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흔한 배우 정민수-56화 (56/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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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민수가 웃고 떠드는 동안 윤 엔터의 대표실은 전혀 다른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긴장하고 있던 윤 대표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 여사.

잠시 후 대표실 문이 열리고 이수연이 대표실로 들어왔다.

단발에 전혀 꾸미지 않은 수연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자 윤 대표는 마치 9년 전 처음 수연을 만났을 때 보았던 그 앳된 얼굴의 고등학생인 수연이 자신의 눈앞에 있다는 착각이 들었다.

윤 대표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펑펑 울면서 윤 대표에게 달려들었다.

“잘못했어요, 선생님. 제가 생각이 너무 짧았어요. 용서해 주세요….”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다짜고짜 울면서 안기는 수연의 모습에 윤 대표는 머릿속으로 생각하던 수많은 말 중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수연의 어깨를 두들기며 “그래… 그래” 를 반복하며 달래 주기만 했다.

그리고 그 모습에 살짝 미소 지은 민 여사는 그냥 바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잠시 그렇게 수연을 안아 준 후, 윤 대표는 수연이 진정하자 수연을 자리에 앉혔다.

“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조금 제정신이 든 수연은 윤 대표에게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니에요, 돈 때문에 소속사 떠난 거. 그냥 제가 멍청해서 그랬어요.

제가 돈을 그렇게 많이 벌 수 있는 줄 알았으면 악착같이 남아서 선생님께 돈 잔뜩 안겨 드렸을 텐데. 후…”

이 와중에도 입을 삐죽이 내밀고 투정하듯 말하며 한탄하는 수연을 보며 윤 대표는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미안하다, 수연아.

내가 너를 자식이라고 생각했으면서 마지막 순간에는 너를 완전히 믿지 못했다.

내가 너를 끝까지 완전히 믿었어야 했는데…”

한탄하는 윤 대표를 보며 수연은 밝은 표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 저 믿어 주시는 거예요? 제 말 믿어 주시는 거예요?”

그런 수연의 모습에 윤 대표는 차마 수연의 모습을 쳐다볼 수 없었다.

윤 대표는 저 철없이 어린 것이 자신을 배신한 거라고 혼자서 괴로워하고 자책했었다고 생각하니 왜 자신이 나서서 확인할 생각을 못 했는지, 왜 나는 내가 받을지도 모르는 상처만 두려워했었는지 과거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생각을 정리한 윤 대표는 대뜸 계약서를 꺼내었다.

“사인 해라. 이제 다시 시작해 보자. 이제 지난 일은 잊어버리자.”

윤 대표가 계약서를 내밀자 수연은 잠시 기쁜 표정을 짓다가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

수연이 잠시 머뭇거리자 윤 대표는 웃으며 수연에게 물었다.

“무슨 다른 문제라도 있니? 솔직히 말해 보아라.”

윤 대표가 부드럽게 말하자 수연은 잠시 이를 악물고 윤 대표에게 조심스럽게 대답하였다.

“사실. RD랑 좋게 헤어지지 못했어요.

아마 RD의 정 대표가 제가 윤엔터에 들어 오는 것을 알면 아마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윤 대표는 수연의 말에 치미는 노기를 억지로 억누르며 한탄했다.

“남의 집 백조를 훔쳐 가서 연못에 키운다고 날개를 부러뜨려났는데 어째서 자기가 더 성을 낸단 말이냐...”

수연의 말에 이를 갈던 윤 대표는 다시 부드럽게 수연을 타일렀다.

“네가 아직 나를 완전하게 믿지 못하는구나”

윤 대표의 말에 수연은 깜짝 놀라며 윤 대표의 말을 부정했다.

그런 수연의 모습에 윤 대표는 자상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어. 인간 윤강철은 믿을 수 있지만 어쩌면 윤 엔터의 윤 대표는 믿지 못할 수 있겠지.

하지만 수연아, 난 이제 한 발도 물러나지 않을 생각이다. 널 반드시 지킬 거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단호하게 말한 윤 대표는 다시 계약서를 내밀었다.

“어서 사인 해라. RD는 내가 상대할 테니. 걱정하지 말고.”

윤 대표의 그런 다짐에 수연은 눈물을 흘리며 계약서에 사인했다.

