 잘했는데. 왜 그렇게 트집을 잡으실까? 바보 오라버니.”

설아의 말에 태준은 그냥 피식 웃으며 수연을 바라보았다.

“뭐, 본인이 더 잘 알겠지. 슬픈 감정의 미주와 억척스러운 미주, 그리고 발랄한 미주의 캐릭터가 다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그래서 따로따로 놓고 보면 다 괜찮은 연기인데… 극 전체로 보면 글쎄.. 같은 미주라고 생각 할 수 있을까?”

태준의 설명에 민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연기 감이 떨어진 수연 선배의 연기는 극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고 있었다.

장면 장면에 각각의 감정을 끌어오는 것만으로도 조금 벅찬 수준이었고 그러다 보니 전체를 아우르는 통일성을 조금 잃은 상태였다.

그런 모습이 오늘 2화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최준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미주, 그리고 K-G를 강제로 쫓아 버리는 발랄한 미주의 모습이 연이어 화면에 이어지자 미묘하게 어색한 느낌을 주고 만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씬이 그렇게 이어져서 조금이나마 체감 할 수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는 그렇게 극단적으로 감정이 변하는 장면이 이어질 일은 없으니 별문제도 아니었다.

훗날 드라마를 한 번에 정주행하는 사람들이나 조금 느낄만한 차이였으니 16 부작이나 되는 드라마를 몇 명이나 그렇게 정주행하겠는가?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차이마저 느끼지 못하리라.

‘결국 맞는 말이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냥 수연 선배 속 긁으려고 한 말에 불과하지’

하지만 촬영장에서 촬영하는 모습을 본 것도 아닌데 화면 하나만 보고 그것을 파악한 태준의 눈썰미에 민수는 조금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좋은 눈썰미를 수연 선배 속 긁는 용도로 쓰다니, 윤 배우 너도 참..’

태준의 대단한 능력과 그에 반비례하는 도량에 혀를 차며 민수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태준을 진정시키고 수연을 위로했다.

“윤 배우, 선배가 더 잘 알고 계실 텐데 왜 그런 말을 해? 진짜 연기를 한 게 벌써 몇 년이나 지났어. 감은 완전히 죽어 버렸을 테고.

그 짧은 시간에 선배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래?

뒤에 촬영된 연기는 저것보다 훨씬 부드러워. 점점 나아지고 계시니 이제 곧 예전의 기량을 다 되찾으실 거야.

그리고 이제 한 식구인데 너무 그렇게 매정하게 말하지 말자. 가능하면 서로 쌓인 것도 조금씩 풀고 말이야.”

민수의 말에 태준은 묘한 표정으로 민수를 바라보다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민수가 그런 태준을 의아하게 생각하며 바라보는데 옆에 있던 설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민수를 쳐다보았다.

설아의 모습에 조금 당황스러움을 느낀 민수는 고개를 돌려 수연을 바라보았다.

분노로 붉게 물들어 버린 얼굴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수연은 주변을 더듬거리다 손에 잡힌 빈 맥주캔을 민수에게 냅다 던졌다.

“야, 이 자식아! 네가 제일 나빠! 내가 너보다 훨씬 선배거든! 후배한테 말하듯이 그따위로 말하지 말아 줄래?!”

민수가 수연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당황하고 있는 사이 맥주 캔을 던지고도 한참을 씩씩거린 수연은 기운 빠진 표정으로 민수와 태준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 정말 이놈이고 저놈이고 참.. 여긴 왜 이렇게 건방진 애들밖에 없어?”

한탄하듯 말하는 수연에게 태준은 툭 던지듯 말했다.

“잘난 놈들밖에 없어서 그래. 잘 가, 다음에 보자고.”

끝까지 얄밉게 말하는 태준을 보며 수연은 인상을 팍 구기고 한번 째려보고는 방을 나섰다.

그런 수연을 보고 설아는 혀를 차며 태준의 가슴팍을 세게 두 대 때리고는 수연을 따라갔다.

그런 설아에게 불의의 습격을 당한 태준은 숨을 캑캑대며 괴로워했고 민수는 그냥 옆에서 태준의 등을 두드리며 그가 몸을 추스르는 것을 도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몸을 추스른 태준은 웃으면서 민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대단하다는 듯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큭큭, 정말 대단해, 정 배우. 정 배우가 진짜 대단한 게 뭐냐면, 아까 한 말이 정 배우의 순수한 진심이었다는 거야.”

태준이 웃으며 말하는데 민수는 그냥 편하게 웃을 수가 없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어려 보이는 외모 때문이기도 했지만 민수는 은연중에 수연을 자신보다 더 어리다고 느끼고 있었다.

사실은 수연이 자신보다 나이도 많고 경력도 많은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후,, 정신연령 때문인지.. 수연 선배를 마냥 어리다고만 생각하고 있었어. 수연 선배야 우리랑 친한 사이니까 그래도 이렇게 웃으며 넘어가지.

다른 사람에게까지 이런 식으로 행동하게 되면 조금 문제가 생길 거야. 누가 봐도 난 지금 25살의 어린 배우니까 말이야.’

민수는 태준의 말에 쓴웃음을 지으며 앞으로 행동을 조금 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씁쓸하게 웃기만 하는 민수를 바라보며 태준은 웃음을 멈추고 아련한 눈빛으로 방을 한번 둘러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너무 걱정하지마, 정 배우. 그냥 심통 좀 부린 거뿐이니까. 수연 선배는 너무 쿨해서 저 정도는 별로 신경도 안 쓸 테니까 말이야.

그냥 조금 서운했어.