“혹시 데리고 오고 싶은 사람이 있니? 너를 도와주던 사람 중에 말이다.”

윤 대표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 자신을 케어해주던 팀원들을 이야기했다.

“RD에서 완전히 눈 밖에 난 사람들이라니 반대로 믿을 만한 사람들일 수 있겠구나. 우선 다 불러들이거라 그 사람들이랑 그대로 팀을 유지하면 되겠구나.”

윤 대표의 말에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팀은 당장 내일 불러들이거라. 너도 내일 일찍 나오고. 집도 옮기자. 이곳 근처에 살만한 곳이 많으니까”

수연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후.. 수연아 다시 한번 미안하구나. 내가 어른 답지 못해서..”

수연은 윤 대표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젓으며 윤 대표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선생님. 다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그렇게 수연이 떠나고 민 여사 바로 대표실로 들어섰다.

방긋 웃으며 민 여사는 윤 대표를 축하해 주었다.

“이제 집 나간 딸이 돌아왔네요.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사실만 깨달은 체로요.”

민 여사의 비유에 윤 대표는 실소를 터트리며 한숨을 쉬었다.

“저 아이가 나한테 미안하다는구먼. 정작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나인데.

내가 저를 끝까지 못 믿어서 저가 마음고생 한 것은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야..”

괴로운 목소리의 윤 대표를 보며 민 여사는 애써 윤 대표를 위로했다.

“원래 그런 아이였잖아요. 수연이는.”

민 여사의 말에 윤 대표는 가만히 눈을 감아 옛날의 한때를 기억했다.

“그랬지. 조금 되바라지긴 했지만. 천생 남 탓은 안 하는 아이였지. 다 자기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어.

나는 왜 그걸 다 잊어버렸을까.

난 정말 어른 실격이야.

설아한테도 그렇고 수연이한테도 그렇고 정말 딸아이들에게 몹쓸 짓만 하는 아버지구먼”

민 여사는 옆에서 윤 대표의 말을 듣기만 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윤 대표는 민 여사를 바라보았다.

조금 그윽한 눈빛으로 민 여사를 바라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리야, 내 힘으로는 저 아이들을 아마 보호해 주지 못할 거 같아.

부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저 아이들을 지키는 데 힘을 보태 줘.”

민 여사는 진실한 목소리로 부탁하는 자신의 남편을 바라보며 따듯한 미소를 보냈다.

“변했네요, 달링. 예전에는 제 도움을 받기 싫어했었잖아요.”

민 여사의 말에 윤 대표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변했지. 그리고 변해야지. 처음 수연이가 데뷔했을 때 그때까지만 해도 난 배우는 그냥 연기만 잘하면 충분히 성공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나는 분명 그렇게 성공했고. 그게 올바른 방법이라고 말이야.

그래서 수연이에게 연기만을 지도하고 그 밖에 부분에 대하여서는 다소 소홀히 하였지.

하지만 시대는 변해 있었어. 그리고 난 뒤떨어져 있었지.

그리고 그 결과 자본을 이용한 온갖 협잡질 저 아이가 농락당했는데 난 그걸 지켜 보기만 했어.

한심하게도 그때까지도 난 정신을 차리지 못 한 거야.

그게 옳지 못하다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만 했고 스스로 상처 입는 것만 두려워서 외면하기만 했어.

며칠 전에 민수가 나에게 말하더군.

대표님을 믿으니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말이야.

그때 문뜩 든 생각이 있어.

만약 저 아이가 자본이나 다른 이의 탐욕에 눌려 피해를 볼 위기에 처하면 난 어떻게 하면 되지?

날 믿는 저 아이를 수연이처럼 또 외면할 것인가?

아니, 이젠 아니야. 무조건 내 아이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 할 거야.

그리고 그 모든 것에는 내 가장 큰 힘이자 믿음인 너는 당연히 포함되어있지.

민 아리, 도와줘. 너의 힘이 필요해.”

굳건하고 신념에 차서 빛나는 남자 윤 강철의 눈을 본 아리는 꾸미지 않은 솔직한 미소로 다가가 강철을 강하게 안았다.

“이제야, 내 달링 같네.. 난 9년 전 내 도움을 거절했을 때도 5년 전 내 말을 듣지 않고 억지를 부릴 때 조금 서운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신이 멋있다고 생각했어.

옳고 그른 것을 떠나서 언제나처럼 당신은 자신만의 확실한 신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5년 전부터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 점점 시시해졌어.

우유부단한 당신은 너무 멋이 없잖아.

나의 힘을 쓰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지 말아요. 당신 그런데 휩쓸리는 사람 아니잖아.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난 당신 거고. 내 것이 그냥 당신 거에요.”

윤 대표에게서 떨어진 민 여사는 다시 예의 그 고상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당신이 마음을 다잡았으니, 내가 조금 바빠지겠네요. 준비를 시작할게요”

웃으며 나서는 민 여사의 모습을 보며 윤 대표도 한결 가벼워진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드라마 시청을 마치고 내려가던 태준과 민수 그리고 설아는 복도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을 발견하고는 잠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윤 대표와의 면담을 마치고 나오던 수연은 어색하게 웃으며 작게 손을 흔들고 삼인을 반겨 주었다.

“앗, 태준. 설아. 오랜만…”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태준은 입이 벌어지고 조금 울분에 찬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수연에게 다가갔다.

“하.. 오랜만..? 이수연 그게 지금 .. 그렇게 제 맘대로 나갔다가 다시 제 맘대로 돌아왔다고?”

화가 난 듯한 태준의 반응에 수연은 어깨를 잠시 움츠리고 작게 사과했다.

“미안.. 태준아. 미안…”

수연의 사과에 태준의 분노는 기름을 부은 듯 더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 미안..이라고? 5년 만에 와서 고작 미안.

대체 내가 수십 번 연락하고 찾아가고 몇 번을 찾아가도 얼굴 한번 안 비추다가 인제 와서 미안이라고!”

태준에 말에 수연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뭐하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고…그냥 무서웠는걸….”

수연의 말에 태준이 기가 막혀 하자 수연은 굳은 얼굴로 태준을 바라 보았다.

“그래, 내가 잘못했어. 적어도 너는 내가 만나 볼 수 있었는데. 내가 도망친 거야. 화가 나면 날 때려!”

차라리 자신을 치라는 수연의 말에 울화가 터져버린 태준은 순간적으로 손을 들었다가. 수연이 눈을 감고 인상을 쓰자 허탈한 한숨을 내뱉고는 손을 내렸다.

그리고 그 장면을 본 민수는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거… 왠지 좀 익숙한 장면인데… 웃을 수도 없고 참..’

그러는 순간 설아가 수연을 잡고 밖으로 내뺐다.

태준과 민수는 그냥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잠시 둘은 아무 말 없이 서 있기만 했다.

그때 대표실에서 민 여사가 조용한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어머.. 아들하고 귀염둥이네. 혹시 수연이도 봤니? 이제 수연이 다시 우리 소속사에서 지내기로 했단다.”

웃으며 유쾌하게 말하는 민 여사의 말에 민수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민 여사는 따듯한 눈으로 민수를 바라봤다.

“너겠지? 귀염둥이. 수연이를 등 떠밀어서 여기로 다시 데리고 온 게….”

민 여사는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바로 민수에게 다가와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정말 복덩이 같구나. 내가 오늘 일은 꼭 잊지 않을게~”

쑥스러운 민수가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민 여사는 다시 한번 민수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바로 계단으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보던 태준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민수 보더니 민수의 팔을 잡아끌고 휴게실로 이동했다.

민수가 휴게실 소파에 앉자 태준은 민수에게 바로 물어봤다.

“정말이야? 정 배우? 정 배우가 다시 수연 선배 다시 잡아 온 거야?”

태준의 말에 민수는 쓰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아니, 윤 배우. 수연 선배가 무슨 도망 노비도 아니고 잡아 온 다는 표현은…

어쨌든 다시 윤 대표님이랑 대화하게 계기를 마련해준 건 내가 맞아.”

태준이 뭐라고 말하려는데 민수가 조금 추가해서 설명했다.

“그냥 그런 거야. 장기 1단도 훈수 둘 때는 장기 9단이잖아.

그냥 내일이 아니니까 좀 편하게 말한 거야.

어때 윤 배우. 내 선물이. 예상보다 너무 일찍 도착하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한번 움직이면 그 효과가 너무 놀랍지 않아?”

웃으며 너스레 떠는 민수를 태준은 그냥 허탈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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