내가 그렇게 찾아갈 때는 얼굴도 못 봤던 수연 선배를 이렇게 정 배우가 쉽게 다시 데려왔다는 사실이…”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방을 나서는 태준에게 민수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그냥 담담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누구냐가 문제가 아니었어, 윤 배우. 그냥 시기가 문제였어. 지금이었으면 누가 갔어도 수연 선배를 데려 올 수 있었을 거야.

그냥 시기가 잘 맞았을 뿐이야.”

그런 담담한 민수의 위로에 태준은 그냥 가볍게 웃음 짓고는 손을 흔들면서 방을 나섰다.

“송포유”의 1화 2화는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조금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1화 9.7% 2화 10.8% 한 주 먼저 방영했던 “신데렐라의 남자” 와 비슷한 성적이었다.

반면 3화 4화를 방영한 “신데렐라의 남자”는 시청률 반등에는 실패하고 전주와 비슷한 성적을 기록했다.

3화 10.5% 4화 11.1%.

1화 2화를 방영한 후 “신데렐라의 남자”에 대한 많은 호평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였다.

“신데렐라의 남자” 에 대한 기사는 한 주가 지났어도 대동소이했다.

배우들의 연기는 준수했고 스토리 진행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다만 시청률만 움직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호평 후에 시청률이 상승하는 기본적인 공식이 지켜지지 않자 제작진들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반면 “송포유”의 제작진들은 예상외에 선전에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의 연기를 선보이는 배우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호재까지 모든 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흐르는 듯한 느낌에 조우명 PD와 서주영 작가, 그리고 이진명 CP까지 환호성을 내질렀다.

민수도 기쁜 마음으로 다음날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송포유”의 호의적인 기사를 볼 때마다 민수의 기분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반면 조금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윤 엔터의 홍보팀이었다.

묘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 사무실 안에는 ‘타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만 조금씩 들려오며 그밖에는 숨소리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직원들이 하나둘씩 전해주는 기사를 살펴보며 이미영 팀장은 말없이 볼펜 뒷부분만 입에 물고 있다.

이미영 팀장은 기사들을 다시 하나하나 세심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보기 시작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결국 한가지 결론에 도달한 이미영 팀장은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미영 팀장이 드디어 움직이자 직원 하나가 서둘러 그녀 앞으로 달려왔다.

“팀장님, 어떻게 할까요?”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 직원의 이마에서 맺힌 땀방울이 살짝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본 미영은 그냥 피식 웃고는 모아진 기사를 프린트했다.

그리고는 직원의 어깨를 살짝 치고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뭘 어떡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대표님께 보고 드려야지.”

그리고 직원을 지나쳐 가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잘했어. 빨리 발견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었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기사 나올 때마다 찾아서 모아 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는 직원을 보면서 미영은 서둘러 대표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리 재단 이사장실.

민 여사는 4명의 이사에게 간략한 보고를 받고 있었다.

각 배우의 주변 환경, RD 엔터 정우철 대표의 행보, RD 엔터 직원들의 움직임까지 조사를 지시한 지 단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자료가 민 여사에게 보고되었다.

“우선, 배우들의 신변이나 주변인들 그리고 윤 엔터의 직원들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것이죠?”

“네. 윤 엔터 직원은 다 우리 식구들과 그 친인척들뿐이라 별로 문제 될 일이 없습니다. 배우들이라 해 봤자 신경 쓸 사람은 이수연 씨랑 정민수 씨 뿐이고요. 이수연 씨 같은 경우는 부모님들이 운영하시는 과수원도 무난하게 잘 되고 있어서 별일 없습니다. 다만…”

배우들과 회사 내부의 인원들을 단속하라는 지시를 받아 조사를 마친 최 이사가 보고 중에 말을 흐리자 민 여사는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한 민 여사의 눈빛에 살짝 고개를 숙인 박 이사는 보고를 계속 이어 나갔다.

“이수연 씨 같은 경우는 RD에서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은 사실 자체로 여러 가지 구설에 오를 수 있습니다.”

민 여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자 최 이사는 다음 부분을 설명했다.

“정민수 씨 같은 경우, 친척이나 친지도 없어서 마땅히 관찰할 주변 인물도 없었습니다. 다만 본인의 이력에 특이한 것이 너무 많아서 세간의 많은 관심을 끌게 될 거 같습니다.

만약 이 과정에서 조금만 나쁜 이야기를 첨가된다면 꽤 타격이 있을 거 같습니다. “

민 여사는 최 이사의 보고서를 다시 한번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이사님,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알아보셨군요. 수고하셨어요. 수연이네 과수원에서 매주 과일이 윤 엔테로 보내져 오고 있었다는 건 나도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어요. 그것도 2년이나.”

“과수원에서 과일이 열리기 시작한 게 그때부터였다고 합니다.”

“제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니.. 기가 막힌 일이군요.”

“이지영 조리사의 말을 들어보니 아가씨께서 모르는 곳에서 온 것이라고 반송하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처음 몇 주는 그렇게 반송했는데 계속 물건이 도착하다 보니 그다음부터는 그냥 받았다고 합니다.”

최 이사의 말에 민 여사는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머리를 손으로 짚고 작게 한숨을 쉰 후 진정한 민 여사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영이는 조금 혼내야겠네요. 사실 그거 그냥 범죄나 마찬가지잖아요. 다행히 우리 쪽으로 보낸 물건이 맞아서 별일 없는 거지…”

그리고 민 여사는 최 이사가 올린 보고서의 마지막 부분에 동그라미를 쳤다.

“지금.. 우리 소속사에 가장 취약한 부분이 우리 귀염둥이라…”

민 여사는 ‘정민수’ 라고 쓰여진 보고서를 보면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